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의 판타지
오! 나의 공주님
열여덟 번째 이야기
“제길.”
해동이 아래 입술을 물었다.
“하아.”
이러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상냥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망쳐 버렸다. 늘 조심하고자 하지만 그게 잘 안 되었다.
‘내 도움이 필요하지?’
“!”
다시 들리는 목소리.
“도, 도대체 뭐야?”
‘내가 도와준다면, 너는 분명히 그 여자 아이를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어때? 끌리지 않아?’
“하, 됐어.”
해동은 코웃음을 치며 단호히 거절했다.
“너 따위의 믿을 수 없는 존재에게 도움을 받느니, 평생 그냥 혼자 아파하는 쪽을 택하겠어. 그게 내 마음에 훨씬 편할 거야.”
‘그래?’
목소리에는 기분 나쁜 웃음이 어려 있었다.
‘내가 너이기에 장담을 하는데 말이야. 너는 절대로 그 여자 아이를 너의 것으로 만들지 못 해. 너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겠어? 응?’
“아니.”
해동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절대로 네 도움을 받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확실해. 너는 나를 파멸로 이끌 거니까.”
‘아니라면?’
“!”
‘아니라면 나를 택할 거야?’
목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너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라면, 나로 인해서 네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될 것이 정말 불변의 진리라면 말이야. 너는 나를 택하겠어? 이 목소리를 너의 것으로 하겠어? 어때? 말 해 봐.’
“그래도 아니야.”
해동은 아래 입술을 꽉 물었다.
“그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거니까.”
“얼굴이 창백해요.”
“아니에요.”
은해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더 쉬지 않고요.”
“괜찮아요.”
성오가 싱긋 웃었다.
“이미 다 나았는 걸요.”
“그래도요.”
은해가 싱긋 웃었다.
“아직 몸이 무리를 하면 안 된다고요.”
“이 정도 돌아다니는 건 무리도 아닙니다.”
“에. 아닐 걸요?”
은해가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크게 사고가 났었다고요.”
“이곳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많이 치유가 되는 지 은해 씨는 아마 전혀 모르고 있을 걸요?”
“여기에 있는 게 왜 치료가 되요?”
은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의미에요?”
“정말 몰라요?”
“네.”
은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의미인데요?”
“당신이 있잖아요.”
“!”
“당신이 있으니까 안 아파요.”
“마, 말도 안 돼요.”
은해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런 게 어디 말이나 되나요?”
“왜 말이 안 되요?”
성오가 싱긋 웃었다.
“은해 씨는 내 삶에 정말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여자에요. 그런 사람이니까 당연히 말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
은해의 볼이 붉어졌다.
“그,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왜요?”
성오가 씩 웃었다.
“내 목소리 듣기 싫어요?”
“그런 거 아니란 거 알잖아요.”
은해가 살짝 성오를 흘겨 봤다.
“나 성오 씨에게 그런 말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말도 듣고 싶지 않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요.”
“네.”
성오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은해 씨.”
“네.”
은해가 고개를 다시 들었다.
“왜요?”
“은해 씨는 내가 왜 좋아요? 그저, 한 순간에 내가 인간이어서 그러한 호기심 그런 거 아니에요?”
“당연하죠.”
은해가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둘은 운명이라니까요.”
“그런 게 아니면요?”
“네?”
은해가 눈을 깜빡였다.
“그, 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너무 궁금해서요.”
성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은해 씨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꼭 우리 두 사람 그저 인연이라서 그래서 맺어지는 것만 같잖아요. 만일 우리 두 사람이 그러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라면, 우리 두 사람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 두 사람 사랑하는 사이가 되기는, 그러기는 했던 걸까요?”
“글쎼요?”
은해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는 있어요.”
“뭘요?”
“지금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거 말이에요.”
은해가 빤히 성오를 바라봤다.
“왜 그거에 흔들려요?”
“모르겠어요.”
성오가 가볍게 어깨를 들썩했다.
“나 정말,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내가 싫어요?”
“아니요.”
성오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은해 씨 같은 사람을 어떻게 싫어해요?”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는 거예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성오의 눈이 슬프게 빛이 났다.
“정말 어떠한 상황이라도,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를 사랑해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물론이에요.”
은해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면, 만일 그럴 수 없었을 거라면, 애초에 당신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이 인연이라는 그러한 이야기, 내 마음이 안 가면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 건가요?”
“그런 거예요.”
은해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아요.”
“고마워요.”
성오가 은해의 손을 잡았다.
“은해 씨는 정말 든든한 사람이에요.”
“아니요.”
은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오 씨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것도 못 했을 거예요.”
“거짓말.”
“거짓말 아니에요.”
은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정말 달라졌어요.”
“뭐가요?”
“흐음.”
은해가 반대 검지를 입에 물었다.
“나 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안 그랬어요?”
“네.”
은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오 씨도 보셨죠?”
“뭘요?”
“우리 아버지 엄하신 거.”
“아.”
성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왜요?”
“우리 집 늘 그렇거든요.”
은해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늘 아버지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냥 아버지가 시키는 것만 하고 말이에요.”
“지금은요?”
“내가 할 말 하잖아요.”
은해가 싱긋 웃었다.
“훨씬 나아졌다고요.”
“나아진 게 겨우 그거라고요?”
“네.”
은해가 살짝 혀를 내밀었다.
“아무튼 이제 우리 정식으로 혼인이 될 거예요.”
“하아, 살짝 걱정되네요.”
성오가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달라지는 거라니 말이에요.”
“나도 긴장되요.”
“아플까요?”
“글쎄요?”
은해가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러한 이야기는 듣지 못 했는 걸요?”
“하아.”
성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아픈 것 정말 하나도 못 견디는 데 말이에요. 하나도 안 아팠으면,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안 아플 거에요.”
은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로 사랑하니까 하는 거잖아요.”
“쿡.”
성오가 낮게 웃었다.
“은해 씨 선수 같아요.”
“네? 아니에요.”
“은해 씨 우리 산책 할래요?”
“좋아요.”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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