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김남천에 대한 변호
목차
Ⅰ. 서론
1. 김남천을 연구 주제로 다루게 된 계기
2. 김남천 소개
Ⅱ. 본론
1. 김남천의 특징
1) 동시대 작가와 김남천이 가지는 차이
2. 김남천과 친일파
1)김남천이 친일파인 이유
2) 김남천이 친일파가 아닌 이유
3. 크리스타 볼프, 권터 그라스, 그리고 김남천
1) 구 동독 작가들과 김남천의 공통점
2) 그들이 그런 선택을 내려야 했던 까닭
.
Ⅲ. 결론
1. 김남천이 가지고 있는 가치.
Ⅰ.서론
1. 김남천을 다루게 된 계기
1930년대 한국 현대 문학사를 거론하려면 빼놓지 않고 반드시 거론해야 하는 세 사람이 있다.
2. 김남천 소개
김남천에 대해서 다뤄보기 이전에 먼저 김남천이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김남천은 일본 호세이 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에 카프에 가담하여 1930년 평양고무공장 노동자 파업에 참가하고 그 체험을 희곡 <파업조정안>과 단편소설 <공장신문>(1931), <공우회>(1932)로 작품화하여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임화와 같이 카프 활동을 하다가 1931년 조선공산주의협의회 사건으로 2년간 복역하고
Ⅱ. 본론
1. 김남천의 특징
1) 동시대 작가와 김남천이 가지는 차이
김남천의 문학을 살펴보면 그의 문학은
먼저
그 이유는 아마도 1930년대 당시 일제의 탄압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는 일제시대 중에서도 문화에 대한 규제가 심해진 1920년대 이후 계속해서 문학에 대한 탄압의 강도가 꽤나 높았던 시기이다. 그 당시 문학을 하던 이로써는 실질적인 문화를 그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민족의 자긍심을 버려가며 일제를 미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김남천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2. 김남천과 친일파
1) 김남천이 친일파인 이유
김남천에 대한 친일 논란은 다른 작가들에게 존재하는 친일 논란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시대의 작가들이 실제로 친일 행위를 하며 반 민족적인 행동을 해서 친일 작가의 명부에 오르게 된 반면, 김남천을 일본에 대해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친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대표 소설인 《대하》만 보더라도, 당시가 일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묘사는 ‘나카니시 상점’ 등 극히 일부의 모습에서만 보여지고 있다. 1930년대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왕성했던 시기이고, 문화적으로도 수탈이 심했던 그 당시 실천적 작가라고 불리는 김남천은 자본이나 여러 가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이고 소신있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유독 일본,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는 그답지 않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나 동시대 작가인
물론 김남천의 친일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의 행적에 따라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남천에 대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해방 전의 경우 일제 식민지 시대였기에 김남천에 대해 연구를 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고, 해방 이후에는 그가 북으로 건너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처형을 당했기에 김남천에 대한 개인적인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카프 등의 활동을 했었고, 카프의 소속된 작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투옥 생활을 했던 적극적인 작가였던 그가 유독 일본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비록 그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일본과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묘사를 하고 제대로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그 당시 부조리한 시대 상황을 바로 잡고, 그에 대해 쓴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남천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억압되어서 자신이 진짜 해야 할, 지식인으로써 본분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2) 그가 친일파가 아닌 이유.
그러나 지식인으로써 그 당시의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써 카프에 가담을 하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던 생전에 그의 행적들을 쫓아 본다면, 그가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굉장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가 죽기 전의 행적들을 따라가 보면 그는 친일파이지는 않았을 것임을 파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김남천은 임화와 함께 카프의 활동을 가담하는 등 그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연맹에 모든 것을 다 바쳐 활동을 했다. 그리고 카프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투옥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김남천이었다. 김남천은 자신만의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문학 속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상황들은 그가 친일 행위를 했다기 보다는 일제에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그의 해방 이후 첫 소설이었던 《1945년 8·15》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다. 이 작품 속의 한 구절을 살펴 보자면, “이신국이가 일본 놈과 야합해서 전쟁을 돕는 군수산업으로 돈을 모으며 같은 동포의 고혈을 착취헐 때에 이분들(=
즉, 김남천은 친일파이기에 일본에 대한 묘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대한 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그의 해방 이후 문학적 성향을 살펴 보았을 때, 그는 친일파라기 보다는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이 충분히 불만스러웠고, 그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해서 못 마땅한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 문화적으로 일제가 가하는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대한 묘사를 미화할 수 밖에 없었기에, 애초에 일본에 대한 묘사를 빼 버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그 나름대로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본에 대해 저항하며, 그 당시 시대 상황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크리스타 볼프, 권터 그라스, 그리고 김남천
1) 구 동독 작가들과 김남천의 공통점
김남천과 같은 논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구 동독의 작가인 ‘크리스타 볼프’와 ‘권터 그라스’ 역시 김남천의 친일파 논란과 비슷한 논란에 휩쌓였었다. ‘크리스타 볼프’는 구 동독의 유명한 여류 작가로써, 분단을 했을 당시에도 동,서독 구분 없이 굉장히 큰 인기를 얻으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작가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영광은 독일의 통일과 함께 커다랗게 흔들리게 된다. 그 이유는 그녀가 통일 이후에 출간한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그녀는 독일의 통일 이후 한 권의 책을 발표하게 되는데 자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그 책에서 그녀는, 자신이 구 동독의 비밀 경찰인 슈타지의 감시를 받았었으며, 그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서술해 놓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 글을 쓴 것은 독일이 통일이 되기 한참 전이었고, 그녀는 지식인으로써 구 동독의 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독의 지식인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그녀의 명예는 심각한 손상을 받았다. 또한 그녀는 그 당시 구 동독의 고위 관직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다시 한 번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냉담하게 반응을 하려고 했지만, 그 논란은 이후 몇 년 동안 그녀를 계속 따라다녔다.
이러한 논란은 ‘크리스타 볼프’에서만 그치지 않았는데, 이후 1993년 ‘권터 그라스’라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고 나서 사실은 자신도 슈타지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 당시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구 동독의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눈치만을 본 채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솔직하게 말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역시, ‘크리스타 볼프’와 마찬가지로 구 서독의 지식인들에게 날카로운 비난을 받게 되었다.
위의 두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김남천 역시 친일의 행위라기 보다는 일제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소극적인 행동이었음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 이전에는 굉장히 진취적이고 대담한 여류 작가였던 ‘크리스타 볼프’ 역시 실제로는 겉으로 보이기와는 달리, 소극적이고 구 동독에서 원하지 않는 출판물의 경우 제재를 당했다는 것들을 살펴 보았을 때, 일제 강점기의 경우 이에 대한 강도가 더 심했다는 사실에 기초, 김남천의 선택은 필수불가결 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사회적 제도의 모순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한 사람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통일 이후 맹렬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던 ‘크리스타 볼프’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그들이 그런 선택을 내려야 했던 까닭
그들의 선택이 왜 그렇게 내려졌는 지에 대해서는 그리 어렵게 고민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지식인으로써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모순되어 있으며, 부조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정밀하게 묘사하지 못했다고 생각이 된다.
Ⅲ. 결론
1. 김남천이 가지고 있는 가치
김남천은 우리나라에서 해금조치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부터 그 연구가 이루어졌기에 아직까지 그에 대해서 모든 것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그 연구 결과가 미비한 실정이다.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는 1차적인 기본적 연구에 주로 치우쳐져 있다. 이후 다른 방안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져서 1930년대의 작가들을 연구할 때 함께 연구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대에 활동을 했던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는 그 알려짐이 적고 인지도도 적다. [3]
그러나 그에 대한 연구 결과가 적다고 해서 그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김남천의 글을 잘 살펴 보면 그 당시 문화나 배경에 대해서 치밀하게 묘사한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문학계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큰 연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당시 사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를 재현하거나 할 때에는 문학의 힘을 주로 빌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살펴보자면 세밀한 묘사가 특징인 김남천의 문학이 각광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김남천의 경우 아직 그에 대한 연구가 완벽히 끝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의 문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분명 연구할 가치가 무궁무지한 작가일 것이다.
<참고 자료>
-
- 정호웅, 《그들의 문학과 생애, 김남천》(파주 : 한길사, 2008)
- 김남천, 《대하》(서울 : 신원문화사, 2005)
'★ 블로그 창고 > 대학 과제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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