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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그리고 친일파 김남천

권정선재 2008. 12. 3. 12:46

 

 

 

.서론

 

 

1930년대 한국 현대 문학을 거론하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세 사람이 있다. 바로 염상섭, 채만식, 그리고 김남천이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은 193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 현대 문학의 현 주소이기에 닮은 꼴도 존재하고, 다른 모습 또한 존재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 세 사람 중에서 김남천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 본론

 

 

1.       김남천은 누구인가?

 

김남천에 대해서 다뤄보기 이전에 먼저 김남천이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김남천은 일본 호세이 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에 카프에 가담하여 1930년 평양고무공장 노동자 파업에 참가하고 그 체험을 희곡 <파업조정안>과 단편소설 <공장신문>(1931), <공우회>(1932)로 작품화하여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임화와 같이 카프 활동을 하다가 1931년 조선공산주의협의회 사건으로 2년간 복역하고 1935년 5월 21 임화, 기진과 협의하여 카프 해산계를 경기도 경찰국에 제출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은 임화와의 논쟁을 통해 작가적 실천의 문제를 당시의 문단에 제기한다. 그 뒤에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했으며, 해방 후에 조선문학가동맹의 서기장을 지내다가 1947년에 월북하여 1953년 남로당 숙청 때에 임화와 같이 숙청되었다.[1] 라고는 알려져 있으나, 그가 월북을 하였기에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사망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돌고 있으나 가장 유력한 것이 위에 언급한 것이기에 이 정도로만 언급을 하고 넘어 간다.

 

 

2. 김남천이 다른 작가들과 보이는 차이점은?

 

앞의 두 작가와 김남천은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차이는 그들의 대표 소설들에서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염상섭의 대표 소설은 《삼대》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채만식의 경우 그의 대표 소설은 아마도 《태평천하》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하지만 정말 소중한 작가인 김남천의 《대하》는 김남천을 대표하는 소설이다. 이 세 편의 소설은 가족사를 다룬, 가족사 연대기 소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전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일 정도로 아주 첨예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염상섭채만식의 소설 속의 배경은 그들이 직접 살고 있고, 그들이 진짜로 활동을 하고 있는 1930년대로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소설은 전작 소설이 아닌 신문 연재 소설로써, 구성이 되어 있다. 반면에 김남천의 《대하》의 배경은 1910년 말로 설정이 되어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은 이 당시 출간되던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미리 다 쓰여 있는 전작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렇다면 김남천은 왜 《대하》의 배경을 다른 두 편의 소설과 다른 시간으로 정한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그 당시 탄압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는 일제 시대로써 문학에 대한 탄압의 강도가 꽤나 높았던 시기이다. 그 당시 문학을 하던 이로써는 실질적인 문화를 그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민족의 자긍심을 버려가며 일제를 미화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채만식의 경우야 워낙에 풍자 소설을 잘 쓰는 작가이다보니 일제 시대 당시의 모순적 상황이 그 자신에게는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으나, 김남천에게 이 부분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남천은 그 당시 시대 상황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 이제 막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던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남천이 다른 두 작가와 다른 모습은 돈에 대한 시각이다. 염상섭채만식, 그리고 김남천. 이 세 사람의 대표 소설 속의 주인공은 모두 돈놀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것을 다루는 모습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염상섭채만식이 돈놀이를 하는 그들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반면 김남천의 경우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써 다루고 있다. 게다가 그 속에서 돈놀이를 하는 주인공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려놓기까지 하였다. 초반에는 고집이 세고 제 멋대로인 주인공은 후에 인자하고 너그러운 어르신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 등에서 김남천은 다른 두 명의 작가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3. 김남천이 친일파 소리를 듣는 까닭은?

 

 

그렇다면 김남천은 왜, 친일파가 아닐까라는 말을 듣는 것일까? 그 점은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바로 알 수가 있다. 염상섭이나 채만식의 경우 그들의 소설에는 일본인이라는 악역이 등장을 한다. 일본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악역들은 염상섭채만식의 소설들 속 주인공을 괴롭히고 그들을 수난에 빠뜨린다. 더군다나 그들의 소설이 다루고 있는 배경이 1930년대 당시이니 만큼 더 철저하게 일본인들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채만식의 《치숙》의 경우를 살펴 보면, 겉으로는 숙부를 비난하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진실을 알지 못하는 조카를 모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볼 때 이들의 소설에서 일본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반면 김남천의 소설 속의 일본은 매우 우호적이다. 《대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설 속 일본인은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대로 등장도 하지 않을 뿐더러, 마을에서 커다란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냥 조용하게 마을 한 구성원으로써 존재를 하고 있을 뿐이지 다른 두 작가의 소설들에서처럼 갈등을 유발한다거나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에피소드를 부여 받아서 주인공들에게 시련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일본인, 그 자체로써만 등장을 하고 그 이상으로는 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김남천의 특징 속에서 사람들은 그가 친일파가 아닐까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보는 것이다. 그 당시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면 친일에 대해서 매우 날카롭고 신랄하게 비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남천의 경우 그러한 경우가 없고, 그의 소설들 속에서 역시 배경이 1930년대가 아니라고는 하나 이미 식민지 시대인 1910년대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무시된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순해 빠진 인물로 그려져 있다. 비록 상인이라는 특성이 그렇게 순박하고 순진한 성격을 가진 직업은 아니지만, 이 소설 속에서 만큼은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그런 직업으로 설정이 되어 있다.

한 마디로 김남천의 소설은 다른 두 작가와는 전혀 다른 전개와 모습을 지니고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만으로 그를 친일파로 몰아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가 친일파라고 한들 우리는 그에게 아무런 지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살았던 당시의 상황에 빠진다면 우리들 역시 친일에 빠지고 친일에 앞장 설 지도 모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4. 그가 친일파가 아닌 이유.

 

그러나 지식인으로써 그 당시의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써 카프에 가담을 한 그의 행적들을 쫓아 본다면, 그가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굉장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가 죽기 전의 행적들을 따라가 보면 그는 친일파이지는 않았을 것임을 파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임화와 함께 카프의 활동을 가담하는 등 그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연맹에 모든 것을 다 바쳐 활동을 했다. 그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친일 행위를 했다기 보다는 일제에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Ⅲ결론

 

김남천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1930년대를 가장 대표하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그 만큼 아직 연구할 것이 많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작가이다. 그의 친일 논란은 아직은 크게 확산이 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친일이라는 행위 보다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사회학적 가치가 더 크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문학 중 단 한 편을 가지고서 친일의 결부에 대해서 논하는 것 역시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렇기에 김남천과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크게 연구가 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그가 친일을 했건, 친일을 하지 않았건 그 사실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은, 그가 과연 친일을 했는 지의 여부가 아닌, 그의 소설 속의 드러나는 1930년대 이전의 모습, 그 생생한 모습을 다시 한 번 재현에 내는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 보는 바이다.



[1] 김남천, 《대하》, 신원문화사, 2005, P.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