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 Season 2 -
열여덟 번째 이야기
선재의 한국 탐험기 여섯.
“후우.”
준오가 한숨을 내쉰다. 지현의 나이와 이름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선재가 말을 한대로 행해서, 지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듯 하지만, 여전히 남자로써의 매력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 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무 것도 모르겠는 준오다.
“소은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자신도 서두른 편인데, 벌써 서우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강 대리 님.”
“서우 씨.”
“아, 서우 씨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는 걸요?”
하지만 서우의 얼굴이 새빨간 것을 보니, 한참을 이 햇빛 아래에서 서 있었던 모양이다. 바보 같기는.
“왜 가게 안에 안 들어가 있었어요?”
“소은 씨가 저 못 찾을까봐요.”
“그래도. 얼굴이 다 익었잖아요.”
소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가방에서 이니스프리 페이스 디자인 샷과 화장솜을 꺼낸다.
“뭐, 뭐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봐요.”
소은이 인상을 찌푸린다.
“나 바보는 취미 없어요.”
“네?”
“가만히 있어요.”
서우의 얼굴에 화장솜을 붙여주는 소은이다.
“우리 둘만 있으니까 꼭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거 같지 않아?”
“그러게.”
주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재밌었는데.”
“그런데, 승연이가 없으니 좀 허전하다.”
“그렇지?”
혜지도 맞장구 친다.
“그런데 걔는 어떻게 연락 한 번 없냐?”
“그러게. 아무리 외국으로 거는 비용이 높다고 해도 치사하게 시리, 자기가 우리에게 그 번호만 가르쳐줘봐. 우리가 전화 안 하나?”
“안 할걸?”
혜지의 말에 주연도 할 말이 없어진다.
“소은 씨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저는 아무 거나 괜찮아요.”
“그래도 드시고 싶은 걸 고르세요.”
“그럼.”
소은이 검지를 문다.
“우리 베니건스 갈래요? 제가 SKT라서 20% 디스카운트 되는데다가, 폼 카드까지 있어서, 메뉴 하나 먹을 수 있거든요. 그게 뭐였더라?”
“아.”
순간 서우는 아차 싶다. 그냥 자신이 이끌고 소은을 데리고 갈 걸. 데이트의 첫 코스부터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가, 가시죠.”
“좋아요.”
소은은 신이 나서 앞장 선다.
“꽤나 지루한 일이군요.”
“음, 낚시가 원래 그렇지.”
병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참을성과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낚시를 잘 하기는 어려울 거야. 하지만 차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진정한 한국의 사나이라면 이 정도의 기다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암. 아무 것도 아니지.”
“그렇습니까?”
“그럼.”
다시 한 번 병환에게 낚이는 선재다.
“소은 씨 드시고 싶은 걸로 주문하세요.”
“그래도요. 서우 씨는 뭘 좋아하시는 데요?”
사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처음인 서우다. 그 동안 데이트도 안 해봤을 뿐더러, 정말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해서 좋은 곳에 간다고 해도, 기껏해야 미스터 피자나 도미노 피자, 피자헛이 다였다. 사실 서우의 친구들 중에서 이러한 문화를 즐기는 이 자체가 없기도 했다. 아니 혐오했었다.
“저는 그냥 소은 씨 드시는 거 먹을래요.”
“좀 느끼할 텐데?”
“네?”
그래봤자 파스타 아닌가?
“저는 잘 먹어요.”
“그래요.”
소은이 싱긋 웃으며 직원을 바라본다.
“여기 까르보나라 두 개랑요. 이 폼카드 내면 메뉴 하나 주죠.”
“아. 그거요.”
“후우.”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자꾸만 지현이 눈 앞에서 어른어른 거린다. 보고 싶고, 말을 걸고 싶다. 선재의 말처럼 조금은 거리를 두고 관심을 유도하려고 하지만, 그 마저 쉽지많도 않다. 게다가 선재의 말과는 다르게 지현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무언가 확실한 반응을 보여야 준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던가, 무언가 다른 작전을 짤 텐데. 영 반응이.
“미치겠네.”
자신이 여자 때문에 이렇게 고민을 할 일이 생길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던 준오다. 게다가 이렇게 나이가 든 여성에게 반할 줄이야. 휴우,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젠장.”
하지만 자꾸만 지현이 생각이 나고, 지현이라는 여자가 보고 싶고, 지현이라는 여자와 함께하고 싶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게 남들이 말하는 사랑이 맞는 거라면 지금 준오는 제대로 된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물론 본인은 극도로 인정을 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나저나 남자 둘은 왜 안 오나?”
“그러게?”
어느 새,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벌써
“왜?”
“어?”
“왜 자꾸 쳐다 봐.”
“아, 아니야.”
선재를 걱정하면서 혜지의 얼굴을 보고 있던 모양이다.
“빨리 오지.
“낚시가 그렇게 재밌나?”
“흠.”
“우리도 따라 갈 걸.”
“미쳤냐?”
주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왜?”
“나 예전에 우리 아버지랑 동생이랑 낚시 가는 거 따라 간 적이 있거든. 도대체 그게 왜 재밌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하품만 실실 나고 말이야. 물고기나 잘 잡히면 몰라. 그리고 물고기가 잡히면 어쩔 건데? 얼마나 비린내가 심한 지 알아? 우리가 보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물고기가 아니라고. 얼마나 역겨운 냄새가 나는 데, 그 아가미를 벌렸다 닫았다 하는데. 으.”
주연이 몸서리를 친다.
“나는 싫더라.”
“그래?”
혜지도 그런 것은 싫다.
“사고는 아니겠지?”
”사, 사고?”
혜지의 말에 주연의 눈동자가 커진다.
“설마.”
“그, 그렇겠지?”
하지만 혜지의 발언으로 인해 이미 긴장감이 극도로 증가된 주연이다.
“우와.”
“신기하지?”
“네.”
잡은 물고기들을 보고 재미있어 하는 선재를 보니 마치 막내 동생을 보듯이 기분이 좋은 병환이다. 귀엽고 예쁘다. 처음에는 약간의 경쟁심리 같은 것도 있었는데 지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국인 친구였고,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내가 제대로 된 거 낚아 줄게.”
“정말요?”
“그거 주연 씨 한테 가져다 주면서 선재가 잡았다고 해.”
“네.”
선재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한다.
“이얏!”
그런데 이상했다, 낚시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어, 어랏?”
더 힘차게 잡아 당긴다.
“형님!”
”응?”
선재의 비명에 병환이 고개를 돌린다.
“으왓!”
“아파요.”
낚시 바늘이 선재의 윗입술에 제대로 걸렸다.
“뭐야? 잡으라는 고기는 안 잡고, 결국 멀쩡한 선재 씨를 낚았다.”
“아, 아니.”
하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병환이다.
“괜찮습니다.”
선재가 미소를 짓는다.
“다 저를 위해서 그러신 걸요.”
“선재 씨 안 그러셔도 되요. 제가 오늘 이 인간, 성격 완전히 고쳐 놓을 게요. 따라 와. 어서!”
병환의 귀를 잡아 당기는 혜지다.
“아, 아.”
“주연아, 선재 씨 내일 봐요.”
혜지가 억지로 미소를 짓더니 방으로 끌고 간다.
‘찰칵’
“으악!”
“네가 왜 사람을 다치게 해! 주연이 보기 얼마나 민망한 줄 알아?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 먹은 만큼 행동을 해야지!”
선재와 주연은 서로를 보며 씩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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