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장
“너는 내 말 듣지도 않지?”
서울이 자신을 무시하자 춘자의 얼굴이 굳었다.
“썩을 년.”
“뭐라고?”
해도 너무했다.
“어떻게 딸에게.”
“아니 내가 그 썩을 돈 좀 썼다고. 그렇게 나를 아주 죽이려고 하고.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이 와중에도 결국 자신에 대한 이야기.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을까.
“내가 기대를 한 게 미친 거지.”
“뭐?”
“이 집 팔 거야.”
“무슨.”
서울의 말에 춘자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무슨 말이야!”
“왜요?”
서울은 단호히 받아쳤다.
“나는 혼자서 이 집 관리비니 대출이니. 다 내가 멍청해서 내고 있는 거야? 부산이가 못 낸다고 하니까 팔아야지.”
“이기적인 년.”
“응. 그래.”
굳이 이런 말까지 들어가면서 그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버텨야 할 이유. 이제 없었다. 부산도 잘 살고 있었으니까.
“고마워요.”
“뭐라는 거야?”
“다 포기하게 해줘서.”
애초에 기대를 갖고 살았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너무나도 멍청한 행동이었고 미친 거였고, 미련한 일이었다.
“도대체 왜 기대를 한 걸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서울은 혀로 이를 훑었다.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주 조금은 내가 세게 나오면 엄마가 반성하는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네.”
“내가 왜?”
“그러게.”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건지. 자신이 너무 낭만적이고 관대하게 생각한 거였다.
“정말 싫다.”
멍청한 기대.
“부산이도 동의한 거야.”
“나는 그럼 어디로 가라는 거야?”
“뭐?”
“나는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하느냐고.”
이 와중에서도 자신이 살 곳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 춘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역겹고 불쾌했다.
“그걸 왜 내가 신경을 써야 하는 거지?”
“뭐?”
서울은 물끄러미 춘자를 보더니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엄마라니.
“이건 알아서 하셔야죠.”
“모진 것.”
“네.”
모질었다.
“더 모질게 하려고.”
서울의 미소에 춘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울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더 이상 끌려가지 않을 거였다.
“그게 가능해?”
“몰라.”
부산의 물음에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돈이 애초에 내 돈이었던 거니까. 그런데 그 집에 대출도 있을 거 같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그러네.”
부산도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서울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전생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은 건가 싶었다.
“그런데 너는 괜찮니?”
“어?”
“내가 집을 팔아도.”
“뭐.”
부산은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나가 돈을 다 낸 거니까.”
“그래도.”
“나는 무조건 누나 편이야.”
부산이 이를 드러내면서 밝게 웃자 서울은 입술을 내밀면서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도 불안한 순간이었다.
“너 그러다가 다 잃어.”
“왜?”
“내가 돈 다 들고 튀면?”
“뭐. 은환이랑 살지.”
부산의 대답에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그게 뭐야?”
“그리고 누나가 그럴 사람이야?”
부산의 믿음에 서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게 가족이었다. 진작 이렇게 모두 다 드러내면 된 거였다.
“그럼 일단 내가 알아볼게.”
“내가 할 게 있으면 말해줘.”
“알았어.”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까요?”
“네?”
이건 또 무슨 말인 건지.
“뭘 도와줘요?”
“어머니 하시는 일이 부동산이거든요.”
“아. 아니요.”
정말로 춘자를 끝까지 몰아세우고 싶지 않았다. 잘못된 방법을 했다가는 부산을 괴롭힐 거였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에요.”
“그래요?”
“응.”
그래도 세인이 이런 말이라도 해주는 게 고마웠다. 부모님까지 함께해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이건 쉬운 게 아니었다.
“잠시만.”
진짜 그럴 이유는 없었으니까.
“혹시 척만 해줄 수 있어요?”
“네?”
“너무 무리한가?”
“아니요.”
서울이 조심스러운 제안을 했다가 바로 말을 거두자 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정도야 가능하죠.”
“정말로요?”
“그럼요.”
“다행이다.”
서울의 표정을 보며 세인도 싱긋 웃었다. 아마 자신의 얼굴이 꽤나 굳어있었던 것 같았다. 스스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세인은 가만히 손을 내밀어서 서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서로 돕는 거지.”
“그래요.”
서울은 이를 드러내고 밝게 웃었다. 서로 돕는다는 말. 자신은 잘 모르는. 그러나 너무 신기하고 힘이 되는 말이었다.
“너 너무하잖아!”
“뭐가?”
“아니.”
서울이 너무나도 차분하게 대답하자 오히려 기가 죽은 쪽은 춘자였다. 서울은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내가 판다고 했잖아요.”
“아니 그래도 어떻게 진짜로 내놔?”
“못할 이유가 뭔데?”
“뭐?”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춘자의 약한 모습. 그가 당황한 모습을 보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어른이잖아요.”
“그래서?”
“집 하나 못 구해요?”
“야!”
춘자의 악다구니에 서울은 엷게 웃었다. 너무나도 기뻤다. 이런 사람을 자신이 이겨내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왜 그래요?”
“뭐?”
“내가 등신이야?”
왜 이러고 산 걸까? 그저 일을 해서 돈을 가져다 주면. 그 순간 딸처럼 취급을 받는. 그 순간. 그게 전부 좋았다.
“네가 어떻게 그렇게 행동을 할 수가 있어? 그게 지금 네 엄마에게 할 일이야? 그래도 되는 거야?”
“응.”
서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하는 그게 엄마로 하는 일이니까. 나도 이게 내가 딸로 하는 일. 이거 너무 공평한 거 아닌가?”
서울의 간단한 말에 춘자는 입을 다물었다. 서울은 이리저리 목을 풀고 엷은 미소를 지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짐 정리 미리 해둬요.”
“야!”
춘자의 고함을 듣고 서울은 방에 들어왔다. 웃음이 나오는데 눈물이 흘렀다. 혹시라도 춘자가 들을까 입을 막고 이불을 덮었다.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서울은 이불을 벗었다. 답답함. 여전히 너무 답답했다.
“너 그거 못 판대!”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온 건지.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춘자가 와서 득달 같이 따졌다.
“너 그거 못 팔아.”
“팔아.”
“뭐?”
서울의 대답에 춘자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나 나쁜 딸 할 거야. 그리고 그거 부산이 명의에요. 여태 돈 내가 낸 거. 증명. 그거 다 할 수 있는 거고.”
춘자는 침을 삼키고 멍한 표정이었다. 아마 그가 듣고 온 말은 그리 정확한 말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내가 착한 딸이 아니라 멍청한 딸이라서. 이제 나도 똑똑한 딸이나 하려고 그래. 나부터 우선으로 하는 그런 딸.”
“아니야.”
춘자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애 그러는 거야?”
“뭐가?”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러느냐니.
“이 달 팔 거야.”
“뭐라고?”
춘자는 어이가 없는지 입을 살짝 벌렸다.
“이 망할 년이!”
그리고 바로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손을 들었다. 서울은 여유롭게 그 손을 잡았다. 힘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러는 거야?”
서울은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언제까지 당할 줄 알았어?”
“뭐야?”
“이제 부산이도 없는데 나한테 조금이라도 잘 해요. 그러면 작은 방. 그거 보증금이라도 줄지 어떻게 알아?”
서울의 말에 춘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아마 지금 이 순간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걸 거였다.
“왜 그러고 살아요?”
“뭐?”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춘자의 손을 밀어냈다. 밥을 먹을 기분도 아니었다.
“정말.”
춘자의 모자란 행동에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았던 것인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들 정도였다. 너무 싫었다. 이런 사람과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걱정했다는 것. 이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문제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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