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스무 번째 이야기
내가 이기적인 걸까?
“오빠 오늘 뭐해?”
“그게, 좀 늦을 거 같은데?”
병환이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며 대꾸한다.
“오늘은 또 왜?”
“그냥 요즘 좀 바쁘네. 우리 뮤지컬 보러 가는 거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될까?”
“안 돼. 이거 초대권이라 미룰 수도 없단 말야.”
병환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같이 갈 사람 없어?”
“주연이는 선재 씨랑 데이트 갔고, 승연이랑 지원이 오빠도 데이트 갔다고. 내가 같이 갈 사람이 어딨어?”
“히아.”
병환이 한숨을 쉰다.
“뭐야? 지금 오빠 한숨 쉰 거야?”
“왜?”
혜지가 신경진 적인 소리로 병환을 쏘아부친다.
“어떻게 한숨을 쉴 수 있어?”
“너 때문에 쉰 거 아니야.”
“그래도 말이야.”
병환이 이마를 짚는다.
“나 지금 너무 바쁘니까 전화 끊자.”
“뭐라고? 오빠 지금 나한테 화 내는 거야?”
“내가 언제?”
병환이 애써 자신의 감정을 자제한다.
“그냥 지금 너무 바쁘니까. 너랑 통화하면 정말 못 갈 거 같아서 그래. 그러니까, 일단 끊자.”
“그럼 오는 거야?”
병환이 시계와 일거리를 본다.
“가능하면 노력해볼게. 정말 못 갈 거 같으면 다시 전화할게.”
“안 오기만 해봐.”
혜지는 이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 버렸다.
“휴우.”
병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병환은 다시 일에 몰두한다.
“도대체 뭐야?”
혜지가 볼을 부풀린다.
“나를 안 좋아하는 거야?”
혜지는 자신을 내려다본다. 오늘 병환과의 데이트를 위해서 열심히 꾸몄는데, 머리도 무려 18만원이나 주고 새로 했는데, 바람 맞추려고 하다니, 혜지는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한다.
“
혜지가 투덜거리며 로티보이 베이커리로 들어간다.
“여기 라떼랑 번 하나 주세요.”
혜지가 라떼와 번을 받아 의자에 툭하고 앉는다.
“하아.”
오늘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걸까? 병환을 이해하고 다시 이해하지만 기다리는 건 너무 싫다.
“휴.”
병환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이제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
“박대리, 내일 아침까지 내라는 서류는 작성했나?”
“여기.”
“그거 말고 말이야? 파란 파일 철 된 것.”
“!”
병환의 눈동자가 커진다.
“잊고 있던 건가?”
“그, 그게.”
“그것까지 다 마무리하고 가게.”
부장이 부장실로 들어간다.
“하아.”
병환은 바보 같은 자신을 자책한다. 하지만 자책할 시간도 그리 많지는 않다. 빨리 일을 끝내야 한다.
“휴우.”
“하아.”
혜지가 멍하니 엎드려서 손목 시계만 두드린다.
“언제 오려는 거야?”
전화기를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아 봤지만, 병환으로부터는 문자 한 통도 없다. 정말 이렇게 바쁜 걸까? 그러면 안 와도 되는데.
“휴우.”
혜지가 멍하니 창 밖을 본다.
“지금 이걸 제출하라고?”
부장이 코웃음을 친다.
“박 대리 지금 회사에서 하루이틀 일 해? 이걸 지금 제출하려는 건가? 지금 제정신이야? 아니야?”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지금 하고 가게!”
부장이 윽박지른다.
“누구는 개인 사정 없는 줄 알아? 다 바보라서 회사에 붙잡혀 있는 줄 아냐고? 다 자기 일 있어. 하지만 회사 일을 우선 끝내야 하니까 이렇게 회사에 묶여 있는 거잖아. 부장인 나도 아직 회사에 남아 있는데 말단인 겨우 대리 주제에 일찍 퇴근하려는 거야? 하여간 요즘 사람들은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
“죄송합니다.”
병환이 고개를 숙이고 부장실을 나온다.
“휴우.”
“왜요? 부장님이 또 뭐라고 하셔요?”
소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병환의 옆으로 다가온다. 소은과 병환은 입사동기로, 나이까지도 같다.
“지금 가봐야 하는데 서류 다 제출하고 가라고 하시네요. 내일 아침까지 내는 서류인데 말이죠.”
병환이 힘없이 투덜거린다.
“하아. 또 여자친구에게 엄청 혼나겠네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
소은이 싱긋 웃는다.
“대신 밥 한 번 사요.”
“뿌우.”
혜지가 볼을 부풀린다. 뮤지컬 시간 까지는 겨우 30분 남짓 나왔다.
“역시나 못 오려나?”
혜지가 시무룩해진다.
“무슨 놈의 회사는 허구헌 날 사람 일만 시키는 거야?”
“됐죠?”
“고마워요.”
소은이 깔끔하게 정리가 된 파일을 다시 병환에게 건넨다.
“파이팅.”
“고마워요.”
병환이 미소를 지으며 부장실로 들어간다.
“흠.”
부장이 꼼꼼히 서류를 본다.
“훨씬 낫군.”
병환이 기대 어린 눈으로 부장을 바라본다.
“가도 좋네.”
“고맙습니다.”
병환이 꾸벅 인사를 하고 부장실을 나온다.
“소은 씨 고마워요.”
“다음에 정말 밥 사요.”
“알겠습니다.”
병환이 재빨리 양복 저고리를 챙긴다.
“그럼 내일 뵈요.”
“잘 가요.”
소은이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하아.”
이미 뮤지컬을 보러 사람들이 다 들어갔다. 뮤지컬이 시작되기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혜지는 쪼그려 앉는다.
“휴우.”
“혜지야!”
그 때 들리는 병환의 목소리.
“오빠?”
혜지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본다. 저 밑에서 병환이 뛰어 올라오고 있다.
“헉헉, 많이 기다렸어?”
병환의 이마가 땀으로 가득하다.
“왜 이렇게 뛰었어?”
“너 기다릴까봐.”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나도 몰랐는데 낼 게 하나 더 있는 거야. 부랴부랴 하고 뛰어 오느라 죽는 줄 알았네. 아직 시작 안 했지? 우리 들어가자.”
병환이 미소를 지으며 공연장으로 들어간다.
“왜?”
“어?”
혜지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 거린다.
“왜 나 나쁜 애 만들어?”
“무, 무슨 말이야?”
병환이 조심스럽게 혜지에게 다가간다.
“손 대지 마!”
혜지가 날카롭게 외친다.
“그렇게 바쁘면 안 와도 되잖아.”
“혜지야.”
“내 마음이 어떨 거라고 생각해?”
혜지의 발등으로 눈물이 떨어진다.
“나 정말 이기적이지? 오빠 힘든 거 아는데. 자꾸만 투정 부리고 말이야. 하아. 알아. 미안해.”
“혜지야.”
“나 오늘 갈게.”
“!”
혜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
병환이 쫓아갔지만, 이미 혜지는 사라져버린 뒤였다.
“하.”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운 병환이다.
“후우.”
여자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가슴을 진정시키는 혜지다.
“바보.”
너무 이기적인 자신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난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오면 어떡해?”
조금은 안 힘든 척 나타날 수도 있을 텐데. 병환도 미워지는 혜지다.
28살. 여자
밝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다.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게 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항상 미소를 짓고 지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좋아하는 음식 : 캬라멜마끼아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싫어하는 음식 : 다리가 많이 달린 것들로 만든 것
좋아하는 것 :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시간.
싫어하는 것 : 일을 닦달하는 부장
잘하는 것 : 서류 정리
못하는 것 : 사람 미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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