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장
“갑자기 보자고 해서 놀랐어.”
“그러게.”
자신도 놀랐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해나를 부르게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세인 씨.”
“뭐?”
바로 해나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인데?”
“그 사람이 좋아.”
“뭐라고?”
“세인 씨가 좋아.”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었다.
“네 입으로 절대 아니라고 했잖아. 네 입으로 절대로 세인이랑 그런 사이 아니라고 한 거 아니었니?”
“그래.”
서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나의 말이 옳았다. 자신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그 사람이 좋아지더라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자꾸만 그렇게 되더라고.”
“아니.”
해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울을 응시하더니 한숨을 토해내며 혀를 잘근잘근 씹었다.
“너 지금 되게 웃긴 거 아니?”
“알아.”
해나의 물음에 서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아니.”
“미안해.”
“그게 다야?”
“어?”
“아니.”
해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토록 절대로 아니라고 자신을 몰아세웠으면서. 이제 와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그냥 이렇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면 그게 끝인 걸까?
“너 나 정말로 나쁜 년을 만들었어.”
“알아.”
“그런데 이게 다니?”
“그러게.”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해나에게 이런 식의 말을 하게 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서울.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너 아무 자격 없어. 너 세인이에게 그럴 자격 없다는 거 몰라?”
“알아.”
서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해나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인은 해나와 사촌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해나에게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말해야만 했다.
“너에게 그런 식의 말을 했을 때. 그때는 정말로 세인 씨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어. 아무 감정도 갖고 있지 않았고. 내가 그럴 염치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이 필요해.”
“필요하다고?”
“응.”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나 너무 외로워.”
“그래서 그걸 세인이에게 덜어내려는 거야?”
“응.”
“너 이기적이야.”
“알아.”
너무나도 이기적인 일이었다. 자신이 힘들다고. 자신이 아프다고. 그 마음을 결국 세인에게 모두 밀어놓으려는 거였다. 이 결과가 어떤 것이 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그러는 거였다.
“세인 씨가 있으면 너무 편해.”
“그러지 마.”
해나는 단호했다.
“세인이에게 제발 그러지 마.”
“해나야.”
“걔 안 그래도 힘들어.”
“알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세인은 지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도 기대려고 하는 거였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래? 네가 그러면 그 녀석. 그 멍청한 녀석은 네 말 들을 거라는 걸 몰라?”
“알아.”
안 그래도 자신을 배려해주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따스한 마음으로 배려해주는 그 사람을 흔드는 거였다.
“부탁이야.”
“부ᅟᅡᆨ이라니.”
서울의 말에 해나는 멍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넘기며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짧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송해나.”
“나 너무 싫어.”
해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너무 싫어.”
해나의 단호한 대답에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그래도 우리가 친구였으니까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서울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동의 아니야.”
“그럼?”
“통보.”
“뭐라고?”
“내가 세인 씨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아니.”
서울의 말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오히려 해나였다. 서울의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해나는 미간을 모았다.
“너 너무 웃기지 않니?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건 아니지 않아? 이건 아니잖아.”
“뭐가 아닌 건데?”
“뭐라고?”
서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해나는 정말 해도 너무했다. 그리고 해나에게 이런 말을 할수록 자신의 생각은 더욱 또렷해졌다.
“세인 씨가 너로 인해서 얼마나 불행한 상황인 건지. 그리고 얼마나 아픈 건지. 그걸 알게 된 거야.”
“내가 도대체 뭘 했는데 세인이가 나로 인해서 아프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데?”
“사실이니까.”
서울의 건조한 대답에 해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해나와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눌 것도 없었다. 세인에게 가야 하는 거였다.
“그 사실을 알려줘서 고마워.”
“뭐라고?”
해나는 코웃음을 쳤다.
“세인이 너 받아주지 않을 거야.”
“그래?”
서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관계가 없는 거네.”
“무슨?”
“네 동의.”
서울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해나. 내가 세인 씨를 얼마나 아끼는지. 그거 알려줘서 고마워. 이거 네 덕에 깨닫게 된 거야.”
서울의 말에 해나는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울은 그런 그를 두고 그대로 돌아섰다.
“한서울 미쳤어.”
해나에게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인지. 굳이 해나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괜한 갈등을 만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도 멍청하고 한심한 선택이었다.
“한서울 왜 이러냐.”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걸음이 세인의 서점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멍해졌다. 서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외근이요.”
“응. 미안.”
“아니요.”
유미의 사과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이 왜?”
“세인 씨 보러 온 거 아니야?”
“맞아요.”
서울의 대답에 유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에 모든 게 다 담겨 있는 기분이었다.
“후회하지 마요.”
“아. 네.”
서울은 혀를 내밀고 씩 웃었다.
“그나저나 오늘 세인 씨는 일찍 퇴근을 시켜야 하는 건가?”
“아니요.”
유미의 말에 서울은 양손을 흔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을 배려할 이유가 없었다. 세인을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지금 대화를 하고. 뭐 반드시 데리고 나가겠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세인 씨가 일하는 곳이니까.”
“알았어요.”
유미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되는 거지.”
“제가 이상하시죠?”
“아니.”
“왜요?”
서울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도 이상하고 한심하게 구는 거 같았다.
“그 사람이 싫다고. 이미 한 번 거절을 한 거였으면서. 도대체 무스 자격으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잖아. 그냥 서로 같은 고백을 한 번씩 주고 받는 거라고. 꼭 여자가 받아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 이것까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제가 이런 식으로 망설이고 잡는 거. 너무 미안하게 느껴져요.”
“왜요?”
“그게.”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서 유미에게 다 말을 해도 되는 걸까? 그렇게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자신의 약점을 모두 다 말할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죄송해요.”
“아니야.”
서울의 사과에 유미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술을 내밀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한서울 씨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에게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하나 다 털어놓을 이유는 없어요.”
“네?”
“때로는 숨겨도 돼.”
“하지만.”
“그거 괜찮아.”
유미의 말에 서울은 침을 삼켰다.
“보면 한서울 씨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모두 다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럴 이유 하나 없어. 왜 다 설명을 해야 해? 때로는 아무 것도 몰라도 되는 거고 아무 말도 안 해도 되는 거야.”
“아무 말.”
그래도 되는 걸까? 정말 그런 식으로 해결해도 되는 걸까? 너무나도 어려운 거였고 힘든 거였다.
“한서울 씨 멋진 사람이야.”
“아니요.”
“왜?”
“그게.”
“멋져.”
유미는 서울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엄지를 들어줬다. 자신이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신기했다. 그때 세인이 오자 유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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