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 [여덟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5. 6. 08:25

 

 

 

 우리, 사랑해!

 

 

 여덟 번째 이야기

 

 사람들 속에서 그녀를 발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뭐야?

 혜지가 볼을 부풀린다.

 

 미안, 금방 갈게.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병환의 목소리.

 

 알았어. 나 그럼 혼자 책 구경이나 하고 있을게.

 정말 미안해.

 

 알았으면 빨리와.

 알았어.

 혜지가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을 쉰다.

 

 하여간 일 하는 게 벼슬이라니까, 벼슬. .

 

 혜지가 울상을 짓는다.

 

 또 오늘은 언제 오려나?

 

 

 

 .

 

 한 편 병환도 울상이다. 병환이라고 잔업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장님 말씀이니 당연히 해야 했다.

 

 뭐해, 박 대리?

 

 , 지금 바로 합니다.

 

 잠시 쉴 여유도 없이 병환은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다.

 

 

 

 .

 

 혜지가 검지를 물며, 메뉴판을 본다.

 

 캬라멜 마끼아또 주세요.

 4700원 입니다.

 

 카드를 내고, 커피를 받아서 자리에 앉는다. 때마침 모든 좌석이 쌍쌍이다. 홀로 온 혜지가 더욱 눈에 띈다.

 

 에효.

 

 혜지가 빨대를 물며 자리에 앉는다. 사실 어느정도 기다릴 것은 예상했었다. 병환은 항상 혜지보다 바쁜 사람이었다. 혜지는 가방에서 붕대 클럽을 꺼내서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의 시선은 상관 없어졌다.

 

 

 

 하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책에 푹 빠져 있던 혜지가 기지개를 켜며 시계를 본다.

 

 어라?

 

 어느 새 두 시간이나 훌쩍 흘러 있었다. 책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이 흐르는 줄 몰랐다. 그런데 병환이 아직도 오지 않다니, 이미  책은 다 읽은 혜지다.

 

 하아.

 

 혜지가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꺼내 병환의 번호를 누른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

 

 혜지가 인상을 찌푸린다.

 

 그래도 전화를 안 받을 사람은 아닌데.

 

 혜지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 부장님.

 
다시 해오라니까!

 

 도대체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병환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면 좋으련만.

 

 안 나가고 뭐 해?

 
 
, 알겠습니다.

 

 병환이 서류철을 들고 다시 방을 나온다.

 

 어라?

 

 혜지에게 연락을 하려고 전화를 꺼내는 데, 전화기의 밧데리가 없다. 게다가 늦은 시간이다보니 부장과 자신 뿐이다. 그렇다고 부장에게 전화기를 빌릴 수 없는 노릇이니, 답답한 병환이다.

 

 큰 일이네.

 병환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분명 혜지가 한참 기다릴 텐데. 빨리 일을 끝내는 것이 유일한 수단인 것 같다. 부장이라도 먼저 가면 내일 아침 빨리 가서 써 올텐데, 부장도 가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하아.

 

 병환은 부지런히 자판을 놀린다.

 

 

 

 .

 

 어느덧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 혜지다. 병환 덕에 생긴 좋은 취미는 책을 구경하고, 사는 것이다. 병환을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책을 읽는 일 뿐이다. 휴대전화 게임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닌텐도도 없는 혜지로서는 최고의 취미다.

 

 오쿠다 히데오 신간이 나왔네.

 

 혜지가 미소를 지으며 책을 펼친다.

 

 

 

 여기요.

 .

 

 부장이 결제 서류를 보자, 병환도 긴장이 된다. 또 퇴짜를 놓는다면, 뭐라고 생각할 지는 몰라도, 가야 겠다고 말을 해야 할 듯 하다. 아니라면 보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부장의 꼼꼼한 성격이 정말 싫다.

 

 이걸 지금 결제 받는다?

 

 ?

 

 또 퇴짜인 건가? 병환은 주먹을 작게 쥔다.

 

 .

 부장의 뭔가 못마땅하다는 표정.

 

 일단은 됐네.

 ?

 

 병환의 눈이 동그래진다.

 

 , 무슨.

 ? 다시 쓰고 싶은가?

 , 아니요.

 병환이 손사래 친다.

 

 퇴근하게.

 네 고맙습니다.

 

 병환은 조심스럽게 부장실을 나온다.

 

 휴우,

 다행이다. 빨리 혜지에게로 갈 수 있을 듯 하다. 병환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

 

 시계를 보니, 벌써 약속 시간이 세 시간이나 지났다.

 

 아직까지 기다리려나?

 전화기가 아예 켜지지도 않는다. 근처에 공중 전화도 없는데, 일단 병환은 황급히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 또 안 와?

 이런 날, 오히려 엘리베이터가 잘 오지 않는다. 병환은 발을 동동 구르고,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

 

 닫혀라, 닫혀라!

 

 그리고 미친듯이 닫힘 버튼을 누르는 병환이다.

 

 

 

 하아.

 

 혜지가 다리를 두드린다.

 

 왜 이렇게 안 오지?

 병환을 기다리면서 산 책이 벌써 네 권이다.

 

 휴우.

 

 오면 병환을 한 번 발로 차야지라고 생각하는 혜지다.

 

 

 

 택시! 택시!

 

 오늘따라 유난히도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미치겠네.

 병환이 울상을 짓는다.

 

 택시!

 

 병환이 손을 들고, 택시 한 대가 선다.

 

 아저씨, 광화문이요!

 타요.

 병환은 황급히 택시에 올라 탄다.

 

 

 

 ?

 
아직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예 꺼져 있는 모양이다. 30초 대에서 통화 연결음이 끊기니 말이다.

 

 하아.

 맥도날드에 가서, 오곡 쉐이크나 먹을까 하고 교보문고를 나서는 혜지다.

 

 

 

 고맙습니다!

 

 병환은 택시에서 내려 황급히 교보문고로 뛰어 들어간다.

 

 하아. 하아.

 

 교보문고 안을 재빨리 둘러 본다. 하지만 혜지가 보이지 않는다.

 

 뭐야? 서점에 있는 거 아니었어?

 

 이 근처에 서점이 교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서점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혜지가 거기까지 갈 일은 없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

 

 순간 혜지가 오곡 쉐이크를 즐겨 먹는 다는 것이 기억나는 병환이다. 아마 혜지는 지금 맥도날드에 있을 것이다. 병환은 숨을 고를 여유도 없이 맥도날드를 향해서 뛰었다.

 

 

 

 오곡 쉐이크 하나요.

 

 카드를 내밀고, 오곡 쉐이크를 받아서 맥도날드를 나서는 찰나에,

 

 혜지야!

 

 병환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을 턱까지 차오른 병환이 혜지의 앞에 서 있다.

 

 왜 그래?

 

 하아. 하아.

 

 

 

 ?

 혜지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너무나도 한심하다.

 

 이 멍청아, 회사 전화 있잖아.

 

 ?

 병환은 순간 망치로 맞은 듯 한 표정을 짓는다.

 

 휴대 전화 방전 되면, 회사 전화로 걸면 되지, 그걸 몰랐냐?

 맞다!

 

 혜지는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이렇게 뛰어와줘서 너무 고마워.

 

 병환도 혜지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으로 위기를 넘기는 혜지와 병환이다.

 

 

 

 박병환

 

 28. 남자

 순애보적인 성격을 가졌다. 평범한 샐러리맨

 좋아하는 음식 : 얼큰한 것,

 싫어하는 음식 : 느끼한 것

 좋아하는 것 : 피파 온라인, 애인과의 데이트

 싫어하는 것 : 초딩이 앵앵거리는 것, 부장

 잘하는 것 : 여자친구 찾기,

 못하는 것 :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