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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7-2]

권정선재 2011. 1. 9. 07:00

 

죄송해요.”

아닙니다.”

주연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그러니까 권선재 그 인간이 끝까지 내 자존심을 뭉겐다는 거 이거지?

그래 지금 권선재 선배는 대기실에 계시나요?”

, 그렇기는 한데.”

제가 잠시 가도 될까요?”

?”

매니저는 놀란 눈으로 주연을 바라봤다. 이 여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선재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도 알 것인데, 왜 이렇게 알지 못하는 척 행동을 하는 거지?

거기는 왜?”

직접 얼굴 좀 뵈려고요.”

주연은 싱긋 웃었다.

그럼 같이 가시죠.”

, ? .”

 

나 물 좀 가져다주라.”

저기.”

문이 열리는 소리에 매니저에 부탁을 했던 선재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주연이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기실 잘못 찾은 것 같은데?”

제대로 왔어요. 제 대기실이 아니라 권선재 선배님의 대기실을 찾아서 온 거니까 말이에요.”

나는 할 말이 없는데?”

선재는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같이 일을 하는 사이에 너무 심하게 구시는 거 아니에요? 지난 번에 제 대기실에 와서 그렇게 퍼붓고 가셔도 저는 가만히 있었다고요. 그런데 저는 그냥 좋게 오는 건데도 안 된다는 거예요?”

좋게?”

선재는 코웃음을 치면서 대본에서 눈을 떼고는 주연을 바라봤다. 갑자기 자신을 보는 선재 탓에 살짝 숨을 들이쉰 주연이었지만, 곧 그녀는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왕 온 거니까 내 대기실까지 무슨 일로 왔는지 한 번 들어보기나 하죠. 무슨 일로 온 겁니까?”

같이 밥 먹어요.”

그 이야기라면 이미 싫다고 내 매니저를 통해서 이야기를 했을 텐데 말이에요. 원주연 씨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 사람입니까? 같이 밥을 먹기 싫다. 면전에 대고 말을 해야 알아듣는 겁니까?”

심하시네요.”

주연이 미소를 지으면서 도도하게 대꾸했다.

서로 나쁘게 행동을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건가요? 우리 두 사람 연인으로 이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너무 까칠하게 구신다.”

연인 아닙니다.”

선재는 딱 끊어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실제로도 이 드라마에서 선재는 누구와 엮일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선재는 원주연이 아닌 다른 파트너인 여자 선배와 커플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당신 팬들도 당신이 보이고 있는 그 청순가련한척 하는 행동이 가짜라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어머, 가짜라니요.”

주연은 입을 가리면서 교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가짜는 아니죠. 그냥 여러 가지 성격이 있다, 그 정도로만 이해를 해주세요. 아무튼 같이 식사나 하죠.”

저는 싸구려 밥 안 먹습니다.”

어머, 싸구려 밥 아니에요.”

주연이 유난히 호들갑을 떨면서 말을 하자 선재는 다시 가만히 그녀를 지켜봤다. 도대체 이 여자는 이렇게 주제를 모를 수가 있는 건가?

권선재 선배님 친구분이 운영을 하신다는 그 이태리 음식 레스토랑에 갈 거예요. 그 정도면 괜찮죠?”

거기 싸구려입니다.”

?”

갑작스러운 선재의 공격을 받은 주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입맛이 고급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친구가 하는 곳을 말을 한 것인데도 그곳까지 싸구려라고 말을 할 줄이야.

친구 분이 하시는 가게잖아요.”

그런데요?”

선재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반문했다.

친구가 하는 곳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곳이라는 법이 있습니까? 내 입에 안 맞으면 아닌 거 아닙니까?”

, 그게.”

주연은 당혹스러운 기분에 휩쌓였다. 분명히 자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선재가 요 근래 매일 같이 그곳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거기 음식을 좋아하시는 거 아니셨어요?”

조사라도 했나보네.”

선재는 묘하게 미소를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연의 표정을 보니 대충 답이 나오고 있었다.

나를 쫓아다녔습니까?”

아니요.”

아니면 쫓아다니라고 시켰습니까?”

, 아니죠.”

말을 더듬는 거 보니까 맞나보네.”

선재는 대본을 덮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가 왜 이렇게 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재가 생각을 하는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선재는 가만히 주연을 노려봤다.

원주연 씨. 이럴 시간이 있으면 대본을 한 장이라도 더 보십시오. 지금 원주연 씨처럼 연기를 해서 그 인기가 오래 갈 거라고 생각을 합니까? 아니에요. 그 인기 금방 사그라들고 말 거라고요.”

모르죠.”

주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당당하게 대꾸했다.

제가 생각을 하기에는 권선재 선배님의 인기가 더 먼저 뜰어질 것 같네요. 지금 자기가 조금 인기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군요.”

내가 인기가 있어서 무시를 한다고요?”

선재가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여자 지금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내가 원주연 씨를 무시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인기가 있어서 무시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주연 씨가 너무나도 부족하니까. 그래서 무시를 하는 겁니다. 어디 수준에 맞아야 연기를 하죠.”

, 뭐라고요?”

주연은 당혹스러웠다. 여태까지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연기를 못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식으로 자신을 무시를 할 수가 있는 것일까? 주연은 화가 났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무슨 말이 지나치다는 겁니까?”

권선재 선배가 선배면 다예요? 어떻게 후배 연기자에게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는 거죠?”

다 당신이 이렇게 만든 겁니다.”

뭐라고요?”

선재가 싸늘하게 미소를 짓자 주연은 냉기가 느껴졌다.

내가 당신보고 내 대기실로 오라고 했습니까?”

아니요.”

당신이 온 겁니다. 나는 당신이 싫다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나에게 온 거라고요. 그런데 나는 당신이라는 배우가 너무나도 싫습니다. 제대로 노력도 하지 않고 억울한 척을 하는 배우인 당신이 너무나도 싫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쫓아야 겠죠? 내 구역인데 말이에요. 내 구역인데도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가 쫓아야 하는 그런 존재라도 된다는 뜻이에요?”

.”

선재가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선재의 유쾌한 행동에 주연은 어이가 없었다. 이 남자 무례해도 정도가 넘치게 무례하게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금 뭐하는 행동이에요? 이게 지금 같이 연기를 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당연하죠. 배려가 아닌데.”

좋아요.”

주연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도, 이 남자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저는 돌아가죠.”

잘 생각했습니다.”

주연이 발을 구르면서 멀어지자 선재는 씩 웃었다. 매니저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그랬다가 또 뭐라고 하면 어쩌려고요?”

지라고 수가 있냐?”

선재는 다시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아우, 짜증나.”

코디네이터는 가만히 주연의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선재에게 정말로 제대로 당한 모양이었다.

언니 괜찮으세요?”

지금 내가 괜찮아 보여?”

주연은 왼손 엄지를 물었다. 그 남자를 어떻게 해서라도 기를 팍 죽이고 싶었다. 자신을 함부로 보지 못하도록.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왜 여기서 일을 하는 거야.”

은비 다음으로 늦게 들어온 주방 직원이 결국 참다 못해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런 그의 시선에 은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권선재 같은 사람이 은비 씨 좋아한다면서요? 그러면 여기에 민폐는 안 끼치고 그만 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은비는 당혹스러웠다. 자신의 존재가 그토록 민폐였던 것일까? 접시를 깨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방 사람들하고는 나쁜 사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접시를 깨는 것도 확실히 줄었는데.

죄송합니다.”

그 죄송합니다 소리 좀 그만 합시다. 죄송하면 일을 그만 두던가, 접시를 깨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만 하지.”

지난 번에 은비의 편을 들어주었던 요리사가 말을 하자 결국 사내는 다시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괜찮아요?”

, .”

은비는 겨우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가 잘못을 한 거였다.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었다.

일이 제대로 안 되니까 그런 걸 거예요.”

알아요.”

은비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상처 같은 거 받지 않았어요.”

, 너는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깰 수도 있지, 뭐 그런 걸 가지고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그러냐?”

왜 나한테 그래요?”

요리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다시 은비에게 미소를 지었다.

설거지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에 잠시 나 좀 봐요. 시간 조금은 날 테니까.”

하지만 먼저 퇴근을 하시잖아요?”

오늘은 기다릴게요.”

, .”

멀어지는 요리사를 보면서 잠시 멍하던 은비는 다시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조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