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 [스물세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5. 18. 22:03

 

 

 

 우리, 사랑해!

 

 

 스물세 번째 이야기

 

 두 사람의 이야기

 

 

 

 미치겠네 정말.

 

 전화를 받지 않는 혜지. 병환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혜지가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데, 혜지가 없다면 병환은 더 이상 이 자리를 버텨낼 자신이 없는데, 혜지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하아.

 병환은 고개를 돌려 자신과 혜지가 함께 담겨 있는 액자를 바라본다.

 

 혜지야. 도대체 너는 왜?

 

 병환은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데 혜지가 보인다. 코에는 혜지의 향기가 어리고, 귀에는 혜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라고?

 이번에는 너냐?

 

 주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는 도대체 무슨 이유인데?

 내가 오빠에게 짐일 뿐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

 혜지가 고개를 숙인다.

 

 솔직히 맞는 말이잖아. 내가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잖아. 그런데, 오빠는 나에게 모든 걸 해주잖아. 너무 미안해. 이대로 오빠의 곁에 아무렇지도 않게 머물 수는 없는 거잖아. 오빠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잖아.

 

 네가 없기 때문에 병환 오빠가 겪을 아픔은 생각 안 해 봤니?

 

 승연의 지극히 이성적인 말.

 

 몰라, 그런 거.

 

 혜지의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내가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분명해.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데?

 혜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당연한 걸, 누가 꼭 말해줘야 하니?
 

 병환 오빠가 그래?

 혜지가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오빠에게는 짐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항상 오빠에게 보채고 때를 쓰기만 하는 내가 오빠에게 짐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렇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바보.

 승연이 혜지를 안아준다.

 

 병환 오빠는 절대로 그런 생각 하지 않을 거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혜지야.

 내가 오빠를 보내기로 결정 했으니까.

 

 하아. 모르겠다.

 주연이 잔디 밭에 눕는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야?

 

 ?

 혜지가 고개를 든다.

 

 지금의 네 감정에만 솔직하면 되는 거잖아.

 

 주연이 눈을 감고 중얼 거린다.

 

 그냥 네 마음이 이끄는 데로 가면 안 되는 거야? 꼭 그렇게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살아야 하는 거야? 그렇게 치면 나도 선재 씨랑 헤어져야 하겠네. 나는 선재 씨에게 해주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야. 항상 선재 씨에게 받기만 하니까, 하지만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 왜냐고? 나는 선재 씨를 사랑하니까. 선재 씨 옆에 내가 있는 게 너무나도 좋으니까.

 나는 아니야.

 

 혜지의 목소리가 떨린다.

 

 나는 오빠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게 너무 싫어.

 

 

 

 무슨 일 있어요?

 

 소은이 걱정 어린 얼굴로 병환에게 커피를 건넨다.

 

 , 아무 것도 아니에요.

 병환이 초췌한 얼굴로 답한다.

 

 아무 것도 아니긴요.

 소은이 딱한 눈길로 병환을 바라본다.

 

 여자 친구랑 무슨 일 있었죠?

 

 그렇게 보여요?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소은 씨 정말 눈치가 백 단이구나.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병환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인데요?

 

 소은이 옆의 의자를 끌어와서 병환의 옆에 앉는다.

 

 우리, 헤어졌어요.

 

 !

 소은의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 어떻게요? 두 사람 정말로 사이 좋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병환 씨 여자친구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참 좋은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병환 씨가 말하는 걸 들으면 말이죠. 그런데, 왜 헤어진 거예요?

 나에게 짐이 되기 싫대요.

 

짐이요?

 .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게 너무 싫대요.

 , 어쩜.

 소은이 입을 가린다.

 

 왜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보낸 거예요?

 연락이 되질 않네요.

 

 !

 

 전화를 받지 않아요. 내 전화를 피하는 걸까요?

 

 그럼 직접 찾아가면 되잖아요?

 

 병환이 고개를 젓는다.

 

 그럴 수는 없어요.

 왜요?

 

 그녀의 선택이니까요?

 

 ?

 

 소은이 고개를 갸웃한다.

 

 , 그게 무슨?

 그게 옳은 선택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이라는 게 중요한 거예요.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녀가 헤어졌다고 말을 했으니까, 그 뜻을 존중해서 찾지 않겠다는 거예요?

 

 .

 

 바보예요?

 

 왜요?

 

 소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병환을 바라본다.

 

 그래도 찾아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든 그 여자 친구 분의 마음을 돌려야 할 거 아니에요. 박 대리님이 아직 좋아하고 있다는 거 여자 친구 분께 알려드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말했잖아요. 그녀가 제게 짐이 되는 걸 싫어한다고요.

 

 병환이 소은을 바라본다.

 

 저는 대충은 알 거 같아요.

 

 하아.

 

 소은이 고개를 젓는다.

 

 저는 하나도 이해가 안 되요.

 

 저를 너무 사랑해서인가봐요.

 하아.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그래요?

 

 .

 

 선재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주연을 바라본다.

 

 참 힘들겠어요.

 

 ?

 

 지난 번에는 승연 씨 일이더니, 이번에는 혜지 씨 일이로군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주연이 스트로우를 씹어 댄다.

 

 이런 일이 더 없기를 바랐는데.

 
힘들어 하지 말아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이번에는 왜 그런 거예요?

 혜지가, 오빠를 차버렸어요.

 ?

 더 이상 짐이 되기 싫다나요?

 

 주연이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치면 나도 선재 씨에게 참 커다란 짐인데 말이죠.

 

 , 누가 짐이래요?

 

 솔직히 선재 씨가 내게 해주는 게 훨씬 많잖아요.

 그걸 가지고 짐이라고 하면 안 되죠.

 

 선재가 고개를 젓는다.

 

 주연 씨가 제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좋은 걸요.

 

 고마워요.

 

 주연이 미소를 짓는다.

 

 그 마음 평생 가져갈 거죠.

 

 물론입니다.

 

 선재도 미소를 짓는다.

 

 

 

 미치겠네. 나는 네가 싫다니까.

 

 대연이 인상을 찌푸린다.

 

 저는 대연 군이 좋단 말입니다..

 

 지연이 씩 웃는다.

 

 내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거냐?

 

 그러는 대연 군은 제 생각은 전혀 안 하시는 겁니까?

 

 하아. 미치겠네.

 

 대연이 머리를 헝끌어뜨린다.

 

 도대체 너 내게 왜 이러는 거냐?

 

 대연 씨가 좋으니 이러는 거지 말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여자한테 관심 없거든.

 

 설마.

 

 지연이 입을 가린다.

 

 ?

 

 설마 게이십니까?

 뭐라고?

 대연이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쉰다.

 

 미치겠네. 애가 아주 상상력은 안드로메다까지 확장시켰구만.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 솔직히 대연 군 말입니다. 여태까지 여자애들이랑 사귀는 거 본 적도 없고. , 설마 정말! 정말 인 겁니까?

 

 나는 나보다 어리거나. 나랑 비슷한 나이인 애들은 전혀 여자로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니까 쓸 데 없는 오해는 말아줘.

 

 대연이 고개를 흔든다.

 

 그나저나 너는 여자애가 이런 거 하나도 안 쪽팔리냐?

 

 무엇이 말입니까?

 너는 자존심도 없냐? 너 싫다는 남자 왜 이렇게 쫓아다니냐? 남자가 싫다잖아. 그런데 왜 쫓아 다니냐고?

 

 그러는 대연 군은 포용심도 없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여자가 이렇게 좋다는데, 이렇게 쫓아다니는데, 그거 하나 못 받아주십니까?

 나는 속이 엄청나게 좁은 남자거든.

 대연이 볼을 부풀린다.

 

 그러니까 제발 나 좀 그만 쫓아다녀주라.

 싫습니다.

 

 지연이 싱긋 웃는다.

 

 대연 군이 저와 사귀어 줄 때까지 따라다닐 거란 말씀입니다.

                                                              

 미치겠군.

 대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 알고 있어요?

 

 소은이 고개를 갸웃한다.

 

 뭘 알고 있는데요?

 

 그녀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요.

 

 병환이 미소를 짓는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어떻게 알아요?

 아직, 여기가 뛰고 있으니까요.

 

 병환이 자신의 왼쪽 가슴을 만진다.

 

 하아.

 

 소은이 고개를 젓는다.

 

 

 

 그 것이 그녀의 진심이라면, 당연히 놓아주어야 하는 게 옳은 것이겠지요? 제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도 저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놓아주렵니다. 그녀가 제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녀를 놓아주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제게 돌아올 것을 믿으니까요. 분명히 그럴 테니까요. 그녀라면 반드시 제게 돌아올 테니까요. 그러니까 지금은 놓아주렵니다. 그녀가 정말 원하는 것이니까 놓아주렵니다. by 병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