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 스포) 조, 누가 원조인지 모를 원조 맛집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Good – 섬세한 감정의 영화가 좋은 사람
Bad – 이 영화 로맨스일 거야.
평점 - ★★★☆ (7점)
누군가에게 만들어진 존재가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개인적으로 [조]는 후반부를 제외하면 [그녀]를 조금 더 매끄럽게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 같은 경우에는 그 실체가 불분명하기에 약간 더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두고 관객들에게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면, [조] 같은 경우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가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그저 실존하는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풍성해진다는 것이 놀랍기는 합니다. 다만 이 영화는 꽤나 정적으로 흐르는 만큼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꽤나 지루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됩니다. 그 동안 수많은 영화에서 봐왔던 그런 것들이 다시 한 번 영화에서 펼쳐지게 되는 것인데, 자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로봇과 자신을 만들어준 존재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혼란. 이런 것들이 그다지 철학적이지 않게 풀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분명히 조금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고 생각할 것들을 던질 영화인데 너무 막 푸러놓는다고 해야 할까요?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주워 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놓칩니다.
[조]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누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느냐의 변화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초반에는 ‘조’라는 인물의 감정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조’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과연 내가 만들어진 존재라면 나는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됩니다. 꽤나 주도적인 ‘조’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수동적으로 변합니다. 물론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되는 순간 충격을 받고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갑자기 캐릭터가 변화하게 되는 것이니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조’가 ‘콜’과 자신의 차이를 명확히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묘하게 영화는 ‘조’의 입장을 그리기 보다 그저 이 상황을 중계하는데 모든 신경을 쏟아붓는 기분입니다. ‘조’는 그저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거죠. 아무리 배우가 훌륭한 연기를 하더라도 캐릭터가 단순하게 변하면, 그 안에서 뭔가 할 여지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오히려 반대의 수순으로 흘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로 시작했다가 [공기인형]으로 끝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레아 세이두’는 ‘조’를 연기합니다.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도 사랑스러운 매력을 보이던 그는,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쉽게 접지 못합니다. 그는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이 ‘조’라는 존재라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콜’의 곁에서 어울리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죠. 그의 노력이 너무 인간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슬프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레아 세이두’는 이것을 그저 슬프거나 애잔한 노력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 중 하나로 느끼게 만듭니다.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거꾸로 자신이 더욱 평범하다는 것. 그래서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죠. 오직 ‘콜’이라는 존재만을 아끼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완 맥그리거’는 ‘콜’을 맡았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지질한 남자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일단 자신이 만든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백 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 이토록 고민하고 망설이며, 도대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니. 머리가 좋다고 하지만 이게 전부입니다. 그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전 부인과의 관계에서도 ‘조’가 없을 때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물론 ‘조’와 연인이 되고 난 이후에서도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하며,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하죠.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캐릭터였습니다.
‘테오 제임스’는 또 다른 로봇 ‘애쉬’를 연기합니다. 또 다른 로봇인 만큼 뭔가 더 극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극도로 차분한 그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선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요? 연기력이 나쁘지 않은 배우이니 만큼, 이런 특별한 영화에서 나올 때 조금이라도 더 특별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해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애초에 그가 활약을 펼칠 공간 자체가 없으니 영화에서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조’에게 뭔가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 더 우월적인. 그러면서도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에 대해서 회의까지 품고 있는 거 같은데요. 철학적인 존재로 그리려고 했던 것 같으나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캐릭터입니다.
[조]는 마지막 부분만을 제외한다면 생각할 것을 충분히 던지는 우화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피노키오와 제페토 할아버지의 관계를 연인으로 바꾼 것 같달까요? 영상도 너무나도 아름답고,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 차분한 감정을 고스란히 이어가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물들의 모든 것을 다 비틀어버리고, 거기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흘러가게 되는 거죠.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모든 관계가 다 헤테로, 그러니까 이성애자가 올바른 것이라고만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로봇이 저렇게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발달한 미래에서 한 가지 모습의 사랑만을 그린다는 게, 거꾸로 감독이나 작가의 상상력의 부재를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지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가 아쉬웠던 이유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갑자기 현실로 확 돌아오는 지점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렇기에 영화가 현실성이라는 것을 갖게 되지만, 적어도 톤을 그대로 유지했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마지막에 모든 이야기를 급하게 수습하려고 하니 더욱 아쉬움만 남스니다. 그러나 [그녀]를 지나서 우리가 다시 마주할 것 같은 미래라는 점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상적인 동화일 뻔한, 그러나 꽤 아룸다운 [조]였습니다.
로맨스 소설 쓰는 남자 권정순재 ksjdoway@hanmail.net
Pungdo: 풍도 http://blog.daum.net/pungdo/
맛있는 부분
하나 - ‘조’의 테스트
둘 - ‘조’와 ‘콜’의 관계의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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