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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김남천에 대한 변호

권정선재 2008. 12. 10. 12:04

 

 

 

 

 

 

 

 

 

친일파 김남천에 대한 변호

 

 

 

 

 

 

 

목차

 

. 서론

1.        김남천을 연구 주제로 다루게 된 계기

2.        김남천 소개

 

. 본론

1.          김남천의 특징

1)      동시대 작가와 김남천이 가지는 차이

 

2.          김남천과 친일파

1)김남천이 친일파인 이유

2)      김남천이 친일파가 아닌 이유

 

3.          크리스타 볼프, 권터 그라스, 그리고 김남천

1)      구 동독 작가들과 김남천의 공통점

2)      그들이 그런 선택을 내려야 했던 까닭

.

. 결론

1.        김남천이 가지고 있는 가치.

 

 

 

 

.서론

 

 

1.      김남천을 다루게 된 계기

 

1930년대 한국 현대 문학사를 거론하려면 빼놓지 않고 반드시 거론해야 하는 세 사람이 있다. 염상섭채만식, 그리고 김남천이 바로 그들이다. 1930년대에 빼놓지 않고 반드시 거론해야 하는 세 사람은, 동시대에 존재했던 작가이기에 비슷한 점도 눈에 보이지만 다른 점 역시 도드라져 보인다. 이 논문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알려짐이 적은 김남천과 그의 논란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 김남천을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그와 친일파에 관한 논란을 다루고자 한다. 김남천의 경우 그 당시 작가 들 중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친일파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친일 논란의 틀에 그를 적용하기는 힘들 것 같아 보인다. 그렇기에 이 논문에서는 그와 그의 친일파 논란,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구 동독의 작가들의 상황과 경우와 빗대어서 그의 친일파 논란과 그 논란이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가 왜 친일파가 아닌 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2.       김남천 소개

 

김남천에 대해서 다뤄보기 이전에 먼저 김남천이란 누구인가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김남천은 일본 호세이 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에 카프에 가담하여 1930년 평양고무공장 노동자 파업에 참가하고 그 체험을 희곡 <파업조정안>과 단편소설 <공장신문>(1931), <공우회>(1932)로 작품화하여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한다. 임화와 같이 카프 활동을 하다가 1931년 조선공산주의협의회 사건으로 2년간 복역하고 1935년 5월 21 임화, 기진과 협의하여 카프 해산계를 경기도 경찰국에 제출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은 임화와의 논쟁을 통해 작가적 실천의 문제를 당시의 문단에 제기한다. 그 뒤에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했으며, 해방 후에 조선문학가동맹의 서기장을 지내다가 1947년에 월북하여 1953년 남로당 숙청 때에 임화와 같이 숙청되었다.[1] 라고는 알려져 있으나, 그가 월북을 하였기에 그의 죽음에 관해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사망에 관해서도 위의 것이 확실한 것이 아닌 위와 다른 여러 가지 설이 돌고 있으나 가장 유력한 것이 위에 언급한 것이기에 이 정도로만 언급을 하고 넘어 간다.

. 본론

 

 

1.       김남천의 특징

 

 

1) 동시대 작가와 김남천이 가지는 차이

 

김남천의 문학을 살펴보면 그의 문학은 염상섭, 그리고 채만식의 문학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차이는 그들의 대표 소설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는데, 염상섭의 경우에는 그의 대표 소설인 《삼대》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채만식의 경우에는 《태평천하》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남천의 경우, 《대하》를 통해서 살펴 볼 수 있다. 이 세 편의 소설은 가족사를 다룬, 가족사 연대기 소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이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일 정도로 아주 첨예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염상섭채만식의 소설을 살펴보자면, 그들의 소설 속의 배경은 작가 자신이 직접 살고 있는 1930년대라는 당시의 시대로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김남천의 《대하》속의 배경은 앞의 두 작가의 작품과는 다르게 1910년대 말, 개화기의 시기를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김남천은 왜 《대하》의 배경을 다른 두 편의 소설과 다른 1910년이라는 시간으로 정한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1930년대 당시 일제의 탄압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는 일제시대 중에서도 문화에 대한 규제가 심해진 1920년대 이후 계속해서 문학에 대한 탄압의 강도가 꽤나 높았던 시기이다. 그 당시 문학을 하던 이로써는 실질적인 문화를 그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민족의 자긍심을 버려가며 일제를 미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채만식의 경우야 워낙 풍자 소설을 잘 쓰는 작가이다 보니 일제 시대 당시의 모순적 상황이 그가 소설을 쓰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으나, 김남천에게 일제의 탄압과 통제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남천은 그 당시 시대 상황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 이제 막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던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김남천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염상섭채만식의 소설 속에서 보면 돈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부정적 이미지를 통하여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김남천의 소설 속에서 돈이라는 것은 그리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소설 속에서 돈놀이를 하는 박성권 역시 훌륭하고 인품이 좋은 어르신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채만식염상섭의 소설 속에서 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수전노로 그려지고 있지만 김남천의 소설 속에서는 단오 체육 대회를 위해서도 통 크게 돈을 내 놓을 줄 아는 대인배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2. 김남천과 친일파

 

 

1) 김남천이 친일파인 이유

 

김남천에 대한 친일 논란은 다른 작가들에게 존재하는 친일 논란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시대의 작가들이 실제로 친일 행위를 하며 반 민족적인 행동을 해서 친일 작가의 명부에 오르게 된 반면, 김남천을 일본에 대해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친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대표 소설인 《대하》만 보더라도, 당시가 일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묘사는 나카니시 상점등 극히 일부의 모습에서만 보여지고 있다. 1930년대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왕성했던 시기이고, 문화적으로도 수탈이 심했던 그 당시 실천적 작가라고 불리는 김남천은 자본이나 여러 가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이고 소신있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유독 일본,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는 그답지 않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나 동시대 작가인 염상섭채만식의 소설 속에서는 일본과 그 당시,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김남천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징은 더욱더 두드러져 보인다. 게다가 이미 식민지 시대에 접어든 1910년 당시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조선인들을 괴롭히거나 수탈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을에서 평범하게 상점을 운영하는 아무런 해도 없는, 순박하거나 지나치게 평범하고 특이한 점이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남천의 친일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의 행적에 따라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남천에 대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해방 전의 경우 일제 식민지 시대였기에 김남천에 대해 연구를 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고, 해방 이후에는 그가 북으로 건너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처형을 당했기에 김남천에 대한 개인적인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카프 등의 활동을 했었고, 카프의 소속된 작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투옥 생활을 했던 적극적인 작가였던 그가 유독 일본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비록 그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일본과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묘사를 하고 제대로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그 당시 부조리한 시대 상황을 바로 잡고, 그에 대해 쓴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남천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억압되어서 자신이 진짜 해야 할, 지식인으로써 본분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2) 그가 친일파가 아닌 이유.

 

그러나 지식인으로써 그 당시의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써 카프에 가담을 하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던 생전에 그의 행적들을 쫓아 본다면, 그가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굉장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가 죽기 전의 행적들을 따라가 보면 그는 친일파이지는 않았을 것임을 파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김남천은 임화와 함께 카프의 활동을 가담하는 등 그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연맹에 모든 것을 다 바쳐 활동을 했다. 그리고 카프 중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투옥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김남천이었다. 김남천은 자신만의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라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문학 속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상황들은 그가 친일 행위를 했다기 보다는 일제에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그의 해방 이후 첫 소설이었던 《1945 8·15》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다. 이 작품 속의 한 구절을 살펴 보자면, “이신국이가 일본 놈과 야합해서 전쟁을 돕는 군수산업으로 돈을 모으며 같은 동포의 고혈을 착취헐 때에 이분들(=박헌영이재유 등 공산주의자들)은 감옥에서 죽었고 유치장에서 고문과 싸웠고 벽돌공장에 숨어서 일본 놈과 끝까지 싸우는 운동을 지도해 왔세요. () 그자들이 공산당을 반대허는 건 친일파이기 때문입니다.[2]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러한 점을 살펴 보자면, 그가 그의 소설 속에서 일본을 등장시키지 않은 이유는, 그가 친일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 사회상에 따라서 어쩔 수 없는 억압의 결과로 그의 소설 속에서 일본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그가 해방을 하자 마자 일본에 대해서, 친일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을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김남천은 친일파이기에 일본에 대한 묘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대한 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그의 해방 이후 문학적 성향을 살펴 보았을 때, 그는 친일파라기 보다는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이 충분히 불만스러웠고, 그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해서 못 마땅한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 문화적으로 일제가 가하는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대한 묘사를 미화할 수 밖에 없었기에, 애초에 일본에 대한 묘사를 빼 버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그 나름대로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본에 대해 저항하며, 그 당시 시대 상황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크리스타 볼프, 권터 그라스, 그리고 김남천

 

 

1)               구 동독 작가들과 김남천의 공통점

 

김남천과 같은 논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구 동독의 작가인 크리스타 볼프권터 그라스 역시 김남천의 친일파 논란과 비슷한 논란에 휩쌓였었다. 크리스타 볼프는 구 동독의 유명한 여류 작가로써, 분단을 했을 당시에도 동,서독 구분 없이 굉장히 큰 인기를 얻으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작가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영광은 독일의 통일과 함께 커다랗게 흔들리게 된다. 그 이유는 그녀가 통일 이후에 출간한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그녀는 독일의 통일 이후 한 권의 책을 발표하게 되는데 자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그 책에서 그녀는, 자신이 구 동독의 비밀 경찰인 슈타지의 감시를 받았었으며, 그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고 서술해 놓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 글을 쓴 것은 독일이 통일이 되기 한참 전이었고, 그녀는 지식인으로써 구 동독의 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독의 지식인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그녀의 명예는 심각한 손상을 받았다. 또한 그녀는 그 당시 구 동독의 고위 관직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다시 한 번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냉담하게 반응을 하려고 했지만, 그 논란은 이후 몇 년 동안 그녀를 계속 따라다녔다.

이러한 논란은 크리스타 볼프에서만 그치지 않았는데, 이후 1993권터 그라스라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받고 나서 사실은 자신도 슈타지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 당시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구 동독의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눈치만을 본 채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솔직하게 말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역시, 크리스타 볼프와 마찬가지로 구 서독의 지식인들에게 날카로운 비난을 받게 되었다.

위의 두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김남천 역시 친일의 행위라기 보다는 일제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소극적인 행동이었음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 이전에는 굉장히 진취적이고 대담한 여류 작가였던 크리스타 볼프 역시 실제로는 겉으로 보이기와는 달리, 소극적이고 구 동독에서 원하지 않는 출판물의 경우 제재를 당했다는 것들을 살펴 보았을 때, 일제 강점기의 경우 이에 대한 강도가 더 심했다는 사실에 기초, 김남천의 선택은 필수불가결 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사회적 제도의 모순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한 사람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통일 이후 맹렬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던 크리스타 볼프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그들이 그런 선택을 내려야 했던 까닭

 

그들의 선택이 왜 그렇게 내려졌는 지에 대해서는 그리 어렵게 고민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지식인으로써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모순되어 있으며, 부조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정밀하게 묘사하지 못했다고 생각이 된다.

 

 

. 결론

 

 

1. 김남천이 가지고 있는 가치

 

김남천은 우리나라에서 해금조치가 이루어지고 난 이후부터 그 연구가 이루어졌기에 아직까지 그에 대해서 모든 것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그 연구 결과가 미비한 실정이다.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는 1차적인 기본적 연구에 주로 치우쳐져 있다. 이후 다른 방안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져서 1930년대의 작가들을 연구할 때 함께 연구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대에 활동을 했던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는 그 알려짐이 적고 인지도도 적다. [3]

그러나 그에 대한 연구 결과가 적다고 해서 그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김남천의 글을 잘 살펴 보면 그 당시 문화나 배경에 대해서 치밀하게 묘사한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문학계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으로도 큰 연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당시 사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를 재현하거나 할 때에는 문학의 힘을 주로 빌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살펴보자면 세밀한 묘사가 특징인 김남천의 문학이 각광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김남천의 경우 아직 그에 대한 연구가 완벽히 끝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의 문학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분명 연구할 가치가 무궁무지한 작가일 것이다.

 

 

<참고 자료>

 

-         곽승미, 1930년대 후반 한국 문학과 근대성 김남천의 경우》(서울 : 푸른 사상, 2003)

-         정호웅, 《그들의 문학과 생애, 김남천》(파주 : 한길사, 2008)

-         김남천, 《대하》(서울 : 신원문화사, 2005)



[1] 김남천, 《대하》, 신원문화사, 2005, P.5.

[2] 이주웅, 서강대 문화 연구 아카이브, 2008.12.10, <http://cafe.daum.net/sgarchive>

[3] 곽승미, 1930년대 후반 한국 문학과 근대성 김남천의 경우》(서울 : 푸른 사상, 2003), PP. 12-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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