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법
저는 소위 퀸카라는 소리를 듣고 산답니다. 얼굴도 이만하면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고, 키도 173cm에 몸무게는 52kg, 가슴도 C컵, 눈도 원래 갈색입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저의 우윳빛 피부는 잘 타지도 않고요.
“저, 저기요.”
“네?”
또입니다. 항상 이런 곳에 앉아 있으면 수많은 남자들이 저에게 대쉬를 해오곤 하죠. 정말 곤란할 때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커피 좋아하세요?”
이럴 때는 이미지를 확 깨면서 말을 하는 게 포인트이지요.
“저는 스타벅스의 캬라멜 마끼아또 밖에 안 먹는 걸요?”
하지만 된장녀와는 거리가 멉니다. 뭐, 그동안 가난한 고등학생이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아닐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십중팔구 가버리죠. 솔직히 처음 대쉬해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 덥썩 5000원 짜리 커피를 살 남자는 없거든요. 그리고 이곳은 학교 안이라서 그런 커피를 구해오기도 쉽지 않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애인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절.대.로. 레즈비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애는 뭔가 재미없다고 해야할까요? 남자가 먼저 고백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조금 심심하잖아요. 그리고 여자가 무슨 백화점의 진열 상품인가요? 남자가 골라가게 말이죠. 저는 제 남자는 제가 골라야 합니다. 그래야 저 다운 거죠.
“저.”
“네?”
또입니다. 이제 자리를 떠야겠군요. 한 두 번이면 저도 비행기 타는 기분이라서 좋기는 한데, 너무 잦으면 불편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센스.
“그게 아니라, 스타킹이 나가셨는데요?”
“!”
마, 말도 안 됩니다. 오늘 신은 스타킹인데? 이런, 정말로 스타킹이 나가버렸군요. 맙소사, 천하의 제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아, 알고 있어요!”
얼굴이 뜨거운 게 터질 거 같습니다. 아우 쪽팔려.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당연한 순서이겠지요?
“그게 정말이야?”
“푸하하.”
웃겨 뒤집어지는 제 친구들입니다.
“천하의 너도 언제나는 아니구나.”
“시끄러!”
정말 창피합니다. 분명 거기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 데 앞으로 학교를 어떻게 다니죠?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지 못할까요? 그랬으면 다행인데, 제가 좀 예뻐야 말이죠. 하아.
“킥.”
너무 귀엽습니다. 손에 든 스타킹이 민망해지는 군요. 스타킹 나간 거 말해주고 건네주려고 했는 데 말이죠. 그냥 가버리네요. 그런데, 그 후배 녀석 저인 것도 모른 거 같죠? 이것 참 곤란한데요?
“근데 그 남자 누구였어?”
“어?”
그 남자라니? 그 남자 얼굴을 기억해야 했던 걸까요?
“너 스타킹 나간 거 말해준 사람.”
“그러게.”
“몰라.”
그런 상황에서 그런 게 기억이 날 리가 없는 거잖아요.
“그나저나 너 여전히 애인 안 만들 거냐?”
“응?”
“아직도 네 마음에 차는 남자가 없어?”
“아니.”
저는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둘러봅니다.
“어?”
“정말?”
두 사람의 눈이 커지는 군요.
“누군데?”
“성공하고 말 거야!”
저는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오빠!”
누구죠? 보통 학교에서는 선배라고 부르는데 말이죠.
“?”
아 이녀석이군요. 스타킹.
“무슨 일이야?”
“점심 식사 하셨어요?”
역시 밥을 사달라는 걸까요?
“아니.”
“그럼 저랑 같이 드실래요?”
“너랑?”
“네.”
이런 저는 복학을 막 한 참이라 돈이 없는 데 어쩌죠?
“사달라는 거 아니에요.”
제 눈치를 이해했는 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듭니다.
“그렇다면 좋아.”
“가요.”
그리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저의 팔짱을 낍니다. 뭐 기분은 좋습니다.
하아, 다행입니다. 겨우 오빠의 점심 약속을 잡았습니다.
“오빠는 뭐 좋아하세요?”
“아무거나.”
“정말 아무거나요?”
“너는 뭐 먹고 싶은데?”
“음.”
검지를 무는 모습이 꽤나 귀엽습니다. 왜 우리 학과 녀석들이 이 스타킹을 보고 퀸카라고 하는 지 대충은 알 거 같군요.
“저는 된장찌개요!”
“된장찌개?”
“싫으세요?”
제가 놀라자 울상을 짓습니다.
“싫은 건 아닌데.”
보기에는 파스타나 샐러드, 크레페나 먹을 거 같아 보이는 아이인데, 생각과는 다른 된장 찌개를 먹고 싶다고 하니 좀 당황스럽습니다. 그래도 뭐, 귀엽기는 하군요. 마음에 듭니다. 요즘 애들과는 다른 거 같습니다.
“오빠.”
“응?”
“이번 주 금요일이 무슨 날인 지 아세요?”
“이번 주 금요일?”
군대라는 곳은 참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무슨 날인데?”
“화이트데이.”
“아.”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는 그것을 챙겼다죠. 하지만 이제는 챙기지 않습니다. 그런 걸 왜 챙깁니까? 애인도 없고 돈도 아까운 데 말이죠.
“오빠는 여자친구도 없으세요?”
“왜?”
“그런 거 모르면 여자친구가 뭐라고 안 하세요?”
“없으니까 괜찮아.”
나이스, 애인이 없답니다. 이것 참 다행입니다.
“선배 혹시 남자 좋아해요?”
“뭐?”
놀라는 눈치. 여자 좋아하는 거 맞겠죠?
“농담이에요.”
좋습니다. 이제 고백을 할 타이밍?
“오빠 저 오빠에게 사탕 받고 싶어요.”
“사탕?”
“네.”
“뭐 사주지.”
자, 잠깐만요. 그런 사탕이 아닌데?
“아, 아니.”
“사탕 사준다고.”
미소를 짓는 선배입니다.
“그런 거 말고요.”
“그런거?”
선배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그러면 어떤 거?”
“저 오빠가 좋아요.”
“노, 농담하지마!”
이 녀석 갑자기 살벌한 농담을 하고, 무섭습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뭐?”
진담이라고요?
“나 재수도 하고 군대도 다녀와서 너보다 네 살이나 많아. 아참 너 빠른 90이라며, 그럼 나는 너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고.”
“괜찮아요.”
미소를 짓습니다.
“오빠가 참 좋아요.”
“나 참.”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나도 조건이 있어.”
“조건요?”
후배 녀석이 귀여워 보이는 군요.
“앞으로 올나간 스타킹 신지 않기.”
“!”
얼굴이 빨게 집니다.
그, 그게 오빠였군요. 맙소사.
“알았어요. 그럼 이제 우리 사귀는 거죠?”
“응.”
성공입니다. 먼저 고백하는 여자 재미 없다고 할 줄 알았는 데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앞으로는 스타킹을 안 신어야 겠군요.
나의 고백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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