51장
“맞으면?”
“월세는 어떻게 하는 거야?”
“어?”
“절반씩 내니?”
서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기에 부산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라도 네가 지금 엄마한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은 것이 있으면 지금 말해. 그 사람은 네 이름으로 대출해서 너를 곤경에 빠뜨린 것은 문제라고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다만 자신이 해준 것은 기억하겠지.”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춘자가 부산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그의 삶에 터치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거였다.
“만일 네가 그쪽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라면. 나는 그것도 싫어. 그래서 안 돼.”
“누나.”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 건 응원해.”
서울의 말에 부산은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내가 뭘 더 도와야 하는 거야?”
“아니.”
부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그럼 됐어.”
“화도 안 내?”
“어?”
부산의 물음에 서울은 미간을 모았다. 화를 내다니? 부산이 남자를 만나는 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건가? 더군다나 그걸 가지고 자신이 화를 내야 할 이유도 하나 없었다. 그것도 우스운 일이었고.
“그거 네가 선택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네가 그렇게 태어난 것을 가지고 내가 왜 화를 내야 하는 건데?”
“아니.”
“그냥 내가 미안하네.”
서울은 아랫입술을 침으로 적시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부산이 그 동안 혼자서 이걸 어떻게 안고 있었을까?
“나에게는 말해도 되었던 거잖아. 엄마에게는 숨기더라도 나에게는 이런 일이 있다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해줘도 되는 거잖아. 너는 바보처럼. 왜 그걸 혼자서 그렇게 끙끙 앓고 있었어?”
“누나.”
“됐어.”
다른 말을 더 할 것도 없었다. 이건 부산의 잘못도 아니었고, 부산이 따로 해명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거지?”
“응.”
“돈은?”
“괜찮아.”
“그래.”
그럼 된 거였다.
“엄마가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고. 혹시라도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내가 너를 도와줄 거라고. 분명하게. 정말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
“그래?”
“그럼.”
부산은 아주 조금이라도 안심이 된 표정이었다. 누구라도 이렇게 자신의 편이 된다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였다.
“누나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다행은 무슨.”
부산의 말에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정도. 더 이상은 없었다.
“엄마를 마주하는 일. 그건 내가 대신 해줄 수 없어.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고. 네가 해결해야 하는 거야.”
“알아.”
부산은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해야 하는 거.”
“할 수 있어?”
“모르지.”
“그게 뭐야.”
부산의 간단한 대답에 서울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이 맞을 거였다. 춘자가 무슨 말을 할지. 그런 것까지 모두 다 알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혹시라도 무슨 일이 더 생기면 말하고.”
“알았어.”
다른 말을 더 해줄 것도 없었다. 결국 모든 일은 다 부산이 해결해야 하는 거였다. 자신은 그저 보는 것이 전부였다.
“전부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서울의 사과에 용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당연한 일인 걸요.”
“하지만.”
“아니요.”
서울이 다른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용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서울은 그저 그런 그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냥 둬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동선의 말에 서울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거구나.”
“한서울 씨가 좋은 누나인 건 알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뭐든 다 할 생각은 하지 마요.”
“뭐든 다할 생각.”
그런 거였다. 자신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런 것을 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러네.”
“한서울 씨 혹시라도 다른 고민이라도 생기면 말해요.”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동선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도 다른 사람에게 하면 안 되는 거고요.”
“네?”
“아웃팅.”
“아.”
그럴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런 거였다. 자신의 실수. 서울의 반응을 본 동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서울도 그런 그를 보고 웃었다.
“시사회요?”
“네. 이번에 당첨이 되어서.”
“아.”
이런 걸 가도 괜찮은 걸까?
“불편해요?”
“아니요.”
세인의 물음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불편하거나 그런 식의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세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같이 가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야 하는데. 내가 눈치도 없이 따라가는 거. 뭐 그런 거 아니죠?”
“아닙니다.”
세인의 대답에 서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흥행할 거 같지는 않죠?”
“그러게요.”
꽤나 흥미로운 코미디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게 다였다. 천재 감독이라고 불리던 감독의 재기발랄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안일해.”
“그러게요.”
세인도 꽤나 아쉬운 표정이었다.
“데뷔작이 워낙 대단한 감독이어서 그런지. 이 정도 작품만 만드는 거. 뭐 큰 회사에 들어가서 만드는 거니까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더 좋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세인의 대답을 듣던 서울이 살짝 눈을 흘겼다.
“지금 그거 뭐지?”
“네?”
“무조건 맞다고만 하고.”
“맞으니까?”
세인의 대답에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이리저리 목을 풀고 한숨을 토해내며 씩 웃었다.
“그래도 그거 좋네요.”
“그렇죠?”
그렇게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유명 식당에 손님이 없었다.
“저기 갈래요?”
“늦었는데.”
“별로에요?”
“아니요.”
서울의 물음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세인 씨가 불편하다고 하면 안 가도 돼요. 무조건 내 말을 다 따라주거나 그럴 이유 없다니까?”
“나도 같이 가고 싶어요.”
“그래요?”
“내일 출근 괜찮아요?”
“야간이죠.”
서울의 대답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들은 마지막 주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너무 다행이다.”
“그러게요.”
음식은 생각처럼 맛있었다. 왜 사람들이 늘 그렇게 줄을 선 것인지. 별 것 아닌 거 같으면서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거 처음 먹어봐요.”
“베트남 음식 싫어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좋아해요.”
세인의 대답에 서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싫어하는 건 싫어한다고 말해도 돼요. 그래야 다음에 음식을 고를 때 이걸 먹지 않을 수 있죠.”
“나랑 다음에도 밥을 먹으려고요?”
“안 먹어요?”
“먹어야죠.”
세인의 대답에 서울은 순간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은 자신도 모르게 세인에게 어장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몰랐다.
“미안해요.”
“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아니요.”
서울의 사과에 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요.”
“이세인 씨.”
“한서울 씨.”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는 건지는 알겠는데 말이죠. 그래도 그렇게 나를 배려하려고 하지 마요. 한서울 씨는 지금 나보고 너무 한서울 씨만 배려하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지금 보면 그 반대의 상황인 거 같아요.”
“그런가?”
서울은 혀를 내밀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는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네.”
“그렇죠?”
서울의 말에 세인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세인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인 거 같아요.”
“당연하죠.”
“음.”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 너무 이기적이죠?”
“네?”
“세인 씨의 고백을 거절했으면서도 이렇게 자꾸만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거. 이거 이상한 거잖아요.”
“아니요.”
서울의 말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였다. 오히려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나는 한서울 씨가 그저 나를 시간 떼우기 용으로만 불렀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게 한서울 씨의 악의는 아니니까요.”
“악의.”
과연 이게 자신의 악의가 아닌 걸까? 자신이 정말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해도 되는 걸까? 머리가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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