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열 두 번째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
“하아.”
집으로 가서 칠레 산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 앉는 승연이다. 물론 그동안 지원에게 전화나 문자가 한 통도 오지 않았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왜 큰 소리야?”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서럽고, 슬픈 승연이다.
“하아.”
게다가 이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오늘 피곤하지 않아요?”
“별로요.”
전철 역에서 주연이 자연스럽게 선재에게 머리를 기댄다.
“좋다.”
“킥.”
선재의 낮고도 부드러운 목소리. 주연은 미소가 지어진다.
“피곤할 텐데, 잠 좀 자요.”
“괜찮아요.”
주연이 애써 하품을 참으며 대답한다.
“킥.”
어느 순간부터 주연의 대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졸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선재는 미소가 지어진다.
“많이 피곤했나보네.”
“예쁘네.”
“우음.”
순간 주연이 잠꼬대를 한다.
“휴우.”
선재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둔다.
“잘 자요.”
“하암.”
얼마나 잔 걸까? 주연이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일어 났어요?”
곧 들리는 선재의 부드러운 목소리.
“아.”
주연의 얼굴이 빨게 진다.
“저 오래 잤어요?”
“아니요, 아직 내릴 곳 아니에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선재 씨는 안 피곤해요?”
“주연 씨가 그렇게 곤히 자고 있는데 어깨를 어떻게 빼요?”
주연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미, 미안해요”
“농담이에요.”
선재가 싱긋 웃는다.
“주연 씨 얼굴 붉어지니까 더 예뻐요.”
“!”
주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나저나 너무 늦어서 어떡해요?”
“네?”
“집에서 걱정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머.”
시계를 보니 어느덧
“얘 너무 늦는 거 아니야?”
화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거실을 어슬렁 거린다.
“엄마, 정신 사나워요.”
대연이 투덜거린다.
“너는 엄마한테!”
“돼지 지금 데이트 중일게 분명해요.”
“어?”
대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그러니까 엄마 누나 걱정 그만 하라고요.”
“대연아.”
물론 엄마는 대연이 이토록 갸륵하게 말하는 이유가 케이블 방송에서 다시 보여주는 1박 2일 거창 편 때문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걱정 하시겠네.”
주연이 울상을 짓는다.
“미안해요.”
“선재 씨가 미안할 일이 뭐 있어요.”
주연이 미소를 짓는다.
“제가 너무 늦게까지 있었던 탓이죠. 사실 아까 선재 씨가 가자고 했는데 제가 더 놀자고 한 거였잖아요.”
“그래도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
선재가 눈웃음을 짓는다.
“부모님께 혼나면 어떡해요?”
“괜찮아요. 저는.”
주연이 손전화를 만지작 거린다.
“저는 예쁘지 않으니까요.”
“네?”
선재의 눈이 동그래진다.
“요즘 납치되는 거 솔직히 저랑은 먼 이야기잖아요. 저는 예쁘지도 않고, 뚱뚱하고 그런데 뭐가 위험하겠어요.”
주연이 슬픈 미소를 짓는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선재가 다소 엄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전에도 말한 적 있죠?”
“네?”
“제 눈에는 주연 씨가 가장 아름답다고요.”
“!”
“마치 귀여운 아기곰 같아요.”
마지막 말은 좀 깬다고 생각을 하는 주연이다.
“정말 안 데려다 줘도 되는데.”
주연이 고개를 숙이고 중얼 거린다.
“그래도 명색이 남자친구인데 이 늦은 시간에 여자친구를 혼자 보내요? 그건 예의가 아니죠. 안 그래요?”
“그래도 선재 씨도 많이 늦었는데. 우리 집 여기서 걸어서 5분이라니까요. 그냥 빨리 가면 되요.”
“그러면 저 15분 안에 다시 여기 오겠네요.”
“네?”
선재가 씩 웃는다.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만 튕기시고 빨리 갑시다.”
“하, 하지만.”
여태까지 남자친구 자체가 없었던 주연은 남자친구가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이, 단순히 그 행위 자체로 끝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연이 읽었던 로맨스 소설이라든지, 순정 만화에서는 모두 다 남자친구가 집에 데려다 주고 나서 키스를 했다. 하지만 아직 키스라니.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기에 주연은 더더욱 선재가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것을 말리는 중이다.
“뭐해요?”
“네?”
선재가 미소를 지으며 앞장 서고 있다. 물론 선재가 꼭 그러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런 늑대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여태까지 하는 행동을 봐서는, 그렇게 순수함만을 가진 거 같지도 않다. 주연은 자신의 입냄새가 심한 지 체크를 한다. 그리고 문득 이런 검사를 하는 자신이 변녀 같다.
“주연 씨.”
“가, 가가. 가요.”
식은 땀을 흘리며 뻣뻣하게 앞장서는 주연이다.
“동네가 참 조용하네요.”
“네?”
“위험하겠어요. 혼자 다니길.”
순간 선재의 말을 키스해도 좋겠네요? 라는 의미로 파악하고 혼자서 미친듯이 자학하고 있는 주연이다.
“왜 대답이 없어요.”
“아, 평일에는 안 그래요. 여기가 다 다세대 주택이라 평일에는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다니거든요. 그래서 하나도 안 위험해요.”
“그 학생들이 더 위험한 거 같은데.”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5분만 가면 된다고 하더니, 얼마나 가는 거예요?”
“네?”
주연의 눈이 커진다.
“그, 그러니까 .그건 선재 씨가. 그러니까 집에.”
“똑바로 말해봐요.”
갑자기 주연의 눈 앞에 나타난 선재다. 무릎을 살짝 굽힌 것이다. 순간 주연은 선재가 입을 맞추는 줄 알고 눈을 감는다.
“왜 눈을 감아요?”
선재가 싱긋 웃으며 주연의 볼에 손을 올린다.
“!”
“저 주연 씨가 좋다고 하기 전에는 스킨십 같은 거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냥 주연 씨가 나에게 말을 할 때만큼은 똑바로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이에 수줍음 안 보여줘도 괜찮아요. 나는 솔직하고 당당한 주연씨가 듣고 싶어요.”
“선재 씨.”
“왜 집이 먼데 안 멀다고 했어요?”
“선재 씨 힘들까봐요.”
“네?”
선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시간에 빨리 지하철 타지 않으면 집으로 못 돌아가잖아요. 그러니까 선재 씨 집에 가야 하니까.”
“킥.”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주연 씨 저는 괜찮아요. 정 늦으면 택시 타고 가면 되죠. 아니면, 기사라도 부르면 되고요.”
“네?”
순간 선재는 아차 한다.
“아, 아니에요.”
주연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나저나 다 온 거예요.”
“네.”
주연이 미소를 짓는다.
“여기에요.”
주연이 한 집 앞에 선다.
“올라가는 거 보고요.”
“알았어요. “
주연이 싱긋 웃는다.
“오늘 정말 고마웠고, 잊지 못할 하루 였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저도 주연 씨가 제 도시락 맛있게 먹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다음에 한 번 더 놀러 가요.”
“네.”
주연이 손을 흔든다.
“내일 학교에서 뵈요.”
“그래요. 들어가요.”
주연이 올라가고 선재는 층층이 불이 켜지는 것을 보고 뒤돌아선다.
“훗.”
선재는 전화기를 꺼내든다.
“엄마. 나 여기, 부천인데. 차 좀 보내줄래요?”
“어머, Son 부천 까지는 어쩐 일?”
“그럴 일이 있어요.”
선재가 미소 짓는다.
“여기가, 그러니까. 아 여월동이에요.”
“OK.”
“정 기사.”
“네. 사장님.”
가인이 미소를 짓는다.
“하여간 우리 꼬맹이한테 애인이 생기다니.”
가인이 행복하게 선재의 사진을 바라 본다.
22살. 남자
어리바리하고 순수한 성격, 때로는 눈치가 없다고 욕도 좀 먹는다.
좋아하는 음식 : 다 좋아하는 듯?
싫어하는 음식 : 없는 듯?
좋아하는 것 : 음식.
싫어하는 것 : 모르겠음
잘하는 것 : 대답.
못하는 것 : 눈치보기, 사양하기, 분위기 맞추기, 배려하기,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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