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장
“미안해요.”
“아니요.”
서울의 사과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사과를 해요?”
“일하는데.”
“아니요.”
세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나갔다가 오면 퇴근하려고 했어요.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꽤나 힘들었거든요.”
“무슨 일을 하고 왔어요?”
“아 원래 사장님이 일하시던 곳이요.”
“연남동요?”
“네.”
세인이 일하기가 무섭게 자리를 옮긴 카페. 원래 있던 곳에 가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세인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하고 똑같은 가게를 하더라고요.”
“말도 안 돼.”
“그러니까요.”
그렇게 되면 이전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거기가 여전히 사장님이 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거였다.
“그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더 제대로 따져야 하고. 그러니까 거기에 항의를 해야 하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그쪼에서는 이미 권리금까지 다 내고 나온 거니까. 자신들이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요.”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권리금을 냈다고 하더라도 같은 컨셉까지 할 것은 없었다. 그건 치졸한 짓이었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도둑질이었다. 그래서 안 되는 거였다.
“그걸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그냥 두자고 하시더라고요.”
“네?”
유미의 선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장사가 안 돼요.”
“무슨?”
“뭔가 따라만 한 거라서요?”
“아.”
서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아니니까 그게 제대로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않는 거였다.
“직접 쓴 책이라고 한 것도 봤는데. 글씨도 뒤로 갈수록 망가진다거나, 뭐 그런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렇구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미에게 무슨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제정신을 차리게 되면. 결국 유미 사장님에게 피해가 가잖아요.”
“그렇죠.”
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마 세인 역시 자신처럼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였다.
“그런 거라면 유미 사장님 입장에서 조금 더 제대로 나서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법에 항의를 한다거나. 그냥 이런 식으로 손 들고 있다가는 결국 모든 것을 다 빼앗길 수 있는 거라고요.”
“알아요.”
세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씩 웃었다. 자신과 다르게 세인이 너무 덤덤한 표정을 짓자 서울은 미간을 모았다.
“이세인 씨 지금 태도 뭐죠?”
“네?”
“자기 서점이 아니라서 그래요?”
“아니요.”
세인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런데?”
“아. 이미 사장님 마케팅 해주시는 쪽. 거기 홍보를 담당하는 쪽이 이런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경험이요?”
서울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식당의 홍보를 했는데, 원래 건물주가 자기 아들이 장사할 거라고 나가라고 해놓고 같은 가게를 한 거죠. 그거 바로 홍보 마케팅으로 절대로 그런 거 아니라고. 열심히 해서 지켜냈더라고요.”
“아.”
그럴 수도 있었다. 결국 사람의 힘. 그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힘이었다.
“그러네요.”
“그런데 왜 온 거예요?”
“네?”
“이런 이야기 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그랬다.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갑자기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황스러웠다.
“배 안 고파요?”
“집에 가서 먹어야죠.”
세인은 조심스럽게 서울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요.”
세인의 걱정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었다. 아니 무슨 일이 생긴 게 맞았다.
“혹시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
“네?”
갑작스러운 서울의 물음에 세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니까.”
“아니요.”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뻔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이런 거였다.
“미안해요.”
“왜 사과를 해요?”
“그러니까.”
“좋아해요.”
세인의 말에 서울은 고개를 들었다. 세인은 자신과 다르게 망설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한서울 씨가 왜 이런 것을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서울 씨가 내 고백을 거절했다고 해서 이 마음이 바로 사라질 리는 없습니다. 나는 정말로 한서울 씨를 좋아하고 이 마음은 진심이에요.”
“진심.”
신기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래요?”
“네?”
“내가 안 미워요?”
“왜 미워요?”
“아니.”
서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세인 씨가 이렇게 진심으로 고백을 해주는데. 나는 거절을 한 거니까. 내가 미울 수도 있잖아요.”
“아니요.”
세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어요?”
“하지만.”
“정말 좋아하니까.”
“아.”
서울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자신을 누군가가 이렇게 좋아할 수가 있는 거구나.
“해나를 보고 왔어요.”
“네?”
“허락을 구하는 건 아니야.”
서울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알죠?”
“아니.”
세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무슨?”
“나도 좋아요.”
“네?”
“나도 세인 씨가 좋다고요.”
“아.”
서울의 말에 세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히 세인이었다.
“모르겠어요. 왜 그런 건지. 세인 씨 말처럼. 회사에서 있는 사람도 나를 좋아한다고 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세인 씨가 자꾸만 눈에 떠올라요. 이런 말 하는 거 되게 웃기기는 한데 세인 씨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네.”
세인은 자신을 가리키며 멍한 표정이었다. 아마 서울에게서 자신이 좋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거 뭐죠?”
“네?”
“자꾸 돌리기만 하고.”
“아니요.”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너무 좋아서 그래요.”
“그렇죠?”
“그럼요.”
서울은 그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다행이었따. 세인도 좋다고 하면. 이걸로 다행이었다.
“사실 망설였어요.”
“왜요?”
“내가 혹시라도 세인 씨를 그냥 안쓰럽게 생각해서. 내가 동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동정.”
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서울의 상황이어도 결국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거였다.
“그런데 아닙니까?”
“아직 모르겠어요.”
서울은 솔직히 대답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세인 씨 생각을 하면 심장이 마구 뛰어요. 세인 씨랑 있는 게 좋아요.”
“그래요?”
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이 좋다. 이건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서울이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고맙습니다.”
“왜 고마워요?”
“고백해줘서.”
“아니요.”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힘들게 했는 걸.”
“무슨?”
“알고 있어요.”
서울의 말에 세인은 한숨을 토해내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울의 손을 잡았다.
“한서울 씨가 왜 이렇게 망설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정말로 고맙고 고마워요.”
“그래요?”
“그럼요.”
서울의 입장에서도 너무 다행이었다. 먼저 고백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세인의 이런 말 너무 고마웠다.
“해나는 뭐라고 했습니까?”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던데요?”
“그래요?”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눈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세인은 서울의 손을 양손으로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에요?”
“한서울 씨랑 마음이 통해서?”
“무슨.”
이런 걸 가지고 다행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너무 망설이고 이런 것이 문제였다.
“내가 세인 씨를 괴롭히고 흔든 거지. 이런 걸 가지고 다른 말을 할 것은 전혀 아닌 거 같은데요?”
“아니요.”
세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고맙습니다.”
세인의 인사에 서울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가 고백해줘서 고맙다고 말을 하는 것. 이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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