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해! Season 4
- 예순다섯 번째 이야기 -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의사의 말에 양주 댁이 고개를 숙인다.
“아닙니다.”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짓는다.
“모두 어머니 덕이죠.”
“아니요.”
양주 댁이 태경의 얼굴을 바라본다.
“모두 이 아이가 잘 견뎌준 덕이지요.”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럴까요?”
양주 댁의 표정이 쓸쓸하다.
“나는 어머니도 아닌데 말이죠.”
그렇게 살아난 후 태경은 말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야.”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이 녀석 벙어리래!”
“킥.”
친구들이 놀려도.
“말 하라고!”
‘퍽’
아버지가 불호령을 내려도.
“말 좀 해보지 않으련?”
“얘야.”
가족들이 말을 걸어와도 태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태경은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태경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
“태경아!”
공부를 하고 있던 태경이 고개를 든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양주 댁의 표정을 보고 태경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
아버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아이고! 난리 났네!”
“어쩐대요?”
사람들은 동분서주하고 있을 뿐 아무도 체계적으로 무언가를 관리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아버지의 상태가 어떤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의대를 가기 위해서 잠시 공부한 것을 재빨리 머리 속에 떠올리는 태경이다.
“태, 태경아!”
양주 댁이 태경을 불렀지만 태경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 성공을 해서 아버지를 비웃기 위해서는 지금 아버지가 죽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죽어서는 안 된다.
“살아요.”
오랜 기간 입을 다물던 태경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제발 살아요. 그래야 내가 미워하고 살 테니까.”
태경은 미친 듯이 아버지의 몸에 자신이 아는 모든 의학 상식을 사용했다.
“다행이군요.”
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다 아드님이 훌륭하게 응급처치를 한 덕입니다.”
“아.”
양주 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신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네?”
양주 댁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 그게 무슨.”
“앞으로 거동이 불편하실 겁니다.”
“!”
양주 댁의 얼굴이 굳는 것을 보고 의사가 미소를 짓는다.
“죽을 분이셨습니다.”
“네?”
“왠만한 의사도 쉽게 살리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드님께서 살려 놓으신 거예요.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더군요. 참 부럽습니다. 제 아들 놈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부질 없는 희망이겠죠.”
의사가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저는 가보겠습니다.”
“네.”
의사가 왕진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왜 살린 거니?”
양주 댁의 물음에 태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태경아.”
“미워하니까요.”
태경은 입을 열었다.
“미워하니까 살았어야 했어요.”
거칠고 둔탁한 목소리.
“미우니까 살아야 했어요.”
“그렇구나.”
양주 댁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빠!”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얼마 전에 말을 했다며?”
화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태경을 바라본다.
“나에게는 계속 말 안 할 거야?”
“아, 아니.”
“다행이다.”
화영은 어느새 꽤나 많이 자라서 몸에서 처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화영아.”
“응?”
“우리 도망칠까?”
“어?”
화영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네가 좋아.”
“!”
화영의 얼굴이 붉어진다.
“나, 나도 오빠가 좋아. 오빠니까.”
“아니.”
태경이 고개를 젓는다.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말고?”
“남자와 여자로써 말이야.”
“그, 그런 거 몰라.”
“화영아.”
“!”
태경이 화영의 손을 잡는다.
“나 네가 진심으로 좋다.”
“오, 오빠.”
“우리 도망가자.”
“미안.”
화영이 그 손을 놓는다.
“나, 나 그럴 수 없어.”
“왜?”
태경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화영을 본다.
“내가 오빠와 결혼하면 엄마는?”
“응?”
태경의 얼굴이 굳는다.
“아,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는?”
화영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태경을 바라본다.
“어떻게 되는 거야?”
“화영아.”
“나 갈게.”
“화영아!”
태경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후우.”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그래 화영이 왔니?”
영천 댁이 고개를 빼고 내다본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나 정말 싫어.”
“응?”
“우리 집은 왜 가난해?”
“어?”
영천 댁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 무슨 말이냐?”
“도대체, 도대체 왜 하필이면, 하필이면 사람들도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태경 오빠네 돈을 빌린 거야?”
“!”
영천 댁의 얼굴이 굳는다.
“누, 누가 뭐라고 그러디?”
“오빠가 내가 좋대.”
“!”
“하지만 거절했어.”
“화, 화영아.”
“어울리지 않으니까.”
화영이 입술을 꼭 깨문다.
“알아. 우리 집은 오빠네 집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허수아비 같은 집이라는 거.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화영의 어깨가 떨린다.
“그런 거잖아.”
“미안하다.”
영천 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하아.”
화영이 입을 꼭 꺠문다.
“나 모든 게 싫어.”
“화영아.”
“나 그냥 오빠 좋아하면 안 될까?”
“아서.”
영천 댁이 애써 화영을 막는다.
“너 그게 말이 되니?’
“왜?”
화영이 울부짖는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죄야?”
“죄야.”
“어, 엄마.”
“죄야.”
그 순간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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