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창고/시 읽는 하루

붉은 귀 거북이

권정선재 2009. 12. 7. 08:44
 

붉은 귀 거북이



권순재




어릴 적 거북이를 죽인 적 있었다.

그러나 그 거북이를 죽을 때,

어떠한 악감정과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선했다.

너무나도 선해서 거북이를 죽였다.


한 겨울.

거북이는 추워보였다.

차가운 물 속.

거북이는 시려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

그 거북이를 나의 손 위에 얹어 두었다.

꼬물꼬물한 그 작은 생명은,

마치 자신의 추위를 나에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에게는 내 방이 있었다.

나의 방은 길었고,

나의 방은 특별했다.


그 방에서 나는 어느 부분이 따뜻한 지 알고 있었고,

그 위에는 코트가 걸려 있었다.


나는 거북을 그곳에 내려놓고,

따뜻하게 코트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 거북은,

영원히 따뜻한 저 먼 곳으로,

엉금엉금 천천히 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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