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사서함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됩니다. 삐 소리가 난 이후부터는 통화료가 부과되오니 원치 않는 고객께서는.’
언제나 들리는 익숙한 연결음, 남자는 익숙하게 1번 버튼을 누른다.
‘삐 소리가 나면 녹음을 시작하시고 녹음이 끝나면 *표나 #자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삐’
“또, 전화 안 받네, 하아 또 나 혼자 말 해야 겠네. 거기 날씨는 어때? 여기는 어느덧 봄이야. 일교차가 꽤 커졌어. 나도 감기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직장 생활은 꽤 재밌어. 오랫동안 백수였던 탓이었을까? 회식자리는 가능하면 빠지려고 해서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어.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하니까, 사람들도 그렇게 배척하는 거 같지는 않아. 나름 잘 지낸달까?”
“야, 문열어!”
“찬성이 왔다. 끊을게.”
남자가 #버튼을 누르고 황급히 문을 연다.
“또 전화하고 있었냐?”
찬성이 들어오면서 핀잔을 준다.
“어?”
“아닌 척 해도 소용 없거든. 너 좀 심한 거 아니야?”
찬성이 비닐 봉투를 식탁에 내려 놓는다. 남자는 그냥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맥주 할래?”
“좋지.”
찬성이 카스레드 한 캔을 던진다.
“통신사에서 또 연락 왔더라.”
“왜?”
찬성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뻔하지 뭐. 휴대전화 해약 안 할 거냐고.”
“뭐라고 그랬냐?”
“네라고 그랬다.”
“잘했다.”
남자가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너 언제까지 그럴 거냐?”
“어?”
“벌써 8년이야.”
“그거 밖에 안 되었나?”
“이제 놔줘야 할 거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남자가 맥주를 마신다.
“너 계속 그렇게 힘들어 하면, 거기서 기쁠 거 같아?”
“그럼 넌 내가 걔를 완전히 잊어줘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기쁘다고 해?”
“그런 말 아니잖아.”
“네가 나를 걱정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만해. 자꾸 네가 그러면 나 네가 미워지려고 그래. 여기가 막 아파서, 왼쪽 가슴이 아파서 죽을 거만 같단 말이야. 응? 그러니까 그만해.”
“내가 미치겠다, 너 너무 답답하잖아.”
찬성이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다.
“미친 놈, 난 간다.”
찬성이 맥주 캔을 우그러뜨리고 쓰레기통에 던진다. 그리고 집을 나간다.
“하아.”
남자가 슬픈 미소를 짓는다.
“나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냐.”
“미친 놈.”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놈이다. 그깟 여자가 뭐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이 모양인지, 오랜 친구이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걔 갔다. 걔가 너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하네. 킥, 너무하지? 내가 너에게 전화하지 않으면, 너 되게 심심할텐데 말이야. 나도 너 없이는 못 지내고 말이지. 그나저나 또 통신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네. 아, 내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고? 술을 좀 먹었거든. 어? 나랑 이야기 해주는 거야? 킥 알았어. 오늘은 기분이 좀 좋구나. 알았다니까, 알았어. 앞으로 술 안 마실게. 술 마시지 말라고 한 거 아직 기억하고 있다니까. 맥주 한 캔도 안 되는 거였어? 그 때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그래도 안 되는 거야? 알았어. 앞으로는 절대 안 마실게. 뭐? 통화료 많이 나오니까 이제 끊으라고? 네가 처음으로 전화 받았는데 어떻게 끊어. 뭐? 안 끊으면 다시는 전화 받지 않는다고. 아, 앞으로는 다시 전화하지 말라고? 왜? 알았어. 화내지 좀 마. 그런데 왜 전화하지 말라는 거야? 어? 정말 끊으려고? 다시는 하지 말라고, 왜 화가 난 거?”
전화가 끊겼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전화를 닫는다.
“내가 좀 취했나?”
분명 정말로 통화한 것 같다.
“또 전화 거네.”
“누구?”
“그 남자 있잖아요. 죽은 애인한테 음성사서함 남기는 남자.”
“지금 전화 거는 중이야?”
“네.”
“우리 뭐라고 남기는 지 좀 확인해 볼까?”
“그거 불법이잖아요.”
“그냥 궁금하잖아? 안 그래?”
선배가 미소를 지으며 버튼을 누른다.
“어?”
그런데 시스템이 먹통이다.
“선배 왜 그래요? 잘못 누르신 거 아니에요?”
“그,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순간 후배가 모니터에 손가락질 한다.
“서, 선배.”
“왜?”
모니터를 보는 순간 선배의 눈도 동그래진다.
“통화가 연결되었다고?”
“그 전화기, 여자 시신과 함꼐 묻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다시 다린 단말기로 등록하지도 않았는데?”
“어, 어떻게 된 거지?”
둘이 잠시동안 혼란에 빠진 사이, 전화가 끊겼다.
“여보세요?”
“네, 통신사입니다.”
남자는 한숨을 쉰다.
“전화 안 끊는다니까요.”
“그게 아니라 다소 놀라운 일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이요?”
남자의 눈이 천천히 커다래지더니, 미소를 짓는다.
“전화를 해지 한다고?”
“응.”
찬성이 고개를 갸웃한다.
“갑자기 왜?”
“걔가 전화를 끊으래.”
“어?”
찬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킥.”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게 있어.”
“그런 거?”
“응.”
음성사서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