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 Season 2 -
열일곱 번째 이야기
선재의 한국 탐험기 다섯.
“그럼 다녀올게요.”
“진짜 안 가도 되는데.”
“아, 왜 그래? 선재 씨가 가겠다는데.”
혜지가 자꾸 말리자 병환이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오빠가 강제로 데리고 가는 거 같으니까 말이지.”
“내가 뭘?”
“아니에요. 혜지 씨.”
“흠.”
혜지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걱정이다.”
“뭐가?”
“저 사람 좋은 선재 씨가 병환이 오빠 닮아버릴 까봐.”
“쳇.”
병환이 입을 내민다.
“가죠. 선재 씨. 더 이상한 소리 듣기 전에. 아, 지금이라도 가기 싫으시면 안 가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가고 싶어요. 뭐 한국 남자들이 다 하는 거라니까.”
“그런 거 아닌데.”
주연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선재를 바라본다.
“가자.”
“아, 네.”
병환이 팬션을 나가자 선재도 재빨리 병환을 따라 나간다.
“걱정이다.”
“그러게.”
주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휴우.”
어쩌다보니, 결국 서우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이 되어버린 소은이었다. 외출은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외출을 하기로 결심을 한 만큼,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그 것은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나서 소은이 가지게 된 버릇이었다. 옷장을 열어봐도 칙칙한 옷 뿐이었다. 매년 휴가는 항상 집에서 보냈었는데, 올해는 어쩌다가 이렇게 나가게 되었다니, 휴. 소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잠을 많이 잔 덕인지, 피부가 간만에 탱탱했다. 다행히 화장은 잘 먹을 거 같았다. 소은은 거울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피부가 맑은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오늘은 정말 편안하게 쉬고 싶었는데. 뭐 오늘만 나가고 내일부터 남은 시간을 푸욱 쉬면 되는 거니까.”
소은은 마음 편한 생각을 먹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약속 시간은 3시간이 넘게 남아있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다. 여자의 화장은 남자에게 들키면 안 되는 법이었다. 소은은 한 듯 안 한 듯 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하아.”
자신의 옷장을 열어보더니, 한숨을 내쉬는 서우다. 어쩌다 보니, 겨우 데이트 약속을 잡기는 잡았는데, 정작 입을 옷은 없다.
“미치겠네.”
28년 인생 중에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거였다. 아니, 좋아하는 여자는 종종 있어 왔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짝사랑 조차 하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서우는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보지 못했다. 자신의 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고백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을 보지 못했고, 그토록 진실된 사랑을 하지 못했다. 처음 소은을 보고 자신이 반했을 때도, 단순히 잠시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1달을 넘어가고, 3달, 6달을 넘어가더니, 1년이 되고 2년이 되었다. 처음 입사할 때부터 반했던 소은은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빛을 발하는 듯 했다. 그런데 그런 소은을 만나러 가면서 변변찮은 옷이 없다니 자신이 참 한심스러웠다. 물론 데이트 같은 것을 한 적이 없기에, 옷도 양복 뿐이기는 했지만, 흠 그렇다고 학창 시절에 입던 옷을 입기에는 조금 촌스러웠다.
“나 참.”
서우는 자신이 대학 시절에 입던 옷들을 보았다. 직장인이 된 후에 입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물론, 직장인이 된 지는 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에서 자신은 대학생이기에는 너무 늙어 버렸다.
“하아. 이거라도 입어야 하나?”
결국 대학 시절 입던 옷 중에서 지금 입어도 가장 무난한 하얀색 폴로 셔츠와 베이지 색 카고 바지를 선택한 서우다.
“오늘은 뭘 할까?”
오늘 데이트가 나름 설레는 서우였다.
“낚시 해 본 적 있어?”
“아, 아뇨.”
“에?”
병환이 놀란 눈으로 선재를 바라본다.
“아직 낚시를 해본 적 없단 말이야?”
“아, 네.”
“왜?”
“네?”
“아니 미국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에 보면 말이야. 아버지와 아들이 얕은 물의 큰 강에 서서, 연어 같은 것을 낚고는 하잖아. 나는 북아메리카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러섰어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저도 아버지가 있었다면 모르겠네요.”
”응?”
“저는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지금의 어머니가 저를 20년 동안 키워주셨죠. 만일 아버지가 계셨다면, 저도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아버지랑 낚시를 했을 지도 몰라요. 캐치볼을 해도 좋고요.”
“아, 미안.”
“아니에요. 모르시고 하신 말씀이신걸요.”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병환은 당혹스럽다.
“그런데요.”
“응?”
“아버지 있는 애들도 안 그럴 걸요?”
“다녀왔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연은 실내용 슬리퍼를 끌고,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 쪽지가 놓여있었다.
‘아들, 오늘 네 이모가 아기를 낳는다네? 지금 산통이래. 아들이 전화기를 꺼서 연락이 안 된다. 토요일 오후인데 아들 혼자서 있게 해서 미안해. 엄마는 이모 몸 좀 풀 때까지 있어야 할 거 같아. 한 일주일쯤? 엄마가 놓아둔 돈. 누나랑 잘 쓰고 있어. 20만원이야. 알았지? 아들 그럼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 엄마’
“돈?”
대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돈은 없다.
“서, 설마?”
불안한 느낌이 대연의 머리를 스쳤다.
“그나저나 너 돈 없다며?”
“응?”
주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니 너 돈 없어서 아무 대도 놀러 못 갈 것 같다며. 그런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이 생긴 거야?”
“아.”
주연이 싱긋 웃는다.
“생길 곳이 있어.”
훼미리마트 장바구니에 나뚜루 파인트를 집어 넣으며 주연이 싱긋 웃는다. 그 순간
‘전화 왔다’
액정을 확인하니 대연이었다. 주연은 다시 황급히 전화를 가방에 던져 넣었다.
“너 무슨 전화인데 안 받아?”
“어?”
“누군데?”
“아, 아무 것도 아니야.”
동생이 불쌍하기는 했지만, 점심 급식 주고, 아침도 안 먹는 녀석이었다. 저녁은 뭐. 자기 용돈 있겠지?
“씨이.”
대연이 울상을 짓는다.
“원 돼지 오기만 해봐! 죽었어.”
지연과의 데이트에 비자금도 다 써버렸다. 대연은 속으로 주연을 벼르며 냉장고에 있던 매일 저지방 ESL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앉지.”
“네.”
병환은 여유롭게 콧노래를 부른다.
“낚시 좋아하시나봐요?”
“조금?”
하지만 지금 낚시를 준비하는 병환을 보니 낚시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니 낚시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재밌을 거 같아요.”
“그럼 낚시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병환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여기, 여기 이 낚시 바늘 있지?”
“네.”
“여기에 지렁이를 끼워.”
“사, 살아 있잖아요?”
“그래요. 물고기가 물 거 아니야.”
“에?”
평상시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던 선재였다.
“그리고 여기 떡밥을 뿌려.”
“떡밥이요?”
“응.”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야, 물고기들이 물 표면 가까이로 올라오거든. 그래야지만 낚시하기도 수월해지고 말이야.”
“아.”
선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니?”
안방에서 아버지가 나온다.
“네.”
지연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인다.
“그래 오늘 즐거웠니?”
“네.”
대답을 하는 지연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다.
“많이 즐거웠나보구나.”
“그, 그냥 그랬어요.”
“얼굴에 다 보이는데 애써 거짓말을 해서 뭐하니?”
아버지가 껄껄 웃는다.
“그래 쉬거라. 나는 좀 들어가야 겠구나.”
“네.”
아버지가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헤헤.”
대연과의 데이트를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흘러 나오는 지연이다.
“녀석이 벌써 다 크다니.”
아버지가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당신, 당신도 다 보고 있죠?”
사진 속의 지연의 어머니는 미소를 짓고 있다.
“여태까지 나도 참 늙은 거 같아요. 벌써 저 어린 것 같기만 한 녀석이 벌써 남자 친구가 생기다니. 후후.”
아버지가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곧,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겠지?”
흐뭇한 나머지, 너무 멀리까지 진도를 나가버린 아버지였다.
“식사해요.”
“다 되었어요?”
“네.”
가인이 미소를 짓는다.
“그럼 내가 시식을 해보지.”
가인이 흐뭇한 얼굴로 냄비 채 들고 온다. 그리고 냄비의 뚜껑을 연다.
“!”
“어, 어라?”
냄비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잡채가 아닌 태국식 볶음 국수였다.
“이, 이게 무슨?”
“설마 가인 잡채를 볶았어요?”
“다, 당연하죠.”
“나 참.”
Dr. Jason 이 미소를 짓는다.
“잡채는 볶을 필요가 없어요?”
“그래요?”
“껄껄. 그래도 당신이 한 요리니 맛이라도 좀 볼까요?”
“그러세요.”
Dr. Jason이 한 젓가락 먹더니 표정이 굳는다.
“하하.”
“왜 그래요?”
“당신도 좀 들어보겠소?”
가인도 잡채를 먹는다.
“!”
그리고 바로 젓가락을 내려 놓는다.
“저녁으로 무얼 시킬까요?”
“미스터 피자에서 슈퍼 슈프림이요. 치즈 크러스트로요.”
“알았소. 레귤러로 시킬게요.”
결국 저녁은 피자로 때우게 된 가인과 Dr. Jason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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