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스물두 번째 이야기
우리가 처음 만나던 그 때
“나 과외 안 한다니까.”
혜지가 볼을 부풀린다.
“너 과외 안 하면 대학 어떻게 가려고 해?”
“피.”
“고려대학교 다니는 선생님이란다.”
“몇 살인데?”
어머니가 미소를 짓는다.
“왜?”
“그, 그냥.”
“스물 다섯이래. 군대 다녀왔단다.”
“에? 나보다 여덟 살이나 많아? 완전 아저씨잖아?”
“오빠면 어쩌려고?”
“웃기고 있네.”
혜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공부는 무지하게 잘 되겠네.”
“킥.”
어머니가 혜지의 볼을 꼬집는다.
“선생님 오시면 말씀 잘 듣고.”
“알았다 뭐.”
혜지가 뾰루퉁하게 대꾸한다.
“아, 어서 오세요. 방에 있을 거예요.”
혜지가 방 밖으로 귀를 기울인다.
“아, 알겠습니다.”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일단 목소리는 합격이다.
“흠흠.”
혜지는 다소곳이 앉아서 머리를 예쁘게 쓸어넘겼다.
‘딸칵’
문이 열리고 혜지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봤다.
“!”
스물 다섯? 아무리 많이 봐도 스물 셋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반가워. 나는
“아, 안녕하세요? 조혜지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되게 활동적인 애라고 말씀하시던데 아닌가?”
“하하, 아니에요.”
혜지가 싱긋 웃는다.
“그래 그러면 일단 처음부터 미안한데 학교 성적은 어떻게 돼?”
“네?”
“그래야지 앞으로 혜지 양 어떻게 공부를 가르쳐야 할 지 정하지.”
“흠.”
혜지가 고개를 숙인다.
“저 공부 되게 못해요.”
“괜찮아. 선생님한테 부끄러울 게 뭐있어?”
“그, 그래도.”
“아유. 걔 공부 엄청 못해요.”
순간 들어오던 어머니가 짓궂게 말한다.
“어, 엄마도.”
혜지의 얼굴이 붉어진다.
“어머, 내가 거짓말 했니?”
“치.”
혜지가 볼을 부풀린다.
“그럼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네.”
어머니가 나가고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공부를 못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다만 공부를 못하는 것을 숨기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아, 알았어요.”
혜지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저기 혜지에게 부탁 하나 있는데 해도 될까?”
“네?”
혜지가 고개를 든다.
“무, 무슨 부탁이신데요?”
“앞으로 내게 말할 때는 목소리를 조금만 키워줘. 나는 자기 말 다 하는 사람이 참 좋더라. 혜지는 목소리도 예쁘니까 더 크게 말해도 돼.”
“네.”
“더 크게 말해도 된다니까.”
“아. 네.”
혜지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거 봐. 얼마나 예뻐.”
병환의 미소를 보며 혜지의 가슴이 설렌다.
“그럼 우리 오늘은 무슨 공부할까?”
“선생님. 애인 있으세요?”
“어?”
병환이 혜지를 본다.
“어떻게 보이는데?”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후우.”
혜지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병환은 혜지에게 커다란 나무였다. 너무나도 멋있는,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하지만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혜지는 병환에게 짐이었다. 물론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혜지는 병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언제나 그녀는 병환에게 짐이었다.
“하아.”
이제는 놓아줘야 한다.
나는 그대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이니까요. 그렇기에 그대를 놓아주렵니다. 그대가 행복하기를 원하기에 그대를 이제 내 품에서 놓아주렵니다. – by 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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