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랄까 season 4
2화 윤호는 찬 밥 신세?
“선생님 죄송해요.”
“아니야.”
하지만 민정의 표정을 보니 썩 유쾌해보이지는 않는다.
“그 아저씨도 정말 너무하다. 그렇다고 버리고 가냐?”
“고속도로잖아.”
“그래도요.”
“우리가 잘못한 거야.”
민정은 저 앞길이 까마득하다. 다음 휴게소까지라도 가야, 어떻게 방법이 생길 텐데.
‘빵’
그 때 옆에서 경적 소리가 난다.
“아니 왜 걸어가셔요?”
친절해보이는 아저씨다.
“그게 갑자기 급해서 고속버스에서 내렸는데, 짐까지 던져 주고, 가버리더라고요.”
“아유, 저런.”
민정의 말에 그가 혀를 찬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가까운 휴게소까지라도요.”
“제가 강릉까지 가거든요.”
“어머, 정말요.”
민정이 미소를 짓는다.
“저희도 강릉에 가야 하거든요.”
“아유, 그러세요?”
사내가 미소를 짓는다.
“그럼 어서 타세요.”
“정말요?”
“네.”
민정이 차에 올라타고, 윤호도 올라타려고 하자 사내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런데, 차가 좀 좁은데.”
“네?”
“짐 실을 공간도 여의치 않고, 저 총각은 좀 젊은 거 같은 데, 저 뒤에서 타고 가면 안 되겠나?”
“네?”
윤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농담이시죠?”
“농담 아닌데.”
“!”
이 추운 겨울에, 트럭 뒤에 타고 가라고?
“그런 게 어딨어요?”
“제가 뒤에서 갈게요.”
“아유, 숙녀 분을.”
민정이 내리려고 하자, 사내가 만류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윤호가 이를 갈며, 뒤에 올라탄다.
“그 천 잘 뒤집어쓰게, 그거 안 뒤집어 쓰면, 도로교통법 위반이야.”
“알겠습니다.”
윤호가 투덜거리며, 천막 속으로 들어간다.
“그럼 출발합니다.”
“네, 그러세요.”
민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뒤를 본다.
“으 추워.”
윤호가 연신 팔을 문질러보지만, 여전히 춥다.
“도대체 언제 가는 거야?”
잠깐 길이 풀리는 것 같더니, 이내 다시 정체였다. 도대체 몇 시간을 이 속에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휴대전화 버튼을 누를 힘도 없다. 이미 손이 꽁꽁 얼어 있는 상태다.
“아이 씨.”
엉큼한 아저씨에게, 민정이 무슨 일은 당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내가 그래도 앞에 탔어야 하는데.”
새삼스럽게 후회가 밀려오는 윤호다.
“왜 이렇게 밀리죠?”
“주말이라 그런 가 봅니다.”
“휴.”
“그런데 무슨 사이십니까?”
“네?”
“나이 차가 조금 있어 보이시던데?”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사제지간이었어요.”
“사제지간이었다는 건?”
“지금은 애인 사이에요.”
“아.”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 청년이 의외로 집념이 강한가 보군요.”
“그런 가봐요.”
민정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전혀 이상하게 안 보시네요?”
“뭐가요?”
“보통 다른 사람들은 연인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보시던데.”
“이상할 게 뭐 있습니까?”
“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당연한 거죠.”
아저씨가 미소를 짓는다.
“아가씨는 이상하십니까?”
“아니요.”
“그래요, 안 이상한 게 당연한 겁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참 부럽습니다.”
“네?”
“이런 미인이랑 사귀다니, 저 청년도 참 복이 많군요.”
“훗.”
민정이 싱긋 웃는다.
“농담하지 마세요.”
“농담 아닙니다.”
“헤헤.”
“허허.”
“그나저나 길이 뚫려야 할 텐데요.”
“잠시, 휴게소라도 들를까요?”
“네.”
“알겠습니다.”
“으.”
얼마나 더 떨었을까?
“윤호야.”
“서, 선생님.”
“어머!”
민정이 작게 비명을 지른다.
“너 괜찮아?”
“괘, 괘, 괜찮아요.”
“어머, 뭐가 괜찮아.”
“무슨 일입니까?”
아저씨가 윤호를 보더니 표정이 굳는다.
“너무 오래 있었나보네.”
“그, 그런 가 봐요.”
“어서 내리게.”
“그게.”
윤호가 울상을 짓는다.
“모, 몸이 안 움직여요.”
“이제 좀 괜찮아?”
“네.”
“어쩌지?”
아저씨도 걱정 어린 표정으로 윤호를 바라본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흠.”
우동을 먹고, 겨우 몸이 풀린 윤호가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여기 혹시 손난로 팔까요?”
“손난로요?”
“8만 3천 500원입니다.”
직원이 조금 의아한 눈으로 민정을 바라본다.
“현금영수증 끊어주세요.”
민정은 그런 직원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카드와 현금을 내민다.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요?”
“어쩔 수 없잖아.”
민정이 조금은 무책임하게 대꾸한다.
“그렇죠.”
이제는 윤호도 체념을 한다.
“다 됐습니까?”
“네.”
윤호의 몸에 손난로를 단단히 두르고, 민정은 차에 올라탔다.
“천 뒤집어 쓰세요.”
“네.”
윤호가 투덜거리며 천을 뒤집어쓴다.
“갑니다.”
그리고 다시 차가 출발했다.
“이제 좀 풀리는 걸요.”
“그러게요.”
민정은 다소 안심이 된다.
“이대로 가면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요.”
사내가 인상을 쓴다.
“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요?”
“다행이다.”
민정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정도는 버티겠죠?”
“글쎄요?”
사내가 미소를 짓는다.
“뭐, 사랑의 힘이라면 버티겠지만.”
“킥.”
“괜찮을 겁니다.”
“하긴, 윤호에게도 색다른 추억일 거예요.”
“그럼요.”
사내기 미소를 짓는다.
“고속도로에서, 트럭 뒤에 타고 가기는 정말 처음일 겁니다.”
“풋.”
“으.”
윤호는 문득 해미의 말이 생각이 난다.
“아 씨, 내복.”
입을 걸, 간절히 후회가 된다. 이런 일이 생길 지 모르기는 했지만, 가져오기라도 할 걸 했다.
“휴.”
벌써 몇 번째 똑딱 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손난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유지가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15분에서 30분 정도, 그래도 여러 개의 손난로를 동시에 활용하니 다소 오랜 시간을 버티기는 했다.
“젠장.”
아까보다는 좀 달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윤호가 생각하기에 이 차는 여전히 거북이 걸음으로 달리고 있다.
“설마 일부러?”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지금 윤호의 상황으로써는 그런 오해를 하고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추워도 너무 춥다.
“으,”
아무리 몸을 비벼보아도, 더 이상 열이 나오지는 않는 듯 하다.
“어머.”
갑자기 민정이 작게 비명을 지른다.
“왜 그러십니까?”
“눈이 와요.”
“!”
정말이었다. 잘 안 보이기는 했지만, 눈발이 가늘게 희끗희끗 땅을 향해 뿌려지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충혈 된 것을 보니, 곧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차들의 움직임 역시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쩌죠?”
“흠.”
사내가 인상을 썼다.
“글쎄요.”
“다시 휴게소를 들러야 할까요?”
“오히려 빨리 도착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럴 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빨리 가죠?”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그래요?”
“지금 이 정체구간만 벗어나면 돼는데.”
사내도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으.”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걸까? 윤호는 지금 동사하기 일보 직전이다.
“에취.”
어느 새 감기마저 걸린 모양이다.
“이게 무슨 낭만적인 여행이야?”
윤호가 생각한 여행은 이런 게 아니었다.
“에 취!”
하지만 이미, 자신 때문에 틀어져 버린 여행이다.
“저기, 보이네요.”
“어머.”
민정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어느 새, 강릉 터미널 앞에 도착한 트럭이다.
“윤호야!”
“서, 선생님.”
“어머!”
윤호는 입술까지 새파랗다.
“아유, 저런.”
사내도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어쩌죠?”
“바쁘실 텐데, 그냥 가셔도 돼요.”
“하지만.”
민정이 싱긋 웃는다.
“여기까지도 큰 은혜를 입었는 걸요.”
“그래요?”
사내도 급한 모양이었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네, 고마워요.”
트럭이 멀어졌다.
“윤호야 우리 뭐 따뜻한 거라도 먹을까?”
“네.”
윤호가 힘없이 대답한다.
“에취!”
“너 감기 걸렸어?”
“아마도요?”
민정이 목도리를 풀어준다.
“선생님 추우시잖아요.”
“네가 지금 남 걱정 할 때니?”
민정이 살며시 노려본다.
“두르고 있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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