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창고/대학 과제물

부모를 죽이고 몽상을 벗어나다

권정선재 2014. 10. 14. 23:58

부모를 죽이고 몽상을 벗어나다

심리학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 중에서 아들의 경우 어머니를 죽이고, 딸의 경우 아버지를 죽여야지만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어릴 적부터 봐왔던 배우자라는 것을 자신의 부모에게서 지우고 나서야 새로운 사람에게 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금은 변태처럼 보이는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평생 봐오던 것이 하나라면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야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은 새로운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이 한계 속에서 부모의 둥지만을 찾는 가녀린 영혼이 될 테니 말이다. 우리가 어른이 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나와 동성의 부모를 죽여야만 한다. ,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죽여야만 하고, 딸이라면 어머니를 이겨야지만 성인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은, 그래서 닮고 싶지 않은 존재를 이기고 나서야 내가 또 다른 그, 혹은 그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닮고 내가 가야만 하는 모습을 깨고 나서야 새로운 나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몽상 속에서 살면서 자신의 세상을 구현한다. 그리고 이것은 성인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도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리면서 혹시나 하는 망상에 빠져들곤 한다. 내가 저 사람과 만난다면? 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망상에서부터 내가 거대한 어떤 세상 속의 중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그런 망상. 이 꿈. 즉 몽상을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어른이 될 수 있는 이는 없다. 어른이 된 척. 더 이상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척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거기에 얽매여서 사는 것이다. 덤덤한 척. 아무 것도 아닌 척을 하지만 사실 어른이 되더라도 그 안에 몽상을 꿈꾸며 망상에 젖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 설 준비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망상은 내가 이 가족의 구성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 같은 인물들은 우리들만이 아닌 소설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도스토예프스끼의 소설 속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이 아닌 작가, 스스로의 행동이기도 하다. 작가와 화자, 그리고 주인공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 작가의 몽상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소설 속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독자인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창조적인 작가의 몽상이 결국 하나의 몽상 속의 소설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자극을 주는 것이다. 우리 역시 부모를 죽여야만 한다. 이리 외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가장의 체계를 부수고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있는 이전의 것의 답습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전의 것은 안정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미련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전의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나 역시 거기에서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누군가의 꿈 속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그저 착한 아이의 가면을 쓰고 성인이 되더라도 나만의 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소설 속의 망상이고, 우연히 커피를 마시다가 드는 몽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세상을 버리지 않고 지켜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몽상이며,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바라는 자극이고, 그것을 행해야만 깨어날 수 있는 깊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