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장
“안 가도 돼요?”
“그럼요.”
유미의 배려로 같이 차를 마시는데 세인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마 피곤해 보여서 그럴 거였다.
“확실히 야간 근무를 하고 나서 피곤함이 더해지는 거 같아요. 절대적인 근무 시간 자체는 줄었는데.”
“그래도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되니까요. 이렇게 같이 차를 마시는 시간 같은 것도 생긴 거니까요..”
서울은 자신의 얼굴을 살짝 만지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지치는 것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기는 하지만 사실 휴식 시간을 사용하는 셈이었다.
“이럴 줄 사실 몰랐는데 말이죠.”
“에븐 건 그대로입니다.”
“뭐래?”
서울은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런 말 들으려고 한 말 아니거든요.”
“이런 말 해주고 싶거든요.”
세인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서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내가 남자들하고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들처럼 무시를 당하지도 않고 말이죠.”
“차이는 알죠?”
“그럼요.”
세인은 살짝 걱정이 되는지 서울의 손을 잡으면서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어느 정도 세인과 같은 마음을 갖기도 했었으니까, 그가 지금 하는 생각에 대해서 그리 부저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대단해요.”
“뭐가요?”
“나는 밤에 일을 못 하겠어요.”
“글도 쓰면서.”
“이건 다르고요.”
서울의 대답에 세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햇다. 서울은 가볍게 그의 손등을 때리고 다시 등받이에 기댔다.
“그나저나 요즘 글은 써요?””
“바빠서 좀 덜 쓰죠. 아무래도요?”
“요즘 안 보여줘서요.”
“아 그렇구나.”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좋아요.”
“아. 그러니까 이건 압박을 주는 게 아니라.”
“압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거든요.”
서울이 무슨 변명을 하려고 하자 세인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밝게 웃었다.
“아무래도 여기 생각이 한 번 정리가 되어서 다시 나오는 거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에요.”
“멋있어요.”
“그럴 리가요.”
순간 둘은 눈이 마주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고등학생 시절처럼, 아무 걱정도 없이 웃을 수 있었다.
‘혹시 한서울 씨 되십니까?’
“누구시죠?”
‘여기 경찰서입니다.’
낯선 번호에 뭔가 긴장해서 받았는데 경찰이라니. 서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장과 용준이 바로 이쪽을 쳐다봤다.
“무전취식이요?”
“네. 어머니니까 데려가시죠.”
“아니.”
서울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짓까지 하면서 일하는 사람을 부를 수가 있는 건지.
“제가 왜요?”
“네?”
서울의 대답에 경찰은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먹은 거 아니잖아요.”
“아니.”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 분께 돈은 제가 내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저보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는 말은 안 하시면 안 되나요?”
“그 돈을 내주시면 일단 바로 나오실 거예요.”
지난번 여경이 알은 채를 하며 말을 건넸다.
“어쩔 수 없어요.”
“그렇군요.”
춘자를 더 넣어놓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망할 년.”
춘자의 욕설에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네가 진작 잘 했으면 된 것을. 네가 이래서 괜히 무슨 고생이야? 하여간 네가 다 온갖 문제야.”
서울은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탓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는 한 걸까?
“돈 많아요?”
“뭐?”
“엄마 돈 많냐고?”
“무슨.”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 그 집 다시 들어가.”
“그래.”
춘자가 바로 웃자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돈은 안 줘.”
“뭐?”
“그 집 이자 내가 내고 있잖아요.”
“아니.”
“그걸로 소송 해봐?”
서울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자 춘자는 입을 다물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하루에 만 원만 줄 거야.”
“무슨?”
“싫으면. 그 집 돈 더 안 내요.”
서울의 엄포에 춘자는 멍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오늘 낸 거. 이것도 차용증 써요.”
“무슨 차용증이야.”
춘자는 바로 싫다고 말을 했지만 서울도 더 이상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나서도 안 되는 거였다.
“만일 그거 써주지 않는다면. 나도 아무 것도 책임 안 질 거야.”
“뭐라고? 이 년이.”
서울의 덤덤한 표정에 춘자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답답했다.
“짐 그냥 둬도 괜찮아요.”
“아니요.”
세인의 제안에 서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더 이상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되는 거였다.
“집에 가서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싸워야죠.”
“괜찮겠어요?”
“그럼요.”
서울의 대답에 세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울의 손을 잡았다.
“미안합니다.”
“이세인 씨가 왜요?”
“아무 힘이 못 되어줘서.”
“누가 그래요?”
서울은 다른 손으로 세인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일 이세인 씨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마주할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야. 이세인 씨가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말이라도 고마워요.”
“진심이에요.”
서울은 손에 더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도 그를 보며 웃었다.
“괜찮겠어?”
“응.”
부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나도 같이 살까?”
“아니.”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니.”
“이제 너에게도 뭐라고 할 jr야. 나야 혼자서 다 감당하던 거지만 너는 달라. 그리고 너 힘들다고 하면 나는 그건 케어 못 해줘. 지금 너 좋다는 사람 있을 때. 그거 그냥 다 느끼면서 살아.”
“그래도.”
“아닙니다.”
서울은 단호히 말하고 나서 부산의 눈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부산이 아주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거 같았다.
“네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건지 나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말이야. 나 이전의 한서울이 아니야.”
“누나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엄마 걱정이야.”
“그런가?”
부산의 지적에 서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춘자에게 겁을 먹을 자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늘 피하기만 하 수는 없는 거니까.”
“누나 멋지다.”
“그럼. 내가 한서울인데.”
서울의 대답에 부산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넌 잘 사는 거지?”
“그럼.”
“어떤 사람이니?”
“좋은 사람이야.”
그런 거라면 되는 거였다. 서울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누구라도 결국 같은 대답일 거였다.
“나도 요즘 누구 만나.”
“그래?”
“응. 좋은 사람이야.”
“누나는 그럴 자격 충분하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서울은 살짝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스트레스에 목이 살짝 뻐근한 거 같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괜찮은 사람이라 좋더라.”
“나도 그런 사람 만나.”
“우리 둘 다 좋네.”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아. 돈 없지?”
“됐어.”
서울이 봉투를 내밀자 부산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안 그래도 엄마 때문에 네가 이것저것 스트레스를 받을 게 많을 텐데. 내가 주는 돈은 그냥 받아도 되는 거야.”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부산은 미간을 모은 채 서울이 내민 봉투를 다시 돌려줬다.
“아무리 누나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야. 내가 언제까지 누나에게 이렇게 기댈 수 없는 거잖아.”
“왜 없어?”
“누나.”
부산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싱긋 웃었다.
“나 능력 있어.”
“뭐라고?”
“지난번 그 돈도 갚을 거야.”
“그건.”
“갚을 거야.”
부산이 다시 힘을 주어 말하자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그럼 그 사람에게 써.”
“어?”
“뭐. 뭐라고 해야 하니? 형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너희 쪽 관게는 복잡하지만. 그냥 애인 누나가 주는 용돈이라고 해.”
“무슨.”
“나보다 연상은 아니지?”
“아니야.”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울은 부산이 생각보다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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