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살다. Season 2
세 번째 이야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민정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쥐어 짰다.
“우리 두 사람이 사랑을 한다고 하면, 그것도 너무나도 우스울 거야. 나 그런 거 정말로 싫어.”
“하아.”
윤호의 숨결이 민정에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안 된다고요?”
“응.”
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
“이렇게 만질 수 있는데 안 된다고요?”
“응.”
민정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
“이렇게, 이렇게 느낄 수 있는데 안 된다고요?”
“응.”
민정이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
“이렇게, 함께 있는데도 안 된다고요?”
“응.”
민정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
“이렇게 두근거리는데도 안된다고요?”
“응.”
민정이 윤호의 손을 밀어냈다.
“절대로 안 돼.”
“하아.”
윤호가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로, 정말로 안 되는 거예요?”
“정말로, 정말로 우리는, 안 되는 거야.”
민정이 슬픈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이 아무리 사랑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안 되는 거야.”
“아무도 모르잖아요.”
윤호가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선생님과 삼촌이 사귄 거 모른다고요.”
“내가 알잖아.”
민정이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네가 알잖아.”
“나는 몰라요.”
“윤호야.”
“나는 다 지웠어요.”
윤호가 어린 아이처럼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너는 다 기억해.”
“안 나요.”
“기억 나잖아.”
민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기억 나잖아.”
“하나도 안 나요.”
윤호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해요.”
“윤호야.”
민정이 윤호에게 다가가서, 가슴으로 윤호를 안았다.
“정말 미안해. 너 힘들게 할 수 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해.”
“선생님.”
윤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정말로 사랑해요.”
“나도 그래서 너무나도 고마워.”
민정이 윤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네가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선생님.”
“하지만 너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잖아.”
민정이 손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윤호야.”
“됐어요.”
윤호가 민정을 밀어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윤호의 눈빛이 너무나도 서늘했다.
“네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닌 것도 알아요.”
윤호가 고개를 들어 민정을 바라봤다.
“하지만 서운해요.”
“윤호야, 미안해.”
“미안할 필요는 없어요.”
윤호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늦은 내 잘못이니까.”
“네 잘못 아니야.”
민정이 힘을 주어 말을 했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하아.”
윤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응?”
“나 삼촌이 너무너무 미워요.”
“윤호야.”
“삼촌이 정말 죽일 만큼 미워요.”
“!”
민정의 눈이 흔들렸다.
“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아니요. 죽이지 못해요.”
윤호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이죠. 선생님.”
윤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어떤 일을 해도 안 이상한 거잖아요.”
“서, 설마.”
민정이 입을 가렸다.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지금 제 심정은 말이에요. 삼촌을 죽이고 싶어요.”
윤호의 눈이 공허했다.
“갈갈이 찢어 버리고 싶다고요. 하지만 그러지 못해요.”
윤호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윤호의 눈이 밤 하늘 미리내처럼 반짝였다.
“어떻게 하죠?”
“잊어.”
민정이 윤호를 다시 안아주었다.
“모든 것을 다 잊어.”
“내 머리가 너무나도 좋은 가 봐요.”
윤호가 울먹이며 말했다.
“삼촌과 나,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도 지워지지 않아요.”
“노력 해.”
민정이 윤호의 등을 쓸어주었다.
“노력하면 안 되는 거 없어.”
“많잖아요.”
윤호가 민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나도 많잖아요.”
“뭐가 있는데?”
“선생님도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유, 윤호야.”
“알아요.”
윤호의 눈에서 흐른 눈물이 민정의 목덜미를 적셨다.
“내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거, 몇 번을 말해서 알아 듣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내가 아무리 죽을 동 살 동 노력을 해도 선생님을 가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민정이 윤호의 등을 토닥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미안해.”
“하아.”
윤호가 한숨을 토해냈다.
“어른이 되고 싶어요.”
윤호가 읊조리듯 말했다.
“더 이상 이런 아픔 겪지 않게 어른이 되고 싶어요.”
“너는 이미 어른이야.”
“사랑에 관해서는 어린 아이에요.”
윤호가 민정을 더 따스히 감싸 안았다.
“너무나도 어리다고요.”
“하아.”
“감정 표현에도 서툴고, 그 감정을 이어나가는데도 너무나도 서툴어요. 너무나도 어려서, 너무나도 바보 같아서 그래요. 그 바보가, 그 어린 아이가 너무나도 힘들게 고백한 거였어요.”
“그 힘든 고백, 그 어린 아이의 힘든 고백 받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어른에게는 또 다른 어른이 어울리는 법이잖아. 어른에게는 아이가 어울리지 않는 법이잖아. 그건 알고 있잖아.”
“그렇죠.”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마음은 그 어른 못지 않게 너무나도 진지했어요. 너무나도 깊었고, 너무나도 진중했어요. 그 어른이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가 사랑하는 어른을 다치게 하지도 않을 거였어요.”
“그 어른은 말이야, 그 어른을 좋아해주는 다른 어른 때문에 단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어. 늘 고마웠고, 늘 사랑을 받았었어. 비록 그 어른을 두고 떠나버렸지만,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어.”
민정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라고 아세요?”
“어?”
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극?”
“네.”
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반달이는 백설공주님을 사랑하죠. 하지만 백설공주님은 먼 나라 이웃 왕자 님을 사랑하세요. 그런데 그거 알고 계세요? 백설공주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그 반달이라는 거, 사랑의 크기라는 건 말이에요. 사람의 크기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예요. 그런 거라고요.”
“공주도 알고 있었을 거야.”
민정이 윤호에게서 살짝 몸을 떼며 말했다.
“백설공주도 반달이가 자신을 좋아해주고 있다는 거, 어렴풋이 느끼고, 마음으로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왜 왕자랑 결혼해요?”
“순리니까.”
민정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 나라의 공주가 난쟁이랑 결혼할 수는 없잖아.”
“그런 게 어딨어?”
윤호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약자의 사랑은 사랑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야.”
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 약자를 더 지켜주기 위한 거야.”
“하아.”
윤호가 한숨을 토해냈다.
“모르겠어요.”
“윤호야.”
민정의 눈이 윤호를 바라봤다.
“정말 미안해.”
윤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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