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열여덟 번째 이야기
승연을 위하여
“야, 들어봐. 어떻게 비디오 방 가서 비디오만 보고 오냐?”
혜지가 투덜거리면서 들어오는데, 주연이 조심스럽게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왜?’
혜지가 입 모양으로 주연에게 묻는다.
‘헤어졌대.’
“!”
혜지의 눈이 동그래진다.
“뭐, 뭐라고?”
“야, 조용히 하라니까.”
“괜찮아.”
승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괜찮으니까.”
“승연아.”
승연이 휘청하고 재빨리 주연이 승연을 잡는다.
“미안.”
승연이 작게 미소를 짓는다.
“내가 왜 이러지?”
승연이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 앉는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승연아.”
“흑.”
승연의 얼굴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왜, 왜 헤어진 건지 모르겠어. 왜 헤어진 건지 모르겠어. 그 이유라도, 이유라도 말을 해주면 괜찮겠는데, 그러면 되겠는데. 이유도 말해주지 않으니까, 왜인지도 말해주지 않으니까,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이러니까, 이렇게 하면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모르겠는데, 왜 인지 모르겠는데. 말을 해줬으면 하는데, 나를 피해. 지원이 오빠가, 오빠가 자꾸만 나를 피해.”
“승연아.”
혜지가 승연을 살포시 안는다.
“진정해. 승연아 참아. 다시 물어보면 되잖아. 지원이 오빠에게 차근차근 물어보면 되잖아. 그러면 되는 거니까. 참아. 진정해.”
“나를 안 만나려고 해. 오빠가, 오빠가 나를 안 만나려고 해.”
“왜 안 만나려고 해? 그리고 안 만나려고 해도, 네가 만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승연아 그만 울어. 응?”
“흐윽.”
“헤어졌다나봐요.”
“왜요?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였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미니스톱에서 미니 타코야키를 먹는 선재와 주연이다.
“왜 헤어진 거래요?”
“그 이유를 모르겠데요.”
주연이 타코야키 한 알을 먹으며 대꾸한다.
“지원 씨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대요?”
“그냥 지겨워졌다고 했나봐요.”
“지겨워졌다.”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거네요.”
“네?”
주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보낼 때 가장 쉽게 하는 핑계죠. 질렸다는 거. 혹시 지원 씨 군대 다녀 왔어요?”
“아직 안 다녀왔을 걸요?”
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군대 가려는 거 아니에요?”
“군대요? 그러면 승연이에게 왜 헤어지자고 말해요. 기다려 달라고 말하려면 더 지극정성으로 승연이에게 공을 들여야죠.”
“두 사람 정말 행복해 보였잖아요. 그래서 그러는 건데, 혹시 지원 씨가 승연 씨를 놓아주려고 하는 거 아닐까요?”
“네?”
선재가 타코야키를 뒤적거린다.
“미안하잖아요. 기다리라고 말하기.”
“하지만.”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지원 씨 친구에게라도 물어보는 게 어때요?”
“범규 오빠.”
“어, 주연아. 혜지도 왔네?”
범규가 밝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는다.
“너희가 다 어쩐 일이야?”
“오빠 점심 먹었어요?”
혜지가 범규의 오른팔에 팔짱을 낀다.
“아, 아직.”
“그럼 우리 같이 먹으러 가요.”
주연이 범규의 왼팔에 팔짱을 낀다.
“자, 잠깐.”
“어서요.”
두 여자에게 끌려가는 범규다.
“뭐, 먹고 싶어요?”
“왜들 그러는 건데?”
“일단 먹고 싶은 거 다 골라요.”
주연이 메뉴판을 가리킨다.
“뭐, 고르라니까 고르겠는데.”
범규가 몇 가지 메뉴를 고른다.
“그럼 사올게요.”
혜지가 지갑을 들고, 카운터로 간다. 그리고 음식들을 받아 온다.
“어서 먹어요.”
“무슨 일인데, 일단 이유를 알고나서야.”
“일단 먹으면 이야기 해줄게요.”
주연이 싱긋 웃는다.
“하, 하지만.”
“그래서 안 먹을 거예요?”
혜지가 범규를 노려보자 범규가 위축된다.
“아, 아니 안 먹겠다는 건 아니고.”
“그럼 어서 먹어요.”
“다 먹은 거죠?”
“응.”
범규가 불안한 표정으로 주연과 혜지를 바라본다.
“이제 무슨 일인지 말해줘.”
“우리가 사준 거 먹었으니까, 발뺌하기 없는 거예요.”
범규의 등으로 식은땀이 흐른다.
“지원 오빠 왜 그러는 거예요.”
“!”
범규의 표정이 굳는다.
“뭐, 뭐가?”
“지원이 오빠가 왜 승연이에게 헤어지자고 말을 한 거예요.”
“뭐? 헤어졌어?”
거기까지는 범규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오빠는 뭘 알고 있죠?”
혜지가 범규 옆에 딱 앉는다.
“내, 내가 뭘 알고 있어?”
“오빠 표정에 나는 뭘 알고 있다라고, 딱 쓰여 있는 걸요?”
“어, 어디?”
범규가 허둥댄다.
“대충 우리도 눈치는 채고 있어요.”
혜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혹시 지원 오빠 군대 가요?”
“너 그걸 어떻게!”
범규가 순간 입을 막았지만 이미 상황 종료였다.
“맞구나.”
주연이 미소를 짓는다.
“선재 씨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두 사람이 헤어질 리가 없다고, 만일 헤어지는 거라면 군대 문제가 아니겠냐고요. 그래서 범규 오빠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딱 맞았네요. 정말 군대 때문인 거죠?”
“내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
“당연하죠.”
범규가 고개를 숙인다.
“지원이 군대 가. 그 것도 이번 달에.”
“!”
혜지가 입을 가린다.
“마, 말도 안 돼.”
“본인도 몰랐던 거래. 아버님이 지원이 모르게 자원하셨었나봐.”
“그거 취소할 수 있잖아요.”
“지원이는 어차피 갈 거 가겠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승연이에게 기다려달라고 말을 하기가 너무 힘들대. 아니 미안하대.”
“알았어요.”
주연이 미소 짓는다.
“그런데 지원이 오빠도 참 웃기죠. 승연이에게는 묻지도 않고 말이에요.”
“어?”
주연이 혜지의 팔을 잡는다.
“우리는 가자.”
“어, 어디를?”
“당연히 승연이에게지.”
주연이 범규를 향해 손을 흔든다.
“오빠는 두 사람에게 은인이에요.”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
“알았어요.”
범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너 어떻게 알았던 거야?”
“어?”
“지원 오빠 군대 가는 거 말이야.”
“선재 씨가 딱 그러더라. 그거 같다고.”
“오, 선재 씨도 대단한 걸?”
“나도 솔직히 지원이 오빠 말을 못 믿기는 했어. 두 사람이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였는데 질렸다니 말이야.”
“나도.”
“이제 승연이에게 모든 걸 말해주면 돼. 그러면 알아서 할 거야.”
“하아.”
지원이 고개를 숙인다.
“승연아.”
펼쳐진 지원의 지갑에는 승연의 사진이 꽂혀 있다.
“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22살. 남자
어릴 적 장래 희망 : 과학자
어릴 적 이상형 : 청순한 여자
어릴 적 소원 : 서울 구경
지금의 장래 희망 : 수학 교사
지금의 이상형 : 이해심 많은 여자
지금의 소원 : 승연이 행복한 것.
우리, 사랑해!
열 아홉 번째 이야기
우리 사랑하는 거지?
“승연아!”
“어?”
머그잔 가득 카푸치노를 젓던 승연이 고개를 든다.
“무슨 일이야?”
“너 지금 갈 데 있어.”
“어디?”
주연이 다짜고짜 승연의 팔을 이끈다.
“왜, 왜 이래?”
승연이 당황한다.
“가면 알아.”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니야.”
“지원 오빠 일이야.”
“!”
승연의 눈이 동그래진다.
“지, 지원 오빠?”
“왜 그런 지 다 알았어.”
“!”
“그러니까 우리 같이 지원 오빠 찾자. 그러자.”
“싫어.”
“뭐?”
승연이 주연의 손을 뿌리친다.
“내가 싫다는 사람이야. 내가 더 이상 구차하게 매달릴 이유가 없잖아. 내가 싫다면 그걸로 끝이야.”
“하지만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주연이 악을 쓴다.
“그러니까.”
“아니.”
승연이 미소를 짓는다.
“오빠가 그렇게 말을 했다면 그런 거야.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어. 그리고 나도 더 이상의 이유는 듣고 싶지 않아. 뭐가 진짜 이유이든지 간에, 내게 말을 해주지 않았잖아. 그러면 된 거야. 그러니까 나 오빠 안 볼 거야. 만일 오빠가 내 앞에 나타나서 직접 그 이유를 말해준다면 모르겠지만, 나 더 이상 오빠에게 매달려서 이유를 묻지 않을 거야. 오빠에게도 그럴 사정이 있을 테니까.”
“승연아.”
“그러니까 너도 마음 쓰지마.”
승연이 소파 위에 쪼그려 앉아서 양 손으로 카푸치노 잔을 든다.
“너도 좀 마실래?”
“아니.”
주연도 승연의 옆에 웅크리고 앉는다.
“미안해.”
“네가 뭘?”
승연이 주연을 본다.
“네가 힘들 거 생각하지 못했어.”
주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냥 이유만 알면 된다고 생각을 했어.”
“아니야.”
승연이 머리를 쓸어 넘긴다.
“이유는 알았어.”
“뭐?”
주연이 고개를 든다.
“이유를 알았다니?”
“훗.”
승연이 조금은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주연을 바라본다.
“나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내가 미안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고. 그러면 됐어.”
“!”
주연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런 거 맞지?”
“응.”
주연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다행이다.”
승연이 미소를 짓는다.
“나는 정말 멋진 사랑을 했으니까.”
“헉. 헉.”
“혜지야!”
혜지가 거친 숨을 몰아 쉰다.
“당장 승연이 만나러 가요.”
“어?”
“당장요!”
“아, 응.”
지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승연이 지금 어딨어?”
“이제 됐다.”
승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 아무런 미련 없어. 그러니까 너도 이제 걱정 하지마.”
“승연아.”
‘쾅’
순간 문이 벌컥 열린다.
“?”
“!”
지원이다.
“스, 승연아.”
“오빠?”
승연의 눈동자가 커진다.
“오, 오빠가 여기를 어떻게?”
“나는 잠시 나가줄게.”
주연이 미소를 지으며 동아리방을 나선다.
‘탁’
문이 닫히고, 승연이 입을 가린다.
“오, 오빠가 여길 어떻게 왔어?”
“내 이러는 거 너무 가찮은 기 않다. 내가 니한테 이런 말 할 자격 없다는 기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내 부탁 좀 들어주지 않긋나?”
승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 딱 2년만 기다려줄 수 있�나?”
“응.”
승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 군대 갈 동안 내 기다려줄 수 있�나?”
“응.”
지원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정말 기다려줄 수 있�나?”
“그래, 이 바보야.”
승연이 미소를 짓는다.
“네가 기다려달라고만 말하면, 나 10년도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도망치지마.”
“고맙데이.”
지원이 조심스럽게 승연에게 한 발짝 다가 섰다.
“바보.”
승연도 지원에게 한 발 다가 섰다.
“사랑한데이.”
“나도 오빠 정말 사랑해.”
둘이 천천히 가까워진다.
“
조용한 동아리방에 한 소리만 울려퍼졌다.
28살. 남자
어릴 적 장래 희망 : 과학자
어릴 적 이상형 :
어릴 적 소원 :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 되기
지금의 장래 희망 : 금융 계의 일인자
지금의 이상형 :
지금의 소원 : 결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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