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열 번째 이야기
비교체험 극과 극
“하암.”
간밤에 설레는 나머지 잠을 설친 주연이다. 그래서 그런지 눈이 퉁퉁 부었다.
“어떡해?”
다행히 전 날 오이로 팩을 하고 잔 덕인 지, 피부는 탱탱하고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이 문제였다.
“잉.”
냉장고로 가서 여는 데 얼음이 없다.
“엄마 얼음 없어?”
“얘는 얼음이 어딨어? 벌써부터.”
“엄마 나 눈 부었지?”
“붓기는 하나도 안 부었어. 얘, 그런데 너 어디 가니?”
“어?”
주연이 뜨끔한다.
“아니 우리 게으름 공주가 벌써부터 일어나서 얼음을 다 찾고 말이야. 너 혹시 남자 생겼니?”
엄마의 눈이 반짝인다.
“아, 아니 엄마는 나, 남자는 무슨. 하하.”
주연의 등으로 땀이 한 방울 주르륵 흐른다.
“그런데 너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너 진짜 뭔가 있지? 엄마한테 못할 말이 어딨어. 빨리 말해봐. 어?”
“아, 아니야.”
엄마를 속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 좀 씻을게.”
“
“휴.”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대피했다.
“엄마는 뭐 그렇게 눈치가 빠르냐?”
그러기에 엄마겠지만, 주연은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 분명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꼬치꼬치 캐물을 엄마다. 여태까지 주연에게 단 한 번도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기에, 엄마가 가질 관심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른인만큼 어느 시기가 되기 전까지는 남자친구의 존재를 엄마에게 숨기고 싶다.
“:빨리 씻어야 겠다.”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 하다.
‘똑똑똑똑’
한편 선재의 집에서는 경쾌한 도마 소리가 들리고 있다.
“Oh, Son. What Are You Doing?”
“집에서는 영어 안 쓰기로 했잖아요. 엄마는 우리가 아직도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봐.”
“But, Son. 이렇게라도 English를 써두지 않으면 모두 Forget 한 다고.”
선재의 엄마가 싱긋 웃으며 사과를 한 입 깨문다. 선재의 엄마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실제로 선재와 함께 나가면 큰 누나와 동생 사이로 오해도 종종 받는 모자 지간 이었다.
“오늘 소풍 가려고요.”
“소풍?”
엄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Who with?”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에요.”
“어머.”
엄마가 미소를 짓는다.
“Son 에게도 Lover 가 생긴 거야? 이거 참 Surprise 한 데?”
“그런
선재가 싱긋 웃는다.
“맞아요. 여자 친구랑 가기로 했어요.”
“우리 Son 여자 꼬시는 솜씨는 정말 대단하다니까.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킥.”
선재가 싱긋 웃는다.
“엄마도 김밥 좀 드실래요?”
“김밥? 좋지.”
선재가 김밥을 한 조각 썰어 엄마에게 건넨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김밥을 입 안에 넣는다.
“Oh, Good. 역시 이 Mother는 우리 Son의 Cook이 입에 딱 맞는다니까. 호호호.”
“보통은 아들들이 엄마에게 하는 말이에요.”
“아무렴 어떠니?”
선재가 싱긋 웃으면서 찬장에서 도시락 통을 꺼내서 김밥을 차곡차곡 담는다. 옆에 참외와 방울 토마토도 챙긴다.
“엄마 호박 물 많이 끓여 놨어요.”
“그래.”
엄마가 가스레인지로 가서, 한 솥 가득 끓이고 또 끓고 있는 또다른 양동이를 본다.
“아니 Son 뭐 이렇게 Many Boil 하고 있는 거니?”
“엄마 요즘 피부 좋아져야 한다. 살 빠져야 한다고, 호박 물 엄청 드시잖아요, 한 주전자로 끓이다가는 감당이 안 된다고요.”
“호호.”
엄마가 싱긋 웃는다.
“그래 언제나 들어올 거야?”
“한 여덟 시쯤?”
“그럼 Mother 저녁은 어떻게 할까?”
“엄마 다 아는데 그런 말 하지 마요.”
“뭐?”
엄마가 뜨끔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 Dr. Jason 이랑 좋아하죠?”
“어, 어머. 얘가 생사람 Catch 하고 그래. 내가 뭘?”
“엄마 얼굴 빨게 지셨어요.”
“어머.”
엄마가 손등을 얼굴에 가져다 댄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선재가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머 Son 이 Mother를 가지고 노는 거야?”
“킥. 저녁 Dr. Jason 이랑 드세요. 저는 일찍 와도 혼자 먹으면 되니까요.”
“아니라니까. 그래도 우리 Son이 늦게 온다면.”
“킥.”
선재가 모자를 눌러 쓰고, 하얀 민소매 자켓을 걸친다.
“그러고 가도 되겠어? 오늘 해가 뜨겁던데?”
“선블록 바르면 되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너 정말 남자 생긴 거 맞지?”
“무, 무슨.”
주연이 뜨끔한 표정을 짓는다.
“아닌데 왜 그렇게 차려 입고 나가?”
“엄마, 재 냅둬. 딱 보면 몰라? 옷이 포카리 스웨트잖아. 딱 남자 생겼어, 쟤가 언제 저렇게 하늘하늘 거리고 하얀 원피스 입고 다니는 애야?”
“너 누나한테?”
하지만 엄마의 웃음에, 대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다.
.
“너 누나라고 해.”
주연이 재빨리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딩동’
승연이 벨을 누르는데, 집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이 씨.”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몇 번을 연속해서 누르자, 안에서 반응이 나온다.
“눈교?”
“나야.”
“아이 씨.”
짜증을 내며, 실내화를 끄는 소리가 집 안에서 들린다.
“빨리 열어!”
“알았다. 쫌.”
지원의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철컥’
“오빠 뭐해?”
“뭐하기는? 집에 있었다. 무슨 일인데?”
“좀 비켜봐.”
“니 뭔 짓이고?”
“비켜!”
승연이 지원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 안이 완전 돼지 우리다.
“왜 이래?”
“어제 범규랑 술 묻따 아이가. 니야 말로 와 이지랄인데?”
“지랄?”
승연의 얼굴이 붉어진다.
“오빠는 어제가 무슨 날인지 알아?”
“어제?”
지원이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날인데?”
“우리 200일 되는 날이었어!”
승연이 악을 쓴다. 승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고대했는데. 오빠가. 오빠가 전화하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런데도 전화가 않와서 여자 자존심 다 무너뜨리고 먼저 전화 건 건데. 오빠는 범규 오빠랑 술을 먹고 있었다. 하.”
승연이 긴 머리를 앞에서부터 쓸어 넘긴다.
“그래?”
“스, 승연아.”
“내 이름 부르지 마!”
승연이 악을 쓴다.
“일단 진정을 해라.”
“오빠라면 진정하게 됐어?”
승연이 손에 든 쇼핑백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나는 우리 200일이라고 별 짓을 다 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오빠는 어제가 무슨 날이었는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안 그래.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돈까지 받은 꼴이네. 정말 한심하다. 내가 생각해도 나 너무 한심해!”
“내가 미안타. 하지만 어제는 나랑 범규가 일이 있었데이.”
“그래? 그 일. 그럼 그 일이 무슨 일이었는 지 좀 말해봐. 그럼 무슨 일인 지 듣고, 내가 오빠를 이해할 게. 무슨 일이었는데?”
“그기는 말할 수 없다.”
“봐! 일은 무슨 일! 그냥 남자 둘이서 노닥 거린 거지? 안 그래? 안 그러냐고!”
“그래 그렇다! 그래!”
지원도 화를 참지 못하고 악을 쓴다.
“니는, 그라는 니는 뭐가 그리 잘 나서? 이 아침부터 와서 지랄인기고? 으이? 이 아침부터 와서 와 소리 지르냐는 말이다? 그란 이바구는 좀 있다고 낮에 해도 되는 기 아이겄나? 어?”
“하아.”
승연이 눈물을 닦는다.
“그래, 됐다. 내가 지금 누구랑 이야기를 하는 거니? 이야기를 할 사람이 따로 있지. 오빠 이런 사람이었단 거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무슨 착각을 했었나 보네. 그래 내가 착각을 했네. 오빠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승연아.”
“됐어.”
승연이 지원을 노려본다.
“그건 오빠가 버리던지 말던지 맘대로 해.”
그리고는 쇼핑백을 던져 버린다.
“승연아!”
“흐윽. 흡.”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너무나도 서럽다. 자신은 200일을 정말로 손꼽아 기다렸는데, 지원에게는 그토록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었다니, 그러게 그냥 넘길 수 있는 날이었다니, 승연은 서럽고도 너무 서럽다.
“
그 때 뒤에서 지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니 좀 서 본나!”
“흑.”
승연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헉헉. 뭔 놈의 가시나가 저래 발이 빠르나?”
지원은 인상을 쓴다.
“휴우.”
자신이 잘못했는 지는 자각이 되는 지원이다.
“이기 도대체 뭐꼬?”
집으로 돌아온 지원이 선물을 열어 본다.
“하아.”
사진첩과 인형을 보자 지원의 마음에도 동요가 생긴다.
“바보 같은 가시나. 나 이런 거 못 챙기는 거 알면서, 와 그리 화를 내는지. 휴.”
하지만 군대를 가야한다.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승연을 놓아주는 게 승연에게 더 좋을 것이다. 승연은 지원 자신보다 훨씬 과분한 여자였다.
“그래. 이대로 끝내면 되는 기다.”
괜히 사과하며 지지부진하게. 끌고 갈 이유가 없다. 지원은 눈을 질끈 감는다.
“흐윽.”
버스에 타서 겨우 마음을 추스르는 승연이다. 그리고 전화기를 여는데 문자 한 통 없다.
“하아.”
그래도 문자 정도는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승연은 다시 가슴이 답답해 온다.
“
그런데도 그가 밉지 않다. 그래도 다른 변명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가 고맙다. 그리고 이렇게 그의 편을 끈임 없이 드는 자신이 한심하다.
“흐윽.”
“아가씨 괜찮은교?”
순간 손수건을 건네는 할머니의 경상도 사투리. 눈물 샘이 바늘로 찌른 듯 툭하고 터져 버린다.
“으엉.”
그리고 한참을 할머니 품에서 울었다.
선재 母 : 류가인
48살. 여자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어릴 적부터 혼자서 선재를 키워왔기에 보기보다 강인한 면모를 보인다. 아들과는 친구와 같이 편안한 사이. 캐나다에서 체류 기간이 20년이 넘기에 한국말이 서투를 때는 영어 단어가 튀어 나온다. 한국 뿌리인 선재를 대학교만이라도 한국에서 교육시키기 위해서 억지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본인의 지론에 맞게 선재는 집에서만큼은 한국어로 교육시켰다.
좋아하는 음식 :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
싫어하는 음식 : 피자 햄버거
좋아하는 것 : 아들, Dr. Jason, 온라인 쇼핑
싫어하는 것 : 걷는 것. 뜨거운 날씨
잘하는 것 : 영어, 아들 음식 맛 보기
못하는 것 :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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