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의 판타지
오! 나의 공주님
열여섯 번째 이야기
“마음을 정했다는 말인가?”
“예.”
“하아.”
은해 부가 깊은 신음을 흘렸다.
“지금 그 마음에, 그러한 객기를 부리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르겠네. 허나, 일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클 거야.”
“알고 있습니다.”
성오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 동안 살고 왔던, 살아 왔던 그 모든 것들 다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는 것인가? 응? 어떻게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가 있다는 것이야. 어째서?”
은해 부가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
“저희 두 사람은 이어져 있으니까요.”
성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저희 두 사람 그렇게 가벼운 인연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아니세요?”
“알고야 있지.”
은해 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네에게까지 억지로 그 운명이라는 것을 종용하고 싶지가 않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아니요.”
성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 상처 주기 싫어요.”
“그렇다면 말이네.”
“네?”
은해 부가 아래 입술을 물었다.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다면 사랑하지 않을 텐가?”
“!”
성오의 눈이 흔들렸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도 살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은해 부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을 하고 있는 방법에 대해서 확신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야.”
“확신이 없다고요?”
“그래.”
은해 부가 성오를 바라봤다.
“확신이 없는 방법이지.”
“그 방법이 뭔데요?”
성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방법이 있는 건데요?”
“망각.”
“!”
“두 사람 모두 마음을 잃는다면, 동시에 그 마음을 잃게 된다면, 분명, 확실히 가능한 일일 것이야.”
은해 부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이미 많은 인간들이 그러한 망각의 방법을 통해서 인어들을 피해 살아나갈 수가 있었단 말이지.”
“망각이라고요.”
성오가 은해 부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은해 씨가 평생 살아 오던 이 터전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은해 씨가 계속 미소를 지으며 살 수 있나요?”
“그건 모르네.”
“네?”
성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간의 경우, 그 동안 단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살아서 다시 자신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네.”
“그럼 인어는요?”
성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인어는 다른가요?”
“그래.”
은해 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
“무엇이요?”
성오가 다급히 물었다.
“도대체 어떠한 것이 다른대요?”
“인어의 경우 반반이 가장 큰 확률이네.”
“!”
성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니까 그 망각의 약이라는 것을 먹고도, 운이 없다면, 나머지 절반이라면 은해 씨는 물거품이 되어서 사라진다는 건가요? 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나가는 것이고 말이에요?”
“그렇다네.”
은해 부가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자네는 안전하지.”
“하아.”
성오가 한숨을 토해냈다.
“무슨 이유죠?”
“무엇이 말인가?”
“왜 저에게 말을 하시는 건데요?”
성오가 슬픈 눈으로 은해 부를 바라봤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시면 되는 거잖아요.”
“어쩔 수가 없네.”
“어쩔 수가 없다고요?”
“그래.”
은해 부가 아래 입술을 물었다.
“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하니까.”
“!”
성오가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아버님의 말씀은, 인어 족속들을 위한 협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저를 어떻게 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를 살리고 딸을 죽이는 방법이 있다고 하시는 건가요?”
“꼭 죽지 않네.”
은해 부가 다급히 말을 했다.
“기억을 잃고 살 수도 있어.”
“죽을 수도 있죠.”
성오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건 싫어요.”
“하아.”
은해 부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럴 거라고는 생각을 했네.”
“예?”
성오가 눈을 깜빡였다.
“그, 그게 무슨?”
“자네는 진심으로 은해를 바라고 있다고 말이야.”
은해 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된다면 두 사람 모두가 위험한데 말이야.”
“상관 없습니다.”
성오가 단호히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쪽에 걸겠습니다.”
“그러지. 그럼.”
“미친.”
해동이 낮게 욕을 했다.
“목소리라니.”
그리고 목소리는 사라졌다.
“하아.”
하지만 고민은 계속 남고 있었다.
“죽이라고?”
목소리가 자꾸만 머리 속에서 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래?”
자신은 절대로, 반드시 그러한 일을 할 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은해를 아프게 하는 짓 절대로 못 했다.
“그 망할 목소리는 도대체.”
해동은 고개를 저었다.
“은해.”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점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은해의 자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정했답니까?”
“예.”
은해 부가 고개를 숙였다.
“정했답니다.”
“하아.”
전대 장로가 고개를 저었다.
“어찌 이러한 일이.”
“그렇게 말입니다.”
은해 부가 슬픈 미소를 지어싿.
“어쩔 수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정말로 될 수가 없습니까?”
“예.”
은해 부가 고개를 숙였다.
“방법은 없는 듯 합니다.”
“그렇군요.”
전대 장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왕님을 원망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없는 일이지요.”
“이보시게 장로회장.”
“예.”
“정녕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은해 부가 입을 다물었다.
“다시는 딸을 못 볼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정녕 괜찮습니까?”
“예.”
은해 부가 미소를 지었다.
“대신 저는 아들을 얻지 않습니까?”
“현명하구려.”
전대 장로가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내 곧 모든 것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예.”
은해 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저는 전대 장로님만을 믿고 물러나겠습니다.”
“그러하세요.”
“그럼.”
은해 부가 고개를 숙였다.
“하아.”
전대 장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
마음이 아렸다.
“은해 부. 은해는 정말 어찌 되는 것인가?”
용왕님이 원망스러웠다.
“다시 한 번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순간 전대 장로의 머리에 무언가가 스쳤다.
“해동?”
그리고 얼굴이 굳었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용왕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란 말인가.”
마음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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