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권순재
어릴 적,
나는 여백을 너무나도 싫어했다.
도화지의 하얀 부분,
그 부분은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크레파스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붓을 들었다.
남은 곳 하나 없이,
나는 점점 그곳을 차례대로 메꾸어 나갔다.
어릴 적 나는,
그 빈 부분이 죄악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 부분이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조금 머리가 굵어진 요즘.
그 빈틈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숨을 쉴 공간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오늘.
나에게 그 모든 것은 지옥으로 닿아온다.
그 빈틈 없는 공간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다.
어릴 적 죄악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그 부분이,
이 시절 나에게,
하나의 숨통이 될 줄 왜 몰랐던가?
알았더라면,
그 시절 그것을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나를 살려둘 것을.
조금만 더 나에게 여유를 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