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3일간의 기적 - 두 번째 날

권정선재 2007. 12. 27. 22:07
 



3일간의 기적




둘째 날


기적을 사랑하다.




“하암.”


재호는 자신의 눈으로 부서지는 햇살에 눈을 떴다.


“일어났어?”


진영이다. 역시 꿈이 아니다.


“응.”


“잘 잤나봐.”


“누나가 옆에 있어서 편안했어. 너무나도 오랜만에.”


“킥.”


재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진영을 바라보았다.


“누나는 잘 잤어?”


“나도 잘 잤지.”

진영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떠나야지.”


진영의 말을 들은 재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랑 만난 지 겨우 하루야. 언제 다시 만날 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재호의 표정을 본 진영이 고개를 돌렸다.


“나도 어쩔 수 없어.”


“제발.”


진영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재호를 바라본다.


“하지만, 너 여기 있으면 안 돼.”


“부탁이야. 딱 하루만 더 있고 싶어.”


“하아.”


진영이 조심스럽게 창밖을 내다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너는 위험해 져.”


“너를 딱 하루만 더 보고 싶어.”


“하아.”


진영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내일 떠날 거야?”


“응.”


재호가 미소를 지었다.


“나도 어떤 게 옳은 건지 모르겠다.”


진영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도 너를 만나서 너무 기뻐.”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재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반드시 내일은 떠나야 해.”


“응.”




“너는 어떻게 지냈어?”

“어?”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다니던 의대생께서는 지금쯤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되셨겠네?”

“훌륭한 건가?”

재호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평범한 의사야.”


“대단한 걸.”


“대단하기는 뭘.”


하지만 진영에게 인정을 받으니 더 흐뭇하다.


“힘들지는 않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니까.”


“아.”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뿌듯하게 재호를 바라본다.


“내가 남자친구 하나는 잘 키워놨어.”


“뭐?”

재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진영을 흘겨본다.


“네가 뭐?”

“야, 고등학교 때 전교 꼴찌 하던 거 내가 사람 만들어놨잖아. 2년동안 만회시켜서 의대 진학시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킥.”


재호도 그 때의 일들이 생각이 나는 지 웃음을 터뜨린다.


“진짜 재밌었는데.”


“학생 주제에 선생님이 좋다고, 따라다니기나 하고. 뭐 얼굴이 조금 반반해서 사귀어 주기는 했지만, 그게 다라고.”


“아 네.”


재호가 싱긋 웃었다.


“이제 우리 뭐하지?”

“우리?”

진영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미소를 짓는다.


“나 너랑 있었던 좋은 기억들 다시 해보고 싶어.”

“나랑 했었던 일?”


“응.”




“고작 케이크 만들기?”


“고작이라니!”


진영이 귀엽게 눈을 흘긴다.


“이곳에서 그 때의 케이크 만들 던 기억이 얼마나 생각 나는데.”

“그래도.”

재호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때는 영원할 것 같았는데.”


진영이 말 끝을 흐린다.


“누나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고, 우리 즐겁게 케이크 만들자.”


“그래.”


둘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돼.”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잔에 홍차를 탔다.


“심심하겠다.”

“별로.”


진영이 재호의 옆에 앉았다.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셔?”

“엄마야 늘 그렇지 뭐.”

“참 잘 해주셨는데.”


“엄마도 가끔 얘기 하셔.”

“그래?”


‘띵’


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븐을 일었다. 달콤한 냄새가 재호의 코 끝에 어렸다.


“맛있겠다.”

“크림은?”

“그냥 먹자!”




“맛있다.”


재호가 배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우리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응.”

재호가 진영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갑자기 왜 이래?”

진영이 입을 가리고 미소를 짓는다.


“그리워서.”


“재호야.”


재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대로 어떻게 떠나니? 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일어나.”


“어떻게. 어떡해.”


재호의 어깨가 들썩였다. 진영은 조심스럽게 재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여태까지 잘 지냈잖아.”


“아니.”


재호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다시 돌아가기가 겁이 난다.”


“재호야.”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 때처럼 편안해서, 지금이 더 좋아지려고 해.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지.”


“나도 지금이 믿겨지지 않아.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아. 그럴 리 없는 거 알면서도 그래. 그래서 너는 내일 꼭 떠나야 해.”

“응.”

둘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신 우리 오늘은 꼭 행복하게 지내자.”


“응.”

“행복하게.”


“남은 시간 외롭지 않도록.”




“에? 단 한 번도 손 보지 않은 거야?”

“그냥 그렇지 뭐.”


진영이 혀를 내밀었다.


“내가 이런 걸 할 줄 아냐?”


“그래도 그렇지 지난 세월이 얼만데, 이 정도는 좀 배워두지.”


“네가 올 줄 알았지.”


“말은 잘 해요.”


재호가 미소를 지으며 망치질을 한다.


“벽이 생각보다 무르네.”


“오래 되서 그런가 보네.”


“또 뭐 할 거 없어?”


재호가 못을 다 박고 내려서며 물었다.


“내가 다 해줄게.”


“다?”


진영이 장난스런 미소를 짓는다.




“이 정도는 누나도 할 수 있잖아!”


“치. 다 해준다면서?”

“그래.”


재호는 울상을 지으며 해리의 목을 잡았다.


“해리 어서 목욕하자.”


덩치가 커진 해리의 힘은 장난이 아니었다.


“해리, 너 지금 무지하게 냄새난다고.”


그래도 재호의 냄새가 나는 지, 처음만큼 격렬한 저항은 하지 않는다.


“부탁이야.”

재호가 두 손을 모으자, 해리가 마지못해 씻어준다는 듯 ‘컹’ 하고 한 번 짖더니 욕조로 들어갔다. 그리고 온천에 온 할아버지 마냥 ‘끼잉’ 소리를 내고 얌전히 앉아 있는다.


“이 녀석 되게 웃기네.”


“그러게.”


두 사람은 해리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자기도 노인이라는 건가?”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지?”


진영이 쿡하고 웃었다.


“그럼 열심히하고, 집으로 돌아오세요. 해리도 데리고.”


“네!”


진영이 사라지자 재호는 소매를 걷었다.


“해리야 내가 깨끗하게 씻어줄게.”


‘컹’




“킥.”


진영이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 이 얼마만의 행복일까? 정말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읏차!”


하지만 망상은 금물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진영은 재호가 입고 온 옷을 세탁기에서 꺼냈다. 희미하게 나는 재호의 향기, 진영은 눈물이 고였다.


“미안해. 내가 먼저 죽어서 미안해.”


서러웠다. 먼저 그 사람을 두고 떠났다는 사실이.




“읏차. 이제 다 씻었다.”


재호가 싱긋 웃으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재호가 물러선 것을 보고 나서야 해리는 자신의 몸을 털었다.


“영리해.”


재호가 해리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린다.


“이제 들어갈까?”


‘컹’




“우와!”


재호가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앉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였다.

“아직까지 내가 좋아하는 거 잊지 않았나봐?”

“너, 사람을 뭘로 보고.”


진영이 살짝 눈을 흘긴다.


“잘 먹겠습니다!”




“하아.”

“이리 좀 앉아.”


설거지까지 마치고 온 진영이 재호의 옆에 앉는다.


“벌써 밤이다.”


“그러게.”


내일이면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재호의 마음이 무겁다.


“나 더 있으면 안 될까?”


“안 돼!”


진영이 인상을 쓴다.


“그래, 간다. 가.”


재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나저나 너무 행복하다.”
“응.”


재호가 조심스럽게 진영의 손을 잡았다. 만질 수 없는데 온기가 느껴졌다.


“고마워.”


“뭐가?”


진영이 재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뭐가 고마운데?”


“나를 사랑해줘서.”

“킥.”

진영이 낮게 미소를 짓는다.


“그런 거는 나도 고마워.”

“어?”


“너도 나를 사랑해 줬잖아.”

“진영아.”


“재호야.”

둘의 눈이 슬프다. 서로의 입술이 닿으려고 하지만, 서로의 몸은 닿을 수 없다.


“아쉽다.”

“킥. 변태.”


“어?”


재호가 진영을 흘겨본다.


“내가 뭐? 본인이 입술을 쭉 내밀었으면서.”

재호가 말을 하면서 입술을 쑥 내민다.


“어머, 내 내가 언제.”


“방금!”


“언제?”


그렇게 두 번째 날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