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인디아’는 어떻게 강해졌을까?
‘박찬욱’ 영화의 여인상의 변화
1. ‘박찬욱’ 영화에서의 여자
2. [스토커]에 등장하는 세 가지 색
1. 하얀색. 하얀 색 꽃, 바닐라 아이스크림
2. 검은색. 상복, 신발
3. 붉은색. 와인, 피, 구두
3. 결론
1. ‘박찬욱’ 영화에서의 여자
한 감독의 작품은 시대를 따라가면서 변하게 되고 같은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성에 대해서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적인 색채가 많이 묻어나는 감독의 영화라 하더라도 그의 모든 작품에서의 남성이 가지는 위치나 의미가 같지 않고,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인물이 보여주는 역할에서의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특히나 많은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인 감독의 경우 그의 발자취를 따라와 보면 더더욱 쉽게 그 안에서의 인물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 글을 통해서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인 [스토커], 그리고 그 안에 강인한 여성인 ‘인디아’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같은 영화 안에서도 ‘인디아’의 어머니 역할로 나오는 인물의 경우 전형적인 미국 영화에서의 민폐형 여성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지만 그와 대비되는 ‘인디아’의 경우 손에 꼽을 정도로 강인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 [스토커]를 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여성상이 부드러워졌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그가 그려왔던 여인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그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잔혹해졌다. 화법 자체가 부드러워지면서 인물의 강도가 옅어져 보일 뿐 기본적으로 감독이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이나 표현하고자 하는 수위 자체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그의 영화 속 여성들의 경우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지만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박찬욱’의 여자들은 점점 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되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스토커]에서도 잘 드러난다. 평범한 소녀로 등장하는 ‘인디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잔혹한 피의 본성에 대해서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소녀의 얼굴을 하고 순진한 외모를 가진 채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소녀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그녀는 가장 큰 섹슈얼한 이미지를 지닌 채로 강하게 등장한다.
오히려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이자 복수 시리즈 등에서 볼 수 있는 것 등에서 오히려 여성으로의 여성과 선한 이미지로의 여성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후반기로 넘어오면서 그의 작품 속의 여성들은 점점 더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하고, 단순히 남자들을 위한 수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허나, 그의 영화는 가장 최근 작품인 [스토커]에 이르기 전까지는 무조건 남성 위주의 삶에서 여성은 한계로만 작용을 하고 있고, 남자 주인공들이 자신의 사명이나 새로운 무언가를 깨닫기 위한 소품에 불과하다. 이는 비단 ‘박찬욱’ 감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의 영화감독들은 영화에서 여성이라는 것을 그저 남성을 위한 들러리로만 소모하고자 한다. 최근 흥행하는 [트랜스포머] 같은 경우에도 네 편의 시리즈 모두 여성은 그저 노출이 심하고 눈요기였으며, 전세계적인 시리즈 [007]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형 느와르라 불리는 작품 등에서도 모두 여성은 그저 소품에 불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커]에서의 주인공이 단순히 소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영화에서 여성이 조금 더 선하게 표현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 동안 그의 영화에서 등장한 모든 여성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중에서 가장 어릴지는 모르지만 다른 인물들이 모두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역할에 불과했다면 [스토커]에서의 ‘인디아’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그 중심에 서서 직접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다른 ‘박찬욱’의 영화처럼 여성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하는 남성이 아닌, 남성인 ‘삼촌’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하는 여성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삼촌이 바라는 여성으로만 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여성으로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삼촌까지 버려두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강인한 여자로 성장한다.
가장 먼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의 여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영애’가 맡은 ‘소피. E. 장소령’은 스스로 무언가 해낼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인 동시에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머무는 여성으로만 존재한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두 갈등 사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대립을 상쇄하는 미국을 대변하는 역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을 대변하고 있을 뿐 그 이상 자신의 어떠한 이야기도 발전시키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두 세력인 남과 북은 남자들의 세계이고 그녀의 역할은 관객들이 영화를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찰자에 불과하다. 가장 많은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설정이 되어있지만 실제로 그녀가 그 권위를 제대로 사용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물뿐더러 그 권위 역시 그녀가 스스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그녀의 직위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녀의 능력이라 볼 수 없다. 보통의 영화에서 여성이라고 하면 보일 수 있는 부드러운 이미지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폐기처분된다.
흔히 말하는 복수 3부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복수는 나의 것]에 나오는 ‘배두나’가 맡은 ‘영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극에 동참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그 무엇도 바뀌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남자 주인공인 ‘류’가 자신의 행동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영화 안에서 ‘류’에게 어떠한 지표 같은 것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녀가 그려내는 지표들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실제로는 ‘류’의 안에서 머물고 있던 고민들에 불과할 따름이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단순히 소품에 불과한 존재로 악인을 가장하고 있지만 악인이 아닌 채로 극에서 퇴장한다. 더불어 ‘임지은’이 맡은 ‘류’의 누나는 더더욱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녀는 그저 ‘류’가 복수에 미치게 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류’가 움직이게 하는 동기라는 것으로 등장할 뿐 그 역할을 모두 다 하면 소모된다.
[올드보이]의 ‘미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오대수’의 딸이자 복수를 위한 도구로만 존재한다. ‘오대수’와 같이 움직이며 그에게 새로운 지표를 보이고자 하지만 결국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이지 못한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영화 안에서 움직이려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수동적인 움직이었고 부질없는 움직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오대수’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선택을 하는 순간까지 그녀는 그저 선택되어야만 하는 운명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강혜정’이 맡았던 [복수 3부작] 사이의 단편 [쓰리몬스터] 안의 ‘컷’의 아내 역시 주인공과 주인공에 대립하는 ‘엑스트라’ 역이 부딪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주인공이 개인적은 고뇌를 하게 하는 인물에 불과하다. 극 중 모든 고통은 그녀에 쏟아지지만 그 고통을 겪어야 할 남자들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짧은 단편 안에서도 ‘미란’은 그저 소품으로 남자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녀 스스로 무언가를 이야기를 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못한다.
[친절한 금자 씨]의 경우 ‘이영애’가 맡은 ‘금자’가 주인공으로 등장을 하는 만큼 여성이 능동적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그녀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애초에 복수에 가담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어쩔 수 없이 휘말리게 된다. 조금 더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하기에 다른 캐릭터로 보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 역시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의 세 여성에 비해서 전혀 나아지지 못했다. 스스로 복수를 설계하는 과정이 등장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다기 보다는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약한 존재의 여성으로 등장할 따름이다. 물론 무언가 해내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지만 여전히 그녀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하고 그저 누군가에게 이용이 된 후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기계와도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여전히 여성의 진화를 논하기는 어렵다.
두 작품에서의 여성은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조금 더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현실에 기여하지 않은 채 환상적인 세계 안에서만 갇혀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가상의 현실에서나마 두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남자들을 이기기 위한, 혹은 그들과 투쟁하기 위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남성을 이기지는 못하지만 그와 비등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채 단순히 약한 존재로의 여성이 아닌 강인할 수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어지는 소녀 3부작에서도 한계가 가득한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의 ‘영군’은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생각을 하는 정신병자인데 적어도 그녀의 상상 안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이다. 그녀는 싸이보그가 되어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떠한 복수나 누군가에 의해서 복수를 해야만 하는 도구로 설정이 되어있지 않다. 가장 동화 같고 잔혹할 수도 있는 정신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그녀는 그저 자유롭게 누군가를 죽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순’을 만나서 사랑을 꿈꾸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그를 더 성장시키는 무언가를 하는 단순한 도구로 남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자신의 몽상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도 안정을 지니기 위해서 남성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창조자이면서도 조력자가 필요하기에 절대로 완성형이 아니며 이는 결과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미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박쥐]에서 ‘태주’는 ‘상현’에게서 뱀파이어로의 능력을 받은 채 그 능력을 자유로이 활용을 하는 존재이다. 물론 그녀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이 역할을 얻은 것이 아니기에 한계가 가득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존재이기도 하다. 단순히 뱀파이어로 만들어진 채로 그에게 순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그와 대립을 하기도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가 강인한 힘을 가진 채로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녀 역시도 남성인 ‘상현’의 생과 사에 함께 해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남성에게 능력을 부여받았다면 최소한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자신의 마무리를 정할 수 있는 권한 정도는 얻어야 조금 더 강인한 여성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영화에서는 전혀 그렇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극을 이끌어나가고 각종 문제를 일으키기에 조금 더 강인한 여자이고 변화한 여자라고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아무런 변화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박찬욱’의 여자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저 낫멍을 위해서 존재하고 남성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2. [스토커]에 등장하는 세 가지 색
반면 [스토커]에서는 조금 더 여성이 능동적으로 등장을 하게 된다. ‘인디아’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성장을 그려나가고 여기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남성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전의 영화에서는 ‘남성’을 위한 도구로 ‘여성’이 소모가 되었다면, 이번 [스토커]에서는 ‘여성’을 위한 ‘남성’이 단순히 도구로 소모가 된다. 이전에 비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이며 조금 더 자립적인 이야기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이것은 소녀의 성장이라는 것과도 연관이 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게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소녀는 여인이 되기 위해서 그 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부모라는 존재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며 자유롭기 바라기 때문이다. 비록 소녀의 외양을 갖추고 있기에 ‘박찬욱’ 영화의 그 어떤 여인보다 순진해보이고 어려보이지만 반대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인디아’가 가장 강한 여인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소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십대라는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자이기에 바깥세상이 과연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 이야기는 거꾸로 두려운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 밖을 지켜만 보던 소녀가 진정으로 손에 힘을 주고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기에 가장 강해지는 것이다. 만일 ‘인디아’가 조금만 더 나이가 많은 여인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더라면 그녀는 세상의 조화를 이미 알고 있을 테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손에 들려 있는 힘을 무조건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소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여태까지 우리가 봐왔던 ‘박찬욱’ 영화와 다르지 않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성에게 의지하는 그런 소품으로의 여인으로 말이다.
‘인디아’ 역시 [박쥐]에서의 ‘태주’처럼 누군가에게서 능력을 부여받는 것처럼 보이기에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태주’와는 다르게 애초에 내재되어 있던 능력을 꺼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더욱이 ‘태주’의 경우 자신의 생과 사가 모두 남자 주인공에게 맡겨진 것과 다르게 ‘인디아’는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진정으로 강인하며 다른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인공이다. 기존 ‘박찬욱’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감독의 작품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자립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다. 보통은 지나친 우연에 기대며 주인공에게 행운을 선사하는 것과 다르게 [스토커]의 진행 방식은 오직 인물에게 모든 것을 기대고, 인물 역시 관객들이 그 동안 영화를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모든 부분을 해소하며 조금 더 강인한, 그리고 완벽한 인물로 탄생한다. 그 동안 ‘박찬욱’ 영화를 거쳐 결국 ‘인디아’가 완성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디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색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그 이유는 [스토커]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색의 대비가 명확히 구분이 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영화들이 단순히 미학적인 도구로 색을 이용을 하는 반면 [스토커]에서는 명확한 색의 구분을 통하여, 주인공의 성장과 심리 묘사에 탁월한 성과를 보인다. 특히나 색의 변화를 통해서 인물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은 기존 그의 영화에서 등장을 하는 것과는 다소 차별화되는 방식이다. 한 편의 영화 안에서 한 사람의 성장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은 그의 영화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토커]에서는 총 세 가지 색을 이용해서 주인공인 ‘인디아’의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선명한 세 가지 색은 ‘인디아’의 심리 변화에 대해서 들려주며 그와 동시에 조금 더 강인한 그녀의 변화에 대해서 이해하는데도 긍정적인 도움을 선사한다.
1. 하얀색. 하얀 색 꽃, 바닐라 아이스크림
흔히 순결함, 순수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하얀색은 [스토커] 안에서도 마찬가지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인디아’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뜻하기도 하고,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하얀 꽃을 가리키기도 하는 이것은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그녀에 대해서 의미하는 부분이다. 아직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성장을 하기 이전의 아이와 같은 의미는 그녀가 곧 벗어나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얀색은 흔히 가장 순수한 색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를 하는 하얀 도화지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는 존재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고, ‘인디아’ 역시 이리도 강인하면서도 동시에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귀여운 소녀로, 아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로만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초반의 장면에서도 이미 사라지게 될 이미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얀 꽃을 피로 물들이는 것 자체가 그녀가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인디아’가 새로운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과 동시에 여성으로의 생리를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흔히 우리는 소녀가 생리를 할 때 축하를 하는데 이는 그녀가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어머니로의 수태 가능성을 지녔다고 보기에 그런 것이다. ‘인디아’는 단순히 생체적인 생리만을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하얀 색을 피로 물들이면서 심리적인 생리가지도 마친다. 이를 통해서 어린 소녀이고 어머니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는 더 이상 어머니의 존재가 필요도 하지 않은 강인한 여인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디아’는 스스로 하얀 색을 붉게 물들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조금 더 강인한 여인이 될 수 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하얀 색과 연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색인 노란색은 그녀가 벗어나야 하는 운명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어머니의 머리색과 자신을 여전히 소녀로 머물게 할 숙모의 머리색이기도 한 노란색은 ‘인디아’의 혈통을 그리고자 하지만 결국 그녀가 다른 존재임을 부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노란색,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야지만 결국 소녀가 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담고도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성적으로 대립하는 존재가 된다. 동시에 ‘인디아’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구시대적인 여성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로 그려지기도 한다. ‘인디아’의 어머니는 성과도 같은 거대한 저택 안에서 살며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사는 여인이다. 남편의 부재를 느끼던 ‘인디아’의 어머니는 자신의 도련님인 남편의 남동생에게 다시 한 번 의지를 하고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 노란머리인 ‘인디아’의 어머니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나이에서도 그저 그 나이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통해서 ‘인디아’는 노란색 연필을 붉게 물들인다. 불량배들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하는 순간에 손에 들고 있던 노란색 연필을 이용해서 자신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하며 붉게 물들이는 것이다. 노란 연필이 피로 물들면서 ‘인디아’는 더 이상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그를 극복하며 그 힘을 자신의 멋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불어 초반에 ‘인디아’는 자신의 선물을 찾기 위해서 테니스공이 담겨 있던 통을 헤집기도 한다. 테니스공 역시 노란색인데 ‘인디아’는 이것을 스스로 뒤집어버리며 자신의 운명이 벗어나야 하는 운명임을 드러내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애초에 머리 색 자치가 어머니와 다르기에 어머니의 운명과 다른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그리고 있으며 이를 더욱 더 강하게 보이며 노란색을 부정하는 것으로 그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얀색과 노란색, 빛이고 순수하고 밝은 두 가지 색은 ‘인디아’ 스스로 극복하고 여성으로 나아가야 하는 색이다.
2. 검은색. 상복, 신발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마주하는 검은색은 ‘인디아’가 또 다른 무언가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그녀의 혈통이자 아버지를 의미하는 검은색은 거꾸로 그녀를 속박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배달이 되던 구두는 하얀색과 검은색의 결합으로 그녀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찬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인디아’ 역시 자신이 아직 완벽한 여인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는다. 아직 상복을 입고 있을 때의 ‘인디아’는 어머니에게 몸가짐을 조숙하기 바라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녀가 아직은 어린 아이이며 검은색 안에 묶여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이 단계에서 ‘인디아’가 멈추게 된다면 그녀 역시 결국 어머니처럼 그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서 거대한 저택 안에서 사는 성 안에 스스로 갇힌 공주가 될 것이다. ‘인디아’는 다른 색의 구두를 선택하며 밖으로 나아간다.
상복이기도 한 검은색은 그녀가 조금 더 조숙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하는 순간에 대해서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검은색이 의미하는 상복과 신발은 곧 그녀가 벗어날 것을 의미하고 그녀가 이에 대해서 벗어난다면 붙잡을 수 있는 사슬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상복이라는 것은 성적인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기를 바라게 하는 복장이다. 이 상황에서는 성행위도 할 수 없으며 ‘인디아’가 지니고 있는 본능에 대해서도 쉬이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상복을 입고 있는 동안 ‘인디아’는 자신의 본능을 숨기려고 노력을 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 눈에 조금 더 아름답게 보여야 하고 조금 더 여린 존재로 그려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디아’를 구속하고 속박하는 상복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상복은 기간이 정해진 의복으로 결국 벗어야만 하기에 ‘인디아’가 저절로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디아’의 머리색과 같은 검은색은 그녀가 지신의 정체성을 조금 더 공고히 하고 자신이 어머니와 다른 존재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면 더 이상 그녀에게 속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갈 도구로 작용하게 된다. ‘인디아’는 자신과 머리색이 같은 삼촌 ‘찰리’를 보면서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명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존재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내게 된다. 애초에 어머니와의 차이에 인지하던 ‘인디아’가 자신이 정말로 어머니와 다른 존재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구별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 선명한 검은색은 ‘인디아’ 스스로 벗어나야 하는 운명인 동시에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결과적으로 그녀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복을 벗음으로 ‘인디아’는 더 이상 아버지의 검은색으로 영향을 받으며 함께 사냥을 다니는 어린 소녀가 아닌 스스로 검은 머리를 지닌 잔혹한 존재로의 여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검은색은 ‘인디아’ 스스로가 벗어나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색을 의미한다. 색의 한계를 넘어서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순간 더 이상 검은색은 ‘인디아’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자신에게 한계로 작용하던 것을 더 이상 한계로 만들지 않고 거기에 동화되어서 저절로 선을 넘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디아’가 가지고 있는 잔혹한 본성에 대한 것을 의미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힘을 제대로 인정했을 때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머리색을 지닌 삼촌을 만나서 그와 같이 행동을 하며 그에게 동질성을 느끼고 성욕까지 느끼게 되는 ‘인디아’는 더 이상 어머니를 사랑하는 어머니이고 자신을 보호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남성을 사랑하는 연적으로 바라보며 더욱 강한 모습을 지닌다.
3. 붉은색. 피, 와인, 구두
우리는 흔히 ‘붉은색’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금기와도 같은 것을 뜻하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되고 어른만 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어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어른들만 할 수 있는 붉은색. 그리고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잔혹함 등을 의미하는 붉은색을 제대로 쥐고 있는 그 순간, ‘인디아’는 정말 제대로 된 존재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겁을 내며 뒤로 물러나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스스로 붉은색을 만들어내며 그것을 즈려밟고 갈 수 있는. 누군가에게 총을 들이대고 사람을 죽여도 전혀 겁을 내지 않고 그 피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그와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수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붉은색 이미지는 [스토커]에서 세 가지로 그려진다 볼 수 있다.
‘인디아’가 결국 성인이 되기 위해서 사용이 되는 색인 붉은색은 소녀가 여자가 되기 위한 생리와도 연관이 되어있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한 것처럼 결국 피를 봐야 결국 여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피는 인디아가 더 이상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어린 소녀가 아니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아이까지 가질 수 있는 성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서도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를 한 것처럼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를 노란색 연필로 찌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녀는 피를 발견하며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사냥을 즐기며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소녀가 이제 스스로 피를 느낄 줄 아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본능을 죽이기 위해서 함께했던 사냥을 진정한 자신의 본능을 깨닫는 도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찰리’에게서 받아마시게 되는 ‘붉은 와인’은 그녀가 더 이상 ‘찰리’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임을 의미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게다가 이 와인은 ‘찰리’가 마시던 것으로 결국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삼촌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수단이며 그녀가 더 이상 순수한 소녀가 아닌 성적인 이끌림에 의해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애초에 어린 아에게 허락이 되어있지 않은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스스로 훔치거나 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찰리’에게 받게 되기에 제대로 된 후계자가 되었다고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존재와 같은 잔혹함을 가진 존재에게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존재라는 동시에 조금 더 강인한 존재. 그리고 결과적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찰리’에게서 수여받는 ‘빨간 구두’는 누구라도 다 인정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도구이다. 섹슈얼한 이미지가 더해진 높은 하이힐은 그녀가 더 이상 단순히 소녀가 아닌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라만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여성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게다가 낮은 곳에 존재하면서 상대방을 우러러보기만 해야 하는 한계가 가득한 여성이 아닌 스스로 더 높은 곳에 서며 누군가를 내려다보고 위압감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로의 등장이다. 이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인디아’는 더 이상 ‘찰리’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서게 되며 더 이상 그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그를 숙청한다. 그녀는 하이힐을 통해서 진정한 여왕이 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힘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강인한 여인으로의 존재를 의미하는 ‘빨간 구두’는 더 이상 그녀가 신어야만 하는 검은 구두와 다르게 더욱 더 능동적인 것을 행하게 만든다.
3. 결론. ‘인디아’가 착해보이는 이유는?
사람들이 [스토커]에 비해서 그 동안의 ‘박찬욱’의 영화에 비해서 순해졌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방식 등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올드보이] 등에서 보여주었던 잔혹함에 비해서 [스토커]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조금 더 순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는 ‘박찬욱’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타일은 있는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잔혹한 것이라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보는 사람에게 다소 불편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박찬욱’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조금 더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복수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 사람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영화는 오히려 관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스토커]의 경우 그 안에 담겨 있는 상징과도 같은 것은 다소 복잡하게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올드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은 애초에 그러한 방식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인물들이 자신이 원한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그저 복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을 전면으로 드러내기에 이것을 순진하게 숨기고나 여리게 그릴 이유도 하나 없다. 남자들이 피를 튀기면서 자신의 목적에 의해서 살인을 하고 그 피를 딛고 일어나 승자의 미소를 지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였기에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부담감 역시 어느 정도 사라진다. 윤리적으로 보더라도 그런 일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스토커]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소녀가 등장하는 영화이기에 조금 더 부드럽게 이야기해야만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에게 마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크게 ‘박찬욱’의 영화라고 볼 수 있는 [복수 3부작]을 이은 [소녀 3부작]이라는 것 역시 이러한 경향을 부각시키는 부분일 것이다. 복수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달려가는 기차와도 같은 형식을 갖추어도 되지만 소녀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소녀 3부작]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우직하게 달려가다가 놓치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안 그래도 영화 안에 숨겨진 사유 등을 찾아내느라 바쁜 통에 잔혹한 영상까지 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불편해서 가끔 눈을 돌리고 피하고 싶은 영화 안에서 내가 꼭 봐야만 하고 찾아야 하는 것이 담겨 있기에 더욱 불편한 것이다. 그렇기에 [소녀 3부작]은 조금 더 명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관객들로 하여금 스크린을 지켜보게 만들며 그 안에 담겨 있는 모든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게 만든다.
하지만 단순히 소녀가 등장을 하고 편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하기에 [스토커]에서의 ‘인디아’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보다 순해졌다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소녀 3부작]은 [복수 3부작]에 비해서 이야기를 하는 방법이 부드럽다.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도 있고 인물들의 성장을 통해서 관객들 역시 무언가를 보며 나름의 만족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는 명랑하고 밝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남성들이 주가 되는 무겁고 잔인한 영화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같은 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이면서도 [친절한 금자씨]가 절대로 지니지 못하는 지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허나 [소녀 3부작]은 소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도 잔혹하게 소녀를 성장시키는 작품이다. 더군다나 [스토커]의 경우 애초에 인간과 다소 다른 종족일 수도 있는 ‘인디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에 더욱 잔혹하게 그려진다.
‘인디아’는 애초에 또 다른 족속. 즉 뱀파이어로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스토커]는 더욱 잔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를 보고 그것을 즐거워하며 성적인 쾌락까지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녀의 외양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인간이라고 볼 수도 없고 살인을 즐기는 소녀의 존재 자체는 강렬하고 잔혹하다. 영화에서는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지만 애초에 ‘인디아’가 사냥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버지가 그녀의 본능을 억누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검은 머리를 가진 삼촌 ‘찰리’의 어릴 적 행동에서도 유추할 수도 있는데, ‘찰리’는 어릴 적 자신의 동생이 애정을 가져간다는 이유만으로 땅에 묻어버릴 정도로 잔혹한 아이다. 그와 동시에 이에 대해서 전혀 잘못을 했다고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악마와도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디아’의 아버지는 그녀 역시도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런 잔혹한 성질을 지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녀가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사냥을 즐기게 한다.
영화에서 ‘인디아’는 소녀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사냥감을 물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먼저 남성을 유혹하다가 죽이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굳이 부딪치지 않아도 괜찮을 불량학생들과 부딪치다가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노란색 연필을 꽂으면서 피를 보는 장면이라거나, 성적인 행위를 즐길 것처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남학생을 유혹한 다음 그를 죽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결국 소녀의 얼굴을 한 악마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소녀의 미소를 보면서 관객들은 이것이 그다지 잔인하지 않다고 착각을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수위는 그 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 아주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오히려 아직 어린 소녀가 이런 잔혹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본능에 의해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잔혹하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낼 때처럼 ‘인디아’는 무성의하고 약간의 즐거움까지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의 미소에 [스토커]가 조금 부드러운 영화가 아닐까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실제 [스토커]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어리고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잔인한 존재인 것이다. 어머니와 한 남자를 두고 성적인 대결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의 진짜 핏줄을 찾기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를 위해서 스스로 행동할 줄 아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를 위한 살인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으며 자신의 능력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를 가늠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성에 대해서 주저함이 없다는 것 역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성, 그리고 잔혹함을 드러내는 것일 것이다. 어머니와 한 남자를 두고 여인으로 부딪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아닌 본능에 의해서 움직이는 짐승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살인의 장면 등에 있어서 그 동안 그의 영화에 비해서 다소 순하게 표현된 것은 영화의 탄생지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점이 있을 것이다. 미국 영화의 경우 살인이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한국 영화에서처럼 그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살인 자체의 상세함을 부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영화 자체가 다소 잔혹하다는 착각을 불어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는 사용하는 무기에서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살인 무기가 주로 도끼나 망치, 칼 등을 통해서 피해자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며 죽이는 것과 다르게 미국 영화의 경우 총을 통해서 간단히 살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토커]에서도 가장 극적인 살인은 그 동안 고조되는 감정과 다르게 총 한 방으로 다소 싱겁게 끝이 나버린다. 이를 통해서 관객은 그다지 잔인하지 않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다른 영화에서 비해서 희생자가 더 많기에 [스토커]는 그다지 순한 영화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인디아’가 착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순진한 얼굴과 그녀가 선택한 무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삼촌 ‘찰리’나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남성에 비해서 덜 잔인하다는 것이 그 특징을 것이다. ‘인디아’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정말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불필요한 존재들만 처단할 뿐, 자신의 앞에 있다고 모든 존재를 처단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불필요한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가장 짐승적이고 동물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인디아’가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보다도 가장 잔인하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인디아’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을이라는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을 지켜줄 수도 있는 ‘보안관’을 죽이는 것을 결국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편을 들어주던 나름 정의의 사도인 척 하던 남학생을 죽이는 것 역시 이 같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며 착한 영화인 척하는 [스토커]가 뜯어보면 굉장히 불편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가 있는 이유는 여성의 존재와 그 필요성에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 여성의 역할이 단순히 수동적이었고 소품에 불과했던 것과 다르게 ‘인디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이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활용한다. [박쥐]안에서 ‘태주’가 단순히 능력을 수여받고 그 능력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것과 정반대의 경우다. ‘인디아’는 ‘찰리’보다 더 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흡수하게 되고 그것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발휘하며 잔혹함을 선사한다. 여기에서 그녀는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날것의 피비린내를 풍기며 스스로의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을 원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걸음을 내딛을 줄 아는 진짜 인간으로의 여성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그녀의 걸음은 어머니가 오직 집안에서만 살면서 주부로의 삶을 만족하는 것과 다르게 넓은 보폭이며, 결국 마지막 사내인 경찰까지 살해하며 오롯이 여성으로의 자신의 걸음을 마주한다. 더 이상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들의 들러리로만 머물며 한계를 지닌 존재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인디아’는 수많은 남성들을 숙청하며 자신이 진정한 여왕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아버지로 인해서 피를 이어가는 것이 오직 아들에게만 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기초하고 있는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전면적은 반기를 드는 것이며 여성의 강함에 대해서 인정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물론 같은 영화 안에서 한계를 가진 여성으로 어머니나 숙모 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약자의 입장이고 죽임을 당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에 ‘인디아’를 통해서 강한 여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강한 여인을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박찬욱’ 스스로 만들어냈던 오랜 발자취를 [스토커]라는 영화 한 편 안에서 모두 진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소녀이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소녀가 결과적으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소녀의 삶, 그 자체를 포커스로 담으면서 오롯이 여성의 영화로 그려내고, 이와 동시에 잔혹한 설정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고 색채 등을 통해서 미학적으로 그려내면서 관객에게 부담감이나 반발감도 최소화했다는 점도 여성이 가진 특성을 담았기에 더 완성도가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하얀 꽃의 이미지가 피에 물들어가는 것을 반복하는데, 이를 통해 ‘박찬욱’의 여성은 [스토커]를 통해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여자는 이제야 강해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으로의 특질에 남성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입체적인 인간으로의 여성이 되었으니 말이다.
'★ 블로그 창고 > 대학 과제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염소나타 [예술의 미학, 그리고 그림자] (0) | 2014.09.16 |
---|---|
문학의 아토포스 [문학의 현실도전] (0) | 2014.09.16 |
간단한 영화 시놉 (0) | 2014.06.22 |
[스토커] 박찬욱의 여자는 더욱 강해진다 (0) | 2014.04.14 |
우리에게 필요한 마법가면을 읽고 (0) | 2014.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