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단편 소설] 가슴에 사탕 하나

권정선재 2014. 11. 16. 23:43

도대체 언제 들어간다는 거야?”

죄송합니다.”

유경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기상 상황 탓에 비행시간이 계속 딜레이 되는 중이었다. 승객들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아침 비행기인 탓에 새벽부터 나섰을 승객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유경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언제부터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까?”

그게 아직 저희도 확인을 해 봐야.”

나 참. 아는 게 뭐야!”

승객의 큰 소리에도 유경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지금 승객들 탑승해도 된대.”

택규가 바쁘게 걸어 나왔다. 다행이었다. 승객들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유경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택규와 함께 승객들의 탑승을 도왔다.

 

내 짐을 여기에 넣어야 한다고요!”

지금 여기에 여유 공간이 없으니 저희가 다른 공간에 넣어드리겠습니다.”

아니 당신들이 비행기 연착 시켜서 겨우겨우 탄 사람한테 지금 짐까지 마음대로 넣지 말라고 하는 거야!”승객의 언성이 높아지자 영실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겉으로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른 승객 분들의 짐이 이미 있어서 이 짐을 넣기는 어렵습니다.”

여기 여유 공간이 있잖아요. 여기. 그런데 왜 내 짐을 넣을 수 없다는 거야?”

이중으로 겹쳐서 넣으면 비행 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다른 공간으로.”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택규는 밝은 표정으로 다급히 다가왔다.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아니 내 자리 위에 있는 공간이 내 짐을 넣으라고 하는 공간이 아닙니까? 도대체 왜 내 짐만 못 넣는다고 하는 겁니까?”

택규는 다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다른 승객의 짐을 옮기고 나서 언성을 높인 승객의 짐을 위로 올렸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단 말 말고.”

그만 좀 합시다.”

뒷자리에 앉은 노부인이 매서운 눈빛으로 승객을 쏘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 지금 비행기에 자기 혼자 탄 것도 아니면서 혼자 그렇게 난리를 치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그렇게 급하면 비행기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타던가. 그리고 다른 곳에 넣어준다고 해서 기내에서 사라지는 짐도 아니고. 또 다른 승객의 짐을 옮겨서 자기 짐을 넣어줬으면 그만 둘 잘도 알아야지. 사람이 그렇게 화만 내고 자기 권리만 찾으려고 한다고 해서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걸로 보이는 겁니까? 여기 지금 다들 불편해하는 거 안 보여요?”

아니 내가 뭘.”

승객은 뭐라고 한 마디 덧붙이려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머쓱한지 자리에 앉았다. 영실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이고 뒤로 향했다.

고생해요.”

?”

고생이 많다고.”

노부인은 갑자기 영실의 손을 꼭 잡고는 사탕 하나를 건넸다. 영실은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편안한 비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미리 자리 빼노라고 이야기 안 했어? 다른 사람들 다 있는데 이거 비행이 편할 수가 있겠느냐고? 내가 이 항공사를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미리 자리들 비워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말이야.”

유경도 진땀을 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풀이라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노신사는 자신의 옆자리에 다른 승객이 있다는 이유로 유경에게 화를 내는 중이었다.

비행시간이 짧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다니라는 거야!”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지금 죄송하다고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리 없어?”

지금 여유 좌석 확보가 어렵습니다.”

그럼 1등석으로 가야지.”

? 그건 제가 지금 어떻게.”

아니 승객에 대한 서비스가 이 모양인데 자리도 바꿔주지 못한다는 거야!”

거기 그만 좀 하시죠.”

뒷자리에 앉아있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렇게 넓은 자리에 앉고 싶으면 아저씨가 직접 돈을 더 내고 가시던가요. 왜 엄한 승무원에게 난리입니까? 난리가? 지금 아저씨 하나가 난리를 쳐서 이륙도 못 하고 있는 거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그리고 당연히 돈을 냈으면 그 자리 하나지. 지금 도대체 뭘 가지고 따지려는 거예요?”

어디 새파랗게 어린놈이. 너는 애비 애미도 없냐!”

그렇게 자식이 있으신 분이 딸 같은 분에게 그리 막말을 하십니까? 따님이 밖에 나가셔서 이런 처우를 받는다고 생각을 하시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십니까!”

맞아. 맞아. 이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니 노신사는 입을 삐쭉 내밀고 자리에 앉았다. 유경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승무원님도 그만 사과하세요.”

?”

아니 이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과를 하느냐고요. 진짜 승객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 승무원이 할 일이지. 자기가 해야 할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저렇게 따지는 사람이 이상한 겁니다. 이렇게 무조건 사과를 해주시니까 저런 사람들도 이게 당연한지 알고 있는 거잖아요.”

죄송합니다.”

.”

사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더니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 유경에게 건넸다.

승객에게 이런 것을 받으면 안 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냥 가지고라도 있어요. 우울할 때는 단 것이 최고거든요. 그리고 저 분 이제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실 겁니다. 다른 승객 분들까지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으니 사람이면 아무런 말도 못 하겠죠.”

감사합니다.”

유경은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벌써 걱정이다. 걱정이야.”

뭐가요?”비행 시작부터.”

영실은 기지개를 켜며 미간을 모았다.

아니 비행시간이 늦어지는 것이 우리 잘못이냐고. 현지 공항에서 허가가 나지 않는 건데 우리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느냐는 말이야. 이런 말들 자꾸 하면 우리가 뭐 답을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라니? 무슨 승무원이 짜증인형이니? 다 받아주기만 하게?”

에이.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승객들 입장에서는 저희에게 물어보는 것이 전부잖아요. 그러니까 뭐 어쩔 수 없겠죠.”

그럼 짐 가지고 난리를 하는 거는?”

승객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유경은 싱긋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부처네. 부처야. 나는 아까 자기 같은 상황이었음 화냈을 거다. 아니 자리를 비워두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애초에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왜 우리에게 그렇게 화풀이를 하느냐는 말이야. 우리가 그렇게 만만한가?”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희가 장거리 노선이잖아요. 연세도 있으시면 비행 자체가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요.”

대단해요. 김유경 씨.”

영실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한 번 목을 풀었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다. 목이 뻐근한 게.”

비행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으면? 네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니? 움직이면 좀 나아질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

영실은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이런 날의 비행은 유난히 더 걱정스러웠다. 보아하니 기류 역시 심상치 않았다.

앉아계셔야 해요!”갑자기 한 노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틀비틀 걸었다.

지금 안전벨트 유도등이 들어와 있습니다. 앉아주세요!”

내가 갈게.”

아니요. 제가 갈게요.”

영실이 안전벨트를 풀려고 하자 유경이 먼저 미소를 지으며 달려 나갔다. 노인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은 후 그를 자리에 앉히고 유경은 재빨리 자리로 돌아왔다.

왜 저런대?”

화장실이 급하시다고 하시네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 분이 아니세요. 저희가 하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신 모양이에요.”

그래도 조심해야지. 비행기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잘 모르셔서 그렇겠죠.”

영실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일진 무지하게 사납다. 다들 왜 이렇게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 저 분 또 일어난다. 아직 일어나면 안 된다니까. 아직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영실의 외침에 노인은 다시 손을 들어 보이고 자리에 앉았다. 영실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료가 이게 다예요?”

?”

나는 딸기 탄산음료가 좋은데.”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가 준비한 음료가 이게 전부입니다.”

어떻게 못 구해오나?”

?”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여성 승객의 말에 유경은 반문했다.

아니 저기 1등석이나 뭐 그런데는 딸기 맛 음료도 있고 그런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저희 기내 자체에 그런 음료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서비스가 개판이네.”

죄송합니다. 대신 저희가 다른 음료라도.”

됐어요.”

알겠습니다.”

유경은 고개를 숙이고 다른 승객들에게 음료 서비스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몇 자리 앞으로 간 상황에서 여성 승객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저 그냥 오렌지 주스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오렌지 주스를 따라서 정중히 건네고 다시 돌아서려는데 여성 승객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이 시금털털해? 이거 상한 거 아니야?”

?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저희가 지금 유통 기한이.”

그럼 지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유경이 당황한 사이 영실이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음료로 바꿔드려도 되겠습니까? 탄산음료는 어떠십니까?”

나 콜라나 사이다 안 마셔요.”

여성 승객은 도도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제품은 저희가 아직 뜯지 않은 새 제품인데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냥 줘요. 뭐 없다면서?”

감사합니다.”

영실은 새 음료수를 따서 여성 승객에게 따라드린 후 밝게 웃었다.

시원하게 드십시오.”

별로 시원하지도 않네.”

 

도대체 왜 저러는 거라니?”

그러게요.”

영실은 연신 손부채질을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무슨 상한 음료수를 준다고 그래? 아무래도 비행 중이고 몸이 피로하고 그러니까 음료 맛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거겠지. 자기가 그러면 다른 승객들도 이상하게 생각을 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그래도 선배님 덕에 잘 모면했어요.”

잘 모면은. 안 되는 걸 왜 자꾸 부탁하는 거라니?”

그러게요.”

음료수 잘 했어.”

택규는 카트를 정리하면서 엄지를 들어올렸다. 영실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오늘 몸 상태도 최악인데 승객들까지 하나도 안 도와주시네. 우리가 무슨 신이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아닌 것을 가지고 자꾸 우리에게 바라면 어쩌라고?”

그러게요.”

뭐 우리가 지금 편의점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거라니?”

영실은 기지개를 켜다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유경은 황급히 영실의 목덜미를 주물렀다.

선배. 완전 단단해요.”

안 단단한 사람이 어디에 있어? 다들 비행이 힘들지. 됐다. 이제 식사 준비합시다.”

영실은 손뼉을 치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걸 지금 사람 먹으라고 가지고 온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서비스 정신이 뭐 이 따위야?”

사내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다른 승객들의 이목도 집중됐다.

이렇게 식어빠진 음식을 먹고 뭐 어떻게 하겠냐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유경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잘못해서 민원이라도 들어간다고 하면 그것이야 말로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면서 허리를 숙였다.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그게 당연한 거지.”

그제야 승객은 입을 내밀면서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앉은 여성 승객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애인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녀를 몰아세운 것이었다. 억울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라니?”

음식이 너무 차갑게 나왔다고.”

? 여기 뭐 레스토랑이라도 된다니? 전자 오븐 가지고 데우는 것도 이 정도지. 그리고 그것도 가장 맛있는 온도를 찾아서 제공하는 건데.”

뭐 자기 애기가 엄청 뜨거운 걸 원한다네요.”

어린이 고객에게 무슨?”

어린이 고객이 아니라요.”

.”

영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여자 친구에게 좋게 보이는 것까지 이해는 하겠지만 그것을 굳이 이렇게 무례하게 표현해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아니 그냥 따뜻하게 해달라고 다시 하면 되는 거지. 꼭 저렇게 사람을 무시해야 하는 건지.

힘들지?”

아니요.”

유경은 밝게 웃어 보이며 다시 식사를 준비했다. 승객이 주문한 메뉴가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만일 이 메뉴가 없다고 하면 승객이 또 어떻게 나올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녀올게요.”

고생해라.”

유경이 나가는 것을 보며 영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택규는 수레를 밀고 들어오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김유경 씨 뭐 하는 거야?”

음식이 너무 차갑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왔습니다.”

뜨거울 텐데?”

모르죠.”

영실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자기들의 뜨거운 사랑처럼 뜨끈뜨끈한 음식을 원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 그런 음식이 기내에서 어떻게 제공이 되냐고요. 그냥 투정을 부리는 거지. 유경이 쟤는 너무 순해서 탈이에요. 다른 승객들은 아무런 말도 안 하잖아요.”

이런 날도 있는 거고, 또 저런 날도 있는 거지. 자기는 뭐 승객들에게 그렇게 분풀이를 하고 그러냐?”

제가 언제요?”

지금 그러잖아.”

아니거든요.”

애인하고 헤어져서 더 그런 거지?”

아니에요.”

영실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서인지 커튼 밖을 살짝 내다보았다. 다행히 뒤를 돌아보는 승객은 없었다.

아무튼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되는 거라고요.”

오늘은 비행 좀 편했으면 좋겠다.”일단 안 그럴 것 같은데요?”

그런가?”

현지 기상 악화로 인해서 이미 연착이 된 상황이었다. 승객이 거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게다가 좌석도 거의 풀로 차 있으니 편하게 비행할 생각은 접는 것이 우선이었다. 언제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이런 날에 비행은 그다지 유쾌하게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비행 좋아하시잖아요.”

좋아하지.”

택규는 창밖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이렇게 구름 위로 자주 날아다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안 그래?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맙시다. 뭐 좋은 일도 있을 거야.”

다녀왔습니다.”

그래 뭐래?”

이번에는 아무 말도 없던데요?”

그거 그냥 투정이지.”

영실은 입을 내밀면서 정리를 시작했다. 유경도 씩 웃어 보이며 영실을 거들었다.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애인이랑 여행을 왔는데 이렇게라도 멋을 좀 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 것 같고요.”

아니 그 여자도 되게 웃기다.”

뭐가요?”

승무원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그런다니? 남자는 말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그걸 보면 되는 거라니까? 그 모습이 딱 그 남자의 진심이야. 나중에 여자에게도 너에게 하듯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러니 남자는 잘 보고. 그렇게 사귀어야 하는 거야. 레스토랑에 가서 웨이트리스에게 뭐라고 하는지, 비행기에서는 승무원에게 뭐라고 하는지. 그게 바로 좋은 남자를 고르는 포인트라고.”

저는 뭐 연애라도 해봤으면 좋겠어요.”

잡담은 그만.”

선임 승무원이 들어오자 세 사람은 바쁘게 정리를 마쳤다. 선임 승무원은 유경을 보며 살짝 미간을 모았다.

아까 무슨 일이었어?”

그게.”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객이 클레임을 걸었다네요.”

자기에게 물은 것 아니지?”

영실이 대신 대답을 하니 선임 승무원은 미간을 한 번 더 모았다.

준비해드린 식사의 온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리는?”

새 식사를 준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소란이었지?”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선임 승무원은 이리저리 목을 풀며 이마를 짚었다.

자기들도 비행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일단 승객이 우선이라는 것 명심하도록 해요. 우리가 힘든 것처럼 승객들도 힘들어. 게다가 오늘 비행시간 연착도 다들 기억하죠? 안 그래도 모두 다 예민한 상태니까 더 이상 자극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선임 승무원이 다른 업무를 보러 나가자 영실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셔야 하는 거 아니야? 늘 승객 먼저,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뭐 기분도 없고 감정도 없나? 우리도 이런 일 당하고 나면 기분이 무지 상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일단 승객이 우선이니까요. 선배도 너무 열 내지 말고 참으세요.”

너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하는 것이 더 답답하고 그래서 화가 난다.”

영실의 지적에 유경은 혀를 살짝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커튼이 열리고 불쑥 뚱뚱한 남성 승객 하나가 들어왔다.

여기 주전부리 할 거 있나요?”

?”

간식 같은 거요.”

, 땅콩 드릴까요?”

. 좀 많이 주세요.”

유경은 밝은 미소로 땅콩 네 개를 집어서 승객에게 건넸다.

그래도 저 분은 컨디션이 나쁘시지 않은 모양이에요. 저는 아침부터 비행이라서 입맛도 하나 없는데. 지금 막 식사를 마치시고 또 간식까지 찾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여기까지 안 들어왔으면 하는데.”

등 키는 거 보다는 낫죠. 저 그거 노이로제 걸릴 거 같아요.”

나도.”

택규 역시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희가 서비스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승객도 저희를 배려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자기 자리로 오라고 하면 괜히 미안하고 그러니까.”

아이고, 그렇게 오지랖이 넓어서 좋겠습니다. 나는 속이 좁아서 그런 거 하나 모르겠네. 나는 완전 밴댕이인가 보다. 밴댕이.”

에이. 왜 그러세요.”

오늘 비행 정말 힘들다.”

영실은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안 그래도 뻐근한 목이 더욱 뻐근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다들 왜 이러는 거라니?”날씨가 안 좋으니 다들 느끼시는 거겠죠?”

갑자기 아이가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영실이 일어나려고 하자 유경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나갔다.

그래도 후배 잘 두셨습니다.”

뭐 제 후배이기만 한가요?”

택규의 핀잔에 영실은 입을 내밀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불편한 점 있으세요?”

혹시 아이가 가지고 놀 것이 있나요?”?”

우리 아이가 너무 울어서.”

세 살 남짓한 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유경은 황급히 모니터를 이용해서 애니메이션을 찾았다. 그제야 아이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저는 어른들 보는 영화만 있는 줄 알았어요.”

요즘에는 전 연령대 고객을 위한 콘텐츠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몰랐네요. 정말 고마워요.”

편한 비행 되십시오.”

유경은 인사를 하고 뒤를 돌다가 입을 내밀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과자는 왜?”

아까 그 꼬마 손님 가져다주려고요.”

뭐 조용한데?”

그래도요.”

유경이 나가자 영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쟤는 왜 없는 일을 저렇게 만드나 몰라요. 승객 분들이 부르기 전에는 딱히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텐데. 괜히 나가고 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잖아요.”

워낙 일을 좋아하니까요. 장영실 씨도 김유경 씨 따라서 일을 좀 열심히 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후배가 저렇게 앞장서서 행동을 하는데 선배님이 되어서 더 멋진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저만 가지고 그래요. 택규 선배도 안 하면서.”

나도 나가지 뭐.”

택규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영실은 미간을 모았다. 택규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 앉아서 목을 주무르는 영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직도 아파?”

. 몸이 정말 말이 아니에요. 요즘 비행을 조금 무리했다가. 사실 생각을 해보면 그 스케줄이 그 스케줄인데 저도 나이가 많이 든 모양이에요.”

그럼요. 내가 우리 장영실 승무원 아주 어릴 적부터 봤는데 이제 나이 들었죠.”

선배 그런 식으로 놀리기에요? 제가 나이가 들었으면 선배님은 할아버지거든요. 할아버지. 완전 파파 스머프면서.”

그래. 나 파파 스머프. 산타클로스다.”

택규의 농담에 영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요.”

뭐가?”

달래줘서요. 우울한 기분. 선배가 있어서 그나마 비행이 힘이 납니다.”

나는 진심인데? 너 위로하려고 한 거 아닌데?”

뭐라고요?”

택규는 씩 웃으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땅콩을 뜯어서 영실에게 건넸다. 영실은 땅콩 몇 알을 집어서 입에 넣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막 서비스 받으면서 비행하고 싶다.”

여행 자주 하잖아?”

그래도 느낌이 다르죠.”

뭐가 다른데?”

제가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껏 서비스를 받겠지만. 저도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부탁을 하기도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혹시나 다른 승객들이 승무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무례하게 행동을 하면 막 제가 속에서 열이 펄펄 나고요. 이런 상황에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는 어렵잖아요.”

역시 장영실.”

뭐가요?”

택규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엄지를 들어보이자 영실은 입을 내밀었다.

늘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고민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막상 남들 입장 되게 잘 배려한다니까.”

선배. 그거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네가 듣기 나름이지?”

그럼 욕이에요?”

그런가?”

영실이 밉지 않게 눈을 흘기자 택규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그 말 한 건 내가 아니라 장영실 승무원입니다.”

아 네. 제 잘못이죠.”

영실은 입을 내밀면서도 밝게 웃었다.

 

과자 좀 드시겠습니까?”

, 감사합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과자를 건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내가 비행기는 처음 타봐서.”

아닙니다. 어른들도 이렇게 비행시간이 길면 지루해하는 것이 당연하거든요. 그런데 주무시는 승객 분들이 있으니까 밝기는 조금 낮춰서 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유경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너 정말 대단하다.”

그렇죠?”

영실은 엄지를 들어올렸다.

이제 조금 쉬는 건가? 체감으로는 벌써 인천에 도착한 것 같아.”

뭘 그래요? 다른 날은 더 힘든 날도 많잖아요. 이제 다른 것 또 준비해야죠?”

그때 불이 들어왔다. 유경이 나가려고 하자 택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내가 다녀올게.”고맙습니다. 선배님.”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안대 없어요?”

, 안대 말씀입니까?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택규는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한 후 안대를 가져왔다. 승객이 안대를 끼고 눕는 것을 보고 택규가 돌아서는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뭐야?”

?”

편안히 쉬라는 말 안 해?”

아 편안히 쉬십시오.”

이거 뭐야!”

승객의 고함에 주위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무슨 서비스가 이 모양이야? 지금 승객이 안대 가져다 달라고 해서 짜증이라도 난다는 거야? 뭐야? 아니 도대체 뭐 하자는 건데?”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편한 비행 되십시오.”

나 놀리니?”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지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니? 그냥 안대만 딱 주고 가면 그걸로 그만이야?”

거기 조용히 좀 합시다.”

너나 조용히 해!”

다른 승객의 핀잔에 승객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고객에게 편히 쉬라고 말도 안 하는 승무원 내가 교육 좀 시킨다고 하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이런 승무원 그냥 있으면 다들 귀찮을 거라는 거 모르고 그러는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택규는 미소를 지은 채로 허리를 숙였다. 말도 안 되는 핀잔에도 그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승객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택규가 승객에게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비행기에는 이미 불이 꺼져 있었고 승객들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아니 지금 죄송하다고 될 일이 아니라. 잠이 다 깼잖아. 잠이. 나 잠에 쉽게 들지 못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할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무릎 꿇어.”

?”

무릎 꿇으라고.”

저 죄송합니다만.”

지금 못 꿇겠다는 거니? 이거 컴플레인이라도 제대로 걸어야겠네. 어디 승무원 서비스가 이 모양이야!”

와인 드릴까요?”

유경이 택규 뒤에 나타나서 밝은 표정으로 와인을 들어보였다.

저도 기내에서 잠 잘 안 오거든요. 여행 다니고 그러면 막 몸이 붕 뜨고 그러더라고요. 그럴 때 이 와인이 정말 제대로 잠이 오더라고요.”

너 지금 장난하니?”

한 번 드셔보세요.”

유경은 와인을 따라 승객에게 건넸다. 승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유경에게 와인을 쏟아 부었다.

너나 많이 마셔. 어디 건방지게.”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뭐라고? 여기에서 이러면 뭘 어떻게 할 건데?”

거기 조용히 좀 하라고요.”

아까 유경에게 사탕을 건넨 사내가 성큼성큼 자리로 다가왔다.

기내에서 이렇게 난동 부리다가 매스컴 탄 사람들 못 봤습니까? 지금 이 여성 승무원에게 당장 사과하십시오.”

뭐라는 거야?”

다 찍었거든요?”

사내가 스마트폰을 들어보이자 승객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래서 뭐 유포라도 하겠다는 거야?”

.”

사내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동영상이 유포되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승무원께 사과하고 넘어가시겠습니까?”

미안해요.”

승객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유경은 다시 와인을 한 잔 따르고 사내의 자리로 향했다. 사내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멋진 분들이에요. 하늘의 천사야.”

맞아 천사.”

아까 그 어린 승객도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다른 승객들도 잠에 깬 모양이었다.

누나.”

?”

꼬마 승객이 유경의 손에 무언가를 건넸다. 펼쳐보니 작은 사탕 두 개가 놓여있었다.

형아랑 같이 먹어.”

그래? 고마워.”

유경은 밝게 미소를 지으며 택규에게 사탕 하나를 건넸다. 택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꼬마 승객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물론 남은 비행시간도 사건의 연속이었다. 스팀 타월이 너무 뜨겁다고 하는 승객.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이 너무 안 나온다고 투정을 부리는 승객. 아침의 양이 부족하다는 승객. 하지만 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의 직업이었으니까.

 

오늘도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출구에서 승객들에게 인사했다. 사내는 유경과 택규를 향해서 감사의 말을 건네고 나갔고, 노부인은 영실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린 꼬마 승객은 유경과 택규에게 나란히 하이파이브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