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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 속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권정선재 2014. 10. 7. 11:46

이청준 소설 속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소설 속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을 하고 읽게 된다. 그런데 소설에서 이것을 명확하게 그려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과연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가? 작가는 독자에게 친절한 소설을 적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병신과 머저리]는 그렇지 않다. 그곳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사건이 정말로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 사실 그것은 실재하면서도 실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어떠한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소설에서 실재하지 않는 것에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고 난해하다. 마치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더욱 몽환적이고 어렵다.

[병신과 머저리]에서 실재하지 않는 일은 바로 형이 겪었던 일이다. 형은 군 시절 아픈 일을 겪었었지만 이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동생 역시 이에 대해서 궁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정적으로 이것을 알아내고자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형이 쓰는 소설에 대해서 알게 되고 형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알아가게 된다. 물론 형은 이 와중에서도 동생에게 모든 것을 다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소설을 쓰다가 머뭇거리는 형에게 동생은 분노를 느끼고 자신만의 결론을 적어간다. 그리고 그제야 형은 진짜 결말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하지만 이 역시가 사실인지 아니면 꿈인지 소설은 애매하게 이야기한다. [이어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 안에서 이어도라는 장소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이어도는 인물들이 찾고자하는 파랑도와도 이어지는데, 두 공간은 하나의 공간이 되면서 동시에 다른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와 동시에 두 공간은 하나의 공간이기도 한데, 모든 인물들이 가고자 하는 곳. 그리고 가야만 하는 곳처럼 그려지는 장소이다.

소설 속에서 그 상황은 진짜로 있었던 상황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보이는 다른 인물들의 기이한 일들이 다소 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병신과 머저리]에서 아주머니가 보이는 모습과 [이어도]에서 편집장이 보이는 모습이 겹쳐지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모습이 잠 낯설게 그려진다. 사건의 중신에 있지 않으면서도 사건의 모든 것을 다 바라보는,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것을 놓치는 그런 존재들인 주변인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가상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이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재하는 것들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이어도라는 장소는 여전히 제주도 사람들의 꿈과 같은 곳으로 그려진다. 지금은 인공 섬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전설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그런 꿈의 장소로 그려지는 것이다. [병신과 머저리] 속의 형이 겪은 일 역시 현실이다. 아무리 피하고자 하더라도 그런 일 한 번 없었을 수 있겠느냐? 싶은.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한 번 쯤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아픔이고 괴로움이다. 이 두 가지는 결과적으로 소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 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기에 존재한다. 라는 독자의 경험으로 자신의 자리를 넘기는 것이다. 이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이청준소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겪는 것은 그저 현실에만 머물지 않고 소설 속에서 살아남아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