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season 4 - [예순네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0. 12. 22:59

 

 

 

우리, 사랑해! Season 4

 

- 예순네 번째 이야기 -

 

 

 

어머니!

 

시험 성적이 100점이 나온 것을 알면 분명 어머니가 크게 기뻐하실 것이었다. 태경은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오던 순간.

 

!

 

태경은 멈칫하고 말았다.

 

, 어머니.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는 성주 댁의 모습에 태경의 얼굴이 굳는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어머니에게 다가갈 수 없다.

 

어머니!

 

애타게 외쳐보지만 태경의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머니.

 

, 태경아.

 

그 순간 태경은 성주 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성주 댁은 태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하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

 

태경아.

 

가만히 서서 눈물을 흘리는 것 뿐이 태경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태경아.

 

어머니.

 

태경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 어머니.

 

그래.

 

성주 댁이 미소를 짓는다.

 

괜찮아.

 

!

 

엄마는 괜찮아.

 

!

 

태경의 얼굴이 굳는다.

 

, 어머니.

 

태경아.

 

성주 댁이 손을 뻗지만 태경은 너무나도 멀리 있다.

 

엄마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

 

!

 

엄마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지?

 

, 어머니.

 

너무 미안한데, 우리 태경이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한데, 엄마는 더 이상 못 있어줄 거 같아.

 

!

 

태경의 얼굴이 굳는다.

 

어머니.

 

태경아.

 

성주 댁이 미소를 짓는다.

 

엄마의 아들이 되어줘서 너무나도 고마워. 엄마가 나중에는 꼭 태경이의 딸로 태어나고 싶어.

 

!

 

그래서, 그래서 우리 태경이에게 꼭 효도하면서 살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중에 딸을 낳으면 꼭 사랑을 해주어야 해. 알았지?

 

어머니, 그런 말씀 하시지 마세요? 저를 두고, 저를 두고 어디를 가신다고 그러세요? ?

 

태경아.

 

성주 댁의 모습은 너무나도 힘겨워 보였다.

 

이 집안에서 네 편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래서 너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않겠니? 엄마를 너무 원망하지는 말아다오. 제발.

 

어머니!

 

성주 댁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어머니! 어머니!

 

그제야 발이 움직이는 태경이다.

 

어머니!

 

태경이 한달음에 성주 댁의 옆에 무릎을 꿇는다.

 

안 돼요. 안 돼요.

 

태경아.

 

성주 댁이 손을 들어 태경의 볼을 쓸어 준다.

 

태경이구나.

 

어머니.

 

이태경.

 

성주 댁이 다부진 표정을 짓는다.

 

나는 비록 안방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정식으로 호적에 오른 본 부인의 자식이자 진짜 종손은 바로 너야.

 

.

 

그러니 이 종손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바로 네가 잘 지켜야 하는 거다. 네가 잘 지켜야 해.

 

어머니.

 

절대로, 절대로 네 형에게 빼앗기지 말거라. 이 종가는 정말 이 종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거야. 정말로 이 종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종가를 지킬 수 있는 거다. 그런 거야.

 

.

 

우리 태경이는 이 종가를 좋아하지 않니?

 

성주 댁이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 우리 태경이가 이 집안의 종손이 된다면 이 집안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야.

 

.

 

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 어머니도 함께 있어주세요. 저 혼자서는 그런 일들을 모두 해나갈 자신이 없어요.

 

아니야.

 

성주 댁이 고개를 젓는다.

 

더 이상 엄마는 태경이 곁에 있어 줄 수 없어.

 

어머니.

 

우리 태경이 올해 나이가 몇이지?

 

이제 겨우 열 셋이에요. 아직 너무나도 많이 어리다고요. 어머니 없이는, 어머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아니야.

 

성주 댁이 미소를 짓는다.

 

우리 태경이는 많이 어른스러우니까, 엄마에게 너무나도 자랑스러울 정도로 어른스러우니까, 엄마가 없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이 종가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야.

 

어머니.

 

태경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성주 댁에 뺨에 떨어진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안 계신데 제가 어떻게 그래요? 제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요?

 

태경이는 그럴 수 있을 거야.

 

성주 댁이 태경의 손을 쥔다.

 

엄마 아들이니까.

 

어머니.

 

태경아.

 

.

 

성주 댁의 눈이 태경을 바라본다.

 

한 번만.

 

?

 

태경이 고개를 갸웃한다.

 

한 번만 뭐요?

 

한 번만 엄마라고 불러주겠니?

 

!

 

나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네게 어머니 소리 밖에 듣지 못했어. 남들 다 듣는 엄마 소리 한 번 듣지 못했어. 어릴 적부터 너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정말 너무 미안하다.

 

, 엄마.

 

그래.

 

성주 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엄마.

 

너무 듣기 좋은 말이다.

 

엄마.

 

.

 

엄마!

 

그래.

 

엄마!

 

더 이상 성주 댁에게 대답이 없다.

 

, 엄마?

 

태경이 성주 댁의 얼굴을 바라본다.

 

엄마!

 

성주 댁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엄마, 엄마, 엄마!

 

성주 댁의 손이 점점 차가워진다.

 

나보고 어쩌라고요. 나보고 어쩌라고요. 도대체,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고, 도대체 저보가 뭘 어쩌라고 이렇게, 이렇게 혼자 가버리시는 거예요? 아무도, 아무도 제 편이 아니라는 거 어머니가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저를 두고 그렇게 가세요? 어머니, 어머니, 엄마! 제발 제가 언제나 엄마라고 불러드리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 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태경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린다.

 

저 오늘 시험에서 만 점 받았어요. 그랬어요? 그러니까 어서 칭찬을 해주셔야지요. 어머니의 그 손길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셔야지요. 그래야지요. 그걸 바라고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서 만 점을 받았단 말이에요. 그러니, 어머니. 어머니.

 

태경이 미친 듯이 중얼거린다.

 

제발, 제발 눈 좀 뜨세요.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태경의 애타는 외침만이 하늘에 울려퍼질 뿐이었다.

 

 

 

뭐라도 좀 먹지 그러니?

 

태경은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그런다고 죽은 네 어미가 돌아오는 줄 아느냐?

 

여보.

 

미련한 것.

 

태경은 아버지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그러지 말고 뭐라도 좀 들어.

 

첩이라는 이름으로 본부인을 밀어낸 가증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태경을 향해서 먹을 것을 건넨다.

 

어서.

 

됐습니다.

 

태경은 너무나도 차가운 목소리로 마다한다.

 

하지만.

 

그만 둬요.

 

태경의 아버지가 태경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래 우리 한 번 줄초상을 치뤄보자꾸나! 어디 제 어머니에게 저리 모질게 굴 수 있는고?

 

태경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어디!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네 어머니는 지금 네 앞에 있는 분이다.

 

여보.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아버지가 태경을 노려본다.

 

앞으로는 저 분을 어머니라고 부르거라.

 

!

 

태경의 얼굴이 굳는다.

 

아니.

 

아버지의 얼굴이 잔혹하다.

 

지금 당장 부르거라.

 

!

 

태경의 표정이 사라진다.

 

여보.

 

어서!

 

태경의 몸이 떨린다.

 

어서!

 

그만 둬요.

 

못 부르겠느냐!

 

태경의 눈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 태경아!

 

아이고!

 

모두들 태경을 향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