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열일곱 번째 이야기
우리는 너무 달라요?
“오빠 우리 카페 갈까?”
“야 밥을 먹어야지.”
병환이 단박에 거절한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라고.”
다시 나오는 병환의 밥심 이론이었다.
“항상 밥, 밥. 오빠는 내가 하고 싶다는 것 좀 해주면 덧나냐?”
“너는 나를 이해 못 해주냐? 회사 일하다보면.”
“그까지 삼성 다니는 게 그렇게 대수냐?”
혜지가 볼을 부풀린다.
“내사 언제 삼성 다닌다고 대수라고 했냐? 그냥 직장 일 하다보면 밥 거를 때도 많으니까, 저녁이라도 꼬박꼬박 챙겨 먹자는 거 아니야.”
“됐어. 오빠는 밥 먹어. 나는 로티보이 베이커리 가서 라떼에 번 먹을 테니까.”
“그런 거 먹고 요기가 되냐? 너도 밥 좋아하잖아.”
“하루이틀이어야지.”
혜지가 병환을 노려본다.
“정말 가끔은 밥 대신 다른 걸 먹어도 되는 거잖아.”
“나 아침은 편의점 삼각 김밥 두 개 먹고, 점심은 샌드위치 먹었어. 저녁이라도 멀쩡한 밥 집에서 먹으면 안 될까?”
“하아.”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더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알았어. 밥 먹으러 가자.”
“고마워.”
병환이 혜지의 옆구리를 간지른다.
“하지마.”
“에, 좋으면서.”
결국 혜지도 웃음을 터뜨린다.
“하아.”
승연이 쪼그려 앉는다. 남자 화장실 앞.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하지는 않다. 승연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지원이 화장실에 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언제 나오려는 거야.”
피하지 않았으면,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미치겠네.”
지원이 인상을 찌푸린다. 몇 시간 째인지도 모르게 화장실에 갇혀 있다. 승연이 이제 포기를 하고 가주었으면 하련만 가지 않는다. 지금 이 상황에서 승연을 본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하아.”
얼마나 더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
순간 지원의 눈이 반짝인다.
“하아.”
결국 참다못한 승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성큼성큼 남자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오빠!”
하지만 아무도 없다.
“하아”
정말 아무도 없다.
“뭐야? 이게 뭐야?”
승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어떻게, 왜 자꾸 도망만 가는 거야? 왜 자꾸.”
승연이 쪼그려 앉는다.
“흑.”
“그렇게 밥이 좋아?”
“그럼.”
된장 찌개에 비빈 밥을 입 안 가득 넣으며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우리 오빠 밥 먹는 거 하나는 예뻐.”
혜지가 싱긋 웃는다.
“반찬도 좀 집어 먹어.”
“다 먹고 있어.”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여간 어린 아이 처럼.”
혜지가 병환의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 준다.
“묻히지 좀 말고 먹어.”
“응.”
혜지는 흐뭇한 표정으로 병환을 바라 본다.
“하아.”
또 전화가 온다. 지원은 다시 망설인다.
“후우.”
그리고 결심을 한 듯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승연의 눈동자가 커진다.
“오, 오빠?”
“와?”
무덤덤한 지원의 목소리.
“와 전화한 기고? 우리 끝난 기 아이가?”
“왜?”
“그 때 니 그라고 간 기, 우리 끝내자는 기 아이였나?”
“우리 만나자. 우리 만나자.”
“와?”
승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제발, 제발 만나자.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하자.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내는 니한테 할 이바구 없데이.”
“내가 있어. 내가 있으니까, 만나자. 응?”
승연이 전화기에 매달린다.
“제발, 제발 만나자.”
“시끄럽데이. 우리는 끝난 기다.”
“그럼 이유라도 말해.”
“이유?”
승연이 침을 삼킨다.
“후우.”
지원의 눈에도 눈물이 한껏 고여 있다.
“니가 질렸데이.”
“뭐?”
승연의 놀라는 소리. 지원은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울음이 입으로 솟구쳐 오르지만 참아야 한다.
“그라니까, 이제 끊재이.”
“잠깐만!”
승연이 악을 쓴다.
“왜 질려? 우리 사귄 지 얼마나 되었다고!”
“200일이면 알 거 다 아는 거 아이가?”
승연이 상처 받을 것은 알지만, 그런 것은 알지만 말을 해야 한다.
“하아.”
승연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정말이니?”
“하모.”
미련 없는 대답.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물을게. 정말이니?”
대답이 없다.
“아니지? 아니지?”
“미안테이.”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오빠 우리 뭐 할 거야?”
“돼지 뭐하고 싶은데?”
“음. 뭐하지?”
혜지가 검지를 문다.
“우리 비디오 방에나 갈래?”
“비디오 방?”
혜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는다.
“왜?”
“아, 아니.”
“그럼 가자.”
병환이 손을 잡고 혜지를 이끈다.
“!”
혜지는 토끼눈을 하고 병환에게 끌려 간다.
“하아.”
혜지가 작게 한숨을 쉰다.
“왜? 영화가 재미 없어?”
“아, 아니.”
정말 비디오방에 비디오를 보러 오는 사람이 있구나. 혜지는 혼자서 진도를 나간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제 좀 괜찮아요?”
“네.”
선재가 건네는 따뜻한 캔커피를 받으며 주연이 미소를 짓는다.
“엄마랑 동생이 얼마나 아쉬워 했는지 알아요? 선재 씨 요리 무지하게 잘한다고. 아침까지 해주고 가길 바랐었나봐요.”
“킥, 그런 거 같았어요.”
선재가 싱긋 웃는다.
“이제는 아프지 말아요. 주연 씨가 아프면 내가 더 아프니까요.”
“네.”
주연의 얼굴이 붉어 졌다.
21살. 남자.
어릴 적 장래 희망 : 대통령
어릴 적 이상형 : 엄마 같은 여자
어릴 적 소원 : 아빠가 생기는 것
지금의 장래 희망 : 작가
지금의 이상형 :
지금의 소원 : 엄마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신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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