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스물한 번째 이야기
이별
“미치겠네.”
공연장 앞에서 혜지를 기다려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도대체 얘는.”
병환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혜지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왔다.’
혜지가 전화기를 본다. 병환이다.
“후우.”
미련없이 종료 버튼을 누르는 혜지다.
“고객의 전화가 꺼져 있어. 삐 소리가”
“젠장.”
병환이 거칠게 전화기를 닫아 버린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병환이 넥타이를 거칠게 푼다.
“하아.”
이해가 안 된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생각을 하려고 해도 혜지는 너무나도 답답하다.
“도대체 뭐가, 하아.”
나이 때문일까?
“하아.”
그렇게 화장실을 나와 집까지 걸은 혜지다.
“
집 앞에서 병환이 서있다.
“!”
“어디 다녀오는 거야?”
화가 난 듯 하지만 자상한 목소리.
“그냥.”
병환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게 보인다. 하지만 이내 병환이 자제하고 미소를 지으며 혜지를 바라본다.
“걱정 했잖아.”
“그래?”
혜지가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너 뭐가 불만이야?”
“내가 언제 불만이래?”
병환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오른다.
“도대체 너란 애는!”
“싫으면 헤어져!”
“!”
“!”
혜지 역시 자신이 내뱉은 말에 놀랐다. 하지만 침착하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
병환이 한숨을 쉬며 바닥에 털썩 안는다.
“뭐해? 옷 더러워지잖아.”
“훗.”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이러면서 헤어지자고?”
“!”
“뭐가 화가 난 건데?”
병환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혜지에게 다가온다.
“오지 마.”
혜지의 목소리가 떨리다.
“혜지야.”
“나 오빠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내가 언제 해주래?”
혜지가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져.”
“혜지야.”
“언제나 오빠에게 투정만 부리고, 부탁만 하고, 그런 거 이제 싫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만 두고 싶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내가 문제야.”
혜지가 미소를 지으며 병환을 바라본다.
“오빠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문제라고.”
“너는 그 존재만으로도 내게 힘이 돼.”
“훗.”
혜지가 미소를 짓는다.
“정작 오빠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잖아. 항상 투정만 부리고. 나는 오빠에게 짐일 뿐이야.”
“혜지야.”
“오늘도 나 때문에 그렇게 부랴부랴 뛰어온 거잖아. 분명히 부장님 앞에서 투정을 부렸겠지. 나 때문에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왜 안 되는 건데?”
혜지가 병환을 똑바로 바라본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니었어.”
“!”
“오빠가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과외 선생님이었던 거 자체가 문제였다고.”
“혜지야.”
“우리가 선생님과 학생이 아닌 오빠와 동생으로 부르게 되던 그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최대 실수야.”
“하아.”
병환이 안경을 벗는다.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 때 이후로 나는 오빠에게 짐이 되어버렸으니까.”
혜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냥 한순간 변덕이라고 해두자. 그러니까 헤어지자. 솔직히 우리 오래 사귀었잖아. 이쯤되면 그만 둘 때도 됐어.”
“하아.”
“3년 그렇게 짧은 세월 아니야. 우리가 서로에게 아름답게 기억되려면 딱 여기서 그만 두는 게 좋을 거 같아.”
“하지만.”
혜지가 고개를 젓는다.
“내 말이 맞아.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
“혜지야.”
“오빠 부탁이야.”
혜지가 싱긋 웃는다.
“오빠 나 아직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내 부탁 들어줄 수 있는 거지?”
“이번 부탁은 못 들어주겠어.”
병환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오빠 나 안 좋아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닌 거 알잖아!”
병환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친다.
“아, 미안.”
“아니야.”
“도대체 너 왜 이러는 거야? 안 그래도 힘든데. 너 마저 그러면 어떡해?”
“알아. 오빠 안 그래도 힘든 거 아니까 놓아주려는 거야. 앞으로 오빠의 인생을 위해서 말이야.”
“혜지야.”
“여덟 살이나 어린 여자 친구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너무나도 힘들다고. 언제나 떼쓰고 투정부리는 나 같은 애. 오빠한테는 너무나도 과분해. 그러니까 우리 딱 여기까지만, 딱. 딱 그만 두자.”
“나한테 네가 하나도 버겁지 않아.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마!”
“내가 말했잖아. 자꾸 이러면 아름답지 못해진다고.”
혜지가 천천히 병환에게 다가온다.
“아름답게 끝내려면 딱 여기야.”
“!”
“여기가 우리의 결말이라고.”
혜지의 입술이 병환에게 다가간다.
‘쪽’
눈물 맛이 나는 키스. 별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항상 그렇게 내게만 사랑을 주던 당신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밉습니다. 모든 투정 다 받아주며 혼자서 힘들어하던 당신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밉습니다. 때로는 나라는 사람을 외면하고, 내게 화를 내도 되는데, 항상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당신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밉습니다. 당신의 앞에만 서면 나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지기에 당신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밉습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서 당신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원망스럽습니다.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보내주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 만큼 그대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니까, 나 같은 어린애 없이 더 멋진 당신이 되기를 바라니까. – by 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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