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별 만 개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니야?”
“왜?”
“너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는 하냐?”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한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종이별을 접고 있다. 그 옆에서 친구가 투덜거리지만, 이 남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너 이러면 너만 바보라고.”
“괜찮아.”
“히아. 너 정말 답답하다.”
남자는 말 없이 웃기만 합니다.
“이런다고 걔가 일어날 거 같아!”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남자의 손이 멈춥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일 그만 하라는 말이야!”
“너, 내 친구인 거 잘 알아. 그리고 내가 힘들 때 네가 내 옆에 있어준 것은 알고 있거든. 그래도 이건 아니야.”
남자가 친구를 노려본다.
“알았어, 너를 누가 말리냐. 어휴.”
결국 친구도 고개를 젓고 자리에 털썩 주저 앉습니다.
“나도 도와줄까?”
“아니. 나 혼자 해야 효과가 있을 거야.”
“미친 놈.”
친구가 입에 담배를 뭅니다.
“너도 참 지극정성이다.”
“환자분, 이제 그만 고집 부리세요. 어서 주사를 맞으셔야지요.”
“어차피 죽는 거잖아요.”
“네?”
간호사의 눈이 동그래진다.
“저, 저기.”
“어차피 저 죽는 거 다 알아요. 그런데 그런 아프고 힘든 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요? 아, 내가 여기 있는데 치료를 받지 않으면 모든 게 병원 책임이 되나요? 그러면 내가 퇴원하면 되나요?”
여자가 자신의 팔의 링거를 뽑으려고 하자 간호사가 황급히 제지한다.
“환자분.”
“제발!”
환자가 악을 쓴다.
“좀 가만 놔두면 안 될까요? 어차피 그거 맞는다고 해서 사는 거 아니 잖아요. 어차피 죽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차피 죽으니까. 조금만 그냥 내버려두면 안 돼요? 어차피 죽는 날은 똑같을 거 아니에요. 간호사이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그냥 나에게 주사 놓았다고 하고, 그냥 가도 되는 거잖아요.”
“저는 간호사입니다.”
간호사가 입술을 꼭 깨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안 됩니다.”
“야! 이 나쁜 년아!”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너는 죽어가는 네 친구 소원 하나 못 들어주냐!”
“친구니까 못 들어주는 거야! 네가 내 친구이니까.”
간호사의 손에서 주사기가 떨어진다.
“네가 내 친구이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래? 내가 어떻게 그러냐고! 너 하나 정말 살리고 싶은데 못 살리는 내 심정을 네가 알아! 그러니까 주사 좀 맞아! 아직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인데 왜 그러는 거야?”
“네가 보증할 수 있니?”
“뭘 말이야?”
“내가 죽지 않는다는 거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주사 안 맞겠다는 거잖아! 그거 맞으면 머리도 빠지고 흉하게 변하잖아. 나 그 사람에게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안 그래도 아픈 모습 보여주기 싫은데, 그런 모습까지 보여주기 정말 싫다고. 내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단 말이야. 그래서 싫어. 정말 싫어.”
“흑.”
간호사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제발, 응? 제발!”
“그래, 놔라 놔! 어서.”
마지못해 자신의 팔을 내놓는 환자다.
“대신, 다음부터는 정말 맞지 않을 거야.”
“그래 나도 다음부터는 너에게 주사 안 들고 올 거야.”
간호사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환자의 팔에 바늘을 꽂는다. 온 팔이 주사 자국, 혈관들이 모두 퉁퉁부어 있다. 터질 게 분명한 혈관들, 더 이상 꽂을 곳 없는 링거, 앞으로는 발에 놓아야 할 것이다.
“나 간다.”
“그래.”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간다.
“흐윽.”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 환자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쁜 년. 그래도 오래 살 수 있다고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희망인 거 알지만, 그래도 그런 말 정도는 해줘야 할 거 아니야.”
“하아.”
“뭐야? 또 울고 있는 거야?”
“아, 장과장님.”
간호사가 황급히 눈물을 닦는다.
“아, 아니에요.”
“그 친구 말이야. 그러니까 다른 간호사를 들여 보내. 매일 혼자서 속앓이 하지 말고 말이야.”
“제 친구인 걸요. 그러니까 제가 마지막까지 그 친구 치료해주고 싶어요. 친구로써 말이에요. 그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걸요.”
간호사가 미소를 짓는다.
“자네도 참 대단하군.”
의사가 간호사의 어깨를 툭 친다.
“힘 내게.”
“내 고맙습니다.”
간호사가 미소를 짓는다.
“하아.”
하지만 이렇게 힘든 일을 언제까지 계속하게 될 지는 모르는 간호사이다.
‘똑똑’
“누구세요?”
“나.”
“잠깐만.”
환자가 재빨리 머리를 빗습니다. 하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피부가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밝게 웃는 수 밖에 말이죠.
“들어와.”
환자가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맞습니다.
“오늘은 회사에서 무슨 일 없었어?”
“없었어.”
“그래?”
환자가 싱긋 웃으면서, 남자의 볼을 쓸어본다.
“얼굴이 많이 까칠하다. 힘든 거 아니야?”
“힘들긴.”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환자의 손을 잡는다.
“당신이야말로, 힘든 거 아니야?”
“내가 힘들게 뭐가 있어? 병원에서 주는 밥 먹고, 주사 맞고, 약 먹고만 하면 되는 건데. 돈 벌어야 하는 당신이야 힘들지. 그러니까, 그냥 나 퇴원.”
“그만해!”
남자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 알았어. 다시는 이 얘기 안 꺼낼게.”
환자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나 좀 나갔다가 올게.”
“응, 알았어.”
“하아.”
남자가 문을 닫고, 문에 기대 쪼그려 앉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는 건가?”
“퇴원을 하라고요?”
“예.”
의사의 말에 남자는 힘이 빠진다.
“그 사람이 괜찮아진 건가요?”
의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 왜요?”
“더 이상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
“그러니, 퇴원을 시키시는 게 보호자 분과 환자 분 모두에게 좋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병원에서 사람을 끝까지 살려야 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죄송합니다.”
“하아.”
남자가 무릎을 꿇는다.
“이, 이러셔도.”
“부탁입니다. 제발 그 아이 살려주세요. 아니 살릴 수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가라는 이야기만은 말아주세요. 저희 이곳에서 더 이상 갈 곳 없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그 사람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는 거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아직까지는 미납이 없으시지만, 필요없는 돈을 낭비하실 필요가.”
“필요합니다.”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걔, 제발 그 말 하지 말아주세요. 여기 아니면 걔 정말 죽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희 병원에서는.”
의사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병원장의 명령. 이 병원에서 사람을 죽이지 말아라. 병원 탓이 아니라도 병원이미지 망가진다는 그 말이 자꾸만 의사의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의사이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흐윽.”
그 일이 떠올라, 더 가슴이 아파지는 남자다.
“하아.”
어차피 죽을 거 아는데, 이미 다 끝난 거 아는데, 미련하게 자신을 붙잡고 있는 남자가 한심한 환자다.
“야.”
“왜?”
“나 담배 좀.”
“뭐? 너 미쳤냐? 여기 병원 병실이라고.”
“아는데, 딱 한대만 펴보자. 병실오고 나서 한 대도 못 피웠잖아.”
간호사가 치마를 걷어올리고 허벅지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준다.
“너는 아직도 거기에다가 숨기냐?”
“그럼 어이다가 숨기냐? 간호사가.”
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불을 붙여준다.
“나 어차피 죽는 거지?”
“응?”
“그 사람 안 힘드려나?”
“야.”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아. 딱 보니까 얼마 안 남았네. 몸 상태가 장난이 아니거든. 막 죽어가려고 비명을 질러요. 그걸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거겠지만. 나 그냥 빨리 죽여라.”
“너 정말 미쳤구나.”
“병원에서는 퇴원시키라는 소리 안 하디?”
“!”
간호사의 얼굴이 굳는다.
“벌써 했나보네. 그렇겠지 아무리 병원 탓이 아니라도 병원에서 누가 죽는다면 찜찜할 테니까. 잘 됐네. 퇴원해야 겠다.”
“누, 누가 그래?”
“딱 보이는데?”
환자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무릎이라도 꿇었겠지. 도대체 왜 그러나 몰라. 그냥 나 내버려두지 말이야.”
“야!”
“그 사람이 자꾸 그러면 나 죽을 수가 없잖아. 자꾸 미련이 남잖아. 그래서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 자꾸 미련 남게 그러네.”
“바보.”
간호사가 환자를 안아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
“솔직한 심정이야. 그 사람 이제 놓아주고 싶어.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너무 미안하잖아.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에게 그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는 건데. 그냥 편하게 살면 되잖아. 이 병원 병원비도 장난 아닐텐데,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거고, 정말 미안하잖아. 나 이러면 안 되잖아.”
“두 사람 부부인 거잖아.”
“그러니까, 더 안되는 거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나 혼자 그 사람에게 기대고 있는 거니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하고 있는 거니까.”
환자가 미소를 지으며 간호사를 바라본다.
“왜, 왜?”
“나 퇴원 시켜주라.”
“!”
“부탁이야.”
“뭐?”
“미안해요. 걔가 정말로 그걸 원했어요.”
남자의 손에서 가방이 떨어진다.
“그럼 지금 어디에 가 있는 건데요?”
“아마 집에 있을 거예요.”
“집이요?”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나 다시 병원에 데리고 오려고 해도 소용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애 힘들게 하느니, 집에서 함께 있는 게 더 행복할 지도 몰라요.”
“하지만.”
“병원은 고통을 덜어줄 수가 없어요. 오히려 마지막까지 고통을 줄 거예요. 그러니까 더 편안하게 해주세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왔어요?”
집에 들어오니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긴다. 여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남자를 반긴다.
“어서 앉아요.”
“괜찮은 거야?”
“어서 앉기나 하라니까요.”
“그, 그러지.”
남자가 자리에 앉고, 여자가 음식을 차려 놓습니다.
“냄새 좋은데?”
“그럼 누가 만든건데.”
여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남자의 앞에 앉습니다.
“어서 먹어봐요.”
남자가 조심스러게 한 술 뜹니다.
“당신은 안 먹어?”
“배 안 고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입니다. 여자가 아파서 그런지 여자의 음식이 영 맛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그 말을 하면 굉장히 슬퍼하겠지요?
“나 오늘 무릎 배게 좀 해줘요.”
“무릎 배게?”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죠?”
“그래.”
“빨리 앉아 봐요.”
“아, 알았어.”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앉는다.
“여기 누워.”
“헤.”
여자가 싱긋 웃으며 남자의 무릎에 눕습니다.
“아, 좋다.”
“편해?”
“응.”
여자가 미소를 짓고,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쓸어줍니다.
“벌써 자?”
여자가 대답이 없습니다.
“자기야.”
여자의 살결이 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남자가 미소를 짓습니다.
“당신 이 집에서 죽고 싶었 구나.”
두 사람의 신혼 집. 그래봤자 한 달도 채 살지 못한 그 신혼 집. 여자는 행복하게 잠들었습니다.
“하.”
남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적냐?”
“어?”
친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남자를 바라봅니다.
“무슨 말이야?”
“사람이 죽으면 원래 저렇게 조금 밖에 되지 않는 거야?”
“어?”
정말 그녀의 유골은 굉장히 적었습니다. 겨우 항아리 하나.
“어떻게 할 거야?”
“집에 가지고 갈까?”
“농담 하지마!”
“농담은 아닌데.”
남자가 쓸쓸하게 웃습니다.
“벌써 끝났어요?”
“아, 네.”
그녀의 친구 간호사가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보려고 했는데.”
“잘 갔어요.”
“그렇군요. 이제 어디 가실 거예요?”
“그녀랑 내가 사 놓은 산이 좀 있어요.”
“산이요?”
“여기야?”
“응.”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산을 오른다. 나무를 좋아한 그녀 탓에 그들은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모아서 저 멀리 남쪽에 굉장히 작은 산을 하나 샀었다. 그리고 그곳에 나중에 죽으면 함께 살자고, 작은 집을 만들어 뒀었다.
“우와 이런 곳이 있구나.”
“이렇게 빨리 쓸 줄은 모르고 지은 건데.”
남자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유골과 함께 작은 병을 둡니다.
“그, 그건.”
“종이별 만 개요. 혹시나 만 개를 접으면 그녀가 살아날 줄 알았는데. 그래도 행복하게 숨을 거뒀으니까 괜찮은 거겠죠?”
“야.”
남자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난 정말 괜찮아.”
“정말로요?”
“그나저나 두 사람 함께 올라가야지.”
“너는?”
“나 일주일 간 휴가 받았어.”
“그럼 나도 같이 있을게.”
친구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젓습니다.
“너는 가서 돈 벌어야지.”
“너 무슨 일 저지르는 거 아니지?”
“무슨 일?”
남자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묻습니다.
“아니다.”
“다음에 보자.”
“응.”
친구와 간호사가 찬 타가 멀어집니다. 남자는 쓸쓸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 뉴스 들었어?”
“무슨 뉴스요?”
친구가 고개를 갸웃한다.
“마침 나오는 구먼.”
부장의 말에 TV를 향해 눈을 돌렸습니다.
‘이곳은 전라남도의 한 산입니다. 이 산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부인이 죽은 후, 자신의 부인과 함께 만든 이 집에서 부인의 유골과 함께 자살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화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녀의 유골이 그 남자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까닭인 지는 모르겠지만, 죽음마저도 갈라놓을 수 없던 그 사랑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이 갈리고 있습니다. 이상 라이아 뉴스, 이민용입니다.”
“당신 편해?”
“왜 따라 온 거야?”
“당신이 보고 싶으니까.”
“치.”
“앞으로 영원히 무릎배게 해줄게.”
“팔배게는 못해주겠지?”
“그럼 진작 말하지.”
“됐네요.”
“그나저나 저 별은 아까워서 어쩌지?”
“짜잔.”
“어라? 어떻게 갖고 온 거야?”
“영혼은 그 물건의 영혼을 들고 올 수 있다고.”
“우와 대단한데.”
“그나저나 당신 친구가 당신 걱정하는 거 아니야?”
“그 녀석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을 지도 몰라.”
“그런가?”
“그렇겠지.”
종이별 만 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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