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기적
세 번째 날
안녕, 기적
“하아.”
진영은 조심스럽게 재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질 수 없지만 느껴진다.
“이제 가야 하는 구나.”
오랜 기다림, 그리고 다시 오랜 기다림.
“재호야.”
“으음.”
재호가 미소를 짓는다.
“좋은 꿈 꾸나 보네.”
이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니, 아쉽다.
“미안.”
진영이 자신의 뺨을 재호의 뺨에 가져다 댄다.
‘똑 똑 똑 똑’
“으음.”
재호는 가늘게 눈을 떴다. 손을 더듬었는데 아무도 없다.
“어디 갔지?”
방 문의 가는 틈새로 들어오는 불 빛, 그리고 규칙적인 도마 소리.
“흐음.”
가벼운 콧노래와 함께, 진영이 칼질을 하고 있다.
“누나 뭐 해?”
“어? 일어났어?”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본다.
“응. 누나 되게 일찍 일어나네.”
“오늘 네가 가는 날이잖아.”
“아.”
“그래서 아침이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응.”
아쉬운 표정, 하지만 더 이상 조를 수 없다.
“나 씻을 게.”
“그래.”
“맛있다.”
“그렇지?”
방금 부친 계란과 따뜻한 된장국, 윤기가 흐르는 흰 쌀 밥. 기름이 흐르는 고등어 구이, 방금 구운 바삭바삭한 김.
“많이 먹어.”
“응.”
재호는 진영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밥만 먹는다. 진영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더 먹어.”
진영이 고등어 살점을 떼어서, 재호의 밥에 얹어준다.
“고마워.”
재호가 열심히 밥을 먹는다.
“가는 길이 멀지는 않을 거야.”
진영이 미소를 짓는다.
“누나.”
“어서, 가.”
“누나, 고마웠어.”
재호가 진영의 손을 잡는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서 기뻤어.”
“나도.”
진영이 재호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 여기에서 있으면 안 돼. 다시 어두워진다면 위험해.”
“알아.”
재호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안녕, 안녕.”
“이대로 쭉 가면 돼.”
“응.”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서, 가.”
“응. 나중에 나중에 보자.”
“그래. 나중에, 나중에 보자.”
진영이 손을 든다.
“어서 가.”
“누나 안녕.”
재호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뗐다.
“나 진짜로 갈게.”
“응.”
“안녕!”
“안녕! 잘 가 재호야!”
재호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서있다.
“누나, 안녕. 안녕.”
그리고 다시 앞을 보는 순간.
“으악!”
앞이 깜깜해졌다.
“재호야.”
진영이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재호는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간 것이냐?”
“네.”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왼 편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참 좋은 사람이죠?”
“그러게 말이다.”
진영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잘 갔을 거예요.”
“어?”
“저게 뭐지?”
뭐, 뭐야? 이 시끄러운 소리는?
“사람이 쓰러져 있네?”
“어서 전화해요!”
누, 누가 쓰러져 있다는 거야?
재호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어머, 사람이 일어났어요.”
“그러게.”
“으윽.”
그제야 몸에 느껴지는 고통.
“아악”
그리고 기억이 없다.
“으으.”
재호가 머리를 잡고 일어났다.
“여긴 어디야?”
조용한 방. 재호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병원복이었다.
“일어났니?”
“어, 엄마.”
해미가 미소를 지으며 재호의 손을 잡는다.
“여긴 어디에요?”
“어디긴? 병원이지.”
“병원요?”
재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도대체 내가 왜 병원에?”
“기억이 안 나는가 보구나.”
“무슨 기억요?”
“아마도 의사들이 추정하기에 사흘 전 쯤 사고가 났다고 하더구나.”
“!”
“그런데 이상하게 외상이 더 심해지지 않고,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
“아마 죽었을 수도 있었다던데. 신기한 일이지?”
해미가 냉장고에서 쥬스를 한 캔 꺼낸다.
“마시겠니?”
“아, 아니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군요.”
“그래요?”
재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언제쯤 퇴원 날짜를 잡을까요?”
“지금 바로라도 괜찮습니다.”
“지금 바로도요?”
“또 어디를 가는 거니?”
“잠깐 확인해볼 게 있어요.”
“확인할 거?”
해미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미소를 짓는다.
“이번에는 조심히 돌아오너라.”
“네.”
재호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다녀올게요.”
“그러렴.”
“이 근처일텐데.”
도무지 그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이 정도 왔을 때 있었던 건데.
“?”
그 때 재호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
그 것은 손을 흔들고 있는 여자였다.
“지, 진영아!”
그녀는 멀어져갔다. 재호는 미소를 지었다.
“나를 지켜준 거구나.”
재호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앞으로도, 나를 지켜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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