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 사랑해! [완]

우리, 사랑해! season 4 - [여든 번째 이야기]

권정선재 2008. 10. 21. 23:31

 

 

 

우리, 사랑해! Season 4

 

- 여든 번째 이야기 -

 

 

 

친구가 아니라고?

 

주연이 자신의 곰인형을 품에 꽉 끌어 안고 중얼 거린다.

 

성기가 그러니까 그냥 친구로써 내게 잘 대해주는 게 아니라고.

 

주연이 작게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어디로 정해져 있지 않다.

 

정말 미치겠다.

 

주연이 곰인형에 얼굴을 파묻는다.

 

미치겠다.

 

 

 

정말 안 됐지 뭐야?

 

그러니까.

 

어휴.

 

지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이야기지?

 

몰래 엿듣는 것은 잘못이라고 배웠으나, 그래도 동해오는 호기심을 마다할 수는 없는 지연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래요?

 

때 마침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을 기회가 생겼다.

 

이지연이라는 애 말이에요.

 

?

 

지연의 눈이 동그래진다.

 

?

 

그 애가 왜요? 그 애 교통 사고 난 거 거의 다 나았다고 들었는대? 멀쩡한 애랑 차이도 없다며요?

 

아이고.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다 나았대요.

 

?

 

물었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그런데 왜 퇴원을 안 한대요?

 

그러니까.

 

여자가 혀를 찬다.

 

그 애 아비가 암이래.

 

!

 

지연의 얼굴이 굳는다.

 

암이라니?

 

위암 말기.

 

여자가 혀를 찬다.

 

딸 하나 뿐인 듯 했는데, 그 아저씨도 참 불쌍하지.

 

아이고.

 

뒤에 온 여자가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는다.

 

그 아이는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모르지. 그 아이에게 큰 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말이야.

 

얼핏 들었는데 그 사람 종가의 종손이었다며? 꽤나 양반 가문 말이야.

 

그렇다고는 하는데, 그게 다 뭔 소용이야? 그 시절 이미 다 지나버렸는데.

 

그렇지.

 

뒤늦게 온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암인데 왜 치료는 안 해?

 

뻔하지.

 

여자가 한숨을 내쉰다.

 

.

 

지연인가 하는 아이?

 

.

 

그 아이가 왜?

 

그 아이 때문에 돈을 아끼려고.

 

그래.

 

지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버지가 대단하구만.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래.

 

?

 

뒤에 온 여자가 말을 하는 여자를 바라본다.

 

그게 다가 아니라니?

 

사실은.

 

말을 하던 여자가 잠시 멈칫한다.

 

아이고, 좋은 이야기도 아니데 말래.

 

? 말해 봐.

 

그게.

 

말을 하던 여자가 멈칫한다.

 

좀 안 좋은 이야기야.

 

궁금하잖아.

 

그 아이 친 딸이 아니래.

 

?

 

!

 

지연의 눈이 커다래진다.

 

그게 무슨 말이래?

 

그 아이 엄마가 데리고 왔대.

 

어머나.

 

그런데 키우고 있는 거래.

 

대단하네.

 

그러니까.

 

지연은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었다. 일단, 일단은 방으로 가야만 했다.

 

 

 

지연 양.

 

방에 들어서자 마자 자신을 보며 밝게 미소를 짓는 대연을 보자 긴장이 탁 하고 풀려버리는 지연이다.

 

대연 군.

 

, 지연아.

 

지연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자 대연이 당황한다.

 

왜 울어?

 

저 어떡합니까?

 

?

 

저 어떡합니까?

 

지연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연이 지연에게 다가와서 지연을 품에 따뜻하게 안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아버지가.

 

!

 

순간 대연의 얼굴이 굳는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고 합니다.

 

, 지연아.

 

아버지가.

 

지연의 눈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아프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십니다.

 

누가 그래?

 

병원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지연이 울먹거린다.

 

이 못된 딸은 알지 못했던 것을 남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럽니다. 그럽니다.

 

아니야.

 

대연이 지연을 토닥거린다.

 

아니야.

 

대연 군.

 

나도 몰랐잖아.

 

저는 딸이지 않습니까?

 

난 아들이잖아.

 

대연이 슬픈 미소를 짓는다.

 

나도 몰랐으니까 괜찮아.

 

저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 없는 하늘 아래서, 아버님 계시지 않는 그 하늘 아래서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괜찮아.

 

대연이 지연을 더 꼭 안는다.

 

내가 있잖아. 네가 힘들고 아프고 다치고 슬프면, 내가 항상 너의 손을 꼭 잡아 줄게. 정말 내가 너의 손을 꼭 잡아줄게.

 

대연 군.

 

그러니까.

 

대연이 지연의 머리를 자신 쪽으로 끌어 당긴다.

 

그러니까 아파하지 마.

 

흐읍.

 

지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린다. 하염 없이 흘러 내린다.

 

 

 

엄마.

 

대연이 왔니?

 

병원에 가기 위해 도시락을 싸던 화영이 대연을 바라본다.

 

어떡해?

 

너 얼굴이 왜 그래?

 

창백한 대연의 얼굴을 보고 화영이 달려온다.

 

어떡해?

 

?

 

화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연을 바라본다.

 

지연이, 다 알았어.

 

!

 

화영의 눈이 동그래진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지연이 다 알았다고.

 

대연이 슬픈 표정을 짓는다.

 

병원에서 우연히, 다른 사람들이 태경이 아저씨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다 알아버렸어. 지연이가, 너무나도 여리고 가녀린 그 아이가 모든 걸 다 들어 버렸어. 모든 걸 다 알아버렸어.

 

대연아.

 

대연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자 화영이 대연을 안아준다.

 

지연이 어떡해?

 

괜찮을 거야.

 

불쌍하잖아.

 

대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도 엄마 없이는 못 살아. 그런데, 그런데 지연이 너무 불쌍하잖아.

 

아니야.

 

화영이 고개를 젓는다.

 

네가 있잖아.

 

하지만.

 

아니야.

 

화영이 미소를 짓는다.

 

대연이 네가 잘 해줄 거잖아.

 

지연이, 지연이 어떡해?

 

대연의 눈에 이슬이 가득 고인다.

 

아직 어리잖아. 우리 아직 많이 어리잖아. 어른이 되려면 조금, 아직 조금은 멀었는데, 그런데, 벌써부터 혼자가 되면 어떡해? 벌써부터, 벌써부터 그렇게 아파야 하면 어떻게 해? ?

 

아니야.

 

화영이 대연의 등을 토닥인다.

 

대연이 네가 있으니까 괜찮아.

 

엄마.

 

괜찮아.

 

화영의 눈도 붉어 진다.

 

그래도 다행이다.

 

뭐가?

 

두 사람 모든 걸 알게 되었으니까.

 

화영이 대연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그래도 지연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잖아.

 

엄마.

 

그게 다행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