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퍼펙트우먼[완]

[로맨스 소설] 퍼펙트 우먼 [31장. 화해]

권정선재 2014. 8. 13. 07:00

 

31. 화해

아버지 저랑 이야기 좀 하소.”

됐다.”

필강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랑 이야기를 와 하노?”

아버지.”

싸우기밖에 더 하겄나?”

안 싸웁니다.”

복규는 단호한 눈으로 필강을 응시했다.

이대로 그냥 모른 척 하시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저랑 아버지랑 대화를 해야 하는 것 아입니까? 우리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도대체 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

어데 니는 아버지한테!”

아버지니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복규는 덤덤한 말투로 이어갔다.

제 아버지가 아니라면 제가 굳이 설득을 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아버지라서 이러는 겁니다.”

필강은 물끄러미 복규를 응시했다.

그래서 내보고 뭘 어쩌라고?”

그 사람 이해를 좀 해주십시오.”

뭐라고?”

제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놈이.”

좋은 사람입니다.”

필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 여자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나는 그런 것 하나 관심이 없다. 그런 것이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는 거냐?”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이해해주시지 못한다면 저는 행복하지 못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나랑 관련 없다.”

아버지.”

결국 너도 이곳을 떠나려는 거 아니냐?”

필강의 물음에 복규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도 결국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이지 왜 내 허락을 구하려고 하는 거야?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떠나지 않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의 허락이라면 반드시 받고 싶습니다. 그냥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라고요.”

그럼 가지 마라.”

필강의 단호함에 복규는 미간을 모았다.

아버지.”

어차피 나는 허락 안 할 거다.”

그게 무슨?”

내가 왜 허락을 해야 하는 거냐?”

그거야.”

이유가 있는 거냐?”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필강은 물끄러미 복규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한숨을 토해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아버지.”

그 여자랑 헤어지고 여기에 남거나 아니면 그냥 가거라. 내가 허락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하지만.”

필강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복규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파왔다.

 

맥주나 한 잔 할래요?”

?”

복규가 찾아오자 태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니까.”

안 잡아 먹습니다.”

태민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요.”

 

요리도 할 줄 압니까?”

혼자 살잖아요.”

새우구이와 버터에 볶은 옥수수를 가지고 오자 복규는 입을 살짝 벌리면서 감탄을 내비췄다. 태민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복규의 앞에 앉았다.

어차피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왕이면 잘 먹고 더 잘 살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이렇게 준비해요.”

대단하네요.”

매일은 아닙니다.”

살짝 얼린 맥주를 잔에 따랐다. 결정이 군데군데 생겼지만 그 자체도 충분히 맛있게 보이는 맥주였다.

왜 온 겁니까?”

?”

사실 우리가 이렇게 다정하게 맥주를 나눌 사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이유가 궁금하거든요.”

꼭 그렇게 날을 세우고 그래야 하는 겁니까?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올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요.”

태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렇군요.”

복규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허락을 하지 않으십니다.”

누나랑 사이의 일이요?”

.”

허락이 필요한가요?”

?”

오복규 씨 아이가 아니잖아요.”

태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오복규 씨가 누나를 좋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지 아버지의 허락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왕이면 아버지의 허락이 있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지금 이대로라면 그냥 버리려는 건데.”

아니죠.”

태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쪽의 단순한 만족을 위한 것 아닙니까?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다 결정을 내리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 그거 우스운 일이죠.”

그런가?”

복규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신기하네.”

뭐가요?”

나보다 어리죠?”

.”

그런데 이런 걸 어떻게 알아?”

그러게요.”

근데 뒤가 좋나봐?”

?”

보건소 의사가 다 되고.”

.”

태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그냥 그렇게 되었어요. 그리고 여기에 오려는 선생님이 아무도 계시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냉큼 여기에 오겠다고 했죠. 누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물론 지금은 나 혼자서 남게 되었지만 말이에요.”

그거 되게 안쓰러운 것 아닙니까?”

그런가요?”

태민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얼굴에서 미소를 지운 후에 진지한 눈으로 복규를 바라봤다.

혼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마요. 혼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쓸데 없는 용기, 아니 고집 부리지 마요.”

그게 어렵습니다.”

복규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쪽이 말을 하는 것처럼 그냥 나 혼자 만족하기 위한 고집입니다. 그런데 이걸 아버지가 인정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아야 이게 다 괜찮을 거 같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누구라도 그렇죠.”

태민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카나페 하나를 우물거리면서 복규에게도 건넸다. 복규도 잠시 머뭇거리다 그것을 받아먹었다.

맛있군요.”

아버지를 이해해요.”

?”

어렵잖아요.”

뭐가요?”

남들이 다 떠나는 나이에 아들이 떠나지 않았어. 그래서 이제 아들이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한 그 순간에 아들이 떠나. 이런 것을 도대체 누가 바라보고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요?”

태민은 잠시 혀로 입술을 축이다 고개를 저었다.

참는 게 아니다. 견디는 거. 부모 입장에서 아들이 둥지를 떠나는 거라고요. 이거 쉬운 일이 아니에요.”

둥지.”

아버지의 둥지죠.”

그렇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복규는 미소를 지었다.

나보다 어른스럽군요.”

남의 일이니까요.”

?”

내 일이라면 이렇게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 남의 일이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요. 라고 말을 하고 넘길 수가 있는 거죠. 하지만 이게 나의 일이라면 그렇게 쉽게 넘길 수는 없을 겁니다. 내가 아니니까. 남의 일이니까 조금 더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바라볼 수가 있는 거죠.”

그런가요?”

복규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맥주를 모두 마셨다. 태민은 냉장고로 가서 와인을 한 병 가지고 와서 복규에게 따랐다. 복규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와인 한 잔을 단숨에 비웠다. 태민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따랐다.

너무 급하게 마시지 마요.”

왜요? 와인의 도가 아닙니까?”

아니요.”

그럼요?”

이거 은근히 독하거든요.”

복규는 태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테이블에 엎어졌다. 태민은 입을 벌리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아저씨 뭐야?”

태민은 한숨을 토해내고 복규를 자신의 침대에 옮겼다.

 

라디오 하나 하지 그래?”

?”

한나가 물끄러미 아나운서 국장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김한나도 라디오 할 정도의 레벨이 된 거 아닌가? 아침 라디오가 순발력을 키우기도 좋고 말이야.”

저 성주에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냥 다른 아나운서 시키세요. 하고 싶은 사람 많을 텐데.”

그냥 후배에게 줄 거야?”

?”

그럼 끝이야.”

아나운서 국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나를 응시했다.

여기에서 한 번 양보를 하면 좋은 선배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걸로 끝이야. 방송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럴 거라고. 지금 김한나는 그런 것을 전부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야?”

뭐 서운하기는 하겠지만 그게 국장님의 결정이라고 한다면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래서 네가 문제인 거야.”

?”

.”

국장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나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할 거야.”

하지만.”

?”

이렇게 저만 일을 하면 다들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안 그래도 지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너무 이러면 저 더 미운 털 박히고 그러는 거라고요. 국장님 지금 그런 거 바라시는 거예요?”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

다들 김한나가 가진 능력을 못 가졌으니까.”

국장의 단호함에 한나는 할 말을 잃었다. 듣기 좋은 말이기는 했지만 은근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니까.”

김한나가 무슨 말을 하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도대체 누가 그렇게 방송을 잘할 수가 있겠어? 그리고 자기가 알아서 프로그램 런칭하는 아나운서도 많지가 않아.”

그건 운이죠.”

능력이야.”

국장은 힘을 주어 정정했다.

보통 그렇게 지방에 간다면 그냥 적당히 시간이나 보내고 다들 서울로 돌아오는 거 바랄 거야.”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아니잖아?”

그건.”

한나는 할 말이 없었다. 국장의 말이 맞았다. 자신도 그럴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서울로 돌아오고 싶다는 이유이기는 했지만 뭐라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것을 같이 보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도 있을 텐데 말이죠.”

잘 할 거야.”

국장님.”

믿는다.”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시간은 언제에요?”

채송아랑 같은 시간.”

?”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네가 이길 수도 없을 테니까. 아무래도 시청률이 덜 나오는 것이 네 프로그램이니까.”

그래도 아나운서끼리.”

재밌잖아.”

국장의 대답에 한나는 당혹스러웠다. 아나운서 국에서 그나마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송아였다.

그래도 라이벌은.”

안 돼.”

국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채송아 은근 베테랑이다.”

알겠습니다.”

잘 해.”

.”

한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국장의 말처럼 남들에게 그렇게 쉽게 주어질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아니었다. 회를 잡고 싶었다.

잘 할게요.”

 

언니 오늘 라디오도 좋았어요.”

그래?”

한나는 밝게 웃으며 송아에게 커피를 건넸다.

언니 라디오가 너무 좋아서 나 되게 부담되고 그러는 거 알고 있죠? 이번에 부장님이 나에게 기회를 준다고 하더라고요.”

나랑 같은 시간이라며?”

.”

한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토해냈다.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것이 뭐가 있어?”

송아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편성이나 캐스팅을 네가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전부잖아.”

그래도요. 왠지 제가 언니 자리를 빼앗은 거 같아서. 괜히 그런 생각이 들고. 막 그래서요.”

그런거야?”

?”

송아가 순간 진지하게 묻자 한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된 거야.”

송아는 밝게 웃으며 어꺠를 으쓱했다.

나는 일이 많아서.”

.”

잘 마실게.”

가세요.”

한나는 멀어지는 송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

 

젠장.”

골목을 돌면서 송아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저거 도대체 뭐야?”

송아는 그대로 커피가 가득 담긴 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뒤를 한 번 노려보고 아나운서실로 향했다.

 

흐음.”

일어나요?”

으아.”

자신의 옷이 다 벗겨져 있다는 사실에 복규는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이불로 몸을 가리고 태민을 노려봤다. 그러다가 태민도 속옷만 입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며 외면했다.

,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뭐가요?”

아니 왜 나는 벗고 있고? 그쪽은 왜?”

. 이거요.”

태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복규의 앞에 앉았다.

그쪽이 그랬잖아요.”

?”

싫다고 하는데.”

, 아니.”

나는 정말.”

미안합니다.”

복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아무런 기억도 안 나는데.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거짓말이에요.”

태민은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복규를 바라봤다. 복규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그쪽은 어제 덥다고 자기 혼자서 옷을 막 벗었고요. 나는 지금 막 씻고 나오느라 이 상태고요. 머리 젖은 거 안 보여요?”

.”

그제야 태민의 머리가 촉촉하다는 것을 발견한 복규였다.

그리고 나는 소파에서 자서 우리 둘 사이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으니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남자에게 별 관심도 없고 더더군다나 그쪽이라면 더더욱 관심이 없거든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규는 입을 내밀고 몸을 가렸다.

그나저나 옷이나 입지 그래요?”

알겠어요.”

태민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옷을 꺼내서 사라졌다.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가 아팠다.

 

누나가 왜 좋아하는지 알 거 같아요.”

?”

국을 먹던 복규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참 착해요.”

내가요?”

.”

태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내가 너무 약은 것도 있겠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 나이를 먹고도 그렇게 순수할 수가 있는 거지?”

놀리는 겁니까?”

아니요.”

태민은 국을 한 모금 마시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무튼 오늘 있었던 일은 김한나 씨에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요?”

?”

왜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죠?”

그거야.”

복규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도대체 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건지 뭐라고 말을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꼭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것이 없잖아요? 그런데 내가 도대체 왜 하면 안 되는 건지 나름 납득이 가는 이유를 설명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거 아니면 이건 너무한 거죠. 안 그래요?”

솔직히 그렇잖아요.”

태민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말 말 하는 거죠?”

.”

 

오늘은 늦게 일어났네요?’

그게 일이 있었습니다.”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속이 상해서 태민에게 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약점이 잡히고 그럴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한나의 목소리에 복규는 미간을 모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그냥 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요. 내가 다 들어주려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고맙다.’

김한나 씨.”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에요.’

복규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한나가 모두 다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하는데 한나는 그러지 않았다. 더더군다나 자신이 그녀보다 어리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그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한나 씨에게 나는 남자친구입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건 내가 다 들어줘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숨기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냥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숨기지 말고요.”

그런 거 없어요.’

정말이죠?”

.’

복규는 애써 마음을 놓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곁에 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내가 당신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살 수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곧바로 가서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인데요.”

지금도 충분해요. 나는 오복규 씨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지는 걸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이걸로 충분하니까 다른 생각 하지 마요.’

정말이죠?”

그렇다니까요?’

한나가 일부러 씩씩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 고마웠다. 자신이 걱정을 할까 한나가 이러는 거였다.

미안합니다.”

뭐가 미안해요?’

얼굴 보고 이야기 해야 하는 건데.”

영상 통화라도 할까요?’

그런 거 아니잖아요.”

복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 침을 꿀꺽 삼켰다.

아버지 허락을 받지 않더라도 서울로 갈 겁니다. 그리고 무조건 당신의 곁에서 머물도록 할 겁니다.”

그러지 마요.’

?”

아버님 허락을 받지 않고 서울에 온다면 내가 너무 속상하고 좀 그럴 거 같아요. 서로 대화를 하고 풀 수가 있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오복규 씨가 지금 아버님하고 어긋나면 앞으로 도대체 언제 화해를 할 수 있을지 몰라요. 가족이라는 것이 원래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싸우고 어긋나잖아요. 그러니 그러지 마요. 알았죠?’

복규는 잠시 머뭇거렸다. 한나의 말이 맞았다.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결국 그런 일이 반복되는 거였다.

오복규 씨.’

알겠습니다.”

사랑해요. 나 지금 촬영가요.’

복규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전화가 끊어졌다.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 편이 복잡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