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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의 인셉션, 그리고 멘붕의 시대

권정선재 2014. 9. 24. 00:16

필경사 바틀비의 인셉션, 그리고 멘붕의 시대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나서 뭔가 모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바틀비가 누구라는 거야? 소설은 무엇도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마무리 짓는다. ‘바틀비라는 사람이 존재했었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어떤 사람이고, 왜 그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무언가가 덧붙여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짜 바틀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을 그로 오해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느낌은 영화 [인셉션]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꿈 속에 들어가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이 독특한 영화 역시 그 결말을 명확히 짓지 않는다. 과연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이 꿈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인지에 대한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을 현실인지, 아니면 꿈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영화는 멘붕의 시대로 빠져든다. 정확히 어디까지 현실인지 그릴 수 없기에 결국 모두 현실이 되고, 모든 공간이 꿈의 공간으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인셉션][필경사 바틀비] 모두 독특한 인물을 가지고 있다. [인셉션]의 경우 주인공 코브의 아내 의 생존 여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코브가 기억하고 있는 현실이고, 과연 어디에서부터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인지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필경사 바틀비] 역시 마찬가지다. [인셉션]이 꿈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서 다른 사람들도 바틀비의 존재를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분명히 그는 실존하는 인물이지만, 그와 동시에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존하는 인물이라면 사람들과 교류를 맺고, 그에 대해서 설명이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소설을 읽는 내내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밥을 먹는 것인지, 어디 출신인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그 어떤 대답도 내리지 않는다. [인셉션[이 꿈의 세계를 향해서 들어가는 것이라면, [필경사 바틀비]는 마치 꿈과 같은 존재인 바틀비가 나타나는 것이라 보인다. 결국 꿈이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더불어 [인셉션][필경사 바틀비]의 모든 상황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모든 이야기를 서술하는 인물은 그저 타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인셉션]에서는 굼의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라는 것을 통해서 누군가가 깨워줘야만 하는 것이고, [필경사 바틀비]의 경우 바틀비가 끊임없이 이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보희의 글 [‘멘붕시대를 살아가기]와도 이어진다.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로 인해서 우리가 살고 있던 세상이 붕괴가 되고, 이 현실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이 현실이 어디까지 현실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던져야만 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지만 그 무엇도 우리를 돕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방사능이 퍼지면서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인셉션]에서는 결국 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영원히 돌아가기만 하는 토템을 두고 그것이 없는 세상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 꿈이 아름답고 벗어나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하지만 그곳은 이상향이 아니라 거짓을 보이는 거울 속 세상일 따름이다. [필경사 바틀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틀비의 말을 듣고 그를 곁에 두는 것만으로는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나서야만 겨우 바틀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멘붕 시대에서 살아남는 것이 어렵다면? 결국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를 멘붕에 빠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하고 내가 나갈 준비가 되어있을 때여야만 누군가의 킥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나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어떤 도움도 소용없을 게 뻔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