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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장수 전설의 변이과정

권정선재 2009. 4. 28. 00:48

 

 

 

아기장수 전설의 변이과정

 

 

 

과거 판소리계 소설들의 경우 애초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 내려 오던 것이 소설로 변이의 과정을 겪어서 현재 소설로 자리를 잡아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변이의 과정을 겪는 이유는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게 생각을 하는 문학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고대의 사람들의 경우 현대와 같이 과학을 무조건 신봉하는 시기가 아니기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러한 무지한 것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였고, 그렇기에 신화나 전설 같은 것에 대한 의존도가 현대의 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도 그러한 장르의 이야기가 우리 민족의 삶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중국의 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시나 한문으로 된 새로운 문화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문화는 양반 계층에게 시작되어서 점점 서민 계층이 향유를 하고 있는 아래로 내려가는 양상을 보였는데, 아래로 내려가게 됨으로써 일반 서민들에게도 여러 가지 소설 등이 유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쇄술 등이 발달함에 따라서, 사람들의 입으로만 내려오던 것들이 종이로 인쇄가 되고 조금 더 편리하고 용이한 방법을 통해 일반 민중들에게 전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판소리와 같은 것이 현재의 소설 형태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기까지의 대략의 과정입니다.

 

<아기장수>신화의 경우 굉장히 오래된 전설입니다. 그러나 그 전설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그 이상 미흡한 것이 없고, 그 이상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있는 그대로의 전설을 우리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질감이 느껴지고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현대에 그러한 전설 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변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기장수>신화는 그대로 교과서 등에도 실리기도 하였지만 그 외에 KBS 2TV를 통해서 애니메이션 화가 되거나, 최인훈에 의해서 희곡화가 되기도 하였고, 김동리에 의해서 소설화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아기장수>는 여전히 우리 삶 근처에 머물기 위해서 자신의 형태를 여러 번 바꾸고 그대로 우리들의 곁에 살아 남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이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야기의 구조 역시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KBS 2TV에서 애니메이션 화 된 <아기장수>의 경우 환상 세계 속에서 어린 영웅이 악을 무찌르고 환상 세계를 구한다는 어린이들을 위한 상상력이 가득 담긴 그런 산물로 변화를 하였습니다.

 

반면,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라는 작품을 본다면, 원작과는 전혀 다르게 민중의 소망을 품는 형식으로 그 변이 과정을 거쳤습니다, 원작의 경우 아기 장수가 채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민중의 희망을 들어주지 못하고 죽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라는 희곡을 보게 된다면, 아기장수라는 인물을 죽이기 보다는 용마를 타고 멀리로 날아가 우리에게 다시금 돌아오게 될 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변이의 과정을 통해서 조금 더 우리 민중이 원하고 바라는 그러한 결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황토기>의 경우 조금 다른 변이 과정을 가집니다. 요즘 여러 장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원래의 기본 소재를 바탕으로 하여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내는 형식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현재 방송가나 각종 문학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방법으로써, 원작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매력을 현대적인 특성으로 잘 포장을 하여서 내놓는 방법입니다. <황토기>는 기존의 <아기장수>신화가 가지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와서 현대의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실제로도 책을 읽는 내내, 이것이 <아기장수>이야기가 바탕이 되어서 탄생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는 김동리 그 스스로가 만들어 낸 하나의 향토 소설과도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글들은 원작을 알고 읽으나 모르고 읽으나 어느 쪽이건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변이라는 것은 우리 문학에서만 드러나는 형식은 아닙니다. 서양의 경우에도 고전 동화인 <신데렐라>이야기가 여태까지 각종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는 칙릿이라는 장르 역시, 이러한 <신데렐라>이야기에 기초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변이 과정은 현재 전 세계 문화 시장에 가장 큰 것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실제로도 그 상업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기장수>의 변이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현재까지 여러 가지 변이 과정을 거쳤고, 각 방식 모두 각기의 자리에서 꽤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이의 가장 중요한 점은 기존의 원본과 다른 형식을 지녀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그 형식을 지녀야 한다는 것은 같은 소설이나 그러한 것이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의 모호한 개념하에서 사람들은 신화나 전설, 그리고 소설에 대한 것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저 과거의 신화 역시 하나의 소설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이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원본과 얼마나 가까우면서 원본과 어디까지 멀어질 수 있냐는 것입니다. 즉 원본과 비슷한 형식과 소재는 유지하면서 원본과 다른 독자들이나 관객들을 이끌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변이라는 것은 변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표절과도 같은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아류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가 가지고 있는 변이 과정은 간단합니다. 위에서도 한 번 언급했다시피, <아기장수>신화의 결말에서 아기 장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의 일은 각 지역마다 천차만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나, 결국 아기 장수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모두 동일하게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 아기 장수가 민중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속에는 현재 우리의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 아쉬움이 함께 반영되면서 아기 장수를 죽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의견입니다. 만일 아기 장수를 죽이지 않았다면 현재 민중들의 삶은 더욱더 밝고 긍정적인 삶이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 전설의 경우 지나치게 비극을 강조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민중들은 그 속에서 작게 가질 수 있는 아기 장수와 미래에 대한 희망 마저도 아기장수의 죽음과 함께 무너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의 경우 그 결말은 원작과 다르게 해석을 하면서 하나의 희망 요건을 제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작과 같이 이 속의 아기 장수 역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가지만, 죽음으로써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입장에서 떠나간다는 것을 보아 다시금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아기 장수가 죽지 않는다면 민중은 여전히 그런 아기 장수에게 희망을 가지고 의지를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아예 바뀔 것이 없다는 상황 보다는, 그래도 그러한 인물이 있었다라는 사실에 희망을 거는 것이 조금 더 민중에게 든든한 지지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는 민중의 희망을 져버리지 않는 하나의 튼튼한 지지대의 형식을 띈 희곡으로 변이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단순히 결말의 내용만 변경한 것으로 과거의 작품의 매력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반면 <황토기>가 가지고 있는 변이의 과정은 조금 더 분명합니다. <황토기>속에서 <아기 장수>와 닮아 있는 소재는 오직 억새풀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아기 장수>신화를 떠올리면서 읽지 않는 이상 그것이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황토기>가 가지고 있는 변이의 특징은 위에 언급한 다른 문화의 변이 과정처럼 기존의 형식을 모티브로 하여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형식의 변이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경우 독자들이 식상함을 덜 느끼고 더욱 더 신선하게 받아들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황토기>의 경우 조금 그 변이의 형식이 모호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그 이유는 <황토기>를 딱 보면서 <아기장수>의 신화에 대해서 바로 떠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변이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읽으면서 원본이 바로 생각이 나고 그것을 얼마나 비꼴 수 있느냐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황토기>는 그저 모티브를 딴 또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 <아기 장수>의 또 다른 변이 과정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아기 장수>신화와 마찬가지로 억새풀이라는 소재가 나온다는 점에 있어서는 확실히 그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변이를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황토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러한 변이의 과정과는 다른 변이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이의 과정을 거쳤기에 현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재미 없는 전설의 한 부분으로 인식을 하고 있기 보다는 재미 있는 소설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황토기>가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변이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문화라는 것은 시대가 내려오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함에 따라서 변이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과거의 것을 지켜야 한다고 하나, 만일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단 하나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과거의 전통은 오래지 않아 결국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문화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변이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기존의 것들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며 새로운 것만을 원하는 그러한 변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그 결말이나 형식에 변화를 부는 그런 변이의 형식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변이의 과정은 오히려 현대의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과거에 더욱 흥미를 갖게 만드는 특징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 전통의 가치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이러한 것에 대해서 서양에서는 조금 더 발 빠르게 대처를 하여서, 동화 속의 도깨비 이야기였던 <슈렉>을 전 세계의 최고 히트 애니메이션으로 탄생을 시켰고, 미국에서는 <신데렐라>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여러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아기장수>전설이 변이의 과정을 거친 것처럼 과거의 전설이나 신화, 민담들을 현대 인의 입맛에 맞게 새롭게 변형을 시켜서 현대에 발 빠르게 적응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있는 전통의 가치가 서양의 것이 아닌 한국의 것, 우리의 것으로 되게 만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옛날 옛적에 훠이훠이>라는 작품과 <황토기>라는 작품은, 현대의 감성에 맞게 새로 쓰여진 가장 긍정적인 변이의 형태를 지닌 것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직까지 다른 작품의 변이가 이렇게 활발하게 진행이 되지는 않는 듯 합니다. 그 만큼 우리들이 전통에 가지고 있는 희망이 적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변이의 긍정적인 효과 등을 통해서 더 재미있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전통의 맥을 끊지 않고, 계속 후손까지 이어나가는 긍정적인 일들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