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방] 다리
그저 두 곳을 연결해주는 의미만 가지고 있는 ‘다리’가 ‘이언 뱅크스’의 세상에서는 하나의 국가처럼 존재합니다. 이미 기억을 잃은 상태로 거기에 가게 된 그는 다리가 무엇인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떤 하나의 세상이라고는 생각을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게 당연한 것일 겁니다. 다른 것을 생각을 하기에 우선 그는 스스로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을 하고 있지 못하는데 다른 것에 대해서 파악을 하는 것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일 겁니다. 그는 그 무엇보다도 지금 자신의 기억을 찾는 것이 우선이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그가 그것만 집중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죠.
바로 여기에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다소 모호한 느낌이 드러납니다. 기억을 잃는 사람 치고 주인공은 너무 덤덤합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초연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역시 물론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다른 이들의 노력에 비해서 다소 수동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기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무언가가 살아나게 됩니다. 기억을 잃어서 전형적인 행동을 할 것 같은 주인공이 전혀 새로운 행동을 하면서 독자들을 혼란에 가두는 것입니다.
또한 ‘다리’라는 장소를 이전과 다르게 새롭게 정의한다는 것 역시 [다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될 겁니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한 것처럼 ‘다리’라는 장소는 어딘가로 가기 위한 장소입니다. 우리는 그곳을 머물기는 하지만 그곳은 머물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떠나기 위한 장소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소설 안에서 그 장소는 떠나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또 하나의 보금자리처럼 작용합니다. 그 닫힌 세상 안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도 가지지 고 살아갑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다리라는 공간이 원래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을 않고 사는 거죠. 비슷한 효과를 주는 것으로 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리를 다르게 해석한 것은 작가만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모호함은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소설이 파악이 되지 않게 합니다.
세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지막 장까지 제대로 파가하지 못하게 하는 도구로 작용을 합니다. 각 장은 다른 효과를 발휘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으로 다다르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아지게 되면 독자들은 당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마지막 장까지 그다지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르 소설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장르 소설들도 조금은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것과 다른 지점을 택하기에 그것이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친절하지 않음이 [다리]가 그리고자 하는 또 하나의 지점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명확한 답을 내리면서도 그 답의 해석은 독자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블로거 권순재 ksjdo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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