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3일간의 기적 - 첫 번째 날

권정선재 2007. 12. 26. 22:24
 




3일간의 기적




첫째 날


기적을 만나다.




“너 도대체 언제까지 엄마 속을 아프게 할 거니?”


“죄송해요.”


“아유.”


재호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재호야.”


“미안.”


해미도 고개를 돌린다.


“그래 네 속인데 내가 뭐라고 말을 하겠냐? 그래도 이 엄마가 보기에는 답답하다. 네 마음을 알지만 안 했으면 좋겠어.”


“죄송해요.”


“그래,”


“그럼 저 이제 가볼게요.”


“벌써?”


“늦었어요.”


“자고 가지.”


“다음에 또 내려올게요.”


재호가 일어나려는 해미를 말린다.


“다리 아프시잖아요.”


“그래도 대문까지는 나가 봐야지.”


“아니에요. 밖이 차요. 어머니는 그냥 앉아계세요.”


“그래?”


“네.”


해미의 얼굴에 아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음 주말에 다시 올게요.”


“진짜지?”


“네.”


재호가 미소를 짓는다.


“그럼 저 진짜 가볼게요.”


“그래.”


재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오네요.”


“길이 험하지 않아?”


“그래도 집에 가야죠.”


재호가 미소를 짓는다.


“차에 채인 감고 가면 괜찮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래, 그럼 잘 올라가거라.”


“네.”


재호가 문을 닫았다. 방의 온기가 사라지니 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다.


“휴.”


어떻게 서울까지 올라갈지 막막하다.




“으.”


몇 시간이나 차에 갇혀 있었는 지 모르겠다. 눈이 오니 안 그래도, 막히던 도로가 더 꽉 막혀 있다.


“언제나 가려나?”


그 때 나의 눈을 이끄는 이정표 하나.


“서울로 가는 지름길?”


다소 의심이 가기는 했지만, 시간이 너무나도 지체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재호는 그리로 차를 돌렸다.




“어라?”


아까부터 계속 같은 곳을 맴도는 듯한 기분은 재호만의 착각일까?


“이게 뭐야?”


아까 이 나무 분명히 봤던 나무다! 재호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으스스해 옴을 느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네비게이션도 먹통이고, 휴대 전화도 먹통이었다. 무선 인터넷이 될 리 만무했다.


“젠장.”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걸까? 눈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미치겠네.”


하지만 여기 정차해 있는 것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차로 이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재호는 신경질을 내며 안개 속으로 차를 몰았다.


“여기가 맞나?”

그렇게 얼마나 차가 들어갔을까? 길이 나타나고 인가가 보였다.


“사람이 사는 곳인가?”

재호는 차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내렸다.


“흠.”


마을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강아지의 짖는 소리라던가, 고양이의 발자취도 없었다.


“어?”


저 멀리 불빛이 켜져있는, 집이 보였다.


“저리로 가면, 오늘 밤에는 묵을 수 있을 지도 몰라.”


시계가 없어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늦은 시각임은 분명했다. 이렇게 오래 헤매었는데 이른 시간일 리가 없다.




“헉. 헉”


얼마나 걸었을까? 아까 봤을 때 불빛은 바로 앞이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멀다. 아직도 불빛이 멀기만 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게다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준호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신을 엄습해 옴을 느꼈다.


“젠장.”

주위를 둘러보아도 도움을 요청할 것은 없었다. 휴대 전화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시간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이미 자신의 차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었는데도, 집은 멀었다.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것은 길이 갈림길이 아니라는 것 정도이다.


“젠장.”

여기서 투덜거려 봤자 변하는 사실은 없었다. 계속 걸어야만 한다.




“후우.”


그렇게 한참을 걷자, 겨우 집 앞에 당도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집에 불이 켜있었다. 재호는 조심스럽게 벨을 눌렀다.


‘딩동’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가 재호를 두렵게 만들었다.


“누구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저 하루 묵고 갈 수 있을까요?”

“네?”


여자는 다소 당황한 듯 했다.


“여기는 사람이 묵을 곳이 아닙니다.”


“길을 헤매서 지쳤습니다. 하루 밤만 쉬고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재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이 더 빨리 재호를 덮쳐오고 있었다. 이런 곳에 더 이상 홀로 서있고 싶지 않았다.


“부탁입니다.”


“하지만.”


“지금 어두워지고 있다고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실례가 된다는 것은 알지만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


“하아.”


여자는 고민중인듯 했다.


“오늘밤만 묵고 가실 건가요?”


“네,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들어오세요.”


여자는 단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컥’


문이 열렸다. 재호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까지 오면서 봐왔던 집들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다른 곳이 모두 황폐화 되어 있다면 이곳은 그나마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 보였다.


“휴.”


재호가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가자 개가 한 마리 보였다. 매우 늙은 개였는데, 재호가 들어서자, 고개를 살짝 들어서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디소 본 듯한 인상이었다. 재호는 고개를 갸웃하고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이 계단 어디까지 오르는 거야?”

계단을 오르면서 보이는 수영장, 정원, 숲. 생각보다 집이 굉장히 넓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 밖에서 느꼈던 공포감은 사라졌다. 집 밖에서는 무언가 모를 불안감이 재호를 휘감고 있었지만, 집 안은 그렇지 않았다.


“휴.”


얼마나 걸었을까? 겨우 현관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습니다.”


재호가 문 앞에 선 것을 알았을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실례 좀 하겠습니다.”


재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섰다.


“우와.”


호화스럽게 꾸미지 않았지만, 무언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집이였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있는 기다란 복도의 양 벽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계세요?”


방금 여자의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린 듯 한데, 도무지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계속 들어오세요.”


재호는 흠칫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방금의 말은 뒤에서 들렸다.


“뭐지?”


재호는 식은 땀이 자신의 등으로 타고 흐름을 느꼈다. 하지만 이 집에서 불안감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휴.”


재호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발을 옮겼다. 어느 정도 걷자 세 개의 문이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하지?”


“바로 앞의 문을 여세요.”


“!”

이번에는 귓가였다. 재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다.


“뭐야?”

귀신에 홀린 기분이 들었지만, 재호는 조심스럽게 부엌의 문을 열었다.


“!”

호화로운 만찬이 차려져 있는 식당이었다.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식사도 재호가 먹을 양만 올려져 있었다.


“먹어도 되는 건가?”


재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서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재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음식은 자신이 맛보던 그 어떤 음식의 맛과도 틀렸다. 부드럽게 달고 기름졌지만, 느끼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산뜻하고 방금 만들었는지 재호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맛잇는 걸?”

“마음에 드십니까?”


재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가 서 있었다.


“누, 누구?”

재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




“!”


해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무슨 일이지?”

재호가 태어났을 때 뜬 별이 깜빡였다.


“설마, 설마?”


해미가 조심스럽게 별을 바라보았다. 그 별의 옆에 또 다른 별이 반짝였다.


“!”


해미의 눈이 커다래졌다.


“설마, 아니지? 아니지!”


해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러고 있을 게 아니야.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돼.”

해미가 옷을 걸쳐 입었다.


“재호야. 재호야!”




“너, 너는?”

“오랜만이야.”


여자가 빙긋이 웃었다.


“네가 어떻게!”

재호의 손에서 포크와 나이프가 떨어졌다.




“?”


길을 나서던 해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


그리고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


해미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내가 살다보니 이런 일을 다시 보는 날이 있군.”


해미는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 표정은 짓지마.”


“어떻게 이런 표정을 안 지어!”

재호의 인상이 구겨졌다.


“너, 너는.”


재호가 침을 삼켰다.


“죽었잖아!”


“응.”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

재호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안심해.”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너를 죽이지 않을 테니, 나도 네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 지 신기해. 그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도 놀랍고.”


“그들?”


“이 마을을 오면서 아무도 보지 못했어?”


“응.”


재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누가 있었던 거야?”

여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야. 아무도 없어.”


“그, 그래?”


재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여자를 보고 다시 흠칫 놀란다.


“그런데 네가 도대체 여기 어떻게 있는 거야?”


“이 곳은 영혼들이 머무는 마지막 곳이야.”


“영혼들이 머무는 곳?”


“응.”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너랑 나랑 헤어진 지도 벌써 4년인가?”


“벌써 그렇게 됐네.”


과거의 사랑하던 사이여서 그런 것일까? 재호는 빠르게 평정심을 찾았다.


“너 혼자서 여기서 지낸 거야?”


“아니 해리랑 함께.”


“해리?”


재호는 기억을 더듬었다. 해리는 그녀가 키우는 개의 이름이었다.


“설마?”


“그래 그 늙은 애가 해리야. 그 아이가 나를 지켜주고 있어.”

“!”

“그 아이가 없다면, 그 사람들이 이곳으로 와서 이곳도 폐허처럼 변하겠지. 나는 최대한 그 시간을 미루고 있을 뿐이야.”


“그래?”


어느새 재호의 마음 속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과거 그녀를 사랑했던 마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어.”


“어?”


재호의 눈을 보고 여자가 살짝 당황한다.


“재호야.”


“보고 싶었어.”


재호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하지만 그 손은 그녀의 몸을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잖아.”


여자가 어색한 듯 웃었다.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줘. 미안하잖아.”


“미안해.”


재호가 고개를 숙였다.


“나만 아니더라도.”


“아니.”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하지마. 그럼 내가 더 미안해져.”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식사 다 끝냈니?”

“응.”


재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일단 씻어.”


“그래도 돼?”


“물론.”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 기다려.”


“응.”

여자가 사라지고, 재호의 얼굴에 다시 불안감이 스쳤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지.”


재호는 그녀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서진영. 그가 사랑하던 여자였다. 그녀는 그를 밀쳐내고, 자신이 차에 부딪쳐서 죽었다.


“하아.”


그 때 생각을 하니 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어?”


진영이 미소를 지었다.


“어서 씻어.”


“그래.”




욕실 앞에는 속옷과 가운이 놓여 있었다.


“앞에 옷 있지? 그거 입고 나와.”


“어,”




“지내기는 괜찮아?”


“응.”


재호가 진영의 옆에 앉았다.


“네가 이런 곳에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


“아니.”


진영이 인상을 썼다.


“여기는 네가 오면 안 돼.”


“그렇게 말하지 마.”


재호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 했는데.”


“재호야.”


“내가, 내가.”


재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까 들썩였지만, 진영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네가 그렇게 된 게 분명히 나 때문인데, 네가 나 때문인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나라는 인간은, 나는 아무 것도 못, 못 했어.”


“그런 생각하지 마.”


진영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렇게 큰 사랑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해.”


“진영아.”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서로 좋은 이야기만 하자.”


“응.”

재호가 눈물을 닦았다. 진영보다 어린 재호에게 진영은 언제나 누나 같은 존재이자,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


“너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어?”


“응.”


그렇게 첫 번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