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우 팬픽] 한가위 연인 1
“여기는 그대로네.”
동산에 오른 수현의 얼굴에 묘한 기쁨이 번졌다. 모든 것이 다 달라졌을 줄 알았지만 고향은 그대로였다.
“좋다.”
나무 아래 앉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기쁨. 묘한 기쁨. 이 기쁨에 수현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도대체 내가 이런 것을 얼마나 더 느낄 수 있을까? 내가 생각을 하는 것보다 이게 더 소중한 순간이네.”
“어?”
낯선 사람의 소리가 들리자 수현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그마한 남자 하나가 동산을 올랐다.
“저 때문에?”
“아닙니다.”
수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이제 막 가려고 했거든요.”
“아, 저 때문이 맞군요.”
“네?”
수현은 당혹스러웠다. 이 사람 때문이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민망했다.
“아니요. 어차피 이제 곧 내려가야 해서요. 추석이니까요. 한가위에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김수현.”
“네?”
자신의 이름을 알자 수현의 얼굴이 굳었다.
“그쪽은?”
“나야.”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달빛에 얼굴에 반짝이는 사내를 보는 수현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박수를 쳤다.
“이현우?”
“기억 하는 구나?”
현우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걸렸다.
“여기에는 어떻게 온 거야? 아주머니랑 아저씨랑 다 가시고 나서라서 여기에 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고향이니까.”
“아.”
“아니야.”
자신의 쓸쓸한 대답에 현우의 얼굴이 살짝 굳자 수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괜히 이런 기분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정말?”
“응.”
수현은 물끄러미 현우를 바라봤다.
“그런데 너는 여기 왜 왔어?”
“그냥 오고 싶더라고.”
“어?”
“너를 보려고 그런 건가?”
수현이 얼굴이 붉어지자 현우는 해맑게 웃었다.
“너 뭐야?”
“내가 뭘?”
“너 여전히 나 좋아하는 거야?”
“어?”
수현이 화들짝 놀라며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아무런 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아니.”
“알고 있었어.”
현우는 바닥에 앉아서 중얼거렸다. 수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런 현우의 곁에 가서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알고 있었구나?”
“응. 그래서 되게 서운했어.”
“뭐가?”
“네가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멀어져서. 그래도 나에게 말을 하고 떠날 줄 알았거든. 그런데 네가 갑자기 서울로 유학을 간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내가 아무런 가치도 안 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단 말이야. 너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겠지만 말이지.”
“아니었어.”
“그러니까.”
현우는 미소를 지으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나도 고아거든.”
“어?”
“내 부모님도 돌아가셨다고.”
“미안.”
“뭐가 미안한 건데?”
수현의 사과에 현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을 가지고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나도 네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가지 못했는데 도대체 네가 왜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건데?”
“어?”
“그냥 그런 거야.”
“뭐가?”
“다들 그러는 거라고.”
현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김수현.”
“응?”
“너 다시 올라갈 거지?”
“아무래도 그래야지?”
“언제?”
“어?”
“언제 갈 거냐고?”
“글쎄다.”
수현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유난히 긴 연휴에 그다지 빨리 올라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했다. 이곳에 계속 남는다고 해서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나는?”
“어?”
“나는 안 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좋았어.”
수현은 물끄러미 현우를 바라봤다.
“나도 겁이 많아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나도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물론 너는 몰랐겠지. 몰랐지?”
“어? 응.”
수현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도 현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한 적이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왜 말을 안 한 거야?”
“뭘?”
“나를 좋아한다는 거.”
“그러는 너는?”
“그거야.”
수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했으니까. 괜히 어색한 사이가 되는 것은 싫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어.”
“어?”
“나도 그랬다고.”
현우는 씩 웃으면서 그대로 뒤로 누웠다.
“아 좋다.”
“벌레 있을 거야.”
“괜찮아.”
“응?”
“어차피 나는 혼자니까. 아무도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벌레라도 나랑 같이 있어준다는 것으로도 고맙지.”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그런가?”
“조금 더 있다가 갈까?”
“응?”
“너도 있으니까.”
“치.”
현우는 작게 눈을 흘기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김수현 착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당장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면서도 나 때문에 그래.”
“아니야.”
수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때문이 아니야.”
“그럼?”
“내가 여기에 있고 싶어.”
“흐음.”
집에 돌아온 수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더 머물기로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묘했다.
“산에 다녀오는 길이야?”
“아 네.”
이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밥은 먹었고?”
“이제 먹어야죠.”
“그냥 내 집에 오라니까.”
“아니에요.”
수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이 계시던 집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그래 언제 올라간다고?”
“일요일에요.”
“응?”
“그냥 여기에 더 있고 싶어서요. 어차피 서울에 있어도 멍하니. 그런 것은 다 그대로거든요.”
“그래?”
이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집으로 건너 와. 밥 먹게.”
“네.”
수현은 이모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가슴은 묘하게 두근거렸다.
“이현우도 나도 좋아했다고?”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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