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희곡] Cafe Love Is? [2막 : 달 무지개]

권정선재 2011. 2. 18. 07:00

 

 

[2Indigo - 달 무지개]

 

 

(1막과 같은 집, 분위기는 조금 더 어둡게.)

 

(정훈은 카우치에 길게 늘어져서 책을 읽고 있고, 민호는 주방에서 요리 중)

 

민호 : 이제 좀 일어나지 그래? 남들이 보면 무슨 카우치랑 한 몸이라고 생각을 할 것 같아. 아무리 휴일이라도 그래도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정훈 : 돈 벌잖아. 마눌님. 좀 참으시지?

 

민호 : 돈 번다고 유세는. (접시를 내린다.) 손 씻고 와. 밥 먹자.

 

정훈 : (벌떡 일어나 식탁에 앉으며) 좋은 냄새 나는데? (손으로 음식을 집으려 한다.)

 

민호 : (정훈의 손을 찰싹 때리며) 더러워. 무슨 손도 안 씻고 밥을 먹으려고 그러냐?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요.

 

정훈 : (싱크대에 손을 씻으며) 구박은. 아유 결벽증.

 

민호 : 언제는 그런 게 좋다며?

 

정훈 : (민호의 엉덩이를 때리며) 아직도 좋아하지.

 

민호 : 아우, 변태.

 

정훈 : , 메뉴 진짜 화려하다. 필석이 형님에게는 연락했어?

 

민호 : 늘 이 시간에 먹는 거 알면서, 형님도 사람 귀찮게.

 

정훈 : (전화기를 꺼내며) 미안해서 그러겠지. 매일 남의 집에 와서 밥을 얻어 먹는 거 아무래도 눈치 보이는 일이잖아.

 

민호 : 당신은 불안하지도 않아? 필석이 형님이 호모포비아인 거 알면서도 우리 집에 자꾸 들이고. 나는 불안해.

 

정훈 : 그렇다고 우리에게 뭐라고 하겠냐?

 

민호 : 그래도 사람 눈이 있잖아. 호모포비아들이 얼마나 귀찮은데. (정훈의 앞자리에 앉는다.) , 뭐해?

 

정훈 :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네 눈치를 보고 있지.

 

민호 : 그래도 어떻게 매일 부르다 안 불러? 그리고 당신도 좀 미리 부르지. 밥 다 되니까 그러고 있어.

 

정훈 : 내가 좀 부족하잖아. (전화를 건다.) , 형님. . 지금 식사 하러 오세요. , 어서 오세요. . (전화를 끊고 민호를 본다.) 왜 그런 눈으로 봐? 한 번 찐하게 키스라도 해줄까?

 

민호 : (정훈이 다가오자 재빨리 몸을 피하며) 하여간 앙큼해요. 됐고. 너 이번 휴가는 어떻게 할 거야? 어디로 놀러갈까?

 

정훈 : 외국이라도 갈까?

 

민호 : 돈은?

 

정훈 : 돈 걱정 같은 건 하지 말라니까. 뭐 인생 여러 번 사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재밌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민호 : 정말로 낙천적이야. (울리는 벨소리) 내가 나갈게. (문을 연다.) 형님, 어서오세요.

 

필석 : 이거 매일 얻어 먹어도 되는가 모르겠네.

 

정훈 : 얻어 먹기는요. 어서 앉으세요.

 

필석 : 꼭 자네가 요리를 하는 것처럼, 민호 군 늘 고마워.

 

민호 : 아니에요.

 

필석 : 오늘은 아주 화려하네. 오늘 무슨 날이야?

 

정훈 : 그러게? 오늘 메뉴 되게 좋네.

 

민호 : (살짝 정훈을 흘겨보며) 그렇죠? 꼭 사람들이 사귀기 시작하고 한 1000일은 되면 먹을 것 같이 생긴 메뉴죠?

정훈 : (고개를 끄덕이며 민호의 시선을 피한다.) 아우, 맛있겠네.

 

필석 : 그래, 맛나겠네. 잘 먹을게.

 

민호 : , 맛있게 드세요. (물을 따라 정훈과 필석에게 차례로 주며) 그나저나 형님은 올해 휴가를 어떻게 보낼 계획이세요?

 

필석 : 나야 뭐 늘 똑같지. 캐나다나 한 번 다녀오려고.

 

정훈 : 형님도 너무 힘드시겠어요. 가족들 다 캐나다에 있고 1년에 두 번 밖에 못 보시니까요. 여름에는 가족이 오고, 겨울에는 형님이 가시고. 저는 그렇게 못 살 거 같은데 말이에요. 보고 싶어서 어떻게 그런데.

 

필석 : 다 애들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 뭐. 한국에 있는 거보다 더 낫다고 생각들을 하니까 말이야. 나야 아쉽기야 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민호 : 그래도 아빠 생각하면 한국 오고 싶을 텐데.

 

필석 : 고등학교까지는 다 캐나다서 마치고 싶다고 하던데?

 

민호 : ? 형님. 애들 다 중학생 아니에요?

 

필석 : 큰 애가 중학교 1학년이고, 작은 애가 초등학교 4학년이지.

 

정훈 : 형님 기러기 아빠 신세 엄청 길어지시겠네.

 

필석 : 그러겠지.

 

정훈 : (필석의 눈치를 보며) 아 분위기 처지네. 우리 텔레비전이나 볼까요?

 

필석 : 뭐 마음대로 해.

 

민호 : , 아이러브 필립모리스네. 나 저 영화 되게 재미있게 봤는데. 형님도 저 영화 보셨어요?

 

필석 : 다른데 보지.

 

민호 : 왜요? 저 영화 되게 재미있어요.

 

필석 : 게이 새끼들 나오는 영화가 뭐가 재미있다고. 민호 군은 저런 영화가 재미있나? 나는 보기만 해도 온 몸에 벌레가 기어 가는 것 같던데.

 

정훈 : (민호의 눈치를 보며) 아 그러세요? 그럼 뭐 밥이나 먹지 뭐.

 

민호 : 형님은 좀 심한 것 같아요.

 

필석 : (숟가락을 내려놓고 민호를 본다.) 뭐가 심한데?

 

민호 : 솔직히 저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미워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피해를 주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싫어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요.

 

필석 : 남자가 남자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

 

민호 : 아니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라.

 

필석 : (다시 밥을 먹으며) 나는 세상의 기본 규칙을 어기는 놈들이 싫네. 당연히 남자는 여자랑 살아야 하는 거지. 그래서 아이도 낳고 말이야. 그게 당연한 것인데, 그러지 않는 것은 별로야.

 

민호 : 만일 형님이 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게이라면 그래도 싫어하실 거예요?

 

필석 : 나는 그런 놈들과 사귀지 않아.

 

민호 : 아니 모르는 거죠. 형님이 그냥 좋다고 생각을 한 사람인데, 알고 보니까 게이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필석 : 그럴 리 없어.

 

민호 :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게이라면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필석 : 그럼 다르지. 틀린 짓을 하는 것들인데.

 

민호 : 형님. 너무 이기적이시네요.

 

필석 : ? 자네 오늘 왜 이러나?

정훈 : 두 사람 왜 이래. 싸울 일도 아닌 것 같고 싸우고 그래요. 민호 너도 네가 아니면 되는 거지 왜 형님에게 화를 내고 그러냐? 우리랑 상관도 없는 일로 공연히 싸우고 그럴 필요가 뭐가 있어?

 

민호 : 아니 그냥 그러잖아. 우리가 아니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되는 거지 피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잖아.

 

필석 : (자리에서 일어난다.) 불편한 자리인데, 나는 이만 가지.

 

정훈 : 저기 형님.

 

필석 : (퇴장)

 

정훈 : 민호야. 너 왜 그래? 왜 갑자기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민호 : 아니 그냥 웃기잖아. 게이라는 이유로 단순히 싫어하는 거 말이야. 형님 우리랑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도 하시고 술도 드시잖아. 그래놓고서는 단순히 게이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거 우습지 않아? 우리 두 사람 게이잖아. 그런데 무조건 안 맞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않아?

 

정훈 : 그건 네가 강요를 할 수 없는 거야. 형님이 우리에게 여자를 좋아하라고 강요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형님에게 우리 같은 사람들을 받아주라고 할 수도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를 좀 풀어. 아니 애초에 화를 낼 일도 아니니까 진정해. 밥이나 먹자. 이렇게 맛있는 것도 하고.

 

민호 : 너도 너무해.

 

정훈 : 내가 뭘?

 

민호 : 오늘 1000일이잖아. 이런 날 너는 뭔가 준비를 한 것도 없어?

 

정훈 : 이거 서운하네.

 

민호 : 뭐가?

 

정훈 : 옷장 안 열어봤어?

 

민호 : ?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옷장을 열더니 쇼핑백을 꺼낸다.) 이게 웬 거야? 언제 사가지고 온 거야?

 

정훈 : 어제 밤에. 너 잘 때 들어오느라고 엄청 고생을 했네. 그런데 하루 종일 있으면서 옷장 한 번 안 열어본 거야?

 

민호 : 내가 나갈 일이 있어야지.

 

정훈 : 아 게을러. 이런 게 애인이라고.

 

민호 : (정훈에게 애교를 부리며) 에이, 왜 이래? (쇼핑백을 열고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에게 책이야?

 

정훈 : 누가 썼는 지 확인을 해 봐.

 

민호 : 어라? 하민호? 이거 뭐야?

 

정훈 : 정식으로 출간이 되는 건 아니지만,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개인 출판이라는 것도 있더라고. 50부만 찍었어. 너 한 권 가지고, 나도 한 권 가지고, 소중한 분들께도 한 권씩만 드리자.

 

민호 : , 너무 감동이다. 진짜 대박이야. 최고. (정훈을 꼭 안는다.) 내가 진짜 전생에 나라는 구했나 봐. 너 같은 사람이 애인이기도 하고.

 

정훈 : 너 같은? 꼭 무시를 하는 말 같다. 그렇게 좋아?

 

민호 : (책을 이리저리 보며) , 되게 좋아. 정말 좋아.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올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훈 : 왜 불가능해? 계속 글도 쓰고 있으면서.

 

민호 : 아무도 내주지 않잖아.

 

정훈 :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한테는 최고의 책이야. 세상 그 어떤 사람이 쓰는 소설보다도 좋으니까, 너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네 소설은 최고니까. 늘 나는 최고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써. 그러면 언젠가 다들 알아줄 테니까. 그리고 만약에 세상이 안 알아주면 내가 출판사라도 차려서 알아줄게.

 

민호 : 정말? 출판사 차려 줄 거야?

 

정훈 : 오케이.

 

민호 : (정훈의 볼에 입을 맞춘다.) 이렇게 예쁜 애인도 주시고, 나 진짜 복 받았다.

 

정훈 : 네가 좋아하는 거 보니까 나도 좋다. 이렇게 좋아할 거라는 거 알았으면 진작에 할 걸. 너무 늦게 한 것 같네.

 

민호 : (정훈의 무릎에 앉으며) 그러게 너무 심하게 오래 걸렸다. 그런데 이런 기특한 생각은 어떻게 했대?

 

정훈 : 네가 가장 좋아할 일을 생각하다보니까 뭐.

 

민호 : 아무튼 정말로 고마워. 빨리 우리 아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다들 뭐라고 할까?

 

정훈 : 일단 형님께 드리는 게 어때?

 

민호 : ? ? (책을 만지작거리며) 우리들 좋아하지도 않잖아.

 

정훈 : 형님은 우리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필석이 형님은 우리를 되게 좋아하신다고. 다만 게이를 좋아하시지 않으시는 것 뿐이야. 하지만 그런 건 잘못된 생각이잖아. 우리가 게이이기는 하지만 게이가 우리는 아닌 거잖아. 그러니까 너도 형님 좀 이해를 해 줘. 형님은 우리를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니까.

 

민호 : 도대체 게이가 왜 싫은 거래? 필석이 형님께 덤벼든 것도 아닐 테고, 솔직히 형님의 외모가 그리 끌리는 것은 아니잖아. 옷도 되게 못 입고. 아무튼 그런 건 다 떠나서 모르는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할 수 있는 거야? 나는 못 해. 나는 모르는 사람들은 싫어하는 거 절대로 못 한다고. 형님 너무 미워.

 

정훈 :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민호 : 무서워서 그러는 거라고?

 

정훈 : . 형님이 게이가 어떤 것인지 알면 그렇게 행동을 하시지 않을 거야. 하지만 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무서워 하시는 거야. 그러니까 싫어하게 되는 거고 말이야. 잘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아무래도 형님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 조금은 다르니까. 형님은 당연하다고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아닌 것 뿐이야. 그것은 그리고 형님의 잘못이 아니잖아. 나는 오히려 형님이 좋은데? 솔직하신 거잖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솔직하지도 않잖아. 게이들을 싫어하면서 겉으로는 불쌍해하는 척, 이해를 하는 척 하는 것도 싫지 않아?

 

민호 : 그런 것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그냥 싫어. 조금만 이해를 해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아니,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렇게 대놓고 미워하지만 않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그런데 그렇게 대놓고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으니까 그게 싫은 거야.

 

정훈 : 그래서 우리 애기 화났어?

 

민호 : . 너는 형님이 좋아?

 

정훈 : 응 좋아.

 

민호 : 뭐가 좋아?

 

정훈 : 우리가 여기 처음에 이사를 왔을 때 이것저것 되게 많이 신경을 써주시곤 했잖아. 그런 것만 생각을 해도 되게 고마운 분이지.

 

민호 : 너는 진짜 속도 좋아.

 

정훈 : 너도 착한 애니까. 마음 좀 풀어.

 

민호 : 나는 못 그러겠어. 그냥 싫고 막 불편해. 그냥 솔직하게 말을 하고 싶기도 하고. 그러면 조금 더 편하게 될 것 같고. 그리고 형님의 표정이 어떻게 될 지도 너무나도 궁금하고 .

 

정훈 : 하여간, 우리 애기는 장난도 많아.

 

민호 : 장난은 무슨. 아무튼 너는 형님께 책을 줬으면 해?

정훈 : 당연하지. 우리 형님하고 좋은 사이잖아. 우리가 게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형님과 어색한 사이는 아니니까 말이야. 형님도 네 책을 받으면 진심으로 좋아해주실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을 하잖아.

 

민호 : 아 싫다. 귀찮아.

 

정훈 : 같이 가줘?

 

민호 : (자리에서 일어나며) 됐어. 내가 후딱 가져다주고 올게.

 

정훈 : 정리하고 있을게.

 

민호 : 그래.

 

(암전)

 

(가구 몇 가지 퇴장, 조금 더 단조로운 분위기)

 

민호 : 형님 계세요? (문을 두드린다.) 어디에 가셨나? 그새 어디를 가신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선다.) 형님? 형님.

 

필석 : 민호 군?

민호 : 안녕하세요. 형님 이거요. (책을 내민다.P

 

필석 : 이게 무언가?

 

민호 : 제 책이요.

 

필석 : 민호 군 책이라고? (책을 받아 앞뒤를 살피며) 민호 군이 책도 썼나?

 

민호 : 쓴 것은 아니고, 정훈이가 따로 만들어 줬어요. 소설만 쓰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나봐요. 50부만 찍어왔더라고요.

 

필석 : 이걸 나에게 줘도 되나?

 

민호 : 그럼요. 소중한 이웃인데.

 

필석 : 재미있게 읽지. (책을 테이블에 올려둔다.) 커피라도 한 잔 하겠나?

 

민호 : 저기 집 정리를 해야 해서.

 

필석 : 정훈 군도 있지 않나? 보면 꼭 두 사람은 연인처럼 보이곤 해. 그냥 가끔은 서로에게 신경을 덜 써도 되는데. 유난히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민호 : 연인이라뇨. , 커피 주세요.

 

필석 : (글라인더로 원두를 간다.)

 

민호 : (집을 이리저리 살핀다.)

 

필석 : 자네는 자네가 누구인지 아나?

 

민호 : ?

필석 : 하민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는지, 그게 궁금해서 말이야.

 

민호 : 아직은 모르죠. (액자를 들여다본다.) 가족인가봐요? 아기들 너무 귀엽다. 형님은 진짜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필석 : 나는 나를 모르겠어.

 

민호 : ? 형님이 형님을 왜 몰라요? 가족에게 되게 헌신적이고 멋진 기러기 아빠잖아요. 외롭기는 하지만 그게 형님이잖아요.

 

필석 : (민호에게 커피를 건네며) 그런 건 내가 아니야.

 

민호 : 그럼요?

 

필석 : (민호를 마주본다.) 자네는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하나?

 

민호 : ? 형님은 좋은 분이죠. 사람도 좋고, 뭐 가끔 직설적이시기는 하시지만 그래도 그게 나쁜 건 아니죠. 그냥 형님의 성격이니까 말이에요. 떄때로 오히려 너무 돌려서 말을 하는 것이 더 불편할 수도 있고요. 저는 오히려 형님처럼 솔직히 말을 하는 것도 좋아요.

 

필석 : 내가 좋나?

 

민호 : 형님으로 되게 좋죠.

 

필석 : 남자로는?

민호 :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필석 : (등을 돌리고, 자리에 앉는다.) 내가 왜 그렇게 게이를 싫어하는 줄 아나?

 

민호 : 모르는데요.

 

필석 : 자네는 나를 어떻게 생각을 하나? 자네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기러기 아빠로 보이겠지. 성실하고 그런 사람으로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아무튼 나는 나쁜 사람이네.

 

민호 : 나쁜 사람이라뇨?

 

필석 : 나는 남자가 좋아.

 

민호 : (살짝 뒤로 물러서며 테이블에 커피를 올려둔다.)

 

필석 : 이런 내가 우습지?

 

민호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필석 :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건실한 한 가정의 가장인 척 행동을 해. 그러는 내가 너무나도 우습지 않나? 가식적이지 않아?

 

민호 : 그런데 왜 게이를 싫어 하시는 거죠?

 

필석 : 나는 그런 내가 싫으니까. 나는 안 그런 사람이고 싶으니까 말이네. 단 한 순간이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 지우고 싶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잊고 싶어. 하지만 그런 것을 보면 자꾸만 더 생각이 나니까, 그게 내 숨을 막히게 하고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네. 나는 그게 싫어.

 

민호 : 겁쟁이시네요.

 

필석 : 그런데 자네를 보니까 그런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걸 알아.

 

민호 :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필석 : 자네와 정훈 군 연인 사이 아닌가?

 

민호 : (뒤로 물러선다.)

 

필석 : (민호를 바라보며) 내가 그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을 했나?

 

민호 : 그러면서도 우리 앞에서 게이가 싫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신 거예요? 뻔뻔하게 말이에요?

 

필석 : 자네가 좋네.

 

민호 : 저도 형님이 좋다고요.

 

필석 : 남자로. 남자로 자네가 좋다는 말이네.

 

민호 : 말도 안 되는 말씀 하지 마세요.

 

필석 :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나?

 

민호 : 그건, 그건.

 

필석 : (성큼성큼 걸어가 민호에게 키스하려 한다.)

 

민호 : (필석의 뺨을 강하게 친다.) 이거 왜 이래요!

필석 : 너도 게이잖아. 그러면서 왜 피하려고 하는 거야? 너도 이러는 거 좋은 거 아니야? (민호의 몸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면서 왜 그래? 좋지? 너도 이러면 좋은 거잖아. 게이 새끼니까 남자가 만지면 좋은 거 아니야?

 

민호 : 싫어요. 이런 건 싫다고요. (문을 이리저리 피한다.) 이건 성희롱이라고요! (강하게 필석을 밀쳐낸 후 문을 닫고 집을 나선다.)

 

필석 : 뭐야? 너도 게이면서, 너도 게이면서.

 

(암전)

 

(다시 정훈과 민호의 집)

 

(정훈은 소파에서 책을 읽다가, 바쁘게 들어오는 민호를 보더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훈 : 왜 그래?

 

민호 : 정훈아, 형님이. 형님이.

 

정훈 : (민호를 안으며) 민호야 왜?

 

민호 : (숨을 크게 쉬며)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정훈 : 아무 것도 아니긴? 무슨 일인데?

 

민호 :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정훈의 품에서 벗어나 문을 잠근다.) 정훈아. 우리 이사 가자.

 

정훈 : 갑자기 이사는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민호 : 나를 사랑한다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내 말 들어주라.

 

정훈 : 알았어. 진정해. (민호의 등을 두드린다.) 민호야.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민호 : 나 먼저 쉴게.

 

정훈 : 알았어. 쉬어.

 

민호 : (침대에 눕는다.)

 

정훈 : (민호의 옆에 앉아서 민호를 토닥인다.)

 

민호 : 너 네가 알고 있던 사람이, 원래 네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

 

정훈 :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

 

민호 : 궁금해서. 너는 그럴 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담담하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거부감이나 그런 것 생길 것 같지 않아?

 

정훈 :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형님이 너한테 뭐라고 했어?

민호 : 형님이 게이래.

 

정훈 : ? 그게 무슨 말이야?

 

민호 : 자기가 게이라고 하더라고.

 

정훈 : 형님 평소에 게이 싫어한다고 하셨잖아? 호모포비아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민호 : 나도 모르겠어. 나도 어떻게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정훈 : 그래서?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민호 : 그런 건 아니야. (정훈의 손을 잡으며) 그냥 무서워서 그래. 오랜 시간 우리와 알면서 자기의 속마음을 속인 거니까. 우리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대. 그러면서도 그냥 모른 척을 한 건대. 그런 사실을 들으니까 너무나도 무서워서 말이야. 우리가 알던 사람을, 우리가 그렇게 알지 못했다는 것에 이상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그런 거야.

 

정훈 : 그래 놀랍네. 그 동안 그렇게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는 거, 되게 신기하네.

 

민호 : 정훈아, 너도 자야지.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정훈 : 너 자는 거 보고.

 

민호 : 화를 내면 안 되었던 걸까?

 

정훈 : 너라면 놀랐을 테니까.

 

민호 : 우리도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보일 거야. 그렇게 보일 거야.

 

정훈 : (가만히 민호를 안아준다.) 우리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아. 진실한 사람들이니까. 그러니까 힘들어 하지 마. 그런 생각은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