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 분석
1. 꽃
[꽃]이라는 시는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 한 번쯤은 봤을만한 시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이후로 의미가 생기게 된다는 것으로, 실존주의라는 단어와 연관을 할 수 있는 시입니다. 시를 분석해보자면 전문 4연 15행으로 된 시입니다. 이 시의 제재는 꽃이고, 이 때, 꽃은 하나의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작가의 관념을 대변하는 추상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의미를 인식하는 행위이며,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작가는 이 시에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진정한 관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를 존재론적 탐구의 시가 아니라 단순한 연시로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하고 정제된 형식은 이 시의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제 1연을 살펴보면 인식의 주체인 내가 그 무엇인기 모를 대상을 앞에 두고 아직 그것에 아무런 정신적, 관념적 작용을 가하지 않았을 때, 그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제 2연에서는 '이름'으로 표상되는 인식 작용이 있다면 그 때 비로소 그 객체는 하나의 의미화 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3연은 이와 같이 자기 자신 역시 그의 특징에 걸맞은 인식의 틀을 통해서 적절히 의미화 되기를 서정적 화자는 갈망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제 4연은 그러한 상호 인식의 바탕 위에서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고, 여기서 의미 있는 존재란 하나의 몸짓(대상)이 이름의 부여 과정을 통해 가장 아름다움 빛깔과 향기의 존재로 변용하는 것, 혹은 그 결과물을 말합니다.
<참고> ‘꽃’에 나타난 작가의 존재론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애송되는 시이다. 너와 나를 연인 관계에 놓인 사람으로 대치하여,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평범한 연애시의 범주에 안주하고 있는 작품이 아니라 이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진 인간 존재의 본질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의미 없는 것에서, 상호 인식을 통하여 의미 있는 것, 또는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진리를 형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시입니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인간의 이런 존재 인식의 수단을 언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여기서 언어라는 것은 단순한 일상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어의 가장 정제된 형태로서의 시적 언어를 가리킴은 물론이고 아울러 이 말은 인간이 시 또는 시적 언어를 통하여 자기 존재를 표현한다는 말입니다.1)
2. 꽃을 위한 서시
이 시에서 '꽃'은 사물에 내재해 있는 본질 혹은 본질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나'는 그것에 접근해 본질을 규명하려는 인식의 주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물의 본질은 언제나 완전한 인식의 가능성 저편에 있으며 마치 영원히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와 같습니다. 이것이 이 시가 갖는 철학적 의미입니다.
작가 김춘수를 흔히 '인식의 시인', '이미지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작가가 존재론적 입장에서 사물의 내면적 의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면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시는 구체적인 심상을 제시하지 않고 철학적이라 할 명상의 세계를 읊어, 우리가 보통 보아 온 시와 사뭇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 작품입니다. 이런 시를 존재 탐구의 시라 부르고 있거니와, 시를 정서 표출의 과정으로 보기보다 그것 자체를 존재를 규정하는 진실한 세계로 보는데서 창조된 작품입니다.
시구의 이해
-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는 지금 사물의 본질적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이다(은유)
- 나의 손이 닿으면~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일상적 행위로는 존재의 본질을 도저히 알 수 없다. '까마득한 어둠'은 무지(無知)의 상태를 의미한다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불안한 상태에 놓인 삶. 즉 인간은 불안과 위기감 속에서 존재한다
-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경험과 감성을 모아 작은 불꽃일지라도 밝혀 이 삶의 어두운 상태를 깨치려고
- 나의 울음은~탑을 흔들다가: '나의 울음' 즉 대상에 대한 추구의 노력은 돌개바람과 같이 왕성하게 되어 그치지 않다가
-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돌'은 도달하기 어려운 대상의 본질을, '금'은 내가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대상의 상징. 곧 본질까지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금과 같이 소중한 일이 될 것이라는 뜻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얼굴을 가리운 신부와 같이 꽃의 정체, 즉 본질적인 의미는 그대로 막연한 채 남게 된다.(은유) 2)
3. 나의 하나님
이 시는 은유를 통해 하나님이란 존재의 진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구조는 매우 단순한데, ‘A=B'의 구조로 병렬됩니다. 여기서 A는 하나님, B는 비유된 이미지입니다. 그것들은 네 가지로 제시되었는데, 늙은 비애(悲哀), 묵은 연정, 순결함, 청신함 등입니다. 이는 또 점층적 성격을 띱니다. 비애→청신함으로 전이되며, 늙음에서 젊음으로 바뀌어 갑니다. 1단락에서 제시된 ’늙은 비애‘라는 규정은, 현실의 혹독함, 부정적 인간들에 지친 존재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명랑하고 젊은 이미지가 아닌, 성큼 늙어 버린 존재, 인간 세상에 비애를 느끼는 존재로 제시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과 푸줏간에 걸린 고기 살점과는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또한 푸줏간의 고기처럼 속된 인간들에게는 하찮은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존재에 대해 화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앞의 진술은 화자의 의식이기보다는 속된 인간들의 무명(無明)에 대한 일종의 냉소적 태도라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화자의 진정한 의식은 하나님을 보다 진중한 의미로 인식한다는 데 있습니다.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한 놋쇠 항아리처럼 쉬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그 의미는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못 박아 죽인다고 죽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생물적 존재가 이미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식의 끝에 화자의 의식은 보다 밝은 세계로 나아갑니다. 대낮에도 옷을 벗을 만큼 천진성을 지닌 것으로 본 것이 그러한데, 전반부의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해집니다.
이 시의 비유는 무척 당돌합니다. 이런 비유를 래디컬 메타포라 하는데, 비유된 사상(事象)의 이미지 또한 래디컬한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당돌하게 연결되는 사상들의 결합은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데 이 충격은 단순히 정서상의 문제가 아니라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이미 지적 사고 작용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시적 경향은 현대시의 한 특질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시는 주지적입니다. 김춘수의 시에 보이는 래디컬한 이미지 결합은 그러한 주지적 성향을 특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시가 의도하는 것도 당돌한 이미지, 다시 말하여 이질적 사물들의 결합에서 오는 지적 충격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행별 해석>
1~6행 -전반부
- 늙은 비애(애처러움)
- 푸줏간의 고기 살점(희생물)
- 슬라브 여인의 놋쇠 항아리(묵중함)
슬픔, 고통, 처절함, 무거움을 환기 시킨다.
7행~14행 -후반부
- 어린애 같은 순결(순결함)
- 연둣빛 바람(청신함)
나의 하나님= 순결, 연둣빛 바람
맑고 밝음의 이미지.3)
4. 능금
능금이 익어가는 신비로운 자연 현상을 통해 존재의 실체를 발견하고 있는 작품으로 생명 현상이란 모두 신비로운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과일이 탐스럽게 결실을 맺는 것은 특히 신비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시인은 능금과 가을을 의인화하여 ‘그리움’과 ‘충만함’으로 일궈내는 성숙의 신비를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이를 통해 사물의 본질이라는 ‘존재의 실체’까지 밝혀 나가는 섬세하고 차분하며 지적인 인식의 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4)
이는 철학적으로 인식론(認識論)에 근거하는 것으로 다분히 지적 요소가 가미되며, 능금의 외양(外樣)보다는 능금 속에 도사린 참 진실(우주적 진실)을 깊은 사념(思念) 끝에 드러내고자 하는 치열한 의식이 전제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상적(現象的) 세계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태도는 현대시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었으며, 시의 단계를 보다 성숙한 것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향을 우리는 주지시(主知詩)라고 합니다.
익어 가는 능금에 대한 경이감을 차분하게 노래하며 화자는 끊임없는 물음을 보내 능금의 존재 비밀을 알아냅니다. 능금은 겉모습이 아닌 실체를 드러내며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연별 해석>
1연의 능금의 실체는 그리움으로 능금의 빛깔과 향기가 되어 우리의 손에 닿게 되고 우리에게 축제처럼 찬란하고 흐뭇한 충족감을 안겨 줍니다.
2연의 능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알알이 익어 가고 그리고 가장 높고도 숭고한 곳에서 가을은 가장 큰 은총과 사랑으로 능금의 충실을 도와줍니다.
3연은 능금의 내면, 아름다운 미소가 있는 그 깊숙한 곳에는 예로부터 존재하는 한없이 넓고 시원한 감정의 바다, 넘치는 생의 감각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5)
5.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는 관념의 시를 쓰던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면 관념과 의미를 해체하고 대상이 갖는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무의미의 시를 씁니다.
단연 형태로 씌어진 이 작품은 순수한 생명 의식을 잘 포착했습니다. 이 작품 속 공간인 '샤갈의 마을'은 가공의 세계로, 화가인 샤갈의 그림인 <눈 내리는 마을>이 연상이 되기도 하지만, 샤갈의 화풍인 초현실주의 경향의 작품 세계와도 연결이 됩니다.
이 시도 그런 계열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이 시의 각 행들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에 나오는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적 세계이다.
‘눈’과 ‘새로 돋은 정맥’, ‘올리브빛’, ‘불’ 등의 이질적인 시어들은 모두 독자적인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순수하고 맑은 생명감이라는 공통적인 심상을 연상시켜 줍니다.
<행별 해석>
1행 샤갈의 그림 속의 세계
2-4행 사나이의 모습에 나타난 생동감
5-9행 샤갈의 마을을 덮는 눈의 모습
10-12행 눈 속에 소생하는 생명
13-끝 맑고 순수한 생명의 이미지6)
6. 내가 만난 이중섭
이 시의 주제는 이중섭에 대한 '나'의 경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을 할 수 있고, 제제는 이중섭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중섭의 전기를 이해해야만 해석이 될 수 있는 시입니다. 이중섭은 일제 때에 일본 유학을 가서 미술학교를 다녔고, 일본인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이후 해방이 되어 가족을 데리고 조선으로 나와서 고향 원산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내려왔고, 당시는 그림이 돈이 되는 시절이 아니라 가난에 시달리다가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돌아갔고, 생활이 안정되면 다시 불러오리라 기약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6.25가 터졌고 부산 피난지에서 현해탄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아내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이중섭의 모습을 회상하는 시라고 보면 됩니다.
1) 자라바우, “자라바우의 세상보기”, 2009.12.6. <http://cafe.daum.net/BBQ41/4bfw/383?docid=1DLFJ|4bfw|
383|20090416091451&q=%B1%E8%C3%E1%BC%F6%20%B2%C9%20%BA%D0%BC%AE&srchid=CCB1DLF
J|4bfw|383|20090416091451>
2) 안형근, “안형근의 훈민정음”, 2009.12.6. <http://ahg21.com.ne.kr/%B9%AE,%B2%C9%C0%BB%20%C0%A
7%C7%D1%20%BC%AD%BD%C3.htm>
3) H.Y상위, “현녀의 즐겨찾기”, 2009.12.6. <http://cafe.daum.net/trusthyunnyue/MSS7/245?docid=196UF|
MSS7|245|20090813164717&q=%B1%E8%C3%E1%BC%F6%20%B3%AA%C0%C7%20%C7%CF%B3%AA%B
4%D4%20%C7%D8%BC%B3&srchid=CCB196UF|MSS7|245|20090813164717>
4) 상징사전, “현대시 천편”, 2009.12.6. <http://blog.daum.net/korehan/11600944?srchid=BR1http%3A%2F%2
Fblog.daum.net%2Fkorehan%2F11600944>
5) H.Y 상위, “현녀의 즐겨찾기”. 2009.12.6. <http://cafe.daum.net/trusthyunnyue/MSS7/215?docid=196
UF|MSS7|215|20090619032000&q=%B1%E8%C3%E1%BC%F6%20%B4%C9%B1%DD%20%C7%D8%BC%B
3&srchid=CCB196UF|MSS7|215|20090619032000>
6) 강기룡, “강기룡의 정선국어자료실”, 2009.12.6 <http://korstudy.com/board/board.php?board=poem&com
mand=body&no=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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