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득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에 고개를 들었다. 웬 사내가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아라는 그 시선을 보지 못한 척 하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미는 황급히 노트북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후다닥 카페를 나서는 순간 낮은 목소리가 그녀를 붙들었다.
“저기 당다미 맞지?”
다미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봤다. 자신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 사내가 성큼성큼 자신에게로 걸어와서 손을 척 하고 내미는 것이 아닌가? 다미는 한참이나 그 사내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했지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네? 제가 당다미가 맞기는 한데요. 저는 그쪽을 모르는데 어떻게 절 아세요?”
“아, 나를 기억 못 하는 건가? 이거 완전 서운하다. 나는 너를 기억하는데.”
“네? 그쪽 누구신데 저를 아시는 거죠? 저는 정말 아무런 기억도 없는데요.”
“도대혁. 너랑 같이 고등학교 다녔었는데? 다미 네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이거 되게 서운한데? 나는 네 얼굴을 보자마자. 아 당다미다. 이렇게 바로 알아봤는데.”
“아, 그래? 우리가 고등학교에 같이 있었구나.”
다미는 머릿속을 미친 듯 뒤졌지만 그래도 대혁이라는 이름은 머리에서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아는 척 하는 사람까지 모른 척 하는 것도 너무 우스웠다. 다미도 싱긋 웃으면서 그 손을 잡았다.
“아 대혁이. 되게 오랜만이네.”
“너 나 기억 못 하는 거지?”
“어? 그러니까 그게.”
“여전하네. 안면인식장애. 사람 얼굴 하나도 못 알아보는 거 말이야.”
“내가 그랬나?”
다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손을 빼내고 대충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대혁은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다미는 더욱 어색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아무튼 여기는 어쩐 일이야?”
“잠시 외근을 나왔다가. 다미. 너 할 일 없으면 나랑 같이 점심 하지 않을래?”
“어? 점심을 먹자고? 우리 두 사람이?”
“여기 또 누가 있어? 아직 밥은 안 먹었지?”
“그게 그러니까. 나는 지금 별로 점심 생각이 없어서. 너랑 만난 건 되게 반가운데.”
대충 둘러대고 피하려고 하는데 엄청나게 커다란 소리가 다미의 배에서 흘러나왔다. 다미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면서 혀를 살짝 내밀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내 배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같이 밥 먹자. 어차피 너 지금 할 일 없는 거지? 아, 지금 가방 다 챙기고 나가려고 하는 건 뭐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런 건가?”
“아니. 그냥 되게 이상한 사람이 나를 막 보고 있어서.”
“그게 나야? 지금 그 이상하다는 사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하는 거지?”
대혁은 자신을 가리키다가 다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큭큭 거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허리까지 숙이면서 흥미로워하는 대혁을 보며 다미는 입을 쭉 내밀고 밉지 않게 그를 흘겨봤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다미를 보고 대혁은 억지로 웃음을 참아냈다.
“그렇게 계속 웃기만 할 거면 나는 그냥 가고.”
“아, 아니야. 아니 그냥 누가 자기를 쳐다보면 아. 내가 되게 예뻐서 쳐다보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후다닥 도망을 갈 이유는 도대체 뭐야? 무슨 빚이라도 진 거야? 그런 게 아니면 그렇게 도망을 갈 이유가 없잖아?”
“누가 빚을 져? 그냥 이상한 사람이 쳐다보니까 그런 거지.”
“내가 그렇게 수상해 보이나?”
대혁은 입을 쭉 내밀고 출입문에 여기저기 자신을 비춰보았다. 다미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아무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그래. 같이 밥 먹자. 밥 먹어.”
“내가 살게. 너 되게 수상하게 바라보고 이 카페에서 후다닥 도망가게 만들었으니까.”
“그거 알고 계시니 참 다행이네요. 그렇게 막 보면 되게 이상한 기분이 들거든. 그것도 눈이 마주치고 나서 이쪽이 눈 깔았는데도 한참이나 보면 말이야. 아무튼 모르겠다. 아 몰라. 배고파. 네가 산다니까 가자. 밥 먹으러 갑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거야? 작가? 지금 너 작가가 된 거지?”
“작가는 아니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다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 대학을 졸업한 지가 몇 년인데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낸다는 사실이 쿵하고 머리를 울렸다. 다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대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뭐 언젠가는 되겠지. 그거 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을 해야 하는 일인가?”
“어? 언제낙 되다니? 갑작스럽게 그게 무슨 말이냐? 작가도 아닌데.”
“잘 나가는 작가들도 다들 한참 나이가 먹고 돈다고 하더라. 아직 사회 경험도 제대로 못할 나이인 우리가 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거 아니냐?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이야?”
“그런데 너 진짜 누구야?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네 얼굴을 봐도 잘 모르겠다.”
“어? 아직도 나를 기억 못 하는 거야? 그래놓고 이렇게 같이 밥을 먹은 거야?”
“그게 그러니까. 조금 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처음하고 같은 건 아닌데.”
“정말 기억 못 하는구나?”
피클을 우물거리면서 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나는 너를 완전 잘 알고 있는데?”
“어? 어떻게 나를 잘 알고 있어? 우리 고등학교 졸업한지 되게 오래 되었잖아. 그런데 나를 아직도 기억해?”
“문유아. 기억하지?”
“어? 유아. 알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이 대혁에게서 나오자 다미는 살짝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었다. 대혁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바르게 앉았다.
“내가 그 녀석하고 같은 회사에 다니거든.”
“아. 그래.”
“그런데 너 나랑 같이 동아리 했던 것도 기억 못 해?”
“동아리?”
“토론 동아리.”
“아. 토론 동아리.”
대충 어렴풋이 기억이 잡히는 것이 있었다. 서클 시간에 토론 동아리. 그다지 선명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자신도 그 동아리였다.
“그런데 나는 별로 재미없었나 보다.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우리 같이 MT 간 것도 기억 안 나?”
“MT?”
“너 물에 빠지고. 내가 너 구해준다고 했다가 같이 빠지고. 정말 그런 거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거야?”
“아. 기억 나. 정확히 기억이 나는 건 아닌데. 대충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
대혁의 말을 들으니 조금 더 기억이 선명해졌다. 바위에서 유아와 장난을 치다가 미끄러진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준 남자애. 다미는 손뼉을 치면서 검지로 대혁을 가리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너였구나?”
“이제 기억이 나는 거야?”
“어? 어. 이제 겨우 기억이 난다.”
“아무리 내가 소극적인 학생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를 너무 못 떠올리는 거 아니야? 이거 완전 서운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나름 우리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랬나?”
“그랬나? 뭐야.”
대혁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미는 입을 쭉 내밀고 그런 대혁의 얼굴을 살폈다. 대혁의 말을 듣고 나니 늘 고등학교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남자애 하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어차피 기억 안 나는 거 그렇게 꼼꼼하게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그냥 밥이나 먹어. 파스타 퉁퉁 불겠다.”
“다 먹었어.”
다미의 대답에 대혁은 한숨을 쉬고는 다미의 파스타를 자신의 자리로 옮겼다.
“너 이거 다 먹은 거 맞지?”
“네가 먹으려고?”
“왜 안 돼? 너 더 먹을 거야?”
“아니. 나는 배부른데. 그거 더럽지 않아?”
“친구가 먹은 건데 왜 더럽냐?”
대혁은 다미의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미가 먹던 파스타를 한껏 입에 넣었다. 볼이 빵빵해서 터질 것 같은 대혁의 모습에 다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다미를 보던 대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을 가리고 그녀를 따라 웃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써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이미 한 번 터진 웃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혁은 겨우 입 안의 음식을 다 씹어 삼키고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당다미. 너 왜 웃는 거냐?”
“몰라. 그냥 막 웃겨.”
다미는 얼마나 웃었는지 눈초리에서 눈물까지 훔쳐냈다. 대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만히 미소를 짓고 물을 마시며 애써 웃음을 진정시켰다.
“좋다. 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까.”
“그러게. 신기하다.”
“갑자기 만난 친구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렇게 식사하고 그러니까 나쁘지 않지?”
“응. 오늘 너 만난 거 완전 다행인 것 같아.”
진심이었다. 엄마랑 싸우고 나서는 벌써 몇 달이나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고, 여기저기 낸 공모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화는 늘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웃을 기회가 한 번도 없었는데 대혁과 보낸 시간은 해복했다.
“나 지금 되게 신기한 거 알아?”
“뭐가?”
“너랑 지금 막 만난 사이잖아? 그런데 마치 되게 오랜 시간 너를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편하고 그렇다?”
“우리 두 사람 고등학교 때 친구였으니까.”
“뭐. 그것도 네가 말을 하기 전에는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니까. 신기하지?”
“그런가?”
“그런 거 맞거든.”
대혁의 심드렁한 대답에 다미는 입을 쭉 내밀고 살짝 흘겨봤다. 대혁은 순간 웃음을 지우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다미는 혹시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싶었는데 대혁은 계산서를 집어들었다.
“그럼 우리 일어날까?”
“어?”
“나 저녁에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봐야 하거든.”
“그런 거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내가 괜히 네 시간을 빼앗은 거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다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대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하철 타고 가면 돼.”
“그럼 우리 다음에 또 보자.”
“어? 아. 너 전화 번호 좀 알려줄래?”
“전화 번호?”
다미는 황급히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대혁은 잠시 그 전화기를 받아들고 씩 웃으면서 자신의 번호를 누른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전화에 다미의 번호가 뜨는 것을 보여주고 엄지를 들었다.
“내가 먼저 네 전화 번호 딴 것이 아니라 네가 먼저 알려달라고 한 거다.”
“알았어. 우리 유아까지 종종 보자.”
“그래.”
다미는 대혁에게 손을 흔들고 지하철로 향했다. 뭔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이 뭉클했다. 되게 익숙한 기분. 지금 이 순간도 대혁이 말해준 부분을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2
“5200원입니다.”
“아, 잠시만요.”
다미는 가방을 뒤졌다. 분명히 100원 짜리 몇 개가 굴러다녔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가방을 뒤져보아도 동전이 나오지 않았다. 딱 지폐 한 장만 가지고 나왔던 터라 이리저리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100원 짜리 두 개를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네? 아니 저 돈이.”
“여기 영수증이요.”
다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직원은 영수증과 그녀가 산 물건을 다미에게 건넸다. 다미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데 사내는 씩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아, 감사합니다.”
다미가 입을 내밀고 편의점을 나서려는 순간 낮은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그런데 당다미 맞지?”
“네?”
“맞구나.”
사내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씩 웃었다. 그리고 편의점 문을 잡고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 도대혁인데.”
“도대혁?”
“기억 안 나? 우리 고등학교 때 같은 동아리였는데.”
“이거 대박이다.”
다미는 놀란 눈을 하고 대혁을 바라봤다. 대혁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렴풋이 그와 같이 동아리 생활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네가 낯설지?”
“나는 네가 편하게 느껴졌는데. 당다미. 너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다미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런데 그 동안 왜 유아가 네 이야기는 한 번도 안 한 거지? 우리 그래도 같이 고등학교도 다니고 동아리도 했으면 나름 친하게 지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나는 아직 유아랑 연락하고 있는데?”
“뭐? 문유아 대박이다.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을 한 건가?”
“무슨 짓?”
“아니.”
“유아랑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대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미는 머쓱한 표정으로 빨대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뭐라고 했나?”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잖아. 무슨 계기라도 있어야지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지. 안 그래? 나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유아가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겠지. 굳이 너에게 나에 대해서 숨길 이유 같은 거 하나도 없잖아. 안 그래?”
“그러게. 그런데 되게 반갑다. 내가 아직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하는데. 그래도 우리 두 사람 고등학교 시절 나름 친하고 그랬던 것 같거든. 그런데 왜 대학을 다니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걸까?”
“학교가 너무 멀어서 그렇지 뭐.”
“그러게.”
다미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대혁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하고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멀어진 경우도 있으니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너 나랑 이렇게 오래 있어도 괜찮은 거야?”
“응. 오늘 그냥 외근 나갔다가 바로 퇴근하면 된다고 했거든.”
“오. 되게 좋은 회사네.”
“그런가? 그런데 다미 너는 오늘 뭐 하려고 했어?”
“아무 것도. 나 요즘 글 쓰거든.”
“아. 글 쓰는 구나.”
대혁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몸을 확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 너 고등학교 다닐 적부터 이것저것 끼적이는 거 되게 좋아했잖아. 그런데 여전히 글을 쓰고 있구나. 되게 멋있다.”
“멋있기는. 밥벌이도 못 하고 있는데.”
“그래도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잖아.”
“돈도 하나 못 버는 건 하나도 멋진 거 아니야.”
다미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랑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다툴 때는 되게 화가 나고 그랬었는데 지금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를 해놓고 보니 엄마라면 당연히 자신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게 부럽더라.”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거야.”
“누구나 쓸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냥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면 되는 거지. 글 쓰는 사람이 어디 따로 있나?”
“너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거 되게 신기한 거라니까? 자기가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거잖아.”
“나는 잘 쓰는 소설가도 아닌데 뭐.”
“잘 쓰는 소설가나 못 쓰는 소설가나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혁은 씩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대혁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다미의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마치 대혁이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얼굴이 구겨졌다. 그녀의 얼굴을 살피던 대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거야?”
“아니.”
대혁의 물음에 다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혁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자격지심이 문제일 따름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모양이야.”
“너무 예민하게 생각을 하지 마. 내가 어떤 영화에서 완전 공감하는 대사가 하나 있는데 말이야. 꽃이 늘 같은 시절에 피는 것이 아니래. 철마다 피는 꽃이 다 다르잖아? 그런데 우리는 모든 꽃이 같이 핀다고. 그 계절에 피지 않는 꽃을 가지고 나무라곤 하잖아. 아니면 엄청 추운 날에 피는 개나리를 보고 미친 개나리라고 하거나 말이야. 그런데 꽃은 모두 저마다 피어나는 시기가 있는 거야. 자기가 피고 싶을 때. 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서 오랜 시간 준비를 하고 피어나는 거거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피는 꽃은 아름다울 수가 없어. 꽃봉오리 안에서 가장 아름답기를 준비하고 나서 피는 꽃이야 말로 아름다운 거라고. 당다미. 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서 준비하는 거야.”
다미는 물끄러미 대혁을 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지금 되게 오글거리는 거 알지?”
“그랬나?”
“그래도 좋다.”
다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뻔한 이야기고 오글거리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냥 잘 될 거라는 이야기가 이토록 큰 힘이 되고 마음에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더욱 더 기분이 좋은 그녀였다.
“근데 지금 나 반응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될 걸? 지금 네가 하는 말 되게 오글거리고 불편하게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어.”
“알겠어. 명심할게. 그런데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데? 나는 그냥 너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거든. 내가 하는 말이 너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하면 그걸로 충분해. 내 말이 위로가 된 거 맞지?”
“응.”
다미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큰 위로였다. 막연히 잘 될 거라는 이야기. 유치한 이야기지만 확실히 기분은 좋았다.
“너랑 유아랑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왜?”
“아니. 문유아 그건. 늘 나를 막 구박하고 그런다. 그러다가 나 굶어 죽기 딱 십상이라고.”
“몰랐는데 유아가 되게 상상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렇지?”
다미는 자신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대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너 뭐냐?”
“뭐가?”
“아니 갑자기 부끄러워하는 건 또 뭐야?”
“그런 적 없거든.”
“없기는.”
다미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다가 대혁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속 시원하게 웃어본 것이 도대체 언제인지 모르겠어. 그냥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그래?”
“응. 고마워.”
다미의 미소에 대혁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오늘 너 처음 봤을 때랑 지금이랑 모습 되게 다른 거 알아?”
“그래?”
“응. 너 아까는 되게 막 우울하고.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너의 것처럼 만들려는 사람으로 보였거든. 그런데 지금은 아까보다 많이 밝아졌어. 조금은 행복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달라.”
“그렇게 말을 해주니 고맙네.”
다미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지만, 그래도 대혁이 그녀의 친구라는 생각이 들고 나니 이런 식으로 위로를 받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참 고마웠다. 묘하게 마음에 콕 하고 박혀 있던 무언가도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건데 그 동안 왜 못 그랬는지 모르겠어.”
“사람들이 다들 그렇지 뭐. 마음속에만 콕 이야기를 담아두고 말이야.”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아직도 대혁이 네가 잘 기억이 안 나.”
“그거 되게 미안해야 하는 말인데? 나는 다미 너 완전 잘 기억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더 신기한 거 있지? 우리가 서로 크기가 다른 사람이란 거잖아.”
다미의 말에 대혁은 살짝 입을 내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내가 너를 생각하고. 그 시간을 생각하는 것하고 네가 그 시절을 생각하는 것이 무조건 같을 수는 없지. 사람이 같은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아무튼 나는 그래서 더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거 같아. 만일 대혁이 너를 되게 잘 아는 사이였다면 오히려 오늘 말하는 게 훨씬 더 어색하고 그랬을 거야.”
“그런가? 그러면 네가 기억을 잘 못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는 거야?”
“음. 지금 내가 하는 말을 해석하면 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는 건가?”
다미는 장난스럽게 검지를 물며 반문했다. 대혁은 쿡 하고 웃음으 터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다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려면 어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친구를 이렇게 만난 것도 되게 기분 좋은 일이고. 그 친구가 오늘 나로 인해서 되게 기분이 좋다고 하면 그만인 거지.”
“그런데 너는 그렇게 나를 바로 기억을 할 정도였으면 한 번이라도 나를 찾지 그랬어?”
“그러게. 왜 너를 한 번이라도 찾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걸까?”
“너도 나 별로 안 기억하고 있던 거 아니야?”
“글쎄다.”
다미의 물음에 대혁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남은 음료수를 모두 마셨다.
“아무렴 어때?”
“그러게. 아무렴 어때.”
대혁의 말에 다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어때. 이게 가장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오랜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잘 모르는 사이라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제라도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 동안 이런 식으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는 게 더 신기해. 나는 얼른 집에 가서 유아 그 년에게 물어봐야겠어. 대혁이 너를 꽁꽁 숨기고 있었던 이유가 뭔지 말이야.”
“유아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다미 네가 전혀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야?”
“설마.”
다미는 검지를 내밀어 좌우로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유아가 이야기를 하는 남자 이야기를 잊는다고? 절대로 그럴 일이 없습니다.”
“유아가 그렇게 남자 이야기를 안 해?”
“그래. 나는 걔 무지하게 걱정이 된다니까.”
다미의 미소에 대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 음료수 다 마신 거야?”
“어?”
“너 다 마셨으면 내가 마셔도 되는 거지?”
“그러니까.”
대혁은 다미의 음료수를 가져와서 그녀가 물던 빨대를 입에 물었다. 다미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내밀었다.
“야. 너는 아무리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그거 너무한 거 아니야?”
“너 간염 있어?”
“아니.”
“그럼 된 거지.”
“뭐야.”
다미는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싱긋 웃었다. 대혁은 남은 음료수를 모두 마시고 얼음까지 와그작와그작 소리를 내며 씹었다.
“이제 좀 마신 것 같네.”
“그럼 애초에 두 개를 시키지 그랬어?”
“어차피 너 남길 거잖아.”
“어?”
“아, 아니. 너 늘 그랬다고.”
다미가 고개를 갸웃하자 대혁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미는 입을 쭉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랬나?”
“그럼. 우리 동아리 할 때도 너 늘 음료수 반 캔 씩 남겼잖아. 그거 늘 내가 마셨는데.”
“맞다. 기억이 나는 것 같아.”
대혁의 말에 다미는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자신의 남긴 음료수를 그럼 내가 마실게. 라고 하고 가져가는 아이가 있었다.
“그게 너였구나.”
“이제야 기억이 나는 거야?”
“그러게. 이제야 기억이 난다.”
다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혁은 씩 웃고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그래도 이렇게 너랑 같이 이야기를 하니까 좋다.”
“그래?”
“응. 사무실에만 있으면 무슨 닭장 속에 갇힌 닭 같아.”
“너무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다들 그거 못 되어서 안달이잖아. 안 그래?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닭장 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투정을 부리면 안 되는 거지.”
“그렇다고 무조건 만족만 할 수도 없지.”
대혁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찡긋했다. 그런 그의 윙크에 다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너 되게 느끼한 거 알아?”
“그랬나?”
“어. 무지하게 그랬어.”
다미의 대답에 대혁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갈까?”
“안 데려다 줘도 되겠어?”
“내가 뭐 어린 아이도 아니고 네가 막 데려다 줘야 할 사람 아니거든. 그리고 혹시나 네가 나에게 무슨 이상한 마음을 품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을 하냐?”
“뭐래?”
대혁의 떨떠름한 반응에도 다미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만나서 정말 좋다. 너랑 이렇게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못 했어.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그래도 학창 시절 친하게 지낸 친구라고 기분이 신기하네.”
“나도 마찬가지야. 요즘 안 그래도 막 피부 탄력 떨어져서 고민인데 젊어진 기분이야.”
“늙긴 늙었다.‘
“도대혁.”
다미가 눈을 흘기자 대혁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안 데려다 줘도 되는 거지?”
“응. 지하철만 타면 되는 걸.”
“그래 들어가고. 다음에 또 보자.”
“아 잠시만.”
다림은 황급히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대혁에게 건넸다. 대혁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휴대전화를 받아든 후 자신의 번호를 눌러서 다림에게 건넸다. 다림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대혁의 전화가 울리는 것을 보고 종료 버튼을 눌렀다.
“뭐 한 거냐?”
“혹시나 네가 가짜 번호 줬을까봐.”
“뭐라고?”
“아니. 너 지금 표정 무지하게 떨떠름하단 말이야. 혹시라도 모르지. 네가 그냥 확 사라질지 말이야.”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런 거 아니래도. 그럼 안녕.”
“응. 너도 들어가.”
다림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대혁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우스웠다.
“도대혁 도대체 뭐 하는 거냐?”
대혁은 한숨을 토해내고 다림의 뒤를 가만히 쫓아갔다. 익숙한 골목. 익숙한 집. 다림이 집에 들어가고 나서야 대혁은 멍하니 열쇠로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섰다. 다림의 집.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3
“너 도대체 왜 그러 짓을 하는 건데?”
“뭐가?”
“도대혁.”
“알았어.”
유아의 핀잔에 대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알아. 너 지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또 다림이에게 그럴 거잖아.”
“그럼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냐?”
“뭐가?”
“걔. 정말로 아무 것도 기억 못 하고 있어. 그런데 내가 갑자기. 내가 네 남편이다. 이렇게 나타나면 도대체 뭐라고 하겠냐고? 어차피 당다림 나 하나도 기억 못 하고 있거든. 그냥 이렇게 매일매일 그 녀석 찾아가서 아는 척 하고. 나는 그냥 이게 좋아.”
“그래도.”
“됐다니까?”
유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대혁의 머리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밀고는 입을 쭉 내밀었다.
“너 지금 되게 마음에 안 드는 거 알아?”
“응. 알아.”
“아는 놈이 그러냐?”
“그러게.”
유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혁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다림이가 너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매일 같이 있는 것이 어때? 두 사람 결혼 사진도 있고. 뭐 두 사람이 부부라는 증거는 많잖아.”
“아무리 그런 정보가 많다고 하더라도 자고 일어났는데 낯선 남자가 곁에 있다고 하면 도대체 당다림 그 아이가 뭐라고 반응을 할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유아가 말을 잇기도 전에 대혁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일이 하루이틀도 아니었고 다림이 기억을 잃고, 자신만 떠올리지 못한다고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나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게 싫어서 그런 거야.”
“네가 왜 싫냐?”
“두 사람 다 내 친구니까.”
유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하자 대혁은 혀로 살짝 입술을 축였다.
“그래. 안 그래도 너에게 되게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어. 네가 아니라면 내가 이런 거 못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나 벌써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거야. 네가 있으니까 안 나가떨어질 수가 있는 거지.”
“그래도 너 마음에 안 드는 건 알지?”
“응. 알고 있어.”
대혁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유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할 건데?”
“뭘?”
“그냥 이럴 거야?”
“응.”
“도대혁.”
“그래도 전에는 아무 것도 기억도 하지 못하다가 이제는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는 것이 다른 거잖아. 우리 두 사람이 같이 고등학교 동아리에 있었던 것도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빠르게 떠올리고 말이야.”
“그럼 뭐 하냐? 네가 말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너 혼자서 이렇게 고생하는 거 그 녀석이 모르잖아.”
“다림이가 알기를 바라고 하는 일 아니야. 그냥 내 마음이 편하려고 하는 일이야.”
대혁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다림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자체가 괴로워서 하는 일이었으니 다림이 빠르게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도 너 없었으면 벌써 지쳤을 거다. 지금도 무지하게 지치고 힘이 쭉 빠지거든.”
“하긴 옆에서 보는 나도 지치는데 네가 지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게 더 신기한 거지.”
“아무튼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기억을 찾으면 괜찮은 거 아니겠어?”
“나는 우리가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다고 정말 다미의 기억이 돌아오기나 하는 걸까? 너 혼자서 지금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거야. 지금도 하루하루 더 나아지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대혁은 씩 웃으면서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유아도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하루 더 나아지고 있으니까. 그거면 나는 되는 거야. 뭔가 차도가 보이니 말이야.”
카페에 종이 울리고 다미가 카페로 들어섰다. 대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유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다림은 유아를 보고 밝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당혹스러워 보였다.
“당다림. 여기. 너는 바로 앞이라고 하더니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냐?”
“야. 손님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이런 거면 나 여기에 부르면 안 되는 거지.”
“너는 뭘 그런 걸 가리고 그러냐? 여기 우리 고등학교 때 같은 토론 동아리 했었던 도대혁이잖아. 하나도 기억 안 나? 그래도 우리 나름 친하게 지냈었는데? 정말 기억이 안 나?”
“도대혁?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기는 한데. 같은 동아리라고?”
다림은 대혁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에 대혁은 씩 웃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당다림. 나는 네가 기억이 나는데 너는 안 나는 모양이다. 나 도대혁이야.”
“어? 어.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얼굴이기는 한데 말이야.”
“우리 고등학교 때 야자도 빠지고 같이 떡볶이도 먹고 막 그런 사이였는데.”
“아. 대충 기억이 나는 것 같아. 아 기억이 난다. 우리 같이 MT도 가고 그랬지?”
다림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하나 새로운 것에 대해서 익숙해지는 다림을 보며 대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서툴렀지만, 아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 가면 되는 거였다. 다림이 언제 모든 것을 알지 모르지만 이렇게만 간다면 언젠가는 대혁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먼저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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