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76장]

76장

“많이 힘들겠다.”

“응.”

서울의 대답에 세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한서울 씨.”

“정말로 힘들어서 그래요.”

서울은 혀를 내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는 걸.

“혼자서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도 혼자서 다 하려고 하는데 이게 너무 어려워요.”

“그렇겠네.”

세인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은 서울을 위해서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그게 정답이죠. 그리고 잘 하고 있고.”

“아니요.”

서울은 아랫입술을 살짝 문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왜요?”

“알잖아요?”

“뭘요?”

세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서울이 스스로를 부정하려고 하지만 그건 무조건 잘못된 일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한서울 씨 잘 하고 있어요.”

“정말로 내가 의미가 있는 일인가 싶어.”

“있죠.”

“없으면 어떻게 하죠?”

서울이 긴장이 가득한 표정을 짓자 세인은 가만히 손을 잡았다. 지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겁이 나요.”

“그럴 게 뭐가 있어.”

“그런데 그러네.”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긴장이 되고 자꾸만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었다.

“누군가는 있을 거야. 그 사람이 가도.”

“다시 기회를 줄까요?”

“그럼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역시나 여자는 안 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위에서 하게 된다면. 이제 그런 기회는 사라지게 될 거니까.”

“무슨 말이 그래요? 그리고 한서울 시가 있는데.”

“나 하나잖아.”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너무나도 웃긴 거였다. 세인은 그런 서울을 보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한서울 씨.”

“너무 겁이 나서 그래.”

“잘 할 겁니다.”

“정말로?”

“응.”

세인의 덤덤한 대답. 이게 정말로 별 거 아닌데 마음에 힘이 되는 거였다. 정말로 응원이 되고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되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서울은 그저 가만히 세인에게 머리를 기댔다.

 

“미안해.”

“아니요.”

부장의 사과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잡아야 한 건데.”

“저도 못했어요.”

아진은 다시 설득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바로 휴무를 썼다. 그리고 그게 끝이 나면 다른 역으로 간다고 했다.

“뭐가 문제일까?”

“문제.”

이제 정말로 끝인 걸까?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응?”

“그만 두거나.”

부장은 입을 내밀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한서울 씨는 내 팀입니다. 내가 나중에 다른 역으로 가거나 자기가 그만 두면 모를까. 그 전에는 그대로 가는 거야.”

“네?”

“당연한 거잖아. 주간만 하려고 했어?”

“아니요.”

서울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부장이 제대로 위로는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힘이 되는 사람이었다.

“고맙습니다.”

“무슨.”

부장은 가볍게 손을 저었다.

“이건 당연한 거야.”

당연한 것. 자신은 회사 일을 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이렇게 당연한 대우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잘 된 거죠?”

“응.”

서울의 대답에 세인의 표정도 밝아졌다.

“다행이야.”

“그러게.”

정말로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역으로 가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게 너무나도 당연할 테니까.

“내가 한심하죠?”

“아니요.”

“왜?”

“왜 한심하지?”

세인은 서울의 팔을 가볍게 문질렀다.

“멋있어.”

“뭐래?”

서울은 세인에게 체중을 실었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 기분. 그래도 세인이 자신을 견뎌주는 거였다.

“내가 남자들하고 일해도 괜찮아요?”

“그 사람들이 남자인가?”

“아니.”

“그러니까.”

서울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신기해.”

“네?”

“너무 좋은 사람이야.”

“당신도 그래요.”

세인은 가만히 서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손톱을 만지고, 손가락을 만지고. 그리고 팔을 만지고 조심스럽게 서울의 어깨를 만졌다. 서울은 눈을 감고 그런 세인에게 온 몸을 맡겼다. 세인의 손가락은 서울의 몸을 연주했다. 서서히 서울의 몸은 뒤로 젖혀지고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열기는 방을 가득 채웠다.

 

“바빠요.”

“그래도 있어야 할 걸요?”

“아니.”

새로운 글이라니.

“이세인 씨. 지금 내가 얼마나 바쁜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글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오히려 그렇게 다른 것 하나 제대로 신경도 쓰지 못하는 순간. 이 순간이 글을 써야 할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서우른 입술을 쭉 내밀었다.

“이상해.”

“왜요?”

“그게 가능해요?”

“그럼요.”

세인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나도 너무나도 힘들고. 너무나도 지치는 순간. 정말로 이제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한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을 다 그만 두고 싶을 때. 그때 글을 쓰니까 살 힘이 생기더라고요.”

“힘.”

이건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글을 가장 열심히 썼던 시절. 학생이라서 아르바이트로는 돈이 충분하지 않았던. 바로 그 시절이었다. 이건 세인의 말처럼 간절함이 있어서 가능한 거였다.

“그리고 많이 물어요.”

“뭘요?”

“한서울 씨 글.”

“말도 안 돼.”

얼굴이 달아올랐다.

“왜요?”

“네?”

세인은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내가 뭐라고요?”

“작가죠.”

“아니요.”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작가라고 할 수 없었다. 그저 장난처럼 글을 쓴 게 전부였다.

“그런 건 글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라고요. 이세인 씨처럼 모두 다 힘을 써서 쓰는 게 아닌 걸?”

“저도 서점 주인이에요.”

“네?”

“돈을 더 많이 버는 게 직업이니까.”

세인의 말에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과 세인은 달랐다. 자신은 꿈을 잊었다.

“이세인 씨치럼 열심히 모든 것을 다 걸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요.”

“그래서 안 쓰려고요?”

“모르겠어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가 여전히 글을 그 정도로 사랑하고 있는 건지. 사실 그런 것도 잘 모르겠고. 복잡한 마음이야.”

“좋아해요.”

서울의 망설임에 세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한서울 씨가 글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해서 그래요. 눈이 반짝이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어떤 확신? 그런 게 온 몸에 가득 차오르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거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런가?”

“그래요.”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어딘가에는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을 관두라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죠.”

서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아니니까.”

“왜요?”

“그냥.”

서울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정말로 잘 하는 건지. 그리고 내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그런 것에 대해서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복잡함.”

세인은 서울의 말을 따라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고 자세를 고쳐서 세인의 허벅지에 누웠다.

“이세인 씨는 글 안 써요?”

“쓰는데.”

“그런데 왜 안 보여줘요?”

“사야죠.”

“뭐라고요?”

서울은 가볍게 세인의 가슴을 때렸다.

“그게 뭐야?”

“저도 작가에요.”

“알았어요.”

서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작가라는 것. 그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

“멋있어.”

“한서울 씨도 멋있어요.”

“무슨.”

“정말로.”

서울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해봐요.”

“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 자신이 잘 할 수가 있는 걸까? 세인의 말에 괜히 긴장이 되면서도 새로운 설렘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