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장
“그거 내가 갖고 있는데?”
“어?”
부산의 말에 서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걸 왜?”
“아니. 엄마가 버리려고 현관에 내놨더라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가 갖고 있어.”
“아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당연히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을 부산이 가지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한 거야?”
“안 물어봤잖아.”
“뭐라고?”
부산의 간단한 대답에 서울은 미간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부산의 말처럼 자신은 단 한 번도 그것을 찾지도 않았었고,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멍청해.”
“뭘 그렇게까지 자학을 하고 그래?”
서울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이런 자신과 다르게 부산은 그것이 가진 가치를 알고 있던 거였다.
“얼마나 있어?”
“다 있을 거 같은데.”
“어?”
“노트 한 서른 권? 수첩도 그 저도.”
“맞을 거야.”
“무거웠거든.”
부산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서울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부산이 기억하는 것과는 다소 다르게 그것보다 더 많은 양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이 정도만 찾은 것으로도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언젠가 누나가 찾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그래?”
“응.”
자신은 아마 그럴 생각이 없을 거였다. 세인이 아니었더라면 다시 살리지 못했을 기억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 기억도 세인에게 부산이 먼저 말을 해서 가능한 거였으니까, 모든 건 부산의 공이었다.
“그거 어디에 있어?”
“지금 집.”
지금 살고 있는 집이라는 말이 약간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산은 은환과의 공간을 집으로 생각한 거였다.
“내가 뭘 해줄까?”
“됐습니다.”
부산은 입술을 내밀었다.
“지금이라도 갈래?”
“어?”
“은환이도 누나 좋아하고.”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는 건 은환에게 불편을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부산의 누나라고 해도 이건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너무 늦은 시간이야. 은환 씨도 이제 쉬고 그래야 하는 시간인데. 내가 무작정 가는 건 안 되는 거야.”
“에이. 그냥 치킨이면 돼.”
“뭐?”
서울은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얼마나 간단한 계산법인가. 그저 치킨이면 되는 거라니.
“그럼 물어봐.”
“괜찮다니까.”
부산의 의기양양한 표정에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그래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너 혼자 사는 집도 아닌 거고. 내가 괜히 끼어들어서 둘이 싸우는 것도 싫어.”
“예. 예. 알겠습니다.”
부산은 장난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서울의 말처럼 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자신의 모든 기억. 자신이 잊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 찾은 거였다.
“하여간.”
그러면서도 은환과 통화하는 부산의 얼굴에 미소가 계속 번져서 너무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신기했다.
“저기.”
“알아.”
부산이 전화를 끊고 아쉬운 표정을 하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거야.”
“미안.”
“아니.”
이건 부산이 사과를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이 시간에 누가 가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내일 저녁은 괜찮대.”
“그래?”
“응.”
부산의 표정에 서울은 가볍게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럼 내가 내일 저녁 맛있는 거 쏠까?”
“어? 어.”
부산의 밝은 표정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컸다고 해도 아직 어린 동생이라는 거. 신기한 일이었다.
“서울 씨 기분 좋아 보여요.”
“그래요?”
용준의 물음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찾던 걸 잘 찾아서 그런가?”
“네?”
“아니.”
서울은 아랫입술을 물면서 싱긋 웃었다. 용준에게 모두 다 말해도 되는 건가 싶지만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학창 시절에 글을 좀 썼거든요.”
“글요?”
“아니.”
용준의 목소리가 너무 크자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그런 대단한 거 아니에요.”
“그래도요.”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본 그것을 글이라고 표현한 자신도 너무 웃긴 거였다.
“한서울 씨는 학교 다닐 적도 열심히 살았구나.”
“에이.”
용준의 칭찬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용준은 서울의 반응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네?”
“한서울 씨 너무 대단한 사람인데 보면 자꾸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잊는 거 같아서요.”
“아.”
서울은 혀를 내밀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그런가?”
“그럼요.”
용준은 이를 드러내고 밝고 웃었다.
“아무튼 내가 오늘 점심은 쏠게요.”
“그래요?”
용준의 미소에 서울도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나도 가도 괜찮은 거예요?”
“당연한 거죠.”
서울의 대답에 세인은 입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손님이잖아요.”
“이세인 씨가 불편하죠?”
“아니.”
세인의 반응에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세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너무 티가 나나?”
“응. 너무 티가 나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살짝 입을 내밀고 고개를 조금 기울인 채로 입을 열었다.
“이세인 씨가 많이 불편하면 꼭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 강요하고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 또 말을 그렇게 하면 내가 서운하지.”
“그런 게 아니라.”
“같이 가요.”
세인은 서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게 당연한 거지.”
“당연.”
그 당연이라는 것. 그게 너무나도 신기한 거였다. 그런데 자신도 세인을 보면 먼저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그것. 그걸 이세인이라는 사람과 하고 싶었다.
“다행이에요.”
“그러니까요.”
서울은 세인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있는 거지?”
“응.”
작은 메모들은 아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버린 모양인데. 그래도 이런 것만 있는 것도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부산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귀한 것들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나 잘했지?”
“그래.”
부산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서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뭐래도 정말 고마웠다.
“그럼 치킨 사는 거지?”
“치킨만 사겠어?”
부산과 은환이 바로 어플을 뒤지는 걸 보며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세인은 옆에서 그 손을 가만히 잡았다.
“봐요. 글 좋아한다니까.”
“그러네요.”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절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모르게 누르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도 다 보여주지는 않을 겁니다.”
“왜요?”
“나는 작가가 아니니까.”
“에이. 뭐야 그게.”
세인은 서울의 어깨에 가볍게 고개를 기댔다. 문득 이런 게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면서 뭘 먹을까 찾는 이 시간. 이게 바로 행복이었다. 행복이 분명했다.
“왜 그렇게 웃어요?”
“그냥 좋아서요?”
“그럼 나랑 같네.”
“네?”
“나도 좋아서.”
세인은 서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행복했다.
“그건 다른 문제야.”
“아니야.”
“아니. 누나 내 말은.”
“한부산.”
서울의 낮은 목소리에 부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결정을 따라.”
“내가 누나에게 받은 게 얼마나 큰 건데. 그 돈이랑 이거 못 바꿔.”
“그래봤자 그거 돈이야.”
“아니.”
“나에겐 이게 더 커.”
서울의 단호한 말에 부산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세인을 쳐다봤지만 세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진심이야.”
정말이었다. 부산이 자신도 모르게 이것들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이건 아무 의미도 갖지 않았을 거니까.
“네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거야.”
“에이.”
“정말로.”
이건 자신의 모든 청소년기의 기억이었다.
“네 덕이야.”
“누나.”
“고마워.”
서울은 부산의 손을 세게 쥐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것을 지켜준 것. 이것은 정말로 큰 거였다.
“그리고 어차피 너 장가 들 때 돈 해주려고 했어. 그런데 뭐. 두 사람 이렇게 살면 큰 돈 들어갈 일 없을 거 같은데? 아직 모르겠지만.”
서울의 말에 부산과 은환의 얼굴이 붉어졌다.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된 거였다. 큰돈이었지만. 애초에 춘자가 다 없앨 돈이었다고 생각하면 그게 더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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