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장
“그럼 이제 결혼하는 거야?”
“무슨.”
“왜?”
“말도 안 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심으로 고민한 적도 없었다.
“내 상황 내가 아는데 뭐.”
“왜?”
“됐어.”
“하지만.”
부산의 물음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산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그게 그렇게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되는 게 아닌데. 그런데 이대로 일도 바쁜 상황에서 뭔가 더 꼬이기 싫어.”
“아무리 그래도.”
서울이 단호한 표정이자 부산은 입을 다물었다. 서울은 입술을 다물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내가 보기에 불안해 보여?”
“아니.”
부산은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부럽기는 하네.”
“뭐가?”
부산의 말에 서울은 눈썹을 모았다. 도대체 자신이 뭐가 부럽다고 하는 건지. 이 상황은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뭐가 부러운 건데?”
“누나는 선택을 할 수 있잖아?”
“어?”
“나는 안 되는데.”
“아.”
순간 서울의 머리에 뭔가 탁 하고 지나갔다. 자신과 세인이 다르다는 것. 이것을 잊고 있었다.
“그걸 몰랐네.”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고.”
서울의 반응에 부산은 다소 장난기가 더해진 말로 반문했지만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니까.”
“사실은 무슨.”
부산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내가 말한 거 진심이야. 누나가 그 사람을 보는 거. 그게 더 편해 보인다는 말 말이야.”
“그래?”
“누나 정말 좋아 보여.”
“고마워.”
“고맙긴.”
별 것 아니기는 하지만 자신을 누군가가 가만히 봐준다는 것. 그리고 식구의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 한 사람이 버텨내는데. 그리고 견디는데 큰 힘이 되는지 이제 알게 되니까 더욱 신기했다.
“너는 왜 결혼이 하고 싶어?”
“나를 닮은 아이?”
“어?”
“우습지?”
“아니.”
단 한 번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혼자 사는 것. 이것으로도 바쁘다고 믿었다.
“나를 닮은 존재를 세상에 낳아서. 그 사람이 나처럼 불행하지 않게 세상을 예쁘게 보게 해주고 싶어.”
서울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부산은 자신이 보기에 그저 어린 아이였는데 너무나도 어른이었다. 자신과 닮은 이에게 자신과 다른 인생을 준다는 것. 그건 너무나도 특별하고 대단한 거였다.
“그러네.”
“왜 그래?”
“그냥.”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부산의 저런 모습을 보니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세인 씨는 결혼 생각 없어요?”
“네? 결혼이요?”
“아니.”
세인이 너무 놀라자 서울은 부러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가볍게 묻고 싶었다.
“유정이도 그러고. 그냥 주위 사람들이 하나씩 결혼하니까. 세인 씨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서요.”
“그렇긴 하네요.”
세인은 입술을 내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지금 세인의 반응을 보니 설득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나를 아니까.”
“아.”
“그래서 좀.”
“그러네요.”
서울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은 자신이 아프다는 것에 신경을 쓰니까.
“한서울 씨는 결혼하고 싶어요?”
“음. 아니요.”
서울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꼭 뭐.”
“그렇구나.”
이게 아닌데.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와서 다시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거고. 지금 자신이 하는 건 그저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 것. 이게 전부였다. 너무나도 우습지만 이게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거였다.
“뭐 먹을까요?”
“그래요.”
세인이 눈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뉴저지.”
일하면서 온 문자를 보면서 괜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유정이 자신보다 더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
자신도 떠날 수 있을까? 그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여기에서 있는 것. 이것도 너무 다행이었다.
“지금도 행복한 걸.”
다만 우스운 것은 지금 이 순간 이런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낯설게 다가온다는 거였다. 유정이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것. 이것 자체가 어떤 쓸쓸함 같은 거였다.
“좋은 곳이네요?”
“응.”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트콤에서 본 적도 있어요.”
“그렇죠?”
세인의 눈이 밝아졌다. 서울도 밝게 웃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How I Met Your Mother에서 약간 비꼬는 것?처럼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편하게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어? 그 시트콤 알아요?”
서울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어떻게?”
“네?”
“아니.”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꽤나 긴 시즌을 자랑하는 시트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팬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많이 보지 않았다.
“학교 다닐 적에 정말 좋아하던 시트콤이었거든요. 나에게 어떤 위안 같은 것이 되어주는 친구라고 해야 하나?”
“나도 그래요.”
세인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울 씨도 아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그리고 유일한 친구라고 해야 할 거예요.”
“아. 그래요?”
서울의 표정이 굳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라고 한 말 아닌데.”
“알아요.”
대답을 하면서도 마냥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한서울 씨가 슬퍼하니까 좀 그러네.”
“하여간.”
“좋아해요.”
세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백하자 서울은 미소를 지은 채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갑자기 툭 이런 고백. 자꾸만 설렜다.
“편안해.”
온기가 느껴지는 이 순간. 세인은 서울에게 손을 내밀었고 서울은 그 손을 가만히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 씨는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거 같아.”
“그래요?”
“그런 생각 안했어요?”
“응.”
세인의 간단한 대답에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눈치는 없는데 위로를 잘 한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인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 모든 우울함과 걱정 같은 것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서울 씨에게만 먹히는 거 같은데.”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정말로.”
서울은 가볍게 눈을 흘기면서도 입은 웃었다.
“그래도 좋네.”
“그렇죠?”
“응.”
이제 정말로 자신에게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세인이었다. 세인이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세인 씨가 아니라면 진짜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ᄁᆞ. 이세인 씨가 너무 좋다.”
“나도 그래요.”
세인은 가만히 서울의 눈을 응시했다.
“한서울 씨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집에서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냥 그 안에 나를 가뒀을 겁니다.”
“뭐래요?”
“진심으로.”
세인의 단호한 목소리.
“한서울 씨는 다릅니다.”
“아니요.”
“다르다니까.”
세인의 부드러운 음성에 서울은 싱긋 웃었다.
“웃겨.”
“한서울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당신을 믿고 있습니다. 많은 걸 받았어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는 걸.”
서울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말 이상해요.”
“안 이상해요.”
세인의 말에 서울은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 자체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그 동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너무나도 좋았다.
“미안해요.”
“네?”
갑작스러운 세인의 사과에 서울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그냥.”
“무슨.”
세인은 손바닥을 바지에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결혼 이야기 아직은 못 하겠어요.”
“아니요.”
서울은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자신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인에게 어떤 부담을 주려던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알아요.”
세인은 싱긋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울의 눈을 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ᅟᅥᆨ였다.
“그런데 내가 너무 겁쟁이야.”
“무슨.”
“정말.”
“아니에요.”
서울은 세인에게 가만히 기댔다.
“이 순간이 좋아.”
“더 나아질게요.”
“급하게 할 건 없어요.”
진심이었다. 너무 빠르게 서두르다가 모든 걸 망치는 것 보다는 오히려 정말 서로를 의지하고 이 시간을 채우는 것. 이게 더 중요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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